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를 꿈꾸며-제15부-

까미유200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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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부




진우는 앞에 놓인 야채빵에 버터를 발라 표정없이 입안으로 집어 넣는다.

우물우물 거리는 동안 윤미는 그런 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시던

와인잔을 내려 놓고 나지막히 입을 연다.


-나랑 바람 피우는 동안엔, 항상 웃더니....그 바람이 사라지고 나서

부터는 너 단 한 번도 웃질 않아, 알구 있니?


윤미의 말에 야채빵을 한 입 베어 물려던 진우의 손이 멈칫한다. 그리곤

다시 빵을 내려 놓고 와인잔을 든다. 강렬한 붉은 색의 와인이 출렁인다.


-그저 가벼운 바람인 줄 알았을 땐, 내가 너한테 농담 같은 것이었지만

결코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안 지금은 내가 너한테 진담이겠구나..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야.


와인은 보이지 않는 진우의 목안을 타고 흘러 내리는지 진우의 목젖이

움직인다.


-맞니?


윤미의 물음에 진우는 잠시 뜸을 들인다. 담배를 꺼내 피워 무는 동안

윤미는 차분하게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어차피 대답을 꼭 듣겠다고

물은 건 아니니까. 진우가 무슨 말인가를 내뱉으려 하자 그의 휴대폰에

문자 알림이 울린다.


수정아, 진우야 생일 축하해, 너무 야한 밤 보내지 마라.


진우의 친구 녀석 중에 한 명이 날린 문자다. 진우는 표정이 굳어진다.




************



케이블카에서 내린 수정은 어색하기만 한 표정으로 머뭇대며 태희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종업원이 안내한 자리에 앉는다.

창 밖으로 훤히 내려다 보이는 서울 야경은 케이블카에서 보았던 것만큼

눈부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테이블 위에 놓여진 붉은 색 초가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수정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 본다. 테이블마다 같은

양초가 두 개씩 놓여져 있고, 테이블을 끼고 앉아 있는 낯선 남자와

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희와 수정을 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잠깐 앉아 있어.


태희가 수정에게 나지막히 속삭이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밝던 조명이

꺼지고 낮은 음악이 실내에 서서히 퍼지더니 핀조명이 들어온다.

수정은 떨리는 눈으로 무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핀조명 아래에

태희가 케익을 들고 수정의 앞으로 다가올쯤 되자 음악은 곧 생일

축하곡으로 바뀌고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정은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고

태희가 수정 앞에 촛불 켜진 케익을 들고 선다.


-생일 축하해.


태희의 말에 수정은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눈에 눈물이 그렁해진다.


-뭐해, 촛불 꺼야지.


태희의 말에 그제서야 수정이 홀린 듯 입김으로 촛불을 끄면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부는가 하면

축하한다는 말들이 음악처럼 퍼져서 수정의 귓가에 와 닿는다.

태희는 스스로 뿌듯한 듯 피식 웃고는 수정이 앞에 놓인 와인 잔에

와인을 채워 잔을 수정에게 건넨다. 그리곤 태희가 와인 잔을 들고

그의 친구들에게 들어 보이면 모두들 잔을 들고 환호를 한다.

태희는 흐뭇하게 수정을 보며 와인을 마신다.


-야, 강태희...너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영석의 말에 웃음 소리가 실내에 퍼지고 곧 음악은 째즈로 바뀐다.


-어쨌든 와줘서 고맙다, 실컷 마시고 놀다 가라...오늘은 내가 화끈하게

쏜다.


태희의 말에 우우 소리를 내며 모두들 환호를 하고 남녀 몇은

무대 앞으로 나가 부둥켜 안고 춤을 추기도 한다. 수정은 지금 자신앞에

벌어진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당황한 표정으로 태희를 본다.


-앉어.


태희가 먼저 앉으며 말하자 그제서야 수정이 표정을 수습하며

자리에 앉는다.


-근데, 내 생일을....어떻게 알았어?

-내가 모르는 게 어딨냐?....자, 선물이다.


태희가 옆자리에 놓아둔 상자를 수정이 앞에 내놓자 수정이 얼결에 받는다.


-열어봐.


태희의 말에 수정이 상자를 열면 장식용 작은 유리 구두가 있다.


-원래 여자한테 신발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더군, 근데..우린 좀 다르지 않나?

우린 신발로 엮인 인연이잖아, 기억하냐?


태희의 말에 수정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긴 한데....너 정말 애 좀 먹었겠다?


수정이 주위를 둘러 보며 말하자 태희가 의자에 기대며 말한다.


-오늘 전화비도 수억 날렸다는 거 아니냐, 이거 준비 시키느라 하루종일

내가 얼마나 진땀을 뺐는 줄 알어?


수정은 할 말을 잃고 뭐라고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괜히 와인 잔을

들다가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밥은 안주니? 배 고픈데....


태희가 손을 들어 종업원에게 눈짓을 주자 종업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생일 선물은 따로 있다.

-뭐, 또 줄 거 남았니?.....나야, 뭐...아주 고맙지만, 너무...무리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참....줄거면, 빨리 줘봐.


수정이 괜히 머쓱해서 말을 꺼내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내뱉은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태희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팔짱을 끼고 앉아

꼰 다리를 바꾸며 입을 연다.


-나랑 협상 볼 일 남았지?


태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수정은 알 것 같다. 긴장한 듯 수정은 와인 잔을

들고 와인을 입술에 조금 적신다. 그때 수정의 휴대폰에 문자 알림 벨이

울린다. 수정은 미안한 듯 태희를 보다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한다.

진우에게도 갔었던 똑같은 문자가 수정의 휴대폰에 찍혀 있다. 수정은

순간 기분이 이상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태희를 힐끔 보다

휴대폰을 닫는다.


-줘봐.


태희가 수정에게 손을 내밀며 휴대폰을 달라고 하자 수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본다.


-줘보라구.


수정은 아무말도 못하고 망설이며 휴대폰을 건네자 태희가 휴대폰을

열고 뭔가를 보며 묻는다.


-이거, 그 자식이 사준거냐?


태희가 휴대폰을 닫더니 테이블 밑에 있던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린다.


-뭐..뭐야 너?


수정이 놀라 태희를 보자 태희가 다시 팔짱을 끼고 앉아 말한다.


-그 유리구두를 버릴지 가질지는 니가 선택해.


태희의 말에 수정이 놀란 눈으로 당황하며 쳐다 본다. 그때 영석이

다가와 태희의 어깨를 툭 친다.


-야, 오늘 같은 날 입만 아프게 떠들고 있을래?...안녕하세요, 태희 친구

이영석입니다.


영석이 수정을 보며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자 얼결에 수정이 엉거주춤

엉덩이만 들고 일어나 고개를 끄덕인다.


-네...네, 수정이라구 해요....하하, 분위가...참,, 좋네요.

-나와서 놀아요, 이러고 있지 말구.

-아, 네....배가...고파서, 먹...먹구 놀죠....먼저...노시죠.


수정이 말을 더듬으며 애써 웃어 보이는데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다.

영석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수정이 그제서야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그리곤 와인을 마신다. 태희가 물끄러미 수정일 본다.


-원한다면 신데렐라로 만들어 줄게, 대신...니가 말한대로 넌 이제부터

내 소유야, 그러니까...내 허락없이 그 자식 만날 생각은 하지마...휴대폰은

내가 다시 사줄게.


태희의 말에 수정이 긴장한 듯 잠시 생각을 하다 태희를 본다.


-계약서도 써야하는 건 아니지?


수정의 말에 태희가 피식 웃는다. 태희의 친구 중의 한 녀석이 다가와

웃으며 수정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곤 태희를 보며 말한다.


-잠깐 빌려도 되지? 나랑 춤 한 번 추시죠?

-내 물건에 손 대지마.


태희가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머쓱해진 친구 녀석이 애써 웃으며

돌아서 간다. 수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태희를 본다.


-배고프다며, 안 먹어?


수정이 태희를 흘기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태희는 물끄러미

그런 수정을 보고 앉아 있다.





**************



늦게 귀가한 강회장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간다. 모친이

시침을 떼고 서서 주방쪽으로 눈치만 보고 섰다. 이층에서 내려오던

태경의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모친을 보자 모친이 올라가라는 듯

눈치를 준다.


-이게 뭐야? 기어이 일을 저질렀어?


주방에서 강회장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커지자 태경의 아내가 움찔 놀라며

후다닥 이층으로 올라간다. 모친이 움찔 놀라 뒷걸음질을 친다.

강회장이 주방에서 나와 모친을 잡아 먹을 듯 노려 본다. 현관으로

들어서던 태경이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본다.


-이 여편네가 가면 갈수록 아주 간이 커졌어, 지금 반항해?


강회장의 말에 모친이 태경을 힐끔 쳐다보다 더듬거리며 말한다.


-내..내가 당신 자식이에요, 반항은 뭐야....냉장고가 너무 낡아서...

-이제 아주 무시해? 내가 우스워?


한대 쥐어 박을 듯 다가 서자 모친이 뒷걸음질을 친다. 태경이 들어와

서며 강회장을 만류한다.


-낡긴 했었어요, 아버지.


태경의 말에 강회장이 벌건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들어와.


강회장의 말에 모친이 흘겨 보며 태경을 본다.


-올라가, 참...저녁은?

-먹고 들어오는 길이에요, 그러게...왜 사고를 치세요?

-내가 애니, 내 물건 내 맘대루 못 바꿔? 늬 아버지 괘씸해서 일부러

바꿨어, 내가 정말....이러고 산다.


한숨을 내쉬는 모친을 태경이 웃으며 보자 안방에서 강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안 들어와?


움찔 놀라며 모친이 태경에게 올라가라고 손짓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강회장이 던진 베개가 모친의 얼굴을 강타한다.


-내 머리에다 불을 질러 아주.


참다참다 화가 난 모친이 강회장을 흘겨 보다 베개를 집어 들어 강회장에게

확 던진다. 베개에 맞은 강회장이 놀란 건, 아파서가 아니라 느닷없는

모친의 행동이다.


-평생 당신은 내 머리에다 불 질러 놓구 살았어.


모친의 말에 강회장이 놀란 눈으로 본다.


-안 보여? 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간 게 안 보이냐구 이 양반아.

-뭐..뭐, 양반?


모친의 말에 강회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다.


-그래두 어이 보단 낫지...어이가 뭐야 어이가...당신이 이날 평생

나한테 어떻게 했어? 냉장고도 내 맘대루 못 바꿔? 내가 이집 똥개야, 뭐야.

람보도 나보단 낫지, 개 밥은 제때 꼬박꼬박 챙겨주고, 쓰다듬어 주기나

하지, 나한텐 당신 어떻게 했냐구...어디 더 말해봐?


모친은 겁을 먹으면서도 오랫동안 쌓아 두었던 말을 하나씩 풀어 놓기

시작한다. 강회장은 내내 뒷통수 맞은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앉아 듣는다.


-낼 모레면 환갑인 나이에, 아주 이건....안하무인도 이보다 덜 하지.

자식들 앞에서 지 마누라 대하는 꼴 좀 봐, 내가 자식들 얼굴을 어찌

보고 살어? 발톱에 때만큼도 생각 안해, 당신.

-꼴 좀 봐?...이 여편네가 말이면 단 줄 알아...


듣고만 있던 강회장이 심하다 싶은 생각에 눈을 부릅 뜨고 벌떡 일어나자

모친이 움찔 놀란다.


-가서, 물 받아 놔.


모친이 흘겨보다 돌아서 나가자 강회장이 베개를 발로 뻥 찬다. 그리곤

돌아 본다.


-저 여편네가 다 늙어서 기운만 세지나....


안방에서 나온 모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방쪽으로 힐끔

돌아본다.


-십년 감수했네....그러게 왜 까불어....나두 한다면 해.


모친이 마치 앞에 강회장이 있는 것처럼 한대 팰 제스처를 하며

낮게 말하고 서둘러 욕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



한강 둔치에 나와 있는 두 사람. 바람이 수정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한강을 보고 서 있는 태희를 수정이 돌아본다.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야?

-지들끼리 논다구 정신 없는 녀석들이야, 괜찮아.

-아까 말야.....


수정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자 태희가 고개를 돌려 수정을 본다.


-그게....고맙다구...그렇게 근사한 생일파티는....처음이었어.


수정의 말에 태희가 물끄러미 수정일 본다.


-그거 아냐, 너.....


태희가 말을 잇지 않자 수정이 돌아본다.


-뭐?


오늘 정말 이쁘다...태희는 속으로 중얼 거린다.


-정말 촌스럽다구.....그 상황에서 배가 고프단 말이 나오냐?


태희가 얼렁뚱땅 말을 둘러대며 고개를 돌린다. 수정이 입을 삐죽거리며

태희를 흘긴다.


-배가 고픈 걸 고프다 그러지...그럼, 아프다고 그러냐?

-무슨 기집애가 무드가 없냐, 두 번 다신 이벤트 안한다 내가...생긴 거

대로 놀아요 아주.

-너 증말 웃긴다...내 생긴 게 뭐? 너 사는데 내 얼굴이 지장준 거 있냐?

하이고...저는 잘생긴 줄 아나보네, 거울 좀 보구 살지 그러니?


둘은 다시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인다. 멀리서 그 둘의 모습이 어쩐지

행복하게 보인다. 태희가 순간 수정의 엉덩이를 손으로 덜컥 움켜쥐고는

도망간다.


-야, 너 거기 안 서? 잡히면 죽었어....


수정이 태희를 잡으러 뛰어 가고 태희는 베시시 웃으며 도망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