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결혼합시다-_-!

이원영200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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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 결혼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넘이 하나 있었다.

 

이 넘은 중학교 때 벌써 자신이 결혼할 여성관에 대해 확고한 사상적 정립을 했고,

 

아울러 자신이 낳을 세 명의 자녀 이름까지도 지어놓았던 그런 녀석이었다

 

(낳을 아이의 성별에 상관이 없게 중성 이름으로 지을 정도로 치밀한 녀석이었다)

 

 

 

상당히 수려한 외모와 멋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녀석이었음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변변한 여자친구 하나 없었기에 친구인 우리들은 수많은 소개팅을 시켜 주었었는데,

 

녀석은 어느 교회의 '문학의 밤' 행사에서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던 어떤 여고생을 바라보며 녀석은 우리에게 꿈을 꾸듯 말했었다.

 


"친구들아… 이젠 결혼해야 할 꼬 같아."

 


즉시 우리는 무대 위의 그 여고생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드뎌 이 넘을 솔로에서

 

구출해낼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으로 우린 상당히 들떴고(여자친구를 노나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컸을 거다), 무대 위의 그녀에게 "헤이! 제수씨!!"라고

 

소리칠 만큼 그녀와 그의 결혼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녀석이 선택한 이상 그녀

 

의 거절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프로필을 알게 된 우리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교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는 엄청난 수재

 

였고, 중학교 때는 최초로 시행되었던 민선 학생회장 선거에서 당당히 학생회장으로

 

뽑혔던 인기스타였고, 현재도 같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팬레터를 수북이 쌓일 정도로

 

받는 그런 엄청난 '거물'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녀석을 설득하였다.

 


"포기하자. 노는 물이 다른 여자야."

 


그러나 녀석은 어처구니없게도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고 봐. 나랑 결혼하나 안 하나."

 

"헉…."

 

 

문학의 밤이 끝나고 우리는 무대 뒤로 그녀를 찾아갔다(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이

 

혼자 앞장서서 걸었고 우린 떼거지로 몰려 멀찍이 떨어져 쫓아간 것이다).

 

 

 

무대 뒤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를 발견한 녀석은 그녀 손에 들려 있

 

는 꽃다발들을 무심하게 한번 쓱 쳐다본 후 방금 밖에서 꺾어온 들꽃을 그녀에게

 

내밀며 한 마디 했다.

 


"당신이 맘에 들었습니다."

 


후옷!!

 

순간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든 말과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녀석과 그 여자애를 주목했다

 

우린 그 틈을 타 녀석에게서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왜냐구? 쪽팔리자나-_-;;;)

 


"저… 누구신지…."

 


뇨자애는 당혹스럽다는 듯 말했다. 녀석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과 결혼할 사람입니다."

 


후오오오옷!!!

 

우린 그넘의 말에 두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

 

방에 모든 사람들은 거의 숨도 안 쉬고 둘을 쳐다보았다.

 


"저기… 저기…."

 


그녀, 무척 당황했나 보다.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그를 쳐다만 보고 있다. 녀석은

 

마지막으로 씩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편지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저 멀찍이 숨어 있던, 그넘과는 전혀 모르는 남남인 것처럼 딴 곳을 보고

 

있다가 틈을 이용해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던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 얘들아-_-!"

 

 

 

다음 날 녀석은 그녀에게 '너하고 나하고 왜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내

 

용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내용임이 분명했지만 그의 어조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읽는 이로 하여금 '정말 결혼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넘은 참으로 놀라운 녀석이었다. 6장을 글씨 폰트 10크기로 빼곡하게, 그것도 일

 

관된 내용(결혼하자)으로 써내려간 그는 편지 맨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나하고의 결혼을 허락한다면, 이번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어디어디로 나오세요. 기다릴게여'

 


세상에 어느 여자가 그곳에 나오겠는가! 그런데 녀석은 그녀가 나오리라고 믿어 의

 

심치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녀석과 토요일 저녁시간에 약속 장소에서 세 시간동안

 

같이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나오지 않은 그녀의 집에 녀석은 상당히 분개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고,

 

전화로 두 시간동안 오직 하나의 주제로 그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왜 나하고 결혼할 수 없다는 거요!!!"

 


녀석은 쪽팔리게 공중전화에서 소리를 질러가며 전화를 했다. 우리들은 다른 사

 

람이 전화를 하기 위해 뒤에 줄을 서지 않도록 한 줄로 줄을 서서 전화를 걸 사람

 

처럼 보이고 있어야 했다.

 


"야, 대충 하고 끊어!"

 

"쪽 팔린데다가 춥기까지 한단 말야!!"

 


우리의 말에 아랑곳없이 두 시간을 내내 소리치며 싸우듯 전화를 한 넘은 지친

 

우리가 바닥에 주저앉은 지 한참이 지난 후에 갑자기 '내일부터 편지하겠소!!'라는,

 

'춘향뎐'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내뱉은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보며

 

울먹이듯 소리쳤다.

 


"얘들아, 그뇨는 독신주의자래…. ㅠ.ㅠ"

 

"......;;;"

 


그 날 이후로 녀석은 매일같이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 넘은 결혼 신봉

 

자, 한 뇬은 독신주의자...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싸이코들이었다.

 

 

 

그 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잡다한 이야기들을 매일 편지로 보냈다. 항상 결론은 '결

 

혼은 반드시 해야 된다. 물론 나하고.'였다. 그넘은 어떤 말을 하든지 그 말을 결론

 

으로 이끌어냈다.

 

 

 

한 40여일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우리는 40여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녀석에게 '그만 둬! 이 정신나간 넘아!!'라고 말해 주었다. 20살이

 

되면 결혼을 하겠다는 녀석도 미친 넘이었고, 슈바이처 박사 같은 의료 선교를 하겠

 

다고 꿈 많은 18살의 나이에 독신을 선언한 그뇬도 우리에겐 이상한 뇬으로 보였다.

 

 

 

40여일 동안 편지만 주고받으며 도저히 결말이 나지 않을 거 같았던 둘의 결말은

 

참으로 어이없이 쉽게 났다. 녀석이 '난 다음 달에 유학을 가오.'라고 쓴, 말도 안

 

되는 속임수 편지에 그녀는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되겠군여.'라는 기가 막힌 반응을

 

보여 오면서 전격적으로 사귀는 것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둘의 모습을 옆에서 쭉 지켜보던 우리는 과연 둘이 정상적인 사람들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자. 둘의 사고방식이라든가 말도

 

안되는 편지 공세라든가 이런 것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치잔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껏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유학' 운운하면서 쌍팔년도에나 썼을 법한 '이별

 

수법'을 쓴 넘이나 그것이 뻔한 수법인 줄 모르고 어처구니없게도 믿어버린, 아이

 

큐 153의 수재였던 그뇬이나 이건 너무 어처구니없잖은가….

 

 

 

속아 준 건지, 아니면 속은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둘은 고 2때부터

 

사귀기 시작하여서 꽤 오랫동안 유명한 커플로 남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정말 어이없는 결론은 현재의 모습이다. 20살이 되면 결혼하겠다던 그 녀석

 

은 30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아직 결혼할 계획이 전혀 없이 살고 있고, 평생

 

독신으로 '슈바이처'가 되겠다는 그녀는 21살 때 같은 과 선배였던 레지던트 1년차

 

와 결혼해서 지금은 낙도에서 남편과 함께 의료선교를 하고 있다. 세상일이란 참

 

모를 일이라더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위의 사건이 혹시 픽션이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위 사건은 사실이다. 하나의 거짓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어케 고등학생의 남자아이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죠?"

 


그건...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남자아이의 모든 행동이

 

확실한 신념 하에 일어났다는 거다. 그걸 어케 확신할 수 있냐면...

 

휴우...

 

 

 

위에 말한 저 넘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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