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와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현수는 계속 담배만 피워댈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피스텔에 도착해서도 식탁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나는 전에 현수가 주었던 장미차가 생각났다. 찬장을 뒤져 장미차를 꺼내 두 잔을 만들었다. "현수씨! 장미차 함 봐요. 전에 현수씨 만나고 기분 나빴는데 이 장미차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던 거 알아요?" 그냥 현수를 이대로 놔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정훈과 이별을 했을 때 나는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매일매일 함께 했던 일상이 갑자기 깨져서 견디기 힘들었던 느낌들...그 때 정말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고 싶었다. 그럴 때 민석이 도움이 되었다. 민석은 친한 친구의 자리에서 늘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가 중국에서 장미차 사오던 다음 날 레종이 처음 여기 왔지요." 현수는 처음 말문을 레종 얘기로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모든 사물들이 그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현수를 위로하고자 끓인 장미차가 또 레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레종도 장미차 향을 좋아했나봐요. 장미차만 끓이면 이 녀석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죠." 현수의 말대로 처음 현수가 나에게 장미차를 끓여줄 때 레종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 발목을 간지럽혔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란 게 있는 거 같아요." 나도 말을 꺼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제목의 시도 있고 소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늘 그 말을 들으면 '살아 남은 자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의 몫까지 무엇인가를 해야할 책임이 있는 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서 남겨진 사람의 몫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 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며 혼자인 삶을 견디어야 하는 혹독한 현실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냥 현수에게 말을 시키고 싶었다. "장미차...중국에서 직접 사온 거에요?" "네. 제가 원래 중문과 출신이에요. 대학교 4학년 때 전공인 나라에 그래도 가봐야겠단 생각에 함 갔다가 사온 장미차죠. 원래 많이 사두기도 했지만 아끼고 아껴서 지금도 남아 있는 거에요." 그렇다면 현수에게는 장미차는 특별한 것이었나보다. "중국 얘기 좀 해줄래요? 우리 회사에서도 지금 중국 유학이 뜬다고 난리에요. 저는 잘 모르지만..." "민아씨도 한번 가보세요. 재밌어요." 일단 나의 말걸기는 성공한 듯 싶었다. 현수는 중국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석도 정훈과 이별한 나에게 엉뚱한 것을 묻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얘기를 몇 시간쯤 하고 나면 정훈을 잊을 수 있기도 했었다. "전갈 튀김 알아요?" 현수가 물었다. 난 별미를 소개하는 어느 텔레비전에서 본 것같기도 했지만 말만 들어도 이상했다. "그걸 먹어요?" "그러게요. 가이드가 꼬시길래 먹어봤는데 모양은 진짜 이상한데 맛은 번데기 맛이었어요." "그럼 맛있겠네요." 우리의 화제는 어렸을 때 먹었던 번데기로 옮겨갔다. 둘둘 말은 종이에 50원 100원을 내고 먹었던 간식거리.. 현수와 나는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지만 난 마음 한구석에서 레종을 갖고 월세를 깎던 기억이 나서 좀처럼 죄책감을 사라지지 않았다. 현수는 얘기를 나누다 지쳤는지 식탁위에 그대로 잠들었다. 나는 현수가 먹다 남긴 장미차를 치우고 식탁위에 엎드린 현수를 어떻게든 침대로 옮기려고 했다. "현수씨...침대로 가서 자요." 나는 현수를 일으키며 말했다. "레종....." 현수는 무의식 상태에서 그렇게 말했다. 한참이나 다른 얘기를 했는데도 무의식 속에 현수는 레종을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전에 민석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실컷 딴 얘기했는데 술취해서는 정훈에 관한 얘기만 했었다고 사랑은 이렇게 지독하게도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일까.... 현수를 간신히 침대에 눕히고 나도 잠을 자려다가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이런...아직도 전화가 없네...' 정훈의 메시지가 새벽 3시에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도 나를 아프게도 했던 사랑이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3년 내내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으며 기다렸던 시간의 보상일지도 몰랐다. 현수는 지쳐 잠이 든 것 같았으나 나는 많은 상념으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 클릭, 시기적절한 남자 (21편) 보러가기 아쉬운 분들은 아래 블로그 배너 클릭 한번 더!
시기적절한 남자(20)
현수와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현수는 계속 담배만 피워댈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피스텔에 도착해서도 식탁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나는 전에 현수가 주었던 장미차가 생각났다.
찬장을 뒤져 장미차를 꺼내 두 잔을 만들었다.
"현수씨! 장미차 함 봐요. 전에 현수씨 만나고 기분 나빴는데 이 장미차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던 거 알아요?"
그냥 현수를 이대로 놔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정훈과 이별을 했을 때 나는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매일매일 함께 했던 일상이 갑자기 깨져서 견디기 힘들었던 느낌들...그 때 정말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고 싶었다. 그럴 때 민석이 도움이 되었다.
민석은 친한 친구의 자리에서 늘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가 중국에서 장미차 사오던 다음 날 레종이 처음 여기 왔지요."
현수는 처음 말문을 레종 얘기로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모든 사물들이 그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현수를 위로하고자 끓인 장미차가 또 레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레종도 장미차 향을 좋아했나봐요. 장미차만 끓이면 이 녀석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죠."
현수의 말대로 처음 현수가 나에게 장미차를 끓여줄 때 레종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 발목을 간지럽혔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란 게 있는 거 같아요."
나도 말을 꺼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제목의 시도 있고 소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늘 그 말을 들으면 '살아 남은 자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의 몫까지 무엇인가를 해야할 책임이 있는 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서 남겨진 사람의 몫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 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며 혼자인 삶을 견디어야 하는 혹독한 현실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냥 현수에게 말을 시키고 싶었다.
"장미차...중국에서 직접 사온 거에요?"
"네. 제가 원래 중문과 출신이에요. 대학교 4학년 때 전공인 나라에 그래도 가봐야겠단 생각에 함 갔다가 사온 장미차죠. 원래 많이 사두기도 했지만 아끼고 아껴서 지금도 남아 있는 거에요."
그렇다면 현수에게는 장미차는 특별한 것이었나보다.
"중국 얘기 좀 해줄래요? 우리 회사에서도 지금 중국 유학이 뜬다고 난리에요. 저는 잘 모르지만..."
"민아씨도 한번 가보세요. 재밌어요."
일단 나의 말걸기는 성공한 듯 싶었다. 현수는 중국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석도 정훈과 이별한 나에게 엉뚱한 것을 묻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얘기를 몇 시간쯤 하고 나면 정훈을 잊을 수 있기도 했었다.
"전갈 튀김 알아요?"
현수가 물었다.
난 별미를 소개하는 어느 텔레비전에서 본 것같기도 했지만 말만 들어도 이상했다.
"그걸 먹어요?"
"그러게요. 가이드가 꼬시길래 먹어봤는데 모양은 진짜 이상한데 맛은 번데기 맛이었어요."
"그럼 맛있겠네요."
우리의 화제는 어렸을 때 먹었던 번데기로 옮겨갔다. 둘둘 말은 종이에 50원 100원을 내고 먹었던 간식거리..
현수와 나는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지만 난 마음 한구석에서 레종을 갖고 월세를 깎던 기억이 나서 좀처럼 죄책감을 사라지지 않았다.
현수는 얘기를 나누다 지쳤는지 식탁위에 그대로 잠들었다.
나는 현수가 먹다 남긴 장미차를 치우고 식탁위에 엎드린 현수를 어떻게든 침대로 옮기려고 했다.
"현수씨...침대로 가서 자요."
나는 현수를 일으키며 말했다.
"레종....."
현수는 무의식 상태에서 그렇게 말했다.
한참이나 다른 얘기를 했는데도 무의식 속에 현수는 레종을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전에 민석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실컷 딴 얘기했는데 술취해서는 정훈에 관한 얘기만 했었다고
사랑은 이렇게 지독하게도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일까....
현수를 간신히 침대에 눕히고 나도 잠을 자려다가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이런...아직도 전화가 없네...'
정훈의 메시지가 새벽 3시에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도 나를 아프게도 했던 사랑이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3년 내내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으며 기다렸던 시간의 보상일지도 몰랐다.
현수는 지쳐 잠이 든 것 같았으나 나는 많은 상념으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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