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를 꿈꾸며-제7부-

까미유2004.06.30
조회3,954

 

제 7 부




영석의 말이 사실이었다. 태희는 이제 막 도착해서 오랜만에 맘에 드는

여자한테 작업 좀 걸어 보려는데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처음엔 누가

장난치는 건 줄 알고 무시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수정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전화는 끊어지고, 태희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난다. 도로 앞까지 나와 택시를 잡고 서둘러 차에 오르는 태희.


-어디 가십니까?


순간 수정의 집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아이씨....뭐야, 집도 모르잖아.....아, 짜증나....아저씨, 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가 어딥니까?


태희의 말에 기사가 황당하다는 듯 돌아본다.


-네?

-아니, 서울에서 가장 못 사는 동네라고만 말을 해서...어딘지를 잘

모르겠는대요?

-살다살다 목적지를 그렇게 말씀하시는 손님은 첨 봅니다, 가만 있자..

혹시 거기 말하나? 일단 한 번 가봅시다.


차가 출발하고 태희는 마음이 다급해진다. 전화를 다시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그만큼 나쁘랴.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는

게 분명한데 전화가 울리면 그 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장난이었음 넌, 죽을 줄 알아.


태희가 차창 밖을 쳐다 보며 중얼 거린다.


-아이씨, 그 놈이 혹시 칼이라도 들고 있는 거 아냐?.....아저씨, 좀 빨리 갑시다.


태희는 순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일부러 기침을 하며 수정은 슬쩍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꾼다. 그리곤 현숙에게 문자를 날린다. 현숙아, 지금 빨리 좀 와줘...집에

도둑 들었단 말야....나 좀 살려줘...엉엉엉

그리곤 혹시나 해서 태희에게도 문자를 날린다. 아직 멀었냐? 빨리 좀 와주라.

여기가 어디냐면....아이씨, 문자도 한계가 있다. 몇 자 적고 나면 꽉 차서

다시 또 문자를 날려야 한다. 수정은 떨리는 손으로 대충 위치를 알린다.

그리곤 이불 속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제발....제발 좀 빨리 와줘....


사내는 다 뒤져도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다는 걸 알고 허탈해 한다.

그러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무슨 집구석이 돈 될만한 게 하나도 없냐? 아이씨....재수 드럽게 없네.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정의 지갑에서 오천원을 꺼내

주머니 속에 집어 넣고, 발로 수정이 엉덩이를 툭 찬다.


-야, 집구석에 돈 좀 놓구 살어, 어?

-네...네...


수정은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정신없이 대답만 한다. 사내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우유를 꺼내 마신다. 아주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내는 빈 우유팩을

방바닥에 던져 놓고 담배를 꺼내 피워 문다. 아주 자기집처럼 군다.


-저기요, 신고 안할테니까 이제 그만 가시면 안될까요?


수정의 말에 사내가 돌아본다.


-야, 뭘 훔쳐가야 신고를 해도 할 거 아냐? 가져간 게 없는데 뭘루 신고할래?


사내가 담배를 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대로 꼼짝말구 있어라, 움직였다간 콱....죽는 수가 있다.


사내가 수정에게 협박을 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방문을 살며시 열고 나간다.

수정은 사내가 나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그렇게 웅크리고 있다.





***********



태희는 수정이 보낸 문자를 보고 무작정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아이씨, 이 근방 어디라 그랬는데....무슨 집이 다 똑같이 생겼냐?


태희는 두리번 거리며 골목길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간다.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수정의 집 앞에 도착한 태희는 현관문 손잡이를 조심히

잡는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린다. 힐끔 안으로 고개를 내민다.

주방겸 거실인 좁은 공간이 눈에 들어오고, 방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본다. 태희는 순간 오금이 저린다. 밖에 세워진 빗자루를 들고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간다. 방문 옆으로 몸을 숨기고는 슬쩍 안을

보는데 아무도 없다. 이불이 풍성하게 부풀어 있어 태희는 혹시나

하는 맘을 졸이며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젖힌다.


-아저씨..살려주세요....제발...


수정이 태희인 줄도 모르고 고개를 쳐박고 손을 들고 싹싹 빈다.

태희가 그런 수정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한심한 듯 쳐다 본다.

태희가 발로 수정의 엉덩일 툭 찬다.


-야, 일어나...너 지금 뭐하냐?


태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수정이 고개를 든다. 그리곤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데 태희가 뒤로 자빠질 뻔한다.


-뭐....뭐야?


머드팩을 하고 있는 수정의 얼굴이 섬뜩하다. 수정이 태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제서야 울음을 터뜨린다.


-왜 이제 왔어, 이 나쁜 놈아....


수정이 그 자리에 앉아 펑펑 울자 태희가 입을 벌리고 서서 수정을 어이

없게 내려다 본다. 흘리는 눈물 때문에 머드팩이 듬성듬성 눈물에 씻겨

나가 꼴이 말이 아니다.


-야, 얼굴이...그게..뭐냐? 도둑놈이 너 보고 놀라서 도망 간 거 아냐?


태희의 말에 그제서야 수정이 거울을 본다.  아이씨....이게 뭐야?

수정은 무안한지 눈물을 대충 닦으며 일어난다.


-잠...잠깐만.


수정이 나가며 돌아본다.


-어디 가지 말구 거기 그대로 있어...알았지?


욕실로 들어가는 수정을 한심한 듯 돌아보고 서 있는 태희, 수정이

들어가자 태희가 집안을 둘러 본다. 단 한 번도 이런 집을 본 적이 없는

태희는 다소 놀란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집이 있었나?


괜히 비싼 점심 사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진다. 그때 현관 문을 열고

현숙이 뛰어 들어온다. 현숙이 태희를 보고 놀라 핸드백을 들고

비명을 지르며 덤빈다.


-도둑이야....


너무 순식간의 일이었다. 태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현숙이 내리치는

핸드백에 무지막지하게 맞는다.


-아....아....아이씨...나 도둑 아니란 말야....잠깐만요....


태희의 말은 듣지도 않고 현숙은 무조건 때리고 발로 찬다.


-나쁜 놈...여기가 어디라구....이 나쁜 놈...우리 친구는 어딨어?...

우리 친구 어딨어?


그때 욕실 문을 열고 수정이 놀라 수건을 들고 뛰어 나온다. 얼굴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수정이 현숙의 허리를 잡고 뜯어 말린다.


-그 사람 아냐, 도둑 아니란 말야....


그제서야 현숙이 수정을 돌아본다.


-너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현숙이 놀라 수정의 몸을 살피며 묻자 태희가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현숙이와 수정을 노려 본다.


-나...난, 괜찮아...


그제서야 현숙이 태희를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럼, 댁은 뉘신지?

-어...저기 친..친구야.


수정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자 태희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사람을 잘 보고 덤벼야 할 거 아냐? 아이씨.....


태희가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현숙을 노려 보자 현숙이 그제서야

미안한 듯 고개를 조아린다.


-죄송합니다...하도 정신이 없어서....근데, 여긴 왜 왔어요?

-내가...불렀어....미안해, 많이 아프니?


수정이 태희의 머리를 만지려 하자 태희가 손을 거칠게 뿌리친다.


-됐어.....그리구 너, 다른 사람도 아니구 왜 나한테 전화하고 지랄이야?

괜히 헛걸음만 했잖아.


태희가 짜증난 듯 방에서 나가자 수정이 당황하며 뒤따라 나간다.


-저기...잠깐만...


수정의 말도 듣지 않고 현관 문을 열고 나가는 태희를 따라

밖으로 나가며 서둘러 태희의 팔을 잡는다.


-저기...

-뭐?


홱 돌아보며 태희가 화가 난 듯 툭 내뱉는다.


-와줘서...고마워.

-야, 내가 도대체 너랑 무슨 사이냐? 내가 니 친구야? 언제부터

너랑 내가 친구였냐?


수정이 아무 말도 못하고 쭈빗하게 서 있자 태희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시 본다. 그리곤 애써 상한 기분을 진정 시킨다.


-좋은 구경 하고 간다.


태희가 돌아서 걸어가고 수정은 아무 말 없이 입을 삐죽거리며

태희의 뒷모습을 보고 서 있다. 그러다 태희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본다.


-야, 근데....이름이 뭐냐?

-어?

-이름 말야, 이름은 있을 거 아냐.

-황보수정....

-뭐?

-수정이라구, 황보수정.

-이름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참....너 나한테 신세 또 한 번 졌다.

이번엔 술이나 사라, 내일 연락할게.


태희가 돌아서 가자 수정이 뚱하게 보고 서 있다.


-또 바가지 씌우려구....


현관 문을 열고 빼꼼 내다 보고 있던 현숙이 쪼르르 달려와 수정이

옆에 선다.


-누구냐 쟤?

-어...접때 신발 사준 놈.

-그 놈이야?

-어.


수정이 돌아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숙이 촐랑촐랑 따라 오며

묻는다.


-뭐하는 애야, 좀 있게 생겼는데?

-아니야.

-아니긴...진우보다 인물도 훨 낫네 뭐.


현숙의 말에 수정이 흘겨 본다. 그리고는 방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그제서야 현숙은 도둑이 들었다는 걸 다시 깨닫고는 방안을 살핀다.


-뭐 훔쳐간 거 없어?

-훔쳐갈 게 있어야 훔쳐가지, 도둑 놈한테 쪽팔리는 건 살다 또 첨이다.


수정이 입을 삐죽거리며 얼굴을 닦는다. 현숙은 빈 우유팩을 들고

수정의 얼굴 앞에 내민다.


-이거 도둑 맞았네 뭐.


수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흘겨보다 로션을 바른다. 그러다 여기까지

달려 와준 태희를 떠올린다. 어쩐지 고맙단 생각이 든다. 태희 말대로

친구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이 뻔뻔해질 수가 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휴대폰을 찾아 들고 1번을 꾹 누른다.

역시 럭셔리란 글자가 액정 화면에 뜬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태희는 긴 골목길을 내려가다 입구에 서서 다시 골목 끝 편을 돌아본다.

짙은 어둠 속에 잠긴 길다란 골목길을 보고 섰는데 기분이 묘해진다.

조금 귀찮고 짜증스럽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수정의 말에 매번

거절하지 못했던 걸 떠올린다. 그러다 조금 전 머드팩을 하고 있던

수정의 얼굴을 떠올리자 웃음이 난다.


-내가 너랑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나 모르겠다...잘 자라, 싸가지야.


수정에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안도의 마음이

들자 태희 자신이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볼수록 헷갈리는 기집애라니까.


태희가 씩씩하게 돌아서며 긴 골목길을 빠져 나간다.





*************



이른 새벽 약수터를 올라갔다 내려 오는 강회장과 태경, 그리고 그 뒤를

잠이 덜 깬 얼굴로 하품을 하며 따라 내려오는 태희의 손에 물통이

들려 있다. 아침 잠이 많는 태희는 약수터 오는 게 너무 싫다.


-사람의 몸은 기계와도 같아서, 움직이지 않으면 녹이 슬고 말어.

기름 칠을 하고, 자주 닦아주기도 하고, 자꾸 가동을 시켜야 녹이 슬지

않는 법이야, 제 몸 아껴서 뭐에다 쓰려고 해? 죽으면 어차피 썩어

빠질 몸뚱아리,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쓸 줄을 알아야지.


강회장의 말에 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한다. 태희는 심드렁

하게 약수터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했다...내가 젊었을 때는 시간이 항상 모자랐지

고생하는 거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네 아버지.

-태희 넌 요즘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강회장이 묻자 태희가 딴 짓을 하다 강회장의 뒷통수를 바라본다.


-네?

-이번에 차를 바꿔, 너한테 무슨 외제차야? 돈 좀 있다고 쓸데없는데

낭비하지 말고 너부터 솔선수범해서 검소한 모습을 보여야 아랫 사람들도

본을 받는 거야....외제차가 너한테 왜 필요해?

-아버지?...그건 고모가 생일 선물로 사준건데...

-애들 간만 키워 놨어, 늬 고모가.....토달지 말고 오늘 당장 차 바꿔.


강회장과 태경이 앞서 내려가자 태희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원망스런

표정으로 본다.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다구, 있는 것까지 다 뺏어가냐구요?


태희가 억울한 표정으로 울상을 지으며 터벅터벅 내려간다.




*********



막 씻고 욕실에서 나오는 진우, 초인종이 울리자 진우는 시계를 본다.

이제 막 아침 일곱시를 넘긴다.


-아침부터 누구야?


진우가 현관문을 열자 윤미가 서 있다. 진우가 다소 놀란 눈으로 윤미를

보자 쇼핑 가방을 들고 상관없이 들어오는 윤미. 그리고는 거실 바닥에

가방을 내려 놓는다. 진우는 그런 윤미를 보고 관심없는 듯 고개를 돌린다.


-이건 가져가야 할 거 아냐, 이걸 누가 입니?


윤미가 손이 아픈지 툭툭 손을 털며 진우를 흘겨 본다. 그러다 입을

삐죽거리며 어렵게 말을 한다.


-내가 잘못했어....화 풀어.


윤미의 태도에 진우는 놀란다. 뭐야, 얘가 아침부터 약 먹었나?....

단 한 번도 누구한테 미안하단 소리 할 줄 모르는 자존심 강한 이윤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에 진우는 당황스럽다. 태연한 척 진우가

그런 윤미를 본다.


-니가 뭘 잘못했는데?

-자존심까지....상하게 만든거...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냐. 그냥...

내가 좋으니까, 니가 이쁘게 보였음 하는 맘이었다구.


윤미가 투덜거리듯 심드렁하게 내뱉자 진우가 머쓱해진다.


-나중에 전화할게....출근해.


윤미가 돌아서 나가려자 진우가 괜히 미안한지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는다.


-안 바쁘면 태워줘.


진우의 말에 윤미가 돌아본다. 금새 표정이 밝아지지만 고개를 돌리고

애써 좋은 기분을 누른다.


-기다려.


진우가 방에 들어가고 윤미는 슬밋 웃는다. 그리곤 실내를 훑어 본다.

집도 좁지만 모든 것이 오래된 것처럼 낡아 있었다. 윤미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이런 건 정말 눈으로 못 봐주겠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야...도대체

자존심이 뭐냐, 이렇게 살바엔 나같으면...자존심이고 뭐고 없겠구만.

 

 

 

******오늘은 7부에서 끝내야할 것 같아요.

오늘부터 마감이라서 좀 바빠질 것 같네요^^

시간이 되면 퇴근 후에 한 편 정도 올려 놓겠습니다.

죄송하구요, 오늘도 굿데이 되시구요...그저

웃으면서 읽으셨음 좋겠네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