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분노보다는 눈물이 먼저래...

이원영2004.07.06
조회3,647

 

지금으로부터 몇년 전 내가 교회에서 청년회 회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타고난 심성 자체가 다정다감한 나는-_-v 대인관계가 좋고 특히, 소심한

 

사람들을 잘 돌봐 준다고 주위에 소문이 많이 났었더랬다.

 

교회 집사님들은 나를 보면 ''하다못해 교회 지키는 똥개까지도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시곤 했다( 자랑~~ 떠벌~~ v-_-v)



이렇게 한참 잘 나가던 그 때, 어느 날 교회로 어떤 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다.

 

이웃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셨는데, 자기 아들을 나하고 친구로 사귀게 하고

 

싶다고 찾아 오셨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넉살이 좋아도 그렇지 생판 보지도 못한 녀석과 하루아침에 친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그 아주머니의 인상이 너무나

 

선하시고 간절한 표정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녀석과 처음 만나는 날...

아파트 인근의 모 다방에서 녀석과 나는 맞선을 보듯 그렇게 만났다 -_-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수줍은 모습으로 커피잔을 젓던 녀석의 손가락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_-;;




아주머니가 주시고 간 엄청난 판공비(무려 10만원이나 되었다 -_-)로 난 오늘

 

녀석과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하던 차에 녀석이 내게 먼저 말을 꺼내왔다.


"우리... 영화... 보러 갈래...?"


수줍은 듯 머뭇거리며 말하는 녀석의 면상-_-을 보며 나 역시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우웩~~~)




우리가 본 영화는 '편지'였다 (박신양이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편지를 쓴 내용)

왜 녀석과 그것을 봤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내 평생 남자하고 나눠 먹을 팝콘을 사 들고 많은 인파 속에서 행여나 놓칠세라

 

그 놈의 손을 꼭 잡고 자리를 찾아 헤맨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다 -_-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필...

영화는 졸라게 슬펐다 -_-

처음부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이를 악물고 참았던 나는

주인공인 박신양이 죽었을 때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영화 머 이래!! 주인공 죽이는 영화가 어딨어!!"



그 때...

녀석은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야... 죽음 앞에서는 분노 보다는 눈물이 먼저래..."



녀석의 말을 듣고 나서...

우린 두 손을 꼭 잡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음껏 펑펑 울며 영화를 보았다 ㅠ.ㅠ




옛말에...

눈물을 같이 흘리면 평생 죽마고우가 된다고 했듯이(뭐래 -_-?)

우린 그 영화가 끝날 즈음 소위 말하는 '죽마고우'가 되어 있었다.




그 뒤로 우린 꽤나 끔찍스럽게도 붙어 다녔다.

녀석은 작고 왜소한 체구와는 다르게 검도가 3단이었고(아버지가 해동검도

 

원장이고 자기는 코치였다) 당구도 300이었다.




나 역시 태권도가 3단(이라고 뻥 쳤고-_-), 당구가 250이었기에 우린 예배 끝나면

항상 인근 당구장에 박혀서 몇 시간이고 당구를 쳤다. 아주머니는 나하고 녀석이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기 때문에 우린 귀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을 풍부하게 받으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_-v




나를 만나기 전 녀석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만큼

 

폐쇄적 이었다고 한다.

아주머니에게 그 사실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던 나는 녀석을 세심한 눈으로 지켜

 

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었는데 약간 소심하다는 것과 감성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무척

 

자상하고 착한 모습을 느끼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괜한 염려를 하고 계신다고 생각한 나는 복학으로 인해 바빠질 일정을

대비해 나 대신 같이 다닐만한 사람을 물색하게 되었고, 결국엔 내가 가장 아끼던

여자후배를 녀석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당시 그 여자후배는 학교를 휴학하고

 

백수로 놀고 있었을 때였기에 심심하지 않게 서로 잘 놀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소개

 

시켜 주었건만 이것들이 만난지 일주일 만에 눈이 맞아 버리는 바람에-_- 난 졸지에

 

두 년놈들의 들러리 신세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둘 다 연애를 처음 하는 거라

 

그런지 은근히 닭살짓을 해대는 게 비위가 뒤틀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둘이 사귄지 약 한 달이 지났을까...

복학한 후 정신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새벽에 여자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녀석이...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는 것이다...




미친듯이 일어나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녀석의 어머니가 하얀 옷을 입으시고 영안실에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날 보시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며 반기셨다...

난 다른 아무 말은 하지 않고 확신한 듯 이렇게 말씀드렸다...



"스스로 뛴 것은 아닐 거에요 어머니... 실수로 떨어졌을 거에여..."



나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마음에 위로를 얻으신 듯 ''정말...?

 

정말로 실수였겠지...?''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러나...

조사결과 녀석은 옥상의 난간에서 혹여나 바닥의 흙 쪽으로 떨어질까봐 공중으로

 

힘껏 뛰어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고 한다...




옷은 깨끗이 빨아 입은 츄리닝이었고...

주머니엔 자기가 살던 동과 호수가 적힌 쪽지가 있었고...

밤에 문을 잠그고 나오기 위해 현관문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녀석이 죽은 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

난 아직 녀석을 이해할 수 없다...




되도록이면 용서도 하지 않고 싶지만...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라...




평생 자기를 가슴에 묻을 어머니를 남겨두고...

한 여자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남겨두고...

가장 행복한 때에 죽고 싶었던 것일까...

그에겐 이 세상이 그렇게나 가치 없는 세상이었을까...




결국엔 내 잘못이 크다...

난 내 기준에서 상대방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행복하겠구나'', ''이 정도면 만족하겠구나''...

그 사람이 되어 보지 못하고는 진정코 그 상황을 알지 못하리라...

객관적으로 별 일 아니게 보일 그것이 그에겐 치명적인 상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염세적인 녀석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녀석이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난 녀석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친구야... 죽음 앞에서는 분노 보다는 눈물이 먼저래...''


이게 내게 했던 유언이었니...

나쁜 자식...




녀석이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난 녀석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누구 앞에서도 내색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깨끗하게 지우고 살았던 이 이야기를...




이제 모든 사람들 앞에서 꺼내는 이유는...

너의 불미스런 죽음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너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너무나 착하고 선했던 너를 빨리 옆에 두고 싶으셔서 데려 가셨다는 그 말을...





이젠 잘 가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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