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를 놓지 않는 의사..

보건지소200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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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한 시골 면단위의 보건지소에 있는 의사입니다. 보건 지소는 보건소보다 아래 단계의 최말단 공공 의료기관입니다. 개인병원 수준이거나 시설면에서는 이 보다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 그런 입니다.  이곳 시골 마을에서 진료하는 동안 불필요하게 주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주사 치료에 대한 저의 의견을 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주사 치료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상당합니다. 감기 환자 중 상당 수는 주사 치료를 요구합니다. 링거액 주사(일명 영양제 주사)에 대한 맹신 또한 언급을 하지 않아도 익히 알 것입니다. 사회에서 글 깨나 읽고 지식층 및 지도층이라는 사람들도 예외 없습니다. 병원에서 주사 맞아야 감기가 빨리 낮고 이 다음에 감기에 덜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 역시 고등학교때 생물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고 의대에 오기 전까지는 주사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고 약만 먹는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종합병원 근무할 때도 간혹 그런 환자들 때문에 애 먹은 적이 있었는데, 여기 시골마을은 주사에 대한 막연한 집착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코물, 기침, 몸살, 허리아프다, 가렵다...별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주사를 요구합니다. 모두 다 먹는 약 처방으로 충분하고도 남는 경우들입니다. 3초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사로 주는 약물이나 먹는 약물이나 똑같은 성분인데, 이게 주사로 몸에 들어가면 감기가 빨리 낮고 재발을 억제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똑같은 성분인데...허허

또한 모든 주사 치료는 쇽(shock)에 대한 대비가 갖춰진 곳에서 해야합니다. 물론 근육 주사의 경우 쇽 발생 가능성이 수 만 내지 수 십만분의 일정도로 낮긴 하지만, 일단 발생시 치명적이기 때문에 최소한 기도 확보 장비 및 에피네프린과 같은 승압제를 구비하여 이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쇽의 발생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쇽 발생 자체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는 않겠지만, 쇽 발생 이후 행해진 의사의 처치는 반드시 책임을 추궁당하게 된다. 불행히도 우리 지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건지소에 이런 대비 시설 갖춰줘 있지 못합니다.

그럼 주사는 뭐하러 만들었겠습니까? 주사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효과입니다. 당연합니다. 처방된 약물이 최종적으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혈관내로 흡수되어야 하는데, 먹어서 소화기관을 거쳐 혈관내로 들어가는 시간 보다야 바로 혈관내로 놓는 주사가 당연히 더 빠른 효과를 내게 됩니다. 그래봐야 불과 30분에서 1-2시간정도 차이밖에 안납니다. 그리고 근육 주사의 경우는 입으로 먹는 경우부다 더 늦게 흡수 될 때가 있어 입으로 먹는 게 오히려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 밖에 몇 가지 특수한 상황에서는 주사 치료를 반드시 요구하지만, 일상적인 질환들을 보는 외래에서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다면 외래에서 볼 환자가 아니라 입원해서 치료해야 할 환자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닌 주사 치료는 치료상의 이점이 없으며 오히려 벼룩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감기로 병원 갔다가 주사 맞고 쇽으로 아무런 처치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습니까?

때문에 우리 보건지소에서는 절대 주사를 놓지 않습니다. 또한 기존에 있던 주사도 2가지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 없애버렸습니다. (파상풍 예방 주사인데, 먹는 약이 없기 때문에 남겨 놓았고. 나머지 하나는 관절강내 주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사를 요구하는 환자들에게는 위와 같이 설명하면 대개는 수긍하며 저의 처방을 따릅니다. 물론 병원에서 주사 안 놔준다고 투덜대고 나가는, 절대 남의 말 듣지 않는 부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만은 제발 감기로 응급실가서 주사 놔달라고 떼 쓰지 마십시오. 응급실 선생님들 안 그래도 바쁜데, 말 그대로 생명이 위급한 응급 환자를 봐야지 감기 환자보고 있으면 응급실 체면이 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