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눈을 뜨면 꿈이기를..

플로라2004.07.03
조회2,451

오늘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제발 눈을 뜨면 꿈이기를..


지난 98년 한참 IMF때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결혼했습니다.

당시 전 사귀고 있는 남친이 있었는데 어학연수 갔다 와서 4학년이었고

전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디자인과를 나와서 광고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죠.

남친은 졸업하고 취직하면 그때 결혼하자더군요. 그때가 97년 이었습니다.

당시 전 집이 지방이라 오빠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마침 IMF가 오고 오빠는 주식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

집도 좁혀서 가야하고 한마디로 가시 방석이었습니다.

그때쯤 올케언니가 선을 보라고 했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련된 자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명문대를 장학생으로 다녔고 좋은 직장에 40평대 아파트,

사실 겉으로 보기엔 키가 좀 작은 것 빼곤

뭐 하나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성격도 너무 착했기에...

망설이는 제게 주위에서 "키가 밥 먹여 주나, 능력 있고 성격 좋으면 그만이지"

하는 말과 그리 싫지 않은 저의 감정에 쏠려 결혼을 했습니다.

아참 남편의 부모님은 이혼도 아닌 별거를 하고 있었 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호적만 정리를 안했지 아버님은 다른 여자와 살고 있더군요.

(별거중인 줄만 알았음)


그때 남편은 고시학원 강사라고 했습니다. 정말 학원 앞에서도 만났고..

결혼 하면 강의를 1주일씩 빼지를 못한다고 1달을 쉰다고 했습니다.

절대 의심 안했습니다. 한달이 지나자 격일제로 근무하는 걸

매일 강의로 바꾼다고 하더니 서서히 안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아프다면서..

사실 그때 저도 그냥 회사나 은근히 고시 학원이니 고시 공부나 하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 몇 년 투자 하는 게 낮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사람을 선택한 제일 큰 기준도 학벌이었습니다.

언니 오빠에 비해 전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지 못해 항상 혼자 주눅 드는 기분이었습니다.  대학교수에,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 친척들도 변호사 ,박사 등등이.. 

그래서 학벌이 첫째 조건이 된 게 나의 보상심리 에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신혼 때라 생활비는 거의 안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시댁(어머니가 사시는 집 )에 갔기 때문에 장은 거기서 다 봐 왔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전 아기를 가졌고 입 덫이 너무 심해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수입이 없었는데 이모의 소개로 과외를 해서

한달에 60만원씩 받아서 생활 했습니다.

저의 분신과도 같은 첫째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중간 중간 싸우기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남편은 외아들이라 그런지 자라온 환경이 그런지 같이 있는 사람을 배려 할줄 모릅니다.

자기도 귀찮게 안 할 테니 남도 자기를 귀찮게 하는 걸 싫어합니다.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임신 했을 때가 제일 편하고 대접 받는다는데 제겐 그냥

이야기일 뿐입니다. 임신 했다고 껌 한통 사들고 오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즈음 남편은 친구와 사업을 시작한다고 집에 대출을 받고 융자 까지 내어서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반대해서 엄청 싸웠습니다.

남편이 뭐한다고 하면 용기는 못줄망정 무시한다고..

사실 같이 한다는 친구가 신용 불량자(전 그때까지 신용불량자가 뭔지도 몰랐습니다.)라서 대출이 안 된다고 남편이 그 사람 아는 사람에게 돈 빌리는데 보증을 서준 모양입니다.

나에겐 아무런 상의 없이 남편 명의로 차도 사서 그 사람이 타고 다니고..

사채도 쓴 모양입니다.

2~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말 이해 못할 일 들 뿐이었습니다.

뒤를 봐 준다고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도 만나고, 회사를 다른 사람 명의로 돌리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매일 12시를 넘겨서 들어오고..


어느 날 예물로 받은 반지가 너무 커 줄이러 갔더니 가짜랍니다.

눈앞이 아찔~(잘 해준다고 얼마나 생색내면서 해 준건데..)

그것 때문에 오빠한데 이렇게 어려운 때에 쓸데없는 욕심 부린다고 속물 취급받고,

싫다고 몇 번이나 거절 했는데 기어이 해 준 게 가짜라니...

며칠이 지나서 슬며시 물어 봤습니다. 아는 사람 가게에서 한거니 혹시 그 사람이

잘못 한 게 아닐까 해서..

그랬더니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 사람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어쨌던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그 일이 잊혀질 무렵 아무래도 이상해서 학교에다 전화했더니 졸업생 중에 그런 사람

없다고 합니다.

입학한 사실도 없다고 합니다. 난 내 귀를 의심하며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없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도 전 그런 내색 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한데 너무 미안해 할까봐, 안 그래도 지금 어려운데 나까지 몰아 부치면 정말 설 곳이 없어 질까봐..

그 사람 사춘기 시절은 너무 힘들고 외롭게 보냈더군요.. 잦은 부모님들의 싸움, 아버지의 외도. 그래서 공부만 했답니다. 모든 게 귀찮아서..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 것도 맞습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한 것도 맞습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께 반항한다고 등록을 안했답니다.(나중에 확인한 사실)


그리곤 둘째를 임신한지 7개월째 남편은 음주운전으로 면허까지 취소되고 차는 폐차할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에어백 덕분에 무사했지만 얼굴에 유리 파편들이

박혀서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 볼 정도였습니다.

그때가 월드컵이 한창인 2002년 이었습니다.

거의 만삭인 몸으로 남편 병간호에 임신했다고 대접 받는 건 이미 내 팔자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더군요 주위에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 하라고,

생각 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퇴원하고 오빠들이 마련해준 직장도 며칠 다니다 적성에 안 맞는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안 다닙니다.이젠 물어 보지도 않습니다. 저희 집에선  아직도 모릅니다.

명문대 나와서 회사까지 소개해 줘도 차려주는 밥도 못 먹는다고.. 말은 안 해도 이해를

못하는 눈치 입니다. 모르죠 이미 알고 있는지도..

둘째가 태어나서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조리원에 혼자 있는 나 한데 이사람 괴롭다고 울면서 우리 아기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술에 만취해서 전화 했더군요. 그 무렵이 제일 어려웠었습니다.

친구의 빗까지 떠안고 거의 매일 술로 보낼 때 였으니까요. 병원에서 조리원 으로 갈 때도 남편은 전날 술 먹고 병원 바닥에서 자고 제가 구부정해서 짐 쌌고 계산까지 했습니다.

사람이 앞날을 모르니까 살지 또 그때처럼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합니다.

지금도 앞날을 모르니까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나 봅니다.


어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경찰서인데 검찰청에서 수배가 내린 모양이라고 조사 받으러 간다고 며칠 걸릴 것 같다고...걱정하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아버님이 여기저기 알아보니 금방 끝날 일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남편은 마지막까지 절속인 걸까요?

얼마 전 등본을 떼어보니 남편 주소가 딴 곳으로 되어있어 왜 그러냐고 하자 재개발 아파트 아는 사람과 같이 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2002년 8월 집 팔고 분양받아

놓았던 것 정리해서 어머님 집으로 들어 왔거든요. 빚 정리 하고 남은 돈으로 산 줄 알았는데 오늘 가 보니 사람도 살지 않는 상가 였습니다. 남편은 미리 알고 빗 독촉을 피하려고 주소를 옮긴 모양입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가족들이 신경 쓰는 게 싫었던 거죠.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 고비, 고비를 많이 넘겼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어머님께 남편의 상황을 말씀 드렸습니다.

남편 복 없는데 자식 복인들 있겠냐고 “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겠어” 하시면서 어김없이 오늘도 사람들 모아다 화투를 치십니다. 아버님이랑 사이가 안 좋으실 때 마음 달래려고 화투를 배우신 게 이제는 하루도 안하면 안돼는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님은 이 기회에 십년 넘게 끌어오신 어머님과의 관계, 거짓으로 살아온 아들의 생활을 한꺼번에 정리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지금 어머니와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이 아버님 명의로 되어 있거든요. 아버님이 집을 나가신 거죠, 어머님은 이집에서 계속 사시고..

아무튼 이복잡한 생활을 어떻게 해서든 빨리 정리 하고 싶습니다.

아버님께서 저만 보자고 하시는데 무슨 말씀을 하실지 걱정입니다.


얼마 전부터 전 남편이 저의 십자가라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람 나로 인해 거짓이 거짓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거짓이 거짓을 낳아온 지난을 만회 하기위한 기회를 주고 싶었고, 무었 보다 나까지 그 사람 곁을 떠나기 싫었습니다. 너무나 외로워 보여서...

그런데 지금은 그 십자가가 너무 힘겹게 느껴집니다.

오늘저녁 말도 못하는 둘째가 벨소리가 나니 여느때 보다 더 큰 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현관으로 달려갑니다. 그 사람 몇 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너무 좋아 하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를 너무 좋아 하구요. 큰아이도 항상 아빠가 권상우 보다 멋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남편이 진실하게 거짓 없이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너무 뒤죽박죽이라 두서도 없이 적었습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