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여학생들의 집단구타로 한 학생이 투신하여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무슨 연유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어린 학생이 투신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급박했다는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으로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진정한 부모의 능력이란 무엇일까란 물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먹고만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부모로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건가? 아님 먹고 살기도 급한데 다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부모로서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무엇이 부모인가? 애들은 왜 낳았는가? 낳아 놓기만 하면 되는가? 진정 자녀들은 부모뜻대로 안크는 것인가? 교육은 왜 이루어지는가? 어떤게 교육인가? 사람은 늘 동물과 다른 이성을 가진 존재라거나 만물의 영장이라거나 조물주최고의 작품이라거나 뭐 듣기에 따라서 대단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정녕 그런가? 이런 문제들, 사건들이 일어날때마다 느끼는건 점점 더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 새끼를 낳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강한자만 살아남고 힘으로서 모든걸 좌지우지하고 먹고싶을때 먹고 자고싶을때 잠자는 그네들 자신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개 돼지처럼 새끼를 낳아 먹이고 있다. 무슨 상표의 옷이 좋고 어떤 투기를 해야 돈을 벌고 어떤차가 좋은 차고, 어떤 음식이 맛있는 거라는걸 알지만 자신이 부모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교미가 좋아서 교미하고 싶을때 하고 술 쳐먹고 똥이 나오면 길에서도 싸는 개 돼지들이 되어가면서 새끼는 교미해서 잘 낳는다. 새끼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지랄을 해도 언제나처럼 힘으로서 모든걸 무마하려하는 개 돼지가 되어가고 그게 당연시 되어가는 개 돼지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소위 지성인이라는 대학의 물을 먹었든 안먹었든 똑같다.. 그러면서 잘도 내뱉는 말이 있다. 새끼는 부모뜻대로 안큰다는 말이다.. 부모는 자녀가 의사, 변호사가 되길 원했지만 자녀는 연기자, 화가, 극작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건 맞는 말이다.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개 돼지처럼 굴거나, 엊그제의 일처럼 그런일들은 거기다 가져다 붙일 말이 아니다.. 왜냐고? 그건 스스로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려운가? 그럼 쉽게 얘기하자. 자기 스스로 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얘기다.. 그런걸 배우지 않으면서 왜 자신이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가? 그럼 교육은 왜 받는가? 왜 개집, 돼지우리에서 자지않고 집안의 따뜻한 방에서 자는가?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만 하면서 행동은 개 돼지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모든게 부모들의 부덕의 소치이다.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애를 키워야 할지 어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지에 대한 심각한 단 한번의 고민도 없이 교미하고 싶어서, 돈이 많아 보여서, 얼굴이 이쁘고 몸매가 좋아서 나이가 찼으니까 부부의 연을 엮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부모의 최대 농사는 자녀다. 그게 목표고 삶의 전부 일 수 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심각한 고민과 타협한번 없이 그렇게 잘들 만나고 사는지 또 그렇게 잘들 갈라서는지 이해가 안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의 피를 나눠준다. 자신의 피가 말라갈수록 자녀의 피는 늘어나고 왕성해진다. 피를 나눠줘야 함에도 냉장고에서 설탕을주고 손에 돈을 쥐어준다. 그건 피가 아니다. 왜 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눠주지 않고 그것만 주는가? 그것이 부모의 능력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자신이 못 나눠준피 그렇게 딸아이 친구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흘려서 받아야 정상인가? 모든건 핑계이다. 먹고 살기 힘든것, ... 다 핑계다.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르치치 않는건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그냥 교미 능력만 있는 동물에 불과하다. 어렵지도 않다.. 몇가지 모범을 보이고 같이 대화하고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함께하고 잘 못된길로 갈때 자신의 피로 회초리가 되어 어루만져줘 주면 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녀도 똑같이 큰다는데 있다. 그런애들이 커서 사회와 동떨어진 사고방식에 예전에 폐기처분 됐어야 할 삶의 방법들을 써먹으며 똑같이 배를 채운다. 안타까운건 그들의 겉모습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기에 똑같은 인권의 적용을 받는다는데 있다. 사람이기에 그런일이 없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미래에는 그런불상사가 없길 바란다. 부모란 자녀를 낳아놓기만 했다고 부모가 아니다. 동물과 다르게 키워냈을때 부모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것이다. 그건 의사, 변호사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가진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라는걸 잊지 말기 바란다.
부모의 능력?
엊그제 여학생들의 집단구타로 한 학생이 투신하여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무슨 연유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어린 학생이 투신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급박했다는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으로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진정한 부모의 능력이란 무엇일까란 물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먹고만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부모로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건가?
아님 먹고 살기도 급한데 다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부모로서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무엇이 부모인가?
애들은 왜 낳았는가?
낳아 놓기만 하면 되는가?
진정 자녀들은 부모뜻대로 안크는 것인가?
교육은 왜 이루어지는가?
어떤게 교육인가?
사람은 늘 동물과 다른 이성을 가진 존재라거나
만물의 영장이라거나
조물주최고의 작품이라거나
뭐 듣기에 따라서 대단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정녕 그런가?
이런 문제들, 사건들이 일어날때마다 느끼는건
점점 더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 새끼를 낳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강한자만 살아남고
힘으로서 모든걸 좌지우지하고
먹고싶을때 먹고
자고싶을때 잠자는
그네들 자신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개 돼지처럼 새끼를 낳아 먹이고 있다.
무슨 상표의 옷이 좋고 어떤 투기를 해야 돈을 벌고
어떤차가 좋은 차고,
어떤 음식이 맛있는 거라는걸 알지만
자신이 부모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교미가 좋아서 교미하고 싶을때 하고
술 쳐먹고 똥이 나오면 길에서도 싸는 개 돼지들이 되어가면서 새끼는 교미해서 잘 낳는다.
새끼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지랄을 해도
언제나처럼
힘으로서 모든걸 무마하려하는 개 돼지가 되어가고 그게 당연시 되어가는
개 돼지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소위 지성인이라는 대학의 물을 먹었든 안먹었든 똑같다..
그러면서
잘도 내뱉는 말이 있다.
새끼는 부모뜻대로 안큰다는 말이다..
부모는 자녀가 의사, 변호사가 되길 원했지만 자녀는 연기자, 화가, 극작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건 맞는 말이다.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개 돼지처럼 굴거나,
엊그제의 일처럼 그런일들은 거기다 가져다 붙일 말이 아니다..
왜냐고?
그건 스스로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려운가?
그럼 쉽게 얘기하자.
자기 스스로 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얘기다..
그런걸 배우지 않으면서 왜 자신이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가?
그럼 교육은 왜 받는가?
왜 개집, 돼지우리에서 자지않고 집안의 따뜻한 방에서 자는가?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만 하면서 행동은 개 돼지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모든게 부모들의 부덕의 소치이다.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애를 키워야 할지 어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지에 대한 심각한 단 한번의 고민도 없이
교미하고 싶어서, 돈이 많아 보여서, 얼굴이 이쁘고 몸매가 좋아서 나이가 찼으니까
부부의 연을 엮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부모의 최대 농사는 자녀다.
그게 목표고 삶의 전부 일 수 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심각한 고민과 타협한번 없이 그렇게 잘들 만나고 사는지 또 그렇게 잘들 갈라서는지
이해가 안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의 피를 나눠준다.
자신의 피가 말라갈수록 자녀의 피는 늘어나고 왕성해진다.
피를 나눠줘야 함에도 냉장고에서 설탕을주고 손에 돈을 쥐어준다.
그건 피가 아니다.
왜 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눠주지 않고 그것만 주는가?
그것이 부모의 능력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자신이 못 나눠준피 그렇게 딸아이 친구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흘려서 받아야 정상인가?
모든건 핑계이다.
먹고 살기 힘든것, ... 다 핑계다.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르치치 않는건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그냥 교미 능력만 있는 동물에 불과하다.
어렵지도 않다..
몇가지 모범을 보이고 같이 대화하고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함께하고 잘 못된길로 갈때
자신의 피로 회초리가 되어 어루만져줘 주면 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녀도 똑같이 큰다는데 있다.
그런애들이 커서 사회와 동떨어진 사고방식에 예전에 폐기처분 됐어야 할 삶의 방법들을 써먹으며
똑같이 배를 채운다.
안타까운건 그들의 겉모습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기에
똑같은 인권의 적용을 받는다는데 있다.
사람이기에 그런일이 없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미래에는 그런불상사가 없길 바란다.
부모란 자녀를 낳아놓기만 했다고 부모가 아니다.
동물과 다르게 키워냈을때 부모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것이다.
그건 의사, 변호사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가진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라는걸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