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허브 옥잠화 봉선화 국화와 원추리 나리꽃과 백합 제라늄과 몇 가지 이름모를 꽃들을 심었더니 해바라기가 자라며 그늘을 키우니까 코스모스를 비롯한 여러 꽃들이 모자라는 햇빛을 다투어 빈약한 줄기에 키만 훌쩍 커졌다.
더덕도 넝쿨강낭콩도 무리를 이루어 끝없이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꽃호박과 나팔꽃도 뒤질세라 위로만 촉수를 뻗어나가니 꽃밭이 질서가 없다.
잠시 비개인 뒤끝에 틈을 내어 화단 정리를 하는데 무성한 꽃들 틈에 앙증맞게 부풀은 꽃망울을 매달고 고운별처럼 하얀 도라지꽃 한송이가 수줍은 듯 피어나 있어서 더 가까이 보기위해 주변의 키 큰 꽃가지들을 정리하고 보니 해맑은 도라지꽃이 향을 날리며 방긋한다.
우리 동네 고샅길은 지금 도라지꽃이 환하게 피어나있다.
동네 작은 밭에도 도라지는 짙은 남빛으로 하얀빛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그리움을 갉아먹고 있다.
한여름, 모든 나뭇잎들이 더위에 지쳐 가지가 축 늘어질 때면 도라지는 야산의 작은 관목사이나 풀밭에서 목을 길게 빼고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린다.
푸른 하늘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향해 모가지를 길게 빼고 짙은 남빛으로 하얀 순결의 흰빛으로 자태를 뽐내며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은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포근한 자태로 여름 나른한 날 싱그러움을 주는 누이 같은 꽃이다. 그리고 도라지 타령과 함께 너무도 친숙한 우리들의 꽃이며 도라지꽃의 전설도 애절하기만 하다.
옛날 금강산 깊은 골안에 도선학이라는 가난한 농군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아내를 잃고 외동딸 하나를 애지중지 기르며 살고 있었다. 그 딸의 이름은 라지라고 하였다.
라지는 아버지의 슬하에서 어머니의 정을 모르고 외롭게 자랐다. 하지만 처녀는 늘 고요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밝은 안색으로 아버지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줄 알았다. 그의 얼굴은 동산에 금시 떠오른 보름달처럼 환하고 고왔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처녀는 궂은 일, 진일을 가리지 않았으며 언제나 홀로 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를 썼다. 베를 짜기도 했고 때로는 품팔이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드리면서 명랑한 웃음으로 즐거움의 향기 그윽한 꽃을 피워놓곤 하였다.
라지는 이처럼 아버지를 지성으로 섬기며 해당화마냥 싱싱하고 귀엽게 자라 어느덧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었다.
라지의 이웃집에는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나무꾼 총각이 살고 있었다.
처녀와 총각은 철없는 어린 시절에 소꿉장난을 하며 같이 뛰어놀았고 다 자라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녀는 길가에서 총각을 마주칠 때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그 앞을 스쳐 지나곤 했으나 자기가 오래지 않아 그의 알뜰한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집 부모들은 한두 해 힘껏 일하여 살림살이가 좀 펴게 될 때 아들딸의 혼례식을 남부럽지 않게 치르자고 굳게 언약하였으며 이러한 사정은 처녀도 총각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성숙기에 들어선 처녀는 생기 있는 꽃망울이 금시 벌어져 활짝 피어나려 할 때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웠으며 총각 역시 늠름한 대장부였다.
밭갈고 씨뿌려 귀중한 구슬땀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보람, 초가삼간이나마 지어놓고 넉넉하지는 못해도 조촐한 살림을 꾸려가는 즐거움을 그들은 벌써 마음속에 누리고 있었다. 그것은 봄날의 아지랑이마냥 총각의 눈앞에 하늘거렸다. 이 아지랑이는 순진하고 선량하며 효성이 지극한 두 젊은이의 기쁨이었으며 한껏 부풀어오르는 인생의 봄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천진한 꿈과 희망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금강산 골안에서 첫째가는 부자인 황가가 우연한 기회에 인물고운 라지를 한번 보고 제 첩으로 삼으려는 흉심으로 품었던 것이다. 황가의 땅을 부치고 있는 라지의 아버지 도선학은 몇 해 전에 황씨집에서 장리쌀을 얻어왔는데 그것이 새끼를 쳐 엄청나게 불어났으므로 아무리 땀흘려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지경에 있었다.
황가는 도선학의 이같은 약점을 거머쥐고 라지를 빚값으로 빼앗아가려 하였다.
도선학은 설혹 돈과 권세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황가의 이 요구에 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지는 말없이 근심에 싸여있는 아버지의 어두운 안색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짐작하였다. 그는 언젠가 음험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던 흉한 몰골을 상기했던 것이다. 도선학은 벗어날길 없는 커다란 근심을 안은 채 자리에 눕고 말았다.
라지를 한없이 사랑하는 이웃의 나무꾼 총각도 이 사실을 언제까지나 모르고 있을리는 없었다. 총각은 불원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한푼 두푼 모아둔 돈이 적지 않았으므로 도선학이 진 빚을 남김없이 다 갚을 생각을 하며 있는 힘을 다 해 일하였다.
이럴때 황가는 라지가 나무꾼 총각과 인연을 맺은 것을 어떻게 알고 총각이 손을 못 쓰게 할 속셈으로 그를 세존봉 너머 범골로 보냈다.
이놈은 총각을 떠나보내는 날 아침에 대문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백년이상 묵은 산삼을 적어도 세 뿌리는 캐와야 한다고 단단히 다짐을 두었다.
총각은 황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도 마을의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황가의 땅을 부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가는 총각을 보내면서 그의 잔등에 감쪽같이 생피를 발라 놓았다. 이것은 나무꾼 총각의 옷에 피를 묻혀 놓으면 산삼이 눈에띄지 않을 것이며 또 범골에 들어서자마자 의례히 백년 묵은 백호에게 잡혀 먹히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총각은 그것도 모르고 세존봉을 넘었다. 산삼을 찾아 범골에 들어서 험한 골짜기를 타고 내리기를 수십 번, 총각은 진이 빠져 노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바위 곁에 기대 땀을 닦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온 산천이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웬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총각은 너무도 놀라 온몸을 벌벌 떨며 바위뒤로 몸을 숨기려 하였다.
노인은 총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허리까지 드리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는 어쩌자고 들어왔느냐?” 하고 물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총각은 백발노인의 다정한 물음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정신을 수습한 총각은 황부자가 빚값으로 라지를 데려가려고 하는 사실 산삼을 찾아 이 깊은 골안에 들어오게 된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이야기 하였다.
그랬더니 노인은 새옷 한 벌과 활을 내주며 말했다.
“너는 이 옷을 갈아입은 후 지체밀고 효양고개로 달려가거라. 효양고개에 올라서면 라지가 있느니라. 그러니 빨리 가서 구원하여라.”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는 골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총각이 두 손으로 공손히 옷을 받고 절을 한 다음 고개를드니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총각은 노인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한 것을 후회하며 옷을 재빨리 갈아입고 효양고개로 향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주위에는 산삼꽃이 활짝 피어 바람결에 간들거렸다. 산삼은 그가 손을 대자마자 저절로 뽑히어 자루에 덜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삼 한 자루를 다 채운 총각은 두주먹을 불끈 쥐고 효양고개 방향으로 줄달음을 놓아 순식간에 고개마루에거의 이르렀다.
바로 그 순간 라지는 가마를 타고 효양고개로 올라서고 있었다.
저 때문에 앓아누운 아버지를 위해 팔려갈 것을 결심한 처녀는 빚문서를 찢어버린다음 황가가 하인들을 회동하여 앞세우고 온 가마에 주저없이 올랐던 것이다. 아버지가 내 딸을 못데려 간다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비통하게 부르짖었으나 황가의 하인들은 그를 사정없이 밀쳐버리고 가마를메고 달아났던 것이다. 황가는 말을타고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일행이 효양고개 마루에 이르자 라지는 가마를 세우고 땅에 뛰어 내렸다. 라지는 어머니 산소가 있는 동쪽과 아버지가 있는 집방향을 향하여 깊이깊이 허리굽혀 절을 하고 누가 어쩔새도 없이 아찔한 벼랑밑으로 몸을 던졌다.
뒤늦게 당도한 나무꾼 총각은 절통한 가슴을 부여안고 라지가 서있던 벼랑위에 쓰러졌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그의 눈에서는 거센 불길이 이글거렸다. 잠시 지나 정신을 차린 그는 활을 들어 황가를 쏘아죽이고 라지처럼 벼랑에서 뛰어 내렸다.
이로부터 얼마간 지난 뒤 벼랑 밑에는 두떨기의 꽃이 피였으니 그 하나는 라지의 넋이 담긴 하얀 꽃이요, 다른 하나는 나무꾼 총각의 넋이 깃든 남색 꽃이었다.
사람들은 이 꽃에 억울하게 죽은 아름다운 처녀의 이름을 붙여 도라지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남색 꽃에도 총각의 이름이 붙어있었으나 점차 색깔만 다르고 모양은 꼭 같은 이 꽃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신귀거래사 80 / 슬픈 사랑의 꽃 도라지
슬픈 사랑의 꽃 도라지
화단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허브 옥잠화 봉선화 국화와 원추리 나리꽃과 백합 제라늄과 몇 가지 이름모를 꽃들을 심었더니 해바라기가 자라며 그늘을 키우니까 코스모스를 비롯한 여러 꽃들이 모자라는 햇빛을 다투어 빈약한 줄기에 키만 훌쩍 커졌다.
더덕도 넝쿨강낭콩도 무리를 이루어 끝없이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꽃호박과 나팔꽃도 뒤질세라 위로만 촉수를 뻗어나가니 꽃밭이 질서가 없다.
잠시 비개인 뒤끝에 틈을 내어 화단 정리를 하는데 무성한 꽃들 틈에 앙증맞게 부풀은 꽃망울을 매달고 고운별처럼 하얀 도라지꽃 한송이가 수줍은 듯 피어나 있어서 더 가까이 보기위해 주변의 키 큰 꽃가지들을 정리하고 보니 해맑은 도라지꽃이 향을 날리며 방긋한다.
우리 동네 고샅길은 지금 도라지꽃이 환하게 피어나있다.
동네 작은 밭에도 도라지는 짙은 남빛으로 하얀빛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그리움을 갉아먹고 있다.
한여름, 모든 나뭇잎들이 더위에 지쳐 가지가 축 늘어질 때면 도라지는 야산의 작은 관목사이나 풀밭에서 목을 길게 빼고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린다.
푸른 하늘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향해 모가지를 길게 빼고 짙은 남빛으로 하얀 순결의 흰빛으로 자태를 뽐내며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은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포근한 자태로 여름 나른한 날 싱그러움을 주는 누이 같은 꽃이다. 그리고 도라지 타령과 함께 너무도 친숙한 우리들의 꽃이며 도라지꽃의 전설도 애절하기만 하다.
옛날 금강산 깊은 골안에 도선학이라는 가난한 농군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아내를 잃고 외동딸 하나를 애지중지 기르며 살고 있었다. 그 딸의 이름은 라지라고 하였다.
라지는 아버지의 슬하에서 어머니의 정을 모르고 외롭게 자랐다. 하지만 처녀는 늘 고요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밝은 안색으로 아버지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줄 알았다. 그의 얼굴은 동산에 금시 떠오른 보름달처럼 환하고 고왔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처녀는 궂은 일, 진일을 가리지 않았으며 언제나 홀로 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를 썼다. 베를 짜기도 했고 때로는 품팔이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드리면서 명랑한 웃음으로 즐거움의 향기 그윽한 꽃을 피워놓곤 하였다.
라지는 이처럼 아버지를 지성으로 섬기며 해당화마냥 싱싱하고 귀엽게 자라 어느덧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었다.
라지의 이웃집에는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나무꾼 총각이 살고 있었다.
처녀와 총각은 철없는 어린 시절에 소꿉장난을 하며 같이 뛰어놀았고 다 자라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녀는 길가에서 총각을 마주칠 때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그 앞을 스쳐 지나곤 했으나 자기가 오래지 않아 그의 알뜰한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집 부모들은 한두 해 힘껏 일하여 살림살이가 좀 펴게 될 때 아들딸의 혼례식을 남부럽지 않게 치르자고 굳게 언약하였으며 이러한 사정은 처녀도 총각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성숙기에 들어선 처녀는 생기 있는 꽃망울이 금시 벌어져 활짝 피어나려 할 때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웠으며 총각 역시 늠름한 대장부였다.
밭갈고 씨뿌려 귀중한 구슬땀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보람, 초가삼간이나마 지어놓고 넉넉하지는 못해도 조촐한 살림을 꾸려가는 즐거움을 그들은 벌써 마음속에 누리고 있었다. 그것은 봄날의 아지랑이마냥 총각의 눈앞에 하늘거렸다. 이 아지랑이는 순진하고 선량하며 효성이 지극한 두 젊은이의 기쁨이었으며 한껏 부풀어오르는 인생의 봄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천진한 꿈과 희망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금강산 골안에서 첫째가는 부자인 황가가 우연한 기회에 인물고운 라지를 한번 보고 제 첩으로 삼으려는 흉심으로 품었던 것이다. 황가의 땅을 부치고 있는 라지의 아버지 도선학은 몇 해 전에 황씨집에서 장리쌀을 얻어왔는데 그것이 새끼를 쳐 엄청나게 불어났으므로 아무리 땀흘려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지경에 있었다.
황가는 도선학의 이같은 약점을 거머쥐고 라지를 빚값으로 빼앗아가려 하였다.
도선학은 설혹 돈과 권세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황가의 이 요구에 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지는 말없이 근심에 싸여있는 아버지의 어두운 안색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짐작하였다. 그는 언젠가 음험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던 흉한 몰골을 상기했던 것이다. 도선학은 벗어날길 없는 커다란 근심을 안은 채 자리에 눕고 말았다.
라지를 한없이 사랑하는 이웃의 나무꾼 총각도 이 사실을 언제까지나 모르고 있을리는 없었다. 총각은 불원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한푼 두푼 모아둔 돈이 적지 않았으므로 도선학이 진 빚을 남김없이 다 갚을 생각을 하며 있는 힘을 다 해 일하였다.
이럴때 황가는 라지가 나무꾼 총각과 인연을 맺은 것을 어떻게 알고 총각이 손을 못 쓰게 할 속셈으로 그를 세존봉 너머 범골로 보냈다.
이놈은 총각을 떠나보내는 날 아침에 대문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백년이상 묵은 산삼을 적어도 세 뿌리는 캐와야 한다고 단단히 다짐을 두었다.
총각은 황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도 마을의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황가의 땅을 부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가는 총각을 보내면서 그의 잔등에 감쪽같이 생피를 발라 놓았다. 이것은 나무꾼 총각의 옷에 피를 묻혀 놓으면 산삼이 눈에띄지 않을 것이며 또 범골에 들어서자마자 의례히 백년 묵은 백호에게 잡혀 먹히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총각은 그것도 모르고 세존봉을 넘었다. 산삼을 찾아 범골에 들어서 험한 골짜기를 타고 내리기를 수십 번, 총각은 진이 빠져 노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바위 곁에 기대 땀을 닦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온 산천이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웬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총각은 너무도 놀라 온몸을 벌벌 떨며 바위뒤로 몸을 숨기려 하였다.
노인은 총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허리까지 드리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는 어쩌자고 들어왔느냐?” 하고 물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총각은 백발노인의 다정한 물음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정신을 수습한 총각은 황부자가 빚값으로 라지를 데려가려고 하는 사실 산삼을 찾아 이 깊은 골안에 들어오게 된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이야기 하였다.
그랬더니 노인은 새옷 한 벌과 활을 내주며 말했다.
“너는 이 옷을 갈아입은 후 지체밀고 효양고개로 달려가거라. 효양고개에 올라서면 라지가 있느니라. 그러니 빨리 가서 구원하여라.”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는 골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총각이 두 손으로 공손히 옷을 받고 절을 한 다음 고개를드니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총각은 노인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한 것을 후회하며 옷을 재빨리 갈아입고 효양고개로 향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주위에는 산삼꽃이 활짝 피어 바람결에 간들거렸다. 산삼은 그가 손을 대자마자 저절로 뽑히어 자루에 덜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삼 한 자루를 다 채운 총각은 두주먹을 불끈 쥐고 효양고개 방향으로 줄달음을 놓아 순식간에 고개마루에거의 이르렀다.
바로 그 순간 라지는 가마를 타고 효양고개로 올라서고 있었다.
저 때문에 앓아누운 아버지를 위해 팔려갈 것을 결심한 처녀는 빚문서를 찢어버린다음 황가가 하인들을 회동하여 앞세우고 온 가마에 주저없이 올랐던 것이다. 아버지가 내 딸을 못데려 간다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비통하게 부르짖었으나 황가의 하인들은 그를 사정없이 밀쳐버리고 가마를메고 달아났던 것이다. 황가는 말을타고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일행이 효양고개 마루에 이르자 라지는 가마를 세우고 땅에 뛰어 내렸다. 라지는 어머니 산소가 있는 동쪽과 아버지가 있는 집방향을 향하여 깊이깊이 허리굽혀 절을 하고 누가 어쩔새도 없이 아찔한 벼랑밑으로 몸을 던졌다.
뒤늦게 당도한 나무꾼 총각은 절통한 가슴을 부여안고 라지가 서있던 벼랑위에 쓰러졌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그의 눈에서는 거센 불길이 이글거렸다. 잠시 지나 정신을 차린 그는 활을 들어 황가를 쏘아죽이고 라지처럼 벼랑에서 뛰어 내렸다.
이로부터 얼마간 지난 뒤 벼랑 밑에는 두떨기의 꽃이 피였으니 그 하나는 라지의 넋이 담긴 하얀 꽃이요, 다른 하나는 나무꾼 총각의 넋이 깃든 남색 꽃이었다.
사람들은 이 꽃에 억울하게 죽은 아름다운 처녀의 이름을 붙여 도라지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남색 꽃에도 총각의 이름이 붙어있었으나 점차 색깔만 다르고 모양은 꼭 같은 이 꽃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2004 07 04
푸 른 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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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을 누르시면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숲을 찾아나섰다
숲에서 불어오는 단내음이 그리워
허기진 어린아이 처럼 잰 걸음으로 달려갔다
숲에 들어서면 따가운 햇살마저 달갑다
그 햇살 담뿍 받아마시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잎새들의 노래가 수런수런 바람결에 나부낀다
아주 오래 전에는
사람의 마음도 초록빛이었을 것이다
나무가 아니라 그저 숲이 되기를 바랬던
투명한 초록빛이었을 것이다
초록빛 마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걸어 나갈 두 다리를 택한 것은
순전히 사람의 욕심 때문이었다
움직일 다리가 없는 나무는 삼백년을 너끈히 버틴다
사람은 두 다리에 묻힌 먼지의 무게에 지쳐
백년도 못 살고 제 수명을 깎는다
문득문득 애타게 숲이 목마른 것은
두고 온 초록빛 마음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숲이 노래한다.
빛이 닿는 곳이면 어김 없이 싱그러운 울림이 터진다
숲의 노래가 그치는 순간,
우리의 노래도 따라서 그칠 것이다
숲에는 초록이 산다
우리가 잠시 놓아두고 온
본딧마음이 산다
2004.6. Photo & Writing by NoonB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