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이미 누차에 걸쳐 ‘아버지의 후광을 받은 적도 기대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본인의 주장대로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온통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한국정치판에서 겨우 6년의 짧은 정치이력으로 한국정치 정당사의 산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재 국회의석수 121석이나 가진 한나라당이라는 거대야당의 대표로 두 번씩이나 당선된 그대의 그 놀라운 능력과 탁월함에는 가히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다. 그대의 이력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더더욱 놀라운 그대 능력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불과 22세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의 명예 총재라……. 설령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대학을 갖졸업한 신출내기 사회초년병에게 20만이 넘는 전국적 조직을 자랑하는 연맹의 명예총재 추대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어서 불과 26세 때엔 일설에 의하면 신원조회 통과해야 발대식에 참여해 박수라도 칠수있었던 대표적 어용단체, 새마음봉사단의 총재라……… 그리고 연이어 이어지는 화려한 이력들, 이사장 또 이사장…………… 다시 한번 정말 존경으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 탁월함을 인정해서 였을까? 그전까지 아무런 정치적 이력도 없었던, 그것도 겨우 보선에서 당선된 한 여성이 일약 한나라당의 부총재로 중용되고 (그런데 왜 아비의 후광을 기대치 않는 그대가 그 본거지인 대구 달성에서 출마했는가?) 그 동안 별 뚜렷한 정치적 공로도 들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 번씩이나 당대표로 당선되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이것이 혹시 그 말로만 듣던 ‘기적’이란 것인가? 아니면 한국정치사에 새로운 고수 정치 20단이라도 탄생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잠재된 문제였지만 최근 다시 불거져 나온 문제, 그대가 이사장으로 있는 그 ‘정수장학회’ 말이다……….. 5공 시절인 82년 그대 아비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현재 ‘정수장학회’로 개칭되었다는 ‘5.16 장학회’는 그대 아비 박정희가 5.16 쿠데타 다음해인 1962년 고 김지태(전 삼화고무 사장)씨로부터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받아 강제로 강탈했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그 유족들에 의해 제기됐던 데………………. 그에 대한 그대의 생각이 “당시 헌납이 된 것이고, 하자가 없기 때문에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지금까지 존속돼 왔다”는 것에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의혹도 없는가? 그대가 도대체 그 장학회에 무슨 공로가 있다고 일약 이사장에 취임해 한 달에 1100만원씩이나 받으며 승용차와 운전기사까지 장학회로부터 제공받고 있는가? 더더구나 아비의 후광은 전혀 없다는 그대가 말이다. 이것도 역시 그대의 그 탁월한 능력때문인가? 그렇다면 이제 보다 완숙해졌을 그대의 그 탁월한 능력을 믿고 그대 아비에 대한 역사적 공과를 좀더 제대로 알게 ‘친일규명법’에도 추호의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이며, 또한 여러가지로 말도 많은 총재, 이사장직에서 과감히 사퇴하고 순전히 ‘정치인 박근혜’ 본연의 모습으로 제대로 된 국민의 심판을 받아봄이 어떠한가? 오로지 그대의 정치적 능력과 정책에 의해서만 말이다……………….
이름- 박근혜 (朴槿惠) 출생- 1952년 2월 2일 경북 구미 (부 박정희, 모 육영수)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 걸스카우트 명예총재 취임 1978년 새마음봉사단 총재 1979년 사회복지법인 경로복지원 이사장 1993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1997년 한나라당 입당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제15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 1998년.11~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2002년 한나라당 탈당, 한국미래연합대표 역임 2002년 한나라당과 한국미래엽합 합당 2003년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 2004년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4년 7 한라라당 대표최고위원 재당선
박근혜, 그대의 정체는?...
[ 박근혜, 그대 정체가 무엇인고? ]
그대는 이미 누차에 걸쳐 ‘아버지의 후광을 받은 적도 기대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본인의 주장대로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온통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한국정치판에서 겨우 6년의 짧은 정치이력으로 한국정치 정당사의 산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재 국회의석수 121석이나 가진 한나라당이라는 거대야당의 대표로
두 번씩이나 당선된 그대의 그 놀라운 능력과 탁월함에는 가히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다.
그대의 이력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더더욱 놀라운 그대 능력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불과 22세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의 명예 총재라…….
설령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대학을 갖졸업한 신출내기 사회초년병에게
20만이 넘는 전국적 조직을 자랑하는 연맹의 명예총재 추대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어서 불과 26세 때엔 일설에 의하면 신원조회 통과해야 발대식에 참여해 박수라도
칠수있었던 대표적 어용단체, 새마음봉사단의 총재라………
그리고 연이어 이어지는 화려한 이력들, 이사장 또 이사장……………
다시 한번 정말 존경으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 탁월함을 인정해서 였을까?
그전까지 아무런 정치적 이력도 없었던, 그것도 겨우 보선에서 당선된 한 여성이 일약
한나라당의 부총재로 중용되고 (그런데 왜 아비의 후광을 기대치 않는 그대가 그 본거지인
대구 달성에서 출마했는가?) 그 동안 별 뚜렷한 정치적 공로도 들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 번씩이나 당대표로 당선되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이것이 혹시 그 말로만 듣던 ‘기적’이란 것인가?
아니면 한국정치사에 새로운 고수 정치 20단이라도 탄생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잠재된 문제였지만 최근 다시 불거져 나온 문제,
그대가 이사장으로 있는 그 ‘정수장학회’ 말이다………..
5공 시절인 82년 그대 아비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현재 ‘정수장학회’로 개칭되었다는 ‘5.16 장학회’는 그대 아비 박정희가 5.16 쿠데타
다음해인 1962년 고 김지태(전 삼화고무 사장)씨로부터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받아 강제로 강탈했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그 유족들에 의해 제기됐던 데……………….
그에 대한 그대의 생각이 “당시 헌납이 된 것이고, 하자가 없기 때문에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지금까지 존속돼 왔다”는 것에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의혹도 없는가?
그대가 도대체 그 장학회에 무슨 공로가 있다고 일약 이사장에 취임해 한 달에
1100만원씩이나 받으며 승용차와 운전기사까지 장학회로부터 제공받고 있는가?
더더구나 아비의 후광은 전혀 없다는 그대가 말이다.
이것도 역시 그대의 그 탁월한 능력때문인가?
그렇다면 이제 보다 완숙해졌을 그대의 그 탁월한 능력을 믿고 그대 아비에 대한
역사적 공과를 좀더 제대로 알게 ‘친일규명법’에도 추호의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이며,
또한 여러가지로 말도 많은 총재, 이사장직에서 과감히 사퇴하고 순전히
‘정치인 박근혜’ 본연의 모습으로 제대로 된 국민의 심판을 받아봄이 어떠한가?
오로지 그대의 정치적 능력과 정책에 의해서만 말이다……………….
이름- 박근혜 (朴槿惠)
출생- 1952년 2월 2일 경북 구미 (부 박정희, 모 육영수)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 걸스카우트 명예총재 취임
1978년 새마음봉사단 총재
1979년 사회복지법인 경로복지원 이사장
1993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1997년 한나라당 입당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제15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
1998년.11~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2002년 한나라당 탈당, 한국미래연합대표 역임
2002년 한나라당과 한국미래엽합 합당
2003년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
2004년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4년 7 한라라당 대표최고위원 재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