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8-②]-마음 베풀기※

미강200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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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해요?”

 

 

“따뜻해.”

 

 

“당신도 따뜻해요. 차갑지 않아요.

 

얼음장처럼 차갑지 않아요. 오히려 당신 손이…내 손보다 따뜻하네요.

 

이렇게…내가 곁에 있을 때만이라도…따뜻했으면 좋겠어요.

 

내 손을…뿌리칠 건가요?”

 

 

“…아니. 그럴 생각은 없어.”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냥…마음이 움직이는 대로…놔두면 돼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당신이 왜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는지…궁금하지만…. 묻지 않을래요.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대신…거부하고 부인하지만 말아요…. 그럼 되는 거에요….”

 

 

 

하연의 눈빛과 민혁의 눈빛이 한데 얽혔다.

 

얽힌 눈빛 사이에서 두 사람은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말없이 주고받았다.

 

 

하연은 쥐고 있던 민혁의 손을 가만히 내려놓고는

 

민혁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올려 주었다.

 

 

 

 

“겁내지 말아요….

 

내 손길이 지독하게 싫다면…너무 싫어서…끔찍할 정도라면 그 때 뿌리치면 되요.”

 

 

 

하연 스스로도 자신의 어디에 이런 대담한 용기가 숨어 있는 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손을 뻗어 민혁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다니.

 

 

그렇지만 하연은 부끄러운 감정 같은 건 아예 있지도 않았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이 원하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당신의 마음을 내가 고칠 수 있을까요.

 

난 잘 몰라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치료해 주고 싶어요.

 

 

어루만져주고 싶고 따스함을 채워주고 싶어요.

 

내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내 손길을 피하지 말아줘요.

 

 

 

“…그러지.”

 

 

 

짤막하고 여전히 단조로운 음성이었지만

 

예전처럼 냉혹한 표정의 민혁은 아니었다.

 

 

민혁의 표정을 눈동자에 꼭꼭 담으며

 

하연이 쪼그리고 앉았던 다리를 폈다.

 

 

하연은 처음부터 민혁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두렵고 무서운데 왜 자꾸만 시선이 갈까.

 

항상 궁금했더랬다.

 

민혁의 마음 속 깊이 생긴 처참한 상처와 아픔이 하연을 끌어당겼다.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뭔가가 부족했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

 

안쓰럽다는 감정은 단순한 연민과 달랐다.

 

 

그리고 하연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안타까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은 더더욱 강해졌다.

 

 

수풀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이름모를 개를 고집스레 보살피려 했던 것도

 

그 개를 보는 순간 민혁의 얼굴이 겹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어떨 것 같아?”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아도 돼요! 왜 그런 소리를 하는…!”

 

 

“내가 만약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어떨 것 같아? 대답해 봐!”

 

 

“…못해요! 대답 못해요. 그런 질문은 제발 하지 말아요.”

 

 

“지나치는 말이 아냐! 진하연, 당신에게 물은 거야! 대답해!”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요. 단 한 번도!”

 

 

 

“……그럼 지금부터 해 봐. 지금부터 해봐도 늦지는 않겠군.”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뜬금없는 소리로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만 골라서 했다.

 

 

하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의 입에서 밝은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은데.

 

 

 

“…아픈가?”

 

 

“…네. 아파요. 당신은 늘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해요.”

 

 

“마음 아프라고 한 소리 아냐.

 

아파할 필요도 없고. 난 분명히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이라고 말했어.”

 

 

“네. 그렇게 말했어요.”

 

 

“그 말이 내가 죽는다는 얘기로 들렸나?”

 

 

 

“…네?”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죽는다는 것과 통하는 건 아냐!”

 

 

 

분명 민혁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이라고 했지

 

죽으면 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연은 민혁이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민혁은 분명하게 지금부터 생각해 보라고 했었다.

 

아침 햇살에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들이 증발해 버리듯,

 

떠오르는 태양에 아침안개가 흩어지듯

 

그렇게 훌쩍 사라진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또다시 어디론가 비밀로 겹겹이 쌓인

 

그 만의 성(城)으로 잠적해 버린다는 얘기일까.

 

 

아니, 그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연은 왠지 모를 슬픔에 눈물이 가득 괴었다.

 

 

툭, 하고 떨어진 눈물방울이 하필이면 민혁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애써 울음을 삼키는 하연에게 민혁이 물었다.

 

 

 

“…왜 또 울지?”

 

 

“사라진다는 말…다시는 하지 말아요. 그와 비슷한 말도 하지 말아요.

 

모르겠어요. 난 그냥…당신만 생각하면 아프고 슬퍼요.

 

뭔지는 모르지만…자꾸만 눈길이 가고…손을 뻗고 싶어요.

 

그래서…그래서 슬픈 거예요.

 

사라지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잖아요.

 

막막한 슬픔. 이해할 수 있어요?”

 

 

 

깊이를 알 수 없는 여자다, 진하연이라는 여자는.

 

 

도무지 얼마나 깊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자기가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눈물을 뚝뚝 떨구는 여자가

 

지금 뒤에 서 있다.

 

 

민혁은 등으로 전해지는 하연의 떨림을 가만히 감지했다.

 

 

잔잔히 퍼지는 파동처럼 하연의 마음이 민혁에게로 전달되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

 

보고 싶다는 그리움.

 

그리고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

 

 

 

이런 감정 따위는 오래전에 사라진 줄 알았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감정들이 민혁의 내부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내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민혁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 정작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천사 같은 여자. 아니, 천사라는 단어만으로는

 

결코 하연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

 

 

미치도록 사무치게 뒤돌아서 그녀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민혁은 그 대신 하연의 손에서 휠체어 손잡이가 빠져 나올 만큼

 

바퀴를 세게 움직여 앞으로 가 버렸다.

 

 

민혁은 이렇게 소용돌이치는 감정 상태로 그녀를 마주보기가 싫었다.

 

 

 

“아니. 정확하지 않은 건 이해 못 해. 당신 감정 상태는 모호하니까!”

 

 

“…화가 난 건가요? 그래서…내가 밀어주는 게 싫어요…?

 

그럼 그냥 따라가기만 할께요.”

 

 

“화났냐, 싫으냐, 좋으냐! 사사건건 내 생각 알려고 하지 마!”

 

 

 

민혁은 쩔쩔매는 듯한 하연의 표정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분명 생각은 그랬는데, 오히려 하연을 향해 성질을 내고 말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마음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들켜버릴 지도 몰랐다.

 

 

민혁은 삐거덕거리는 마음의 소리를 그녀가 들을까봐 겁내고 있었다.

 

 

달아나버려!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거추장스러운 감정에 이제 와서 휘둘린다는 게 말이나 돼?

 

 

민혁은 혹시라도 그녀에게 입힐 지도 모를 상처가 두려웠다.

 

 

하지만 하연은 민혁의 신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묵묵히 민혁의 곁에 바짝 붙어서 걸어갔다.

 

 

하연은 그녀 나름대로 혼란스러워 하는 중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셔츠의 구겨진 부분을 매만져 주고 싶고

 

그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손수 밀어주고 싶고,

 

그에게 자꾸만 자기 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단순히 책임감 때문에 민혁을 향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민혁의 뒷모습이 사무치게 외로워 보일 때마다

 

문득 그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난생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

 

묘하게 가슴 속에 일렁이는 감정.

 

 

 

“내가 하게 해줘요.”

 

 

“…뭘?”

 

 

“내가…밀어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허락해줘요.”

 

 

 

때때로 하연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용기가 솟아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랬다.

 

 

진심이 담긴 하연의 표정을 본 민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연은 다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덥지 않아요?”

 

 

“아니.”

 

 

“…아무리 얇은 담요라고 해도 줄곧 다리에 덮고 있으면 피부에 별로 좋지 않아요.”

 

 

“참견할 수 있는 입장이니까 아무 말 안 하는 거야. 그것만 알아 둬!”

 

 

“오늘 저녁부터…내가 마사지를 해주면 어때요…?

 

당신 다리 말이에요. 운동을 안 해서 근육들이 많이 약해져 있을 텐데.”

 

 

“사양하겠어!”

 

 

“그럼 손과 팔을 해줄까요? 휠체어를 움직이려면 팔근육에 많이 무리가 갈텐데.”

 

 

“필요없어!”

 

 

“저, 민혁씨. 전동 휠체어로 바꿀 생각은 없어요?”

 

 

“없어!”

 

 

“그래도 그게 더 편할 텐데.

 

워낙 능숙해서 불편함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그게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연의 마음이 민혁의 마음까지 데우고 있었다.

 

하연은 뭐든지 해주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굴었지만

 

민혁은 그런 관심이 전혀 귀찮지 않았다.

 

 

단지 낯설었을 뿐.

 

 

이렇게까지 줄기차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바라봐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어색했을 뿐이었다.

 

 

 

“나더러 기계에 의지하라는 말인가?”

 

 

 

아! 미처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메마르고 건조한 민혁의 지적에

 

하연은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어쩔 줄 몰랐다.

 

 

한번쯤 전동 휠체어를 고려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간병인으로서는 완전한 낙제점이었다.

 

 

하지만 벌써 민혁은 하연의 진심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나지막하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기계에 의지한 채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하지만 이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

 

그런 불필요한 염려 같은 건 앞으로 하지 마.”

 

 

“그럼…나더러 어떡하라구요.

 

당신은 도무지 나에게 뭘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잖아요.

 

다른 환자들은 아프다,

 

용변을 보고 싶다, 씻고 싶다,

 

나가고 싶다, 목이 마르다….

 

 

게다가 가래가 많이 끓는 환자들은 썩션(suction : 흡입)도

 

정기적으로 해줘야 한다구요.

 

하지만 민혁씨는…제가 필요 없잖아요. 그런…거잖아요….”

 

 

 

“심심하면 1분에 맥박이 몇 번씩 뛰는지 정도만 체크하면 되겠군.”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농담처럼 들렸나?”

 

 

“해주고 싶은데. 내가 뭐라도…해주고 싶은데….”

 

 

 

“왜 그렇게 해주고 싶어 하지?

 

그럴 필요 없어. 당신은…그렇게 있어주면 돼.

 

더 이상 요구 안 해. 다른 환자들이 보챘든 안 그랬든 나랑은 상관없어.

 

그리고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치료하고 있는 중 아니었나?”

 

 

 

민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현관문이 닫혔다.

 

 

먼저 들어가 버린 민혁의 흔적을 눈으로 더듬으며

 

하연은 자기가 괜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그는 내 손에 마음을 맡기고 있는데.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통째로 맡겨놓고 있는데.

 

고마워요.

 

당신이 나에게 상처 받은 마음을 오롯이 맡겨둔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기쁜지, 왜 이렇게 고마운지, 왜 이렇게 다행스러운지는 잘 모르지만.

 

고마워요.

 

 

오랜만에, 하연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금빛 햇살이 샘을 낼 만큼이나 밝은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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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무나 많은 축하를 받아서 제 마음 한 켠에 축하가 한아름 쌓여 있답니다. ^^

 

쪽지 보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대를 가슴속에 저장하는 방법]은 일단 전자책의 모습으로 먼저 찾아뵌 것이랍니다.

 

인쇄본(종이책)과 관련된 쪽지를 보내 주셔서요. ^^ㅎ

 

 

지난 겨울 방학동안 울고, 웃음짓고, 행복을 나누었던 '그가저방' 연재했던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하루였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는것도 여러 님들께서 남겨주신 발자취와

 

응원과 격려...그리고 소중한 추천 덕분이에요. 저 사실은 용기 별로 없거든요~ㅎㅎ

 

 

 

이 글 읽으시는 모든 님들~ 설레임 한아름 안고 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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