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향기 /9편

나다200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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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거야"

"진실만을 듣고 싶겠지"

 

진실이 뭔지 모르면서 진실을 말라하고 하는 오빠를 비웃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하정은 난간에 몸을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뿐이었다.

가끔 오빠의 부담스러운 관심과 눈빛을 하정은 느끼고 있었다. 다만 모르는척 할 뿐. 아님 나만의 착각으로 남기고 싶었다. 진실이 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오빠"

 

나에게도 이렇게 부르고 싶은 혈육을 원했다.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평범한 가족을 말이다. 하정은 가끔 이렇게 정말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오빠를 원했다. 재준에게서 그런 오빠를 원하고 있었다.

오빠라고 부르긴 했는데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하정의 마음을 읽었는지 재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시간이 정지된 듯 했다.  지금 이 순간 하정과 재준은 모든 사람들의 몸짓과 웃음소리,음악소리 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안해, 내가 괜한 짓을 했어"

 

평소의  하정이 알던 재준오빠로 돌아가 있었다. 차가운 오빠.  그런 재준오빠가 오히려 더 편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미워하는게 더 편했다. 재준오빠는 이세린이라는 여자에게로 갔다.

하정은 계속 아래 호수쪽을 쳐다보았다.  이상한 기운에 이끌러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어 편했다.

천천히 파란 잔디를 밝으며 호수로 다가간 하정은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어떤 힘에 의해 여기까지 왔지만  다른 곳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형 모양의 호수는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고, 거기에 달이 떠 있었다.  호수 가까이 우뚝 멈춰선 하정은 하염없이 호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묘한 바람이 하정의 머리를 스치고, 거기에 실러있는 후리지아 향기에  눈을 감았다.

감았던 눈을 뜨기도 전에 하정은 자기 앞에 누군가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먼저 할것도 없이 서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정은 숨을 쉴 수 없을만큼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남자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남자이지만 하정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야 할 사람를 만난것 같아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 남자가 엉거주춤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남자는 아주 잠시 알 수 없는 얼굴을 지어 보이면 나를 보는  눈빛에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를 보는 듯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그리고 좀 놀라는 듯한 얼굴이 더 인상적이었다. 재준오빠보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뭔가가 있었다.

 

"당신은 살아있는 사람이오"

 

그럼 내가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인가? 어이없는 그 남자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은 귀신처럼 보이는 것도 어쩜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밤에 하얀 옷을 입고 검은 머리를 풀고 있으니 일반사람이 멀리서 보았다면 귀신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죽은 사람처럼 보여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너무나 그 남자가 경직되어 있어 그 자리에 쓰러질처럼 보였다.

 

"춤추고 싶어요"

 

마침 그때 감미로운 음악이 잔잔하게 흘렀다. 하정은 생각도 없이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그대로 말을 해버리고 곧 후회를 했다.

 

"추고 싶은가요"

"아니요.. 나도 모르게 말이 먼저나왔어요.. 신경쓰지마세요"

 

그러나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어느정도 긴장이 풀린  그 남자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장소에서 처음보는 남자의 품에 안겨 춤을 추다니.. 나 답지 않았다. 검은 두 눈동자 조금 각진 얼굴, 오똑한 코, 매력적인 입술, 결코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어디가 끌리는지 나도 알지 못했다. 

어느정도 마음을 수습한 하정은 그 남자에서 몸을 빼기위해 한발 뒤로 물러섰다.

 

"불안해하지 말아요. 당신과 정말 춤을 추고 싶어요"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정식으로 신청합니다"

 

한 손을 들어  내밀면 결정권을 나에게 주었다.  내가 이 사람의 손을 잡으며 영원히 놓지 않을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그 남자의 눈을 강렬하게 쳐다보았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 남자의 눈은 너무나 맑아서 이성과는 달리 그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 남자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나도 미소 지었다. 서로의 몸이 딱 맞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늘이 알고 달빛이 말해 주었다.

 

"후리지아 꽃 좋아하세요"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하정은 의아했다. 오늘은 이상한 말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가 이상한 애라고 생각할까봐 하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주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생을 믿어요"

"...."

 

그 남자는 나의 대답을 원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생을 믿냐고... 솔직히 믿지 않았다. 운명이니 전생이니 하는 그런 말들.. 그런 모든 것도 결국 사람이 짓어낸 이야기일뿐이라고 하정은 믿었다.

 

"내가 20살때 한 여자를 알게되었어요. 그 여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고, 내가 주변에서 보지 못한 여자였어요. 그래서 더욱 보고싶고, 알고 싶었어요. 우린 한번도 만난적이 없어요. 그러나 난 그 여자를 느낄수 있어요. 그런 기분 알아요"

 

그 남자가 하정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지금 방금 말한 여자가 나인것 처럼 그렇게 눈이 말하고 있었다. 순간 하정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를 제대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난.. 잘 ..모르겠어요"

 

하정은 거짓말을 했다. 하정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17살때부터 그 목걸이를 선물받았을때부터 하정도 그런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건 그저 꿈일뿐었다. 거기에 의미같은 것은 두지 않았다

 

"유환씨"

 

여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을 현실로 되돌려놓았다. 하정은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 남자에게 잡혀 있던 손을 놓고 하정은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그 남자의 만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환이라고 했다. 그 남자의 이름이 유환인것 같았다. 하정은 그 남자의 이름을 입에서 몇번이고 불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