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1]-주의 사항 예고편※

미강200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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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의 사항 예고편


 

 

 

 아침 일찍 짐은 다 챙겨 놨다는 윤경의 전화 덕분에

 

커다란 짐 가방들을 앞에 둔 채 하연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삼 년 동안 간병인을 해왔지만 입주 간병인은 처음인데 잘 할 수 있을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세부적인 사항은 누가 직접 와서 알려 준다고 했더랬다.

 

 

집은 한동안 비워놓을 거라서 앞 집 아주머니께 부탁은 해 두었다.

 

윤경은 언제나 하연이 타 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너무 달다고 툴툴 거렸다.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도

 

한동안 집에서 끓여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이 쓸쓸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하연은 줄곧 혼자 살아 왔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사진으로 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오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레몬빛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끓여 마실 때가

 

하연에게 있어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묻은 집을 한동안 비워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지만

 

볼 때마다 아쉽고 쓸쓸한 마음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한 모금을 꿀꺽 삼켰을 때 하연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혹시라도 전화가 끊어질 세라 허겁지겁 핸드폰을 귀에 댔다.

 

 

이렇게 허둥거린 적은 별로 없었는데.

 

실수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윤경 때문인지도 몰랐다.

 

 

 

〔진하연씨 맞습니까?〕

 

 

여보세요, 소리를 꺼내기도 전에

 

저쪽에서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전화 받은 사람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하연은 직감적으로 전화 한 사람이 윤경 언니가 말하던 그 ‘누구’라는 것을 알았다.

 

 

 

“네. 제가 진하연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집 앞에 와 있습니다. 짐은 많습니까? 짐이 많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 혼자서 들고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나가겠습니다.”

 

 

 

상대방이 사무적으로 대답하자 하연도 자동적으로 사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특별히 무례하다거나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니었기에

 

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넘겨버릴 수  밖에 없었다.

 

 

도움 받는 건 죽기보다도 싫어하는 네 성격이 문제야.

 

 

문득, 낑낑거리며 혼자 짐가방들을 들고 나서려니 윤경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건 사실이니까.

 

 

 

“이렇게 짐이 많은 줄 알았으면 아무래도 제가 갈 걸 그랬습니다.”

 

 

입구에 서 있던 남자는 하연의 손에 들려있던 짐가방들을 능숙한 솜씨로 건네받아

 

차 트렁크에 실었다.

 

빈틈없이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를 쳐다보던 하연은

 

자기도 더워지는 것 같아 남자 몰래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이렇게 더운 날씨라면 와이셔츠 차림이라도 괜찮을 텐데.

 

 

단추까지 꼭꼭 채운 남자를 쳐다보던 하연은 남자가 다가오자

 

얼른 갑갑한 표정을 감춰 버렸다.

 

 

 

“목에 있는 단추 좀 채워 주십시오.”

 

 

“네, 네? 뭐라구요?”

 

 

“도련님께서는 흐트러진 모습을 싫어하십니다. 가기 전에 복장 정도는 점검해 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괜한 고집으로 첫인상의 점수를 잃어버리면 고달파질 것 같아

 

하연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단추를 채웠다.

 

남자는 그것도 모자라 하연을 중심으로 한바퀴 빙 둘러보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뚫어지게 훑어보는 남자의 시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하연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됐습니다. 기본적인 주의 사항은 전달 받으셨으리라 생각 합니다. 환자에 대해 알려하지 말 것, 질문금지….”

 

 

“…쓸데없는 말은 삼갈 것. 전달 받았습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꽤 어리시더군요.”

 

 

“나이가 많다고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련님 말에 그런 식으로 토를 달았다간 당장에 힘들어질 겁니다. 제 앞에서라면 몰라도. 타시죠.”

 

 

 

하연은 남자가 열어주는 차 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차에 올랐다.

 

하는 말에 토 달면 안 됨.

 

주의 사항이 또 하나 늘었다.

 

남자가 말하는 도련님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 괴상한 성격을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가

 

하연은 문득 궁금해졌다.

 

 

 

“아, 저….”

 

 

“그냥 조비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앞으로 저와 자주 의견을 교환해야 할테니까요.”

 

 

“조비서님,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앞으로 제가 돌보게 될 환자분인가요?”

 

 

“환자. 그 단어 주의 하십시오.

 

도련님께서는 환자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반신 마비라고는 하지만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실 수 있으니까요.”

 

 

 

환자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말 것.

 

또 하나 늘어난 주의 사항들을 열심히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하연은 재차 물었다.

 

 

“움직이는 것에 불편함이 없다면 특별히 간병인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연의 말이 의외였던지 조비서는 흘낏 백미러를 통해 하연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새카만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하연이 조비서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진하연씨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간병 실력 또한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도련님께서 간병인을 필요로 하시고

 

저는 도련님이 필요로 하시는 조건들을 충족시켜 드리는 게 일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뭐죠?”

 

 

“그다지 힘든 일은 없습니다. 가끔 장을 봐오거나

 

도련님이 갈아입으실 옷을 챙겨 드리거나, 산책을 도와드리거나,

 

목이 마르다고 하시면 물을 드리는 정도입니다.”

 

 

“용변을 보거나 씻는 것을 도와주는 일은 없나요?”

 

 

“외람된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련님께서는 그런 일 만큼은 남의 손을 빌리시지 않습니다.

 

혼자서도 훌륭히 잘 하고 계시니까요.”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인가보다.

 

하반신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용변을 보거나 씻는 일은 혼자서 해결하는 것을 보면.

 

말랑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결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하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하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본 조비서는 하연에게 물었다.

 

 

“더 궁금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그런데 왜…어째서….”

 

 

“물론 일이 힘든 건 아닙니다.

 

사실 일에 비해서 보수는 꽤 쎈 편이지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간병인들이 왜 적응하지 못했냐고 물으시려는 거 아닙니까?”

 

 

오늘 아침에 윤경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간병인들이 오는 족족 도망쳐 버린다는 사실을.

 

분명 일이 힘들거나 간병인 이상의 역할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하연은 나름대로 생각했지만 조비서의 말을 듣고 나자 궁금증이 해결되기는커녕

 

더더욱 궁금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네.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도련님의 성격이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 밖에는요.

 

진하연씨를 보니 마음을 놔도 될 것 같습니다.

 

간병인 찾는 일도 만만치 않거든요.

 

이미 까다로운 곳이라는 소문이 나 있다면 말입니다.”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까다로운 곳이라고 한 번 소문이 나 버리면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해도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윤경은 하연에게 힘든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데 도대체 여긴 어딜까?

 

차창 밖으로 보이던 풍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크고 작은 빌딩들과 아스팔트길을 달리던 차는

 

어느 새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차바퀴로 인해 뽀얗게 일어나는 흙먼지가 하연의 눈에도 보였다.

 

군데군데 껍질이 하얗게 벗겨진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쳐다보던 하연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이정표 덕분에 내심 또 다른 걱정이 들었다.

 

가끔 장도 봐와야 한다던데.

 

이런 곳에 장볼 수 있는 시장이나 마트가 있을리 만무했다.

 

 

 

“장보러 나가실 땐 저에게 미리 전화 주십시오. 차가 없으면 힘드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 아니에요.”

 

 

“저에게는 질문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쩜 그렇게 사람의 생각을 잘 아시죠? 마치…제 생각을 읽고 계시는 것 같아요.”

 

 

“하하하. 도련님을 오랫동안 모시다 보니 없던 능력까지 생겼나봅니다.”

 

 

“웃을 줄도 아시는 군요. 다행이네요.”

 

 

웃음을 아는 사람이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했다면

 

분명 그분도 웃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웃음을 모르는 사람 곁에는 웃음을 아는 사람이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하연이 일찌감치 깨달은 인생 법칙 중에 하나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하는 걸까?

 

 

 

“10분만 더 가면 됩니다.”


 

☆★☆

 

 

 하연은 벌써 세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이미 하늘에는 석양이 붉게 걸려 있었다.

 

오전에 집을 나섰는데 이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걸 보면

 

하연의 집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 같았다.

 

조비서는 이미 트렁크에서 하연의 짐을 다 꺼내 놓은 후였다.

 

이렇게 커다란 대문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있는 줄 알았다.

 

 

더구나 이런 곳에 이렇게 커다란 집이 있으리라고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커다란 집은 고요와 적막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멀리서 가욱가욱 하는 이름모를 새소리까지 들려오는데다

 

대문 군데군데 칠까지 벗겨져 있으니,

 

꼭 유령의 성으로 들어가는 문 같이 기괴했다.

 

지금 하연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곁에 서 있는 조비서 밖에 없었다.

 

 

“왜 안 들어가십니까?”

 

“드, 들어가야죠. 들어갈 거에요.”

 

“어서 들어가시죠. 대문은 제가 이미 열어 두었습니다.”

 

 

들어가도 별 일 없는 거겠죠,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나왔다가 다시 꿀꺽 삼켜졌다.

 

진하연, 너 왜 이래?

 

넌 경력 3년차 간병인 자격으로 이곳에 온 거야.

 

늘 하던 일인데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집주인이 누군지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은둔하길 좋아하는 성격임이 틀림없어.

 

그냥 세상과 마주치기 싫어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하연은 긴장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조비서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갑자기 날카롭게 벨소리가 울리자 하연은 자기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전화를 받는 조비서의 표정은 다시금 딱딱하고 사무적인 표정으로 굳었다.

 

 

 

“접니다, 도련님. 예. 지금 집 앞에 도착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이라면…. 그…도련님?”

 

“예. 어서 들어오시랍니다. 도착 시간 3분 지나셨다고 화를 내시는군요.

 

어서 들어가십시오.”

 

 

하연은 이를 악 물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뒤를 힐끔거리며 조비서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정된 마음으로 정원을 걸어갈 수 있었다.

 

의외로 정원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 황량하기 그지없고 아무렇게나 가지치기용 가위가

 

땅바닥에 나뒹굴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현관으로 들어서던 하연은 또 한번 기겁했다.

 

집 안 내부는 온통 어두컴컴했다.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이 걸려 있었고

 

가구들의 색깔까지 짙은 갈색을 띄고 있는데다

 

바닥에 깔린 카펫의 색깔도 밝은 색깔은 아니었다.

 

 

그나마 믿을 것이라고는 거실에 켜진 불빛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조도가 너무 낮아 차라리 켜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집에 온 것을 환영하오.”

 

 

갑자기 한 쪽에서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튀어 나오자 하연은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원래 호들갑을 떠는 체질이 아니어서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도였다.

 

하연은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휠체어에 타고 있는 실루엣 빼고는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하연의 눈에 파악되는 건 무릎을 덮고 있던 펠트 담요 자락 뿐 이었다.

 

 

솔직히 너무했다.

 

말로만 환영한다고 했지, 말투는 전혀 환영하는 말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돈을 주고 고용한 간병인이라고 하지만

 

명색이 첫 만남인데 하연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기도 했다.

 

 

 

“오느라 힘들진 않았나?”

 

“예. 덕분에….”

 

“인사치레는 집어 치우지. 내가 묻는 말에는 그냥 예, 아니오면 되니까.

 

조비서, 내가 지시한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음…그렇담 됐고. 진하연이라고 했나?”

 

“처음 뵙겠습니다. 진하연이라….”

 

“조비서, 방으로 안내 해드려.”

 

 

정말이지 삼 년 동안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공손히 고개까지 숙이며 소개를 하려는 하연의 말을 잘라먹은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할 말만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다니.

 

 

남자가 타고 있는 휠체어는 전동식이 아닌데도 굉장히 매끄럽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치, 남자의 몸과 휠체어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고나 할까.

 

스르르륵 휠체어가 미끄러져 방 안으로 들어가자 콰당, 하며 방문이 세게 닫혔다.

 

 

요란한 방문 소리와 함께 하연은 움찔 하며 놀랐다.

 

도저히 발을 앞으로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집에 들어선 지 불과 몇 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연은 지금까지 간병인들이 왜 삼일 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는지,

 

후한 보수와 좋은 조건들을 마다했는지 십분 이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그렇지.

 

모든 일에는 다 까닭과 이유가 있는 법.

 

 

이건 하연의 아버지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조비서는 하연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가시지요. 도련님께서 하연씨가 마음에 드셨나봅니다.”

 

 

“마, 마음에 들어요? 제가요? 전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왔던 간병인들에겐 이름조차도 묻지 않으셨으니까요.

 

단지 환영한다는 말씀 한 마디 뿐이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벌써 잊으셨습니까? 환자에 대해 절대 알려 하지 말 것.”

 

“네.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주의 하죠. 제 방은 어디 인가요?”

 

 

이미 결정한 일이다.

 

스스로 결정한 일에서 도망치는 것은 진하연 인생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도망치지 않아.

 

집주인이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걸로 된 거라며

 

하연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조비서는 하연의 손에 들려 있던 짐가방을 대신 받아 들고 앞장섰다.

 

집 안은 어둡고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점을 빼면 일반 가정집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소파와 텔레비전, 오디오, 벽에 걸린 그림 몇 점과

 

주방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커튼자락까지 완벽하고 세세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조비서는 집 안을 두리번거리는 하연을 힐끔 돌아보고는 주방 앞에서 멈춰 섰다.

 

 

 

“짐은 제가 방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저기 방문 보이시죠?

 

앞으로 하연씨가 지내게 될 방입니다.

 

식사는 이미 차려져 있습니다.

 

식어 버린 음식이 싫으시다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드시면 될 겁니다.”

 

 

“도대체 이런 집에서 저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죠?”

 

 

“지내다 보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하연씨에겐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이 왠지 쓸데없는 일 같아 보이는 군요.”

 

“무슨…말씀이신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 있고,

 

설명 대신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연씨는 후자 쪽인 것 같은데요. 아닙니까?”

 

 

하연은 졌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만치 않은 집이다, 여긴.

 

 

조비서가 한 말이 너무나 정확했기에

 

하연은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보기로 했다.

 

문득 하연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평균적인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두운 집 안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시계 바늘과 숫자가 야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철저하군.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조비서는 방으로 가서 하연의 짐 가방을 내려놓은 뒤 밖으로 나왔다.

 

아직까지도 하연은 주방 입구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조심성이 많은 아가씨군.

 

섣불리 제멋대로 잘난체하며 날뛰는 간병인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조비서는 하연을 데리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는 음식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오늘 메뉴는 스테이크군요. 앉으십시오. 데우는 건 제가 하죠.

 

저도 저녁 식사를 해야 하니까요.”

 

“…조비서님 아니었으면 전 옴짝달싹도 못할 뻔 했네요. 도대체가 여긴….”

 

“주의사항 하나를 깜빡 했군요.

 

도련님께서 하연씨를 찾기 전엔 절대 먼저 도련님을 찾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간병인은 환자가 찾기 전에 미리미리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고…!”

 

 

“환자! 그 단어는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십시오. 안 그러면 힘들어 집니다.”

 

 

도대체가 이 집은 사람 말 잘라 먹는 걸 취미로 여기나 봐.

 

 

하연은 신경질 적으로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썰었다.

 

입 안으로 들어온 고기 조각은 다행스럽게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칼질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고기를 오물거리는 동안

 

하연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오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접시 한 켠에 얌전스레 놓여 있던 방울토마토 한 알을 입에 넣었을 때

 

조비서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에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오시면 다 치워 놓으실 테니 걱정 말고

 

빈 접시는 여기다 놓으십시오.

 

전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그냥 주무십시오.”

 

 

“도련님도 식사 하셔야죠. 잠시만요, 제가….”

 

조비서는 하연의 어깨를 가만히 붙잡고 제지했다.

 

 

“오늘은 그냥 주무십시오. 도련님께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해결 하셨습니다.”

 

 

나를 부르기 전엔 내가 먼저 찾지 말 것.

 

하연은 다시 한 번 주의사항을 머릿속에 입력 시켰다.

 

기왕 이렇게 내 발로 찾아들어온 이상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한 발 물러서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연은 뒤로 한 발 물러서느니 앞으로 조금씩 나가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러서는 데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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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을 무사히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그리운 님들을 만나니 저도 어찌나 설레이던지. 리플 기능이 새로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답쪽지를 날렸더랬습니다. 로그인 된 상태가 아니셨던 님들께는 답쪽지를 날려

 

드리지 못했답니다.

 

숲님, 앞으로도 하연이 모습 천천히 지켜봐 주세요. ^^

 

윤호사랑해님, 많은 기대만큼 최선을 다하는 미강이 되겠습니다. ^^

 

프렌치바닐라님, 제가 너무 많이 늦었나요? 죄송해요~ 저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님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힘내서 부지런히 썼답니다.

 

발자취 남겨주신 분들과 추천 클릭해주신 님들~ 행복하세요~ 부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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