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음식이 아니라 문화의 코드다.

연라기200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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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도 모르면, 세계화 필패다 김치는 음식이 아니라 문화의 코드다.-빅맥이냐 김치냐…

세계화는 양날의 칼이다. 지역주의라는 가시덤불을 단숨에 잘라 없애지만, 때로 칼 쥔 자를 베기도 한다. 만병통치약인 줄 알았던 세계화는 임상실험이 덜 된 신약임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빅맥이냐 김치냐’는 이 집요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세계화의 여정에 나선 현대판 동방박사들에게 새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다. ‘자! 하늘을 봐, 지금까지의 좌표 읽기는 틀렸던 거야’라고 으르고 설득한다. 세계화는 이것저것 다 버무린 잡탕밥이 아니라, 독특한 맛을 지닌 개별 메뉴들을 단지 한 상에 모아 놓은 것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지역의 특수성을 주목하지 않는 세계화는 실패로 치닫는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의 안정을 예상한 사람들은, 세계화가 진행되더라도 지역 정치의 역동성이 계속 작용한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세계화는 지역정치를 포괄하기보다는 이를 오히려 증폭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국가들의 문제를 우리 주변으로 가깝게 끌어와서 세계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게 했다.”

책 제목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원제 ‘The Kimchi matters’는 ‘김치를 알아야 한다’ ‘김치가 관건이다’ 정도로 해석된다. 여기서 김치는 세계 118국에서 먹고 있는 빅맥과 대립하는 은유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김치는 그 나라의 지역 정치와 국지적인 사건, 특수한 문화를 한 데 녹인 개념이다. 인도의 김치, 러시아의 김치, 나이지리아의 김치 하는 식이다. 모두가 빅맥을 먹는 세계화시대일수록 오히려 ‘김치’를 잘 알아야 순조로운 세계화의 길로 항진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를테면 해외 투자에 실패한 많은 미국 기업들은 김치에 대한 이해부족이 큰 요인이었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첫번째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 1998년 마이크로 소프트의 한글시장 공략이다. 한국시장을 독점하고 싶었던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당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던 ‘한글과 컴퓨터’사를 쉽게 접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민은 ‘●글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맞섰다. 전국민적 모금활동도 전개했다. 결국 마이크로 소프트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도 책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스리랑카, 유고슬라비아 등으로 종횡무진 이어진다.

아무래도 이 책은 9·11 사태의 충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국지적인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는 참된 세계 통합을 이룰 수 없다는 뼈저린 깨우침이 스며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잘못된 원조는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미 행정부에 경고한다. 미국의 잘못된 원조는 많은 부패정권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살아남도록 해줬고, 그것이 고스란히 되돌아와 미국의 목을 죄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가 더 이상 테러리즘의 수출지가 되지 않도록 번영과 안정을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 연장선이다. ‘빅맥이나 아니냐’는 이 시대의 중심적 대립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여러 국가들의 지역 정치적 역동성을 존중하고, 차후에 그 부산물을 충분히 이용하자는 제안을 이 책은 살짝 숨겨 놓고 있다.

대표 저자 마빈 조니스는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교수이자 투자상담사이다. 그의 글은 ‘어떻게 하면 장애물을 건너뛰어 안정적으로 해외투자를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주된 타깃으로 한다. 중국 특유의 김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조바심이 깔려 있다.

비판하자면 이 책은 미국 중심적이다. 김치는 미국식 세계화 과정의 장애물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깔고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쓴 토마스 프리드먼의 논리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가 담아둘 교훈도 있다. 수출에 국가경제의 명운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김치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