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시쳇말(時體-)로 시장경제분야에 있어서의 대단한 '이빨'이다. 먼저 박교수는 스스로를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경제주의자'라고 선언한다. 마치 화두처럼 <행복한 인생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던지고 나서는 그는 특유의 입심으로 돈과 인생, 그리고 세계를 논한다.
사랑? 신뢰? 박교수는 냉정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삶은 수요와 공급이다. 인생은 경제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당신 앞에는 항상 '포기'와 '선택'이 기다린다. 박교수의 걸출한 입담이 이제 어떻게 돈!돈!돈!으로 인생과 세계를 아우르는지 한번 보자.
'포기'는 '비용'이고, '선택'은 '편익'이다. 다시 그것은 '인풋'이고, '아웃풋'이다. '가격'이고, '가치'이다. 모든 이들의 인생은 적게 포기하고 그에 따라 많은 선택, 즉 차익이 많이 나는 쪽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마련이다. 이것이 곧 '인간행동의 경제법칙'이다.
이것은 마치 뉴턴의 만유인력처럼 박교수가 발견해 낸 무슨 대단한 세계의 법칙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경제'는 18세기 영국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애덤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복사판이다. 단지 박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정치와 종교, 심지어는 벼룩과 모기의 생태에까지 적용하는 대범함을 보일 뿐이다.
이 대책없는? 골수 경제학자는 지난 노대통령 탄핵사태와 현재의 이라크전에까지 노골적으로 비용과 효용의 법칙을 적용한다. 선거를 하는 것은 일종의 시장을 연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당선은, 곧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탄핵은 불량품에 들어오는 하나의 '리콜'인 셈이다. 이라크의 테러 또한 미국이 보기에는 테러이지만,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비용지불(희생)과 그에 따른 효용창출(천국)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환경적 제약 아래 생명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것을 박교수처럼 경제적 법칙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행동은 결코 이 '차익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무수한 거래와 거래 속에서 매 순간 포기와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가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냉정하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박교수는 현실적이다. 그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론마저도 '무소유'라는 하나의 '비용을 지불'하고, '마음의 평화'라는 '효용을 얻는' 것일 뿐이라고 간단한 경제법칙으로 일축한다. 결국 당신이나 나나 모두 장돌뱅이다(박광량 교수 어록?). 박광량 교수의 무한질주 시장 속으로 드디어 뛰어들게 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간혹 쓸만한(나름대로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어 올려요.
한번 음미해 볼만....
오후에 비온다니(기상청 예보니 좀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즐겨BOA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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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박광량 교수의 유쾌한 시장경제 이야기.
그는 시쳇말(時體-)로 시장경제분야에 있어서의 대단한 '이빨'이다. 먼저 박교수는 스스로를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경제주의자'라고 선언한다. 마치 화두처럼 <행복한 인생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던지고 나서는 그는 특유의 입심으로 돈과 인생, 그리고 세계를 논한다.
사랑? 신뢰? 박교수는 냉정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삶은 수요와 공급이다. 인생은 경제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당신 앞에는 항상 '포기'와 '선택'이 기다린다. 박교수의 걸출한 입담이 이제 어떻게 돈!돈!돈!으로 인생과 세계를 아우르는지 한번 보자.
'포기'는 '비용'이고, '선택'은 '편익'이다. 다시 그것은 '인풋'이고, '아웃풋'이다. '가격'이고, '가치'이다. 모든 이들의 인생은 적게 포기하고 그에 따라 많은 선택, 즉 차익이 많이 나는 쪽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마련이다. 이것이 곧 '인간행동의 경제법칙'이다.
이것은 마치 뉴턴의 만유인력처럼 박교수가 발견해 낸 무슨 대단한 세계의 법칙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경제'는 18세기 영국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애덤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복사판이다. 단지 박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정치와 종교, 심지어는 벼룩과 모기의 생태에까지 적용하는 대범함을 보일 뿐이다.
이 대책없는? 골수 경제학자는 지난 노대통령 탄핵사태와 현재의 이라크전에까지 노골적으로 비용과 효용의 법칙을 적용한다. 선거를 하는 것은 일종의 시장을 연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당선은, 곧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탄핵은 불량품에 들어오는 하나의 '리콜'인 셈이다. 이라크의 테러 또한 미국이 보기에는 테러이지만,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비용지불(희생)과 그에 따른 효용창출(천국)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환경적 제약 아래 생명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것을 박교수처럼 경제적 법칙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행동은 결코 이 '차익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무수한 거래와 거래 속에서 매 순간 포기와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가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냉정하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박교수는 현실적이다. 그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론마저도 '무소유'라는 하나의 '비용을 지불'하고, '마음의 평화'라는 '효용을 얻는' 것일 뿐이라고 간단한 경제법칙으로 일축한다. 결국 당신이나 나나 모두 장돌뱅이다(박광량 교수 어록?). 박광량 교수의 무한질주 시장 속으로 드디어 뛰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