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망하여 재산이 모두 거덜 난 후에 직장에 다니던 아내의 봉급마저도 위태로울까봐, 아내가 원하는 대로 이혼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두 명의 아이들은 아내가 잘 맡아서 키우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이혼을 한 후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스스로가 모멸스러웠는지 거의 일년간을 혼이 나간 채 지냈습니다. 낮에는 악착스런 채권자들에게 쫓기고 밤이면 쪽박을 차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내 신세가 너무도 분하여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밤마다 엷은 잠에 들었다가 새벽 두세 시가 되면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깨었습니다. 어둠이 무서워서 얼른 불을 켜고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내 모습이 꼭 유령 같았습니다. 한꺼번에 흰머리가 생기고 눈도 별안간에 나빠졌습니다. 그리고 숨통을 죄는 천식마저 재발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응급실을 찾기도 했습니다. 입원을 하면 간호사는 환자인 내 보호자가 누구냐고 꼭 물었지만, 형제마저도 없는 저에게 무슨 보호자 있겠습니까, 오직 하늘일 뿐입니다.
노숙자가 되기 싫어서 또 다시 움직였지만 한번 망한 사업을 일으킨다는 일은 죽기보다도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냥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또 다시 쓰러지니, 밥이라도 한 끼니 사주던 그 나마의 친구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가난은 나라에서도 구제해 주지 못한다는데, 허깨비 같은 몸만 대낮에 너울거릴 뿐이었습니다. 월세방에 꼭 박혀서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쌀이나 떨어지면 막일이라도 찾아다닐 뿐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유령이 방에서 오락가락 했습니다. 조그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조각난 하늘이 세상의 전부였고, 그 하늘에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무늬가 무심히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년, 이년, 삼년, 사년, 오년, 육년, 칠년......
인생의 황금기라는 사십대를 넘기며 오십대로 들어섰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에 만으로 51살 입니다. 팔월 달이면 한살 더 먹어서 만 52세가 됩니다. 혼자만의 그 시간이 너무도 힘들어서 매일 지옥의 일기장 같은 글을 썼습니다. 소설도 쓰고, 수필도 쓰고, 시도 썼습니다.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인터넷에 올리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보다는 오직 내 이야기만 주절주절 대는 맛에 쓰고 또 쓰면서, 또한 이혼할 당시에 생긴 불면증을 어쩌지 못하여 글을 썼습니다.
부부가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무촌입니다. 그러나 자식은 떨어져 있어도 항상 내 자식이고, 나와는 일촌관계입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아내를 어느 날부터 그냥 "아이엄마"라고 부르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남았던 부부의 감정도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은 그렇게 희미해질 수가 없더군요. 12월 5일은 아들의 생일이고, 2월 14일은 딸의 생일입니다. 돌보지 못하는 미안함에 자식들 생일만큼은 꼭 기억했다가 통장으로 얼마간의 용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이엄마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세상을 살았습니다. 올해에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작은 딸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 옛날의 제 아내는 항상 고마운 사람으로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에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하여 재수를 하겠다고 하면서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짐을 날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돈이 안 들어가는 부탁이기에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주차장구석에 쳐 박아 두었던 차를 꺼내어 서울 근교에 있는 옛날의 그 집으로 달려서 도착한 시간이 밤 열시 경이었습니다. 칠팔 년 전에 아빠로서 드나들던 대문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있으니 아들이 손에 무엇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나만큼 자란 키로 꺼떡대면서 다가오더니 무척 바쁘다는 투로 차의 트렁크를 빨리 열어달라고 말했습니다.
아미 이심전심이었을 것입니다. 아이엄마는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영원히 얼굴마저 대하지 않는 것이 옛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넘어가는 길이라는 평소의 내 생각을 눈치 챘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책과 컴퓨터, 그리고 이불과 옷을 하나씩 들고 멀리 열려진 대문을 들락거리는 아들도 일체 엄마에 대한 말은 삼갔습니다. 문득 짐을 들고 나오는 아들의 뒤로 따라 나오는 어떤 사람이 눈에 띠었습니다. 바로 옛날의 그 장모님이었습니다.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는 손자를 아이엄마 대신에 배웅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렇듯 초연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던 이유는 그 동안에 담담하게 지내려던 무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저는 장모님에게 다가가서 그 분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건강하시죠? 저 때문에 참 고생이 많으세요. 너무 반가워요."
처음에는 약간 굳어져 보였던 장모님의 얼굴이 살며시 풀리면서 끌어안은 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살며시 안아 주었습니다. 장모님은 키가 작기 때문에 엉거주춤 저를 안으면 손이 제 엉덩이에 닿습니다. 바쁜 척 서두르는 아들의 채근하는 목소리에 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차에 오르기 전에 또 한 번 장모님을 끌어안고는 부디 건강하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늦은 밤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고생한다는 장모님의 말에, 가볍고 슬쩍 지나치는 말투지만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을 던졌습니다.
"아이엄마가 고생이 많았죠. 제가 무슨 고생을 했겠어요."
경영학을 전공해서 장래에 CEO를 꿈꾸는 아들과 차 안에서 마구 떠들었습니다. 아들은 자기 자랑을 하려고 애썼으며 나도 아빠로서 내 자랑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내가 한 마디 던지면 아들은 두 마디를 던지며 의젓한 모습으로 장래의 포부를 마구 토해냈습니다.
"그러면, 네가 말이다.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아빠에게 새 차를 사주겠다고 한 전의 약속은 지킬 수 있겠구나. 믿어도 되는 거야?"
"헤헤, 자동차 정도야 간단하죠. 돈만 많으면 다 해결되잖아요."
"알았다. 그건 그렇고...... 나 보다는 말이다. 네 엄마나 잘 모셔. 맨날 둘이서 싸우지 말고, 이 다음에 네가 잘 되면 내 걱정보다는 네 엄마 걱정이나 해."
그렇게 정신없이 떠들다보니 그만 길도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멀리 빙 돌아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고시원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다 옮기고 찾아든 야식집에서도 아들과 나의 자기자랑은 끝일 줄 몰았습니다. 주머니를 털어 오만 원을 용돈으로 주고 돌아섰습니다.
남이 되어버린 옛 아내, 그리고 머리가 큰 자식들,
"쯧, 그림자가 저렇게 묵직한 돌덩이를 낳다니......"
부부생활을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서 중얼거린 말입니다. 남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둘이서 다시 합쳐지면 어떠냐고 말하지만, 한번 상처가 난 부부간의 아픈 기억은 넘어설 수 없는 강이 되어 흐릅니다. 될 수 있으면 돌아보지 않고 서로가 모른 척 하며 살다 가면 그것이 상대방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만큼 그 사람도 아팠고, 밤을 꼬박 새웠을 것입니다. 질긴 인연이란 서로가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서로가 얼굴을 마주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가 그림자만 보아도 피를 철철 토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에 제가 다른 여자를 사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가난하기에 마음대로 휘젓지는 못했지만, 건강한 남자로서 견디기 힘든 육체적 욕망에 시달렸습니다. 지나는 아무 여자라도 붙잡고 하룻밤을 허락해 달라고 사정하고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녀간의 육체적 관계는 육체 이상의 어떤 여운을 꼭 남깁니다. 초로의 나이에 무슨 사랑을 지껄이겠냐마는 그렇다고 동물처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알고 보면 제 또래의 여자들도 복잡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나만 유령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스친 여자들도 유령처럼 너울거렸습니다. 오히려 건들이지 않는 편이 상대방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혼자서 세상을 살다가 갈 것이라는,
어깨를 짓누르는 외로움을 숙명으로 알고 이나마 곱게 간직하며 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굳게굳게 다짐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또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나를 돌아봅니다.
어느 여인이 저 멀리서 하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슬퍼집니다.
인생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한번 난 상처에서는 죽을 때까지 피가 흐르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옛 상처를 치유해 줄만한 상대를 못 만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령의 그림자
유령의 그림자
나는 혼자입니다. 그렇게 지낸지 벌써 칠팔 년이 되어갑니다.
사업에 망하여 재산이 모두 거덜 난 후에 직장에 다니던 아내의 봉급마저도 위태로울까봐, 아내가 원하는 대로 이혼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두 명의 아이들은 아내가 잘 맡아서 키우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이혼을 한 후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스스로가 모멸스러웠는지 거의 일년간을 혼이 나간 채 지냈습니다. 낮에는 악착스런 채권자들에게 쫓기고 밤이면 쪽박을 차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내 신세가 너무도 분하여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밤마다 엷은 잠에 들었다가 새벽 두세 시가 되면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깨었습니다. 어둠이 무서워서 얼른 불을 켜고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내 모습이 꼭 유령 같았습니다. 한꺼번에 흰머리가 생기고 눈도 별안간에 나빠졌습니다. 그리고 숨통을 죄는 천식마저 재발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응급실을 찾기도 했습니다. 입원을 하면 간호사는 환자인 내 보호자가 누구냐고 꼭 물었지만, 형제마저도 없는 저에게 무슨 보호자 있겠습니까, 오직 하늘일 뿐입니다.
노숙자가 되기 싫어서 또 다시 움직였지만 한번 망한 사업을 일으킨다는 일은 죽기보다도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냥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또 다시 쓰러지니, 밥이라도 한 끼니 사주던 그 나마의 친구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가난은 나라에서도 구제해 주지 못한다는데, 허깨비 같은 몸만 대낮에 너울거릴 뿐이었습니다. 월세방에 꼭 박혀서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쌀이나 떨어지면 막일이라도 찾아다닐 뿐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유령이 방에서 오락가락 했습니다. 조그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조각난 하늘이 세상의 전부였고, 그 하늘에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무늬가 무심히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년, 이년, 삼년, 사년, 오년, 육년, 칠년......
인생의 황금기라는 사십대를 넘기며 오십대로 들어섰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에 만으로 51살 입니다. 팔월 달이면 한살 더 먹어서 만 52세가 됩니다. 혼자만의 그 시간이 너무도 힘들어서 매일 지옥의 일기장 같은 글을 썼습니다. 소설도 쓰고, 수필도 쓰고, 시도 썼습니다.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인터넷에 올리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보다는 오직 내 이야기만 주절주절 대는 맛에 쓰고 또 쓰면서, 또한 이혼할 당시에 생긴 불면증을 어쩌지 못하여 글을 썼습니다.
부부가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무촌입니다. 그러나 자식은 떨어져 있어도 항상 내 자식이고, 나와는 일촌관계입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아내를 어느 날부터 그냥 "아이엄마"라고 부르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남았던 부부의 감정도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은 그렇게 희미해질 수가 없더군요. 12월 5일은 아들의 생일이고, 2월 14일은 딸의 생일입니다. 돌보지 못하는 미안함에 자식들 생일만큼은 꼭 기억했다가 통장으로 얼마간의 용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이엄마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세상을 살았습니다. 올해에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작은 딸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 옛날의 제 아내는 항상 고마운 사람으로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에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하여 재수를 하겠다고 하면서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짐을 날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돈이 안 들어가는 부탁이기에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주차장구석에 쳐 박아 두었던 차를 꺼내어 서울 근교에 있는 옛날의 그 집으로 달려서 도착한 시간이 밤 열시 경이었습니다. 칠팔 년 전에 아빠로서 드나들던 대문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있으니 아들이 손에 무엇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나만큼 자란 키로 꺼떡대면서 다가오더니 무척 바쁘다는 투로 차의 트렁크를 빨리 열어달라고 말했습니다.
아미 이심전심이었을 것입니다. 아이엄마는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영원히 얼굴마저 대하지 않는 것이 옛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넘어가는 길이라는 평소의 내 생각을 눈치 챘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책과 컴퓨터, 그리고 이불과 옷을 하나씩 들고 멀리 열려진 대문을 들락거리는 아들도 일체 엄마에 대한 말은 삼갔습니다. 문득 짐을 들고 나오는 아들의 뒤로 따라 나오는 어떤 사람이 눈에 띠었습니다. 바로 옛날의 그 장모님이었습니다.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는 손자를 아이엄마 대신에 배웅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렇듯 초연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던 이유는 그 동안에 담담하게 지내려던 무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저는 장모님에게 다가가서 그 분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건강하시죠? 저 때문에 참 고생이 많으세요. 너무 반가워요."
처음에는 약간 굳어져 보였던 장모님의 얼굴이 살며시 풀리면서 끌어안은 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살며시 안아 주었습니다. 장모님은 키가 작기 때문에 엉거주춤 저를 안으면 손이 제 엉덩이에 닿습니다. 바쁜 척 서두르는 아들의 채근하는 목소리에 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차에 오르기 전에 또 한 번 장모님을 끌어안고는 부디 건강하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늦은 밤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고생한다는 장모님의 말에, 가볍고 슬쩍 지나치는 말투지만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을 던졌습니다.
"아이엄마가 고생이 많았죠. 제가 무슨 고생을 했겠어요."
경영학을 전공해서 장래에 CEO를 꿈꾸는 아들과 차 안에서 마구 떠들었습니다. 아들은 자기 자랑을 하려고 애썼으며 나도 아빠로서 내 자랑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내가 한 마디 던지면 아들은 두 마디를 던지며 의젓한 모습으로 장래의 포부를 마구 토해냈습니다.
"그러면, 네가 말이다.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아빠에게 새 차를 사주겠다고 한 전의 약속은 지킬 수 있겠구나. 믿어도 되는 거야?"
"헤헤, 자동차 정도야 간단하죠. 돈만 많으면 다 해결되잖아요."
"알았다. 그건 그렇고...... 나 보다는 말이다. 네 엄마나 잘 모셔. 맨날 둘이서 싸우지 말고, 이 다음에 네가 잘 되면 내 걱정보다는 네 엄마 걱정이나 해."
그렇게 정신없이 떠들다보니 그만 길도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멀리 빙 돌아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고시원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다 옮기고 찾아든 야식집에서도 아들과 나의 자기자랑은 끝일 줄 몰았습니다. 주머니를 털어 오만 원을 용돈으로 주고 돌아섰습니다.
남이 되어버린 옛 아내, 그리고 머리가 큰 자식들,
"쯧, 그림자가 저렇게 묵직한 돌덩이를 낳다니......"
부부생활을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서 중얼거린 말입니다. 남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둘이서 다시 합쳐지면 어떠냐고 말하지만, 한번 상처가 난 부부간의 아픈 기억은 넘어설 수 없는 강이 되어 흐릅니다. 될 수 있으면 돌아보지 않고 서로가 모른 척 하며 살다 가면 그것이 상대방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만큼 그 사람도 아팠고, 밤을 꼬박 새웠을 것입니다. 질긴 인연이란 서로가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서로가 얼굴을 마주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가 그림자만 보아도 피를 철철 토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에 제가 다른 여자를 사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가난하기에 마음대로 휘젓지는 못했지만, 건강한 남자로서 견디기 힘든 육체적 욕망에 시달렸습니다. 지나는 아무 여자라도 붙잡고 하룻밤을 허락해 달라고 사정하고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녀간의 육체적 관계는 육체 이상의 어떤 여운을 꼭 남깁니다. 초로의 나이에 무슨 사랑을 지껄이겠냐마는 그렇다고 동물처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알고 보면 제 또래의 여자들도 복잡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나만 유령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스친 여자들도 유령처럼 너울거렸습니다. 오히려 건들이지 않는 편이 상대방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혼자서 세상을 살다가 갈 것이라는,
어깨를 짓누르는 외로움을 숙명으로 알고 이나마 곱게 간직하며 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굳게굳게 다짐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또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나를 돌아봅니다.
어느 여인이 저 멀리서 하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슬퍼집니다.
인생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한번 난 상처에서는 죽을 때까지 피가 흐르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옛 상처를 치유해 줄만한 상대를 못 만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잠에서 깨자마자 아들 녀석과 딸이 보고 싶습니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