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스페인 열정 담은 앨범으로 컴백

연예가중계200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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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정현(24)이 이번에는 ‘꽃을 든 여자’로 돌아왔다.

최근 발표한 5집앨범 ‘패션(Passion)’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탁월한 여름상품이다.

따각따각대는 캐스터네츠, 흐느적거리는 기타, ‘자연산 타악기’인 박수소리가 깔리고, 플라멩코를 추는 무희를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도발적인 의상을 차려입은 이정현은 화주처럼 위험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갓 짜

낸 피로 만든 것 같은 선홍색 장미가 들려 있다.

넘치는 끼를 주체 못하는 이정현은 이제 수천 가지 정열을 녹여 농염한 빨강이 됐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담은 앨범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열정적인 이미지를 무척 좋아해요. 지금까지는 힘줘 부르고 힘들게 듣는 노래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감성에 주력했어요.”

사실 이정현은 조그맣고 앙증맞은 외모와 달리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다. 또래 가수들보다 훨씬 센 이미지를 소화하느라 이정현의 어깨는 늘 무거워보였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통해 그가 이뤄낸 가장 큰 변신은 바로 무게다. 스타일리스트인 그의 셋째언니 이해선씨가 만든 스페인풍 옷도, 적절히 완급을 조절한 감성적인 창법도 기분 좋게 가볍다.

타이틀곡인 ‘따라해봐’(최은하 작사·윤일상 작곡)는 전형적인 이정현풍의 노래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에 두번만 들으면 어느 정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쉬운 멜로디다. 전통 스페인 악기를 이용한 세련된 편곡도 대중성에 한몫한다. 오히려 이정현의 변신을 도드라지게 하는 곡은 6번트랙의 ‘기다려’(윤일상 작사·작곡)다.

퇴락한 카페의 여주인이 부르는 듯한 달콤한 허밍에 이어지는 몽환적인 멜로디는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노래가 퍽 마음에 든다는 이정현은 앨범 앞장에 자신이 만든 ‘이정현어’로 가사를 적기도 했다.

8번트랙의 ‘이스케이프(Escape)’(최은하 작사·최필강 작곡)와 9번트랙의 ‘우린 아직 사랑하고 있다’(최은하 작사·이경섭 작곡)는 일렉트로니카 장르다. 전자음 같은 목소리를 가진 이정현과 일렉트로니카는 쌍둥이처럼 잘 어울린다.

◇별다른, 그리고 별스러운 민간인 이정현

스타라는 것을 빼면 일반인과 별다를 게 없는 보통 스타들과 달리, 이정현은 개인으로서도 별다른 구석을 많이 갖고 있다. 앨범 뒷장에 쓰는 ‘생스투(Thanks To)’란에 적은 목록만 봐도 그렇다.

손바닥만 한 한 장의 종이에는 그가 아끼고 좋아하는 여러 가지가 중구난방식으로 담겨 있는데,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내 바비 인형들, 미 항공 우주국 나사, 미야자키 하야오, 비비안 리, 센과 치히로, 핑크빛, 타란티노 감독, 레골라스, 섹스&더 시티….’

이정현은 감성과 상상력을 주는 모든 것을 무척 사랑한다. 친분이 있는 강제규 감독이 차기작으로 SF영화를 하겠다고 하자 “외계인 역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외계인과 UFO는 꿈 많은 소녀 이정현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것들이다.

요즘 이정현이 가장 즐겨 보는 것은 케이블방송의 영화채널 OCN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섹스&더 시티’. 둘다 자유분방하고 쿨한 ‘사만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기자와 이정현은 잠시 동지애를 다졌다.

가요프로그램 PD들이 붙여준 이정현의 별명은 ‘공포의 도화지’다. 원래 무대구성은 PD와 제작진의 몫이지만 이정현은 종종 자신이 생각하는 무대 모양을 도화지에 그려오곤 한다. 가수가 자신이 설 무대 구상까지 해오니, 좋게 보면 기특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굉장한 월권이다.

‘유별나다’는 오해를 살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정현은 이번에도 도화지를 들고 다닐 예정이다. 그게 완벽주의자 이정현의 스타일이다.

음악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하는 악바리 이정현, 이번 앨범도 느낌이 좋다.

박효실기자 gag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