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젓가락을 탁 놓으며 돌이엄마에게 탁 쏘아붙였다. 나물을 무쳤는데 약간의 설탕을 넣는다는 것이 그만 자신도 모르게 소금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조미료가 들어가야 할 음식에 소금과 설탕이 범벅이 되지를 않나, 아니면 그 반대로 양념이 뒤엉켜 휘돌아 쳤다. 대모험 때문이었다. 그에게 메일이 날아온 순간부터 돌이엄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죽었던 몸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이었고, 정지했던 피가 온몸을 핑핑 돌아다니며 몸뚱이 구석구석마다 산과 들을 심고, 꽃을 피우게 하고, 새록새록 봄날의 햇살이 뇌와 가슴에서 마구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얼른 컴퓨터를 켜고 대모험을 찾았으며,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모두 나가면 하루 종일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
사실 대모험은 믿음직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슬픈 가슴을 가진 시인이었다.
대모험이 갈만한 사이트마다 돌아다니며 그의 글을 모두 섭렵한 돌이엄마는 대모험이 불행한 유년과 소년시절을 보냈으며 결혼생활마저도 평탄하지 않았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모 문단에서는 대표시인으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실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두 권의 시집을 냈으며 항상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한 문인의 길을 가고 있다는 대범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쓴 시를 모두 수집하여 따로 저장해 놓고 읽고 또 읽었다. 비록 그가 올린 글 아래에 꼬리글조차도 안 달았지만 돌이엄마는 대모험의 보이지 않는 팬이었고, 어찌 보면 삶 자체를 그의 글에 의지하는 신비한 교주의 신도 같았다.
돌이엄마는 어느 날부터 대모험을 쫓아다니며 꼬리글을 다는 "꼬꼬맹추"라는 여자가 영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대모험님의 글은 저의 가슴을 항상 울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한 꼬꼬맹추의 얌전한 꼬리글인데, 날이 갈수록 점점 노골적이고 야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글로 발전한 것이다. 사실 돌이엄마는 그 동안에 어떤 여자가 대모험을 쫓아다니는지 다 파악해 두고 있었다. 일부러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한번만 보면 대모험에게 꼬리글을 단 여자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었다.
"시인님의 가슴을 오늘도 느껴봅니다."
이런 꼬꼬맹추의 꼬리글이 돌이엄마의 신경을 팍 건들이더니,
"저도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하고 슬쩍 추파를 던지고는,
"시인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시 창작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는 노골적인 프로포즈를 했으니 돌이엄마의 꼭지가 휙 돌아버린 것이다. 한참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돌이엄마는 치솟는 성깔을 꾹 참고 있다가 살짝 꼬꼬맹추의 꼬리글 밑에 또 하나의 꼬리글을 달고 얼른 나왔다.
"칫~ 시인은 아무나 되나?"
자기의 감정이 이상한 쪽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아 챈 것은 바로 이 꼬리글을 단 후부터였다. 그날 저녁에 다시 컴퓨터를 켠 돌이엄마는 꼬꼬맹추의 꼬리글에 테클을 건 자기의 꼬리글 밑에 꼬꼬맹추가 다시 달아 놓은 문구에 눈빛을 번뜩였다.
"흥, 시인은 뱃속에서부터 시인인가?"
어떤 년인지 모르지만 눈앞에 있었으면 머리채를 휘잡아 팽겨 쳤을 것이다. 개인정보에 의하면 꼬꼬맹추가 돌이엄마보다는 나이가 다섯 살은 어렸으니,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돌이엄마의 생각에는 나이도 어린년이 죽으려고 환장한 격이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성질대로 꼬리글을 달수는 없었다. 대모험이 아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밑에서 추잡한 싸움을 벌일 수는 없으니깐,
"뭐~ 개구리엄마가 재주 피워서 새끼 까봐야 개구리새끼뿐이 더 나와? 호호,"
돌이엄마는 이렇게 꼬리글을 달고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씩 웃었다.
질투의 현주소는 사랑이다. 질투는 사랑의 표상이며 역동하는 힘이고, 중년을 젊고 싱싱하게 만드는 활력이다. 돌이엄마는 설마 했던 사랑에 자신이 빠졌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꿈도 꾸어보지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냥 그런 감정이려니 했지만 매일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악화일로를 걷는 남편과의 관계는 파탄일보직전까지 치달았으니, 만약에 돌이엄마가 대모험이라도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가정을 지키며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겉도는 남편과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는 돌이엄마는 표면적으로라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요의 바다에 숨어있는 태풍, 언제 휘몰아칠 지도 모르는 정적이 굵은 선으로 엉킨 채 돌이엄마의 가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주 진한, 끈끈한 액체로 묻어날 듯한 감정이 밤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돌이엄마의 눈빛에 서렸다. 바로 그 감정의 초점에 꼬꼬맹추가 걸려든 것이었다.
어느 날 꼬꼬맹추는 대모험이 보라는 듯 하나의 시를 올렸다.
* 그리움 *
꽃은 한들한들
하늘은 파란색
코스모스 핀
들에 바람만 분다.
글 / 꼬꼬맹추
이 글을 보자마자 돌이엄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핏, 한들한들 좋아하네."하고 중얼거린 돌이엄마는 한참 밖을 내다보다가 글을 적기 시작했다.
* 내가 가렵니다. *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요.
그 길은 나만의 길
당신에게 다가가는 길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요.
사랑은 일방통행
당신은 이것을 아시나요,
글 / 안개꽃
꼬꼬맹추와 안개꽃의 시가 나란히 게시판에 올려졌다. 꼬꼬맹추는 가끔 시의 형태를 갖춘 글을 올렸었지만 돌이엄마는 전에 한 번 올린 것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돌이엄마는 은근히 대모험이 전에처럼 자기의 글 아래에 꼬리글을 달기를 기대했다. 늦은 밤에 모니터를 쳐다본 돌이엄마는 깜짝 놀랐다. 대모험이 꼬꼬맹추의 글 밑에 꼬리글을 달았지만 자기의 글 아래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낀 돌이엄마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한 사랑이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한번도 만난 적도, 전화통화도 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 누운 돌이엄마는 별안간 흐느끼기 시작했다. 연애라는 것도 모르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자신이 이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꺼이꺼이 눈물을 쏟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여 사십이 넘은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도 모르고 살았다. 세상을 모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돌이엄마는 벌떡 일어서더니 컴퓨터 앞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처음에 자기의 눈물을 펑펑 쏟게 했던 대모험의 시를 찾았다.
돌아보지 마세요.
돌아보면 돌아볼 것도 없는 허수아비
참새 떠난 논 가운데
낡은 옷자락 펄럭펄럭
삐에로의 슬픈 얼굴입니다.
마침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애절한 음악과 쓸쓸한 가을영상 위로 쭉쭉 뻗어 올라가는 대모험은 안개꽃을 울리고 있었다. 꺼이꺼이~ <계속>
[꽁트] 안개꽃의 외출, 제3편
3.
"엄마,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야?"
딸은 젓가락을 탁 놓으며 돌이엄마에게 탁 쏘아붙였다. 나물을 무쳤는데 약간의 설탕을 넣는다는 것이 그만 자신도 모르게 소금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조미료가 들어가야 할 음식에 소금과 설탕이 범벅이 되지를 않나, 아니면 그 반대로 양념이 뒤엉켜 휘돌아 쳤다. 대모험 때문이었다. 그에게 메일이 날아온 순간부터 돌이엄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죽었던 몸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이었고, 정지했던 피가 온몸을 핑핑 돌아다니며 몸뚱이 구석구석마다 산과 들을 심고, 꽃을 피우게 하고, 새록새록 봄날의 햇살이 뇌와 가슴에서 마구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얼른 컴퓨터를 켜고 대모험을 찾았으며,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모두 나가면 하루 종일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
사실 대모험은 믿음직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슬픈 가슴을 가진 시인이었다.
대모험이 갈만한 사이트마다 돌아다니며 그의 글을 모두 섭렵한 돌이엄마는 대모험이 불행한 유년과 소년시절을 보냈으며 결혼생활마저도 평탄하지 않았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모 문단에서는 대표시인으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실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두 권의 시집을 냈으며 항상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한 문인의 길을 가고 있다는 대범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쓴 시를 모두 수집하여 따로 저장해 놓고 읽고 또 읽었다. 비록 그가 올린 글 아래에 꼬리글조차도 안 달았지만 돌이엄마는 대모험의 보이지 않는 팬이었고, 어찌 보면 삶 자체를 그의 글에 의지하는 신비한 교주의 신도 같았다.
돌이엄마는 어느 날부터 대모험을 쫓아다니며 꼬리글을 다는 "꼬꼬맹추"라는 여자가 영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대모험님의 글은 저의 가슴을 항상 울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한 꼬꼬맹추의 얌전한 꼬리글인데, 날이 갈수록 점점 노골적이고 야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글로 발전한 것이다. 사실 돌이엄마는 그 동안에 어떤 여자가 대모험을 쫓아다니는지 다 파악해 두고 있었다. 일부러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한번만 보면 대모험에게 꼬리글을 단 여자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었다.
"시인님의 가슴을 오늘도 느껴봅니다."
이런 꼬꼬맹추의 꼬리글이 돌이엄마의 신경을 팍 건들이더니,
"저도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하고 슬쩍 추파를 던지고는,
"시인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시 창작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는 노골적인 프로포즈를 했으니 돌이엄마의 꼭지가 휙 돌아버린 것이다. 한참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돌이엄마는 치솟는 성깔을 꾹 참고 있다가 살짝 꼬꼬맹추의 꼬리글 밑에 또 하나의 꼬리글을 달고 얼른 나왔다.
"칫~ 시인은 아무나 되나?"
자기의 감정이 이상한 쪽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아 챈 것은 바로 이 꼬리글을 단 후부터였다. 그날 저녁에 다시 컴퓨터를 켠 돌이엄마는 꼬꼬맹추의 꼬리글에 테클을 건 자기의 꼬리글 밑에 꼬꼬맹추가 다시 달아 놓은 문구에 눈빛을 번뜩였다.
"흥, 시인은 뱃속에서부터 시인인가?"
어떤 년인지 모르지만 눈앞에 있었으면 머리채를 휘잡아 팽겨 쳤을 것이다. 개인정보에 의하면 꼬꼬맹추가 돌이엄마보다는 나이가 다섯 살은 어렸으니,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돌이엄마의 생각에는 나이도 어린년이 죽으려고 환장한 격이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성질대로 꼬리글을 달수는 없었다. 대모험이 아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밑에서 추잡한 싸움을 벌일 수는 없으니깐,
"뭐~ 개구리엄마가 재주 피워서 새끼 까봐야 개구리새끼뿐이 더 나와? 호호,"
돌이엄마는 이렇게 꼬리글을 달고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씩 웃었다.
질투의 현주소는 사랑이다. 질투는 사랑의 표상이며 역동하는 힘이고, 중년을 젊고 싱싱하게 만드는 활력이다. 돌이엄마는 설마 했던 사랑에 자신이 빠졌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꿈도 꾸어보지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냥 그런 감정이려니 했지만 매일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악화일로를 걷는 남편과의 관계는 파탄일보직전까지 치달았으니, 만약에 돌이엄마가 대모험이라도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가정을 지키며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겉도는 남편과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는 돌이엄마는 표면적으로라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요의 바다에 숨어있는 태풍, 언제 휘몰아칠 지도 모르는 정적이 굵은 선으로 엉킨 채 돌이엄마의 가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주 진한, 끈끈한 액체로 묻어날 듯한 감정이 밤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돌이엄마의 눈빛에 서렸다. 바로 그 감정의 초점에 꼬꼬맹추가 걸려든 것이었다.
어느 날 꼬꼬맹추는 대모험이 보라는 듯 하나의 시를 올렸다.
* 그리움 *
꽃은 한들한들
하늘은 파란색
코스모스 핀
들에 바람만 분다.
글 / 꼬꼬맹추
이 글을 보자마자 돌이엄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핏, 한들한들 좋아하네."하고 중얼거린 돌이엄마는 한참 밖을 내다보다가 글을 적기 시작했다.
* 내가 가렵니다. *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요.
그 길은 나만의 길
당신에게 다가가는 길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요.
사랑은 일방통행
당신은 이것을 아시나요,
글 / 안개꽃
꼬꼬맹추와 안개꽃의 시가 나란히 게시판에 올려졌다. 꼬꼬맹추는 가끔 시의 형태를 갖춘 글을 올렸었지만 돌이엄마는 전에 한 번 올린 것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돌이엄마는 은근히 대모험이 전에처럼 자기의 글 아래에 꼬리글을 달기를 기대했다. 늦은 밤에 모니터를 쳐다본 돌이엄마는 깜짝 놀랐다. 대모험이 꼬꼬맹추의 글 밑에 꼬리글을 달았지만 자기의 글 아래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대신에 수다방에 드나들며 까불거리던 "아웅얏호"라는 어떤 남자가 꼬리글을 달았다.
"흐흐흐...... 저에게 오십시오. 일방통행에 위반하여 딱지를 떼어도 좋으니 제가 갈까요? 까꿍^^"
돌이엄마는 머리가 아뜩해져왔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낀 돌이엄마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한 사랑이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한번도 만난 적도, 전화통화도 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 누운 돌이엄마는 별안간 흐느끼기 시작했다. 연애라는 것도 모르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자신이 이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꺼이꺼이 눈물을 쏟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여 사십이 넘은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도 모르고 살았다. 세상을 모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돌이엄마는 벌떡 일어서더니 컴퓨터 앞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처음에 자기의 눈물을 펑펑 쏟게 했던 대모험의 시를 찾았다.
돌아보지 마세요.
돌아보면 돌아볼 것도 없는 허수아비
참새 떠난 논 가운데
낡은 옷자락 펄럭펄럭
삐에로의 슬픈 얼굴입니다.
마침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애절한 음악과 쓸쓸한 가을영상 위로 쭉쭉 뻗어 올라가는 대모험은 안개꽃을 울리고 있었다. 꺼이꺼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