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향기/3편

나다200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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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보내세요.운명의 향기/3편

 

 

"'하정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할머니의 자상한 목소리로 시작된 하루는 어제 오빠와의 만남을 꿈처럼 느끼게 했다. 이층으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곧이어 '똑똑'소리가 났다.

 

"할머니 일어났어요"

 

쫄리는 음성으로 대답하고는 하정은 이불속으로  점점 파고 들어갔다. 문열리는 소리와 함께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하정의 잠을 확 달아나게 했다. 하정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재준오빠였다.

 

"네 방이 이렇게 생겼구나. 늘 궁금했는데 말이야"

"누가 여기 들어오라고 했어요"

 

하정은 자기도 모르게  날카롭게 소리치고는 곧 후회했다. 오빠가 동생방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런 일로 화를 내는 것은 정말 유치한 일이다. 그래서 하정은 사과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지만 그는 어느새 방을 나가고 없었다.

'난 늘 왜 이렇게 마음과  달리 말부터 해버리는지 몰라 최하정 정신 차리고 제발 유치하게 굴지말자.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크게 심호흡을 한번하고는 하정은 자리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 배고파요"

 

이층에서 어린아이처럼 뛰어내려오면서 식탁에 앉았다.

 

"어서 밥먹고 학교가거라"

"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늦니 잠시 고모집에 다녀와야할것 같은데.."

"무슨일 있어요"

"그건 아니고 고모가 잠시 감기몸살이라고하는구나. 할미가  집정리도 좀 하고 고모 밥좀 차려주게"

"너무 무리하시지 마시고 고모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오빠랑 사이좋게 지내고 알았지"

 

할머니에게 자식은 하늘과 같은 존재나 다름 없었다. 지금 하정의 아버지가 큰아들이고  아픈 고모가 큰딸이고, 미국에 사는 둘째  고모가 작은 딸이다.

갑자기 할머니의 외출로 둘사이의 분위기는 더욱 어색한 방향으로 흐르고 말 없이 각자의 행동에만 신경쓰고 있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하정은 아까 일을 사과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해하지마"

 

그는 그녀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하나 몸짓하나 그리고 느낌으로 그는 다 알수가 있었다. 한 사람만 너무 생각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 하나, 표정하나, 그리고 그 사람의 생각까지 그 사람의 마음또한 읽을 수가 있듯이 지금 그도 그와 같았다.

 

"내가 왜 오빠에게 미안해한다고 생각해요"

"너의 표정으로"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하정은 이상한 뭔가를  보았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하정은 몰랐다. 성숙한 여자라면 다 알수 있는 남자의 눈빛을 하정만 모르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 학교가야겠어"

 

하정은 경찰에 쫓기는 도둑처럼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싫어. 그 사람의 시선도 싫고, 모든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 사람의 말투도 싫어.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장가는 안가나 제발 하느님 저 사람을 멀리멀리 아프리카 여자와 결혼하게 만들어주세요. 저 오빠는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니까 그런 여자와 결혼하게해주세요"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하정은 기분좋게 다시 학교로 갈 수 있었다. 정문이 보이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자꾸 사람들이 하정를 보면서 웃는 것이었다. 왜 자꾸 웃는거야.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기야 내가 좀 흔한 얼굴은 아니지. 어찌나 얼굴이 예쁜지.. 어딜가나 질투의 대상이라니까?

 

"하정아"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하정은 미녀 삼총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는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아침에 탄 밥이라도 먹었어. 왜 그리 웃어"

"하하하하"

"왜 그래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하정은 버럭 소리쳤다. 이것들이 아침부터 단체로 실성을했나. 웃는라고 정신이 없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하정은 당당하게 교문을 지나갈려고 하는데 일명 소나기 선생님께서 잡는 것이 아닌가? 하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왜 너를 불렸는지 모르지"

"예"

 

소나기 선생님과 이야기할때는 50센티 간격을 유지하지 않으면 온 얼굴에 침으로 세수하기 때문에 꼭 그 간격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서 얻어진 별명이 소나기 선생님이었다.

 

"학교에 오면서 너처럼 그렇게 신발  싣고오기도 힘들거야. 오늘날 우리 학교 역사상 이런 날은 처음있는 역사적인 날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하정은 아래에 시선을 두었다. 아뿔사 이런 하정은 그 순간 창피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학생 몇학년 몇반이지"

 

오늘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는구만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신발중에 할머니 고무신이 뭐냐고..

 

"선생님 죄송해요 한번만 봐주세요"

 

하정은 얘교조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화장실청소를 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3이 되가지고 어린 병아리들과 청소를 같이 할수가 없지.

 

"이런 학생  지금 뭐하는거야. 이 학교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말이야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이라구 알았어"

"네 선생님"

 

여기 더 있다가는 침으로 세수할것 같았다. 화장실 청소쯤이야. 2학년까지 내 전공이이었지 3학년이되면 안 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뭐냐고..

하정은 이름과 반을 말하고 그제서야 소나기 선생님 손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 그때 슬그머니 친구들이 다가와 하정을 위로한다는 구실로 더욱 열받게 하는 말들만 늘어놓고 있었다.

 

"하정아 나 아침에 배가 너무 아픈거야. 화장실 가서 변이라도 봐야겠다. 물이라도 잘 나와야하는데 어떡하니"

 

경숙의 말에 하정은 째려보았다.

 

"그런데 무슨 고무신이야. 누가 군대라도 가니"

"나도 몰라 아무튼 그 인간만 보면 제수가 없다니까?"

"그 인간이라니.. 누굴 말하는거야"

 

친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제히 하정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하정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뿐이었다. 그런 하정의 행동에 친구들은 곱지 않은 시선를 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은 얼마나 긴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쭈 문자쓰고 있네"

경숙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하정은 밝은 얼굴이 될 수 없었다. 집에 있을 재준 오빠의 존재가 불편하기만 했다.

 

"하정아 무슨생각을 그렇게해"

 

희진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하정의 눈에 들어오고 어느새 교실앞까지 오게 되었다. 

 

"아니야"

 

그제서야 하정은 희진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 인생에 그 사람은 언제나 불청객이야. 뭘까?

 

"하정아 아까부터 무슨생각을해. 집에 무슨일 있어"

"아니야 혜정아 봄이잖아 그래서 잠시 졸았어"

"정말이지"

"응"

 

6교실가 끝나고 하정은 화장실청소를 위해 걸레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일요일날 우리 서울대학에 견학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가자"

 

 

희진의 제안이었다. 아무나   먼저 대학에 같이 같이가자고 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같이가주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이번주 일요일"

"왜 무슨 약속있어"

"아니 같이 가자"

 

걱정은 조금 되었지만 친구들 앞이라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씩씩하게 약속을 하고 말았다. 우선은 친구들의 약속이 더 소중했다. 아버지의 파티도 중요했지만 하정은 거기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친구들이랑 하루종일 대학캠퍼스에서 놀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약속시간은 나중에 말해줄게"

"그래 알았어"

 

 

하정의 화장실 청소가 끝날때까지 친구들은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좀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한사람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의리없는 것들... 두고보자

하정의 화장실 청소가 끝나고 하교길에  여자들이 주 특기인 수다가 이어지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면서 교정문을 빠져나오는데 길 한옆으로 검은 스포츠카가 집으로 돌아가던 여학생들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우와 백마 탄 왕자님이다"

 

스포츠카에 홀딱 반해버린 경숙은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었다. 

 

"역시 하늘은 미인을 알아본다니까 난 이순간을 19년동안 기다려왔어"

"옥희진 정신차려"

 

혜정은 알고 있었다. 옆에 있는 하정의 심정을 그리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씻어지지 않은 감정 또한 특별하다는 것을 말이다. 혜정은 저 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차문이 열리고 검정색 구두와 검정색 양복을 입은 그가 차에서 내리고 하정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데 옆에 서 있는 경숙. 희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손을 꼭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정은 그 자리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어 먼저 걸어갔다.

 

"재준오빠 안녕하세요"

 

용기를 내어 혜정은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나 재준은 인사조차  없이 하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정은 그런 재준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

재준은 지금 너무나 화가 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마음은 좀처럼 열어지지 않았다. 매번 조그만 꼬마에게 지고 말았다.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렸지만 그 꼬마의 마음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하정을 향해 뛰어가 손을 잡고 억지로 차에 태워 차를 출발시켰다.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야 무슨일 있었니"

"글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혜정아 무슨일이야. 저 사람 하정이랑 무슨 사이니"

"나도 몰라"

 

혜정은 괜히 희진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은 재준오빠가 원망스러웠다. 혜정은 두 친구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