적자생존의 논리는 어제까지 기업을 위해 열심히 노동하던 동지를 오늘에의 적으로 또는 이제는 더이상 필요가 없어진 존재로서 토사구팽으로 몰아 그들을 삶이냐 죽음이냐의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노사갈등,
대의민주정치를 실시하는 헌법이 보장하는 나라.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의 권리는 국민이 전제가 될때 인정되고 보장되는 공권력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무참히 짓밟히고 너무나도 쉽게 유린되어버리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공권력 행사 앞에 분노표출은 이제 좌익 빨갱이, 불온한 배후 세력으로 치부되는 요인으로 인식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
가진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한 우리편만이
만들어 가는 세상을 기획하며 그것들은 모두 다 '국민을 위한' 이라고 국민을 현혹하고 세상에 아부하는 오늘의 정치인들과 소위 지식인들의 기만적 술책에 더이상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요구이행은 허황된 바람으로 여겨지고 오히려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행을 통해 노블리스의 사회적 책무를 대신하는 정치와 관련없는 연예인들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하여 국회로 보내자는 정말 웃지못할 해프닝이 너무나도 반갑게 들리는 사회,
아빠의 등에 목마를 탄 어린아이의 촛불이 두려워 촛불의 뻘거스름한 발화부분을 레드 컴플렉스로 결부시키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진보인가 퇴보인가
처음으로 판에 헤드라인으로 저의 짧은 소견이 실렸네요.
한국 사회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고대하고 갈망하는 민주사회가 실현돠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글을 썼는데요, 부족한 의견피력에 가감없는 여러분들의 질책과 충고, 그리고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총신대학교 4학년 역사교육과에 재학중인 권순필이라고 합니다.
실명과 소속을 밝히는 이유는
졸업후 역사교사로 진출할 저에게 제 자신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이땅의 민주화와 인권이 살아 있는 참 역사를 알리고, 참 교육을 하리라는
다짐을 하고자 하며, 이 땅에 민주사회를 이룩하고자 헌신하였던
이름모를 민중들의 희생과 수고를 기억하여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정당한 역사를 전하고자 하는 각오에서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엎드려 부탁드리는것은,
이나라에 더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단정지어 우리 스스로 자괴감에
억눌리기 보다는 정치적 무관심과 기피증으로부터 탈피하여 젊은 지성이
지닌 냉철한 판단력과 비판력, 시대를 읽어나가는 능력을 발휘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정치와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고
정말 소중한 그 한표, 투표권을 포기하지 마시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당당히 행사해주시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꿈꾸로 바라는 사회, 당장은 불가능할것 같지만
천천히 그리고 담대히 내딛는 그 용기있는 한 발자국을 통하여
민주사회를 향한 우리의 발자취를 남기고,
그로인하여 다른 사람 또한 그 발자국을 따라 거닐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함께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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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학문하고 있는 내게 누군가가 다가와
'역사가 과연 진보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난 그저
묵묵함으로 답을 대신할 수 밖에 없으리라.
E.H Carr 에게는 미안한 일일 수 있으나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과 국민의 안정 등을 고려해 볼때 결코 당당히,
그리고 떳떳히 역사는 진보한다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수치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구한말 외세의 극심한 탄압과 압제,
피비린내 나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이라는 국가적 유기체에
민주주의란 정치형태를 태동시키려 했던 수많은 인간들의
불과 같았던 염원의 행보는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실을
직시할 때면 인간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여러가지 정치형태
중에서 서양에서 오랜시간을 두고 발전해왔던 민주주의라는
모양의 정치는 단순히 우리사회에 초보적 단계의 이식 수준
밖에는 안된다는 국민적 허탈감을 느끼게 하고 민주주의의
상생의 원리를 상실해 버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실로 지탄
받아야할 일인 것이다.
해방이 된지,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우리사회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의식이 만연해 있고, 이념과 논리의 가벼움은
사회 곳곳에서 암적인 존재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그로인해
정치적 여야는 더이상 토론과 설득, 이해의 대상이 아닌 적,아의 개념으로
대립하고 그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한 사회계층의 분열,
부정부패는 더이상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또다른
능력으로 치장되는 시대, 경제적 능력만 뒷받침 된다면 어떠한
죄과던지 용인되고 지지를 받으며 더 나아가 그런 부정부패를
바라보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자들의 그들에 대한 터무니
없는 동경과 부러움,
자본주의의 숨겨진 치명적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는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는 어제까지 기업을 위해 열심히 노동하던 동지를 오늘에의 적으로 또는 이제는 더이상 필요가 없어진 존재로서 토사구팽으로 몰아 그들을 삶이냐 죽음이냐의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노사갈등,
대의민주정치를 실시하는 헌법이 보장하는 나라.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의 권리는 국민이 전제가 될때 인정되고 보장되는 공권력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무참히 짓밟히고 너무나도 쉽게 유린되어버리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공권력 행사 앞에 분노표출은 이제 좌익 빨갱이, 불온한 배후 세력으로 치부되는 요인으로 인식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
가진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한 우리편만이
만들어 가는 세상을 기획하며 그것들은 모두 다 '국민을 위한' 이라고 국민을 현혹하고 세상에 아부하는 오늘의 정치인들과 소위 지식인들의 기만적 술책에 더이상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요구이행은 허황된 바람으로 여겨지고 오히려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행을 통해 노블리스의 사회적 책무를 대신하는 정치와 관련없는 연예인들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하여 국회로 보내자는 정말 웃지못할 해프닝이 너무나도 반갑게 들리는 사회,
아빠의 등에 목마를 탄 어린아이의 촛불이 두려워 촛불의 뻘거스름한 발화부분을 레드 컴플렉스로 결부시키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컨테이너박스를 방벽삼아 높디 높은 자신들만의 성역을 축성함으로 인해 국민과의
소통을 일거에 단절시키고 중도실용과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과 함께 민심살피기에
'MB표 시장판 이미지'를 억지로 만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썩소를
짓게 하는 나라.
실용이라는 전제하여 정치적 노선을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수정, 변경하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되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저들의 철판이
하룻밤 자고 나면 무슨일 있었냐는듯 수용되는 나라.
미디어 산업발전과 여론의 다양성 확보,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과
호도 하에 국민의 알권리,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발걸음을 초장
부터 가로막아 정부와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는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고 국민의
60%이상이 반대하는 법안에 대한 졸속 처리와 부정 투표가
또다시 국민을 위한 선택이며, 합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대의견에 대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나라.
정부는 여전히 일방적이며,국민의 지지를 받고있다는 착각 속에서 그 국민의
일부만을 위한, 그들의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오늘도 어김없이망상을 따라
땀흘려 일하고 있고 그 와중에 명박이는 앞장서서 기도한다.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그 존재의 가벼움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초기 공화국부터 시작된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의 무분별한 수정은
전두환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하더라도 다시한번 민주주의라는 체제적
존재의 경중을 따지기에는 충분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오늘날이다.
이제 우리는 손가락을 들어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국민을 대표한다고 자청하는 정치인들과 사회적 기득권
세력을 향하여 강력히 묻고 따져야 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오늘 더욱 진보하는가..'
여태 기득권 세력만을 비판했으나,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아가는 그 사회의 주체들이 진정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아갈 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자
과제이다. 민중이 정치에 무관심 할때에 정치는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정치가 될수 밖에 없다. 누군가 그랬던가. 정말 필요한
것은 어릴때 다 배운다고. 국민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의 중요성은
이미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으리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책속에 인쇄된
한 구절의 단어들이 아닌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 있어 진정으로
고찰되어야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김지하 시인의
숨죽인 절규가 오늘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