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부 대형마트를 돌며 여러 가지 장을 보고 있는 수정. 과일을 이것 저것 집어 들고 기분 좋게 향을 맡는 모습이 보이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캐리어 안에 집어 넣고는 계산대앞에 와서 선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제 차례가 돌아오자 지갑에서 태희가 준 카드를 꺼내 내밀고, 잠시 후에 밖으로 나온 수정의 손에 가득 봉지들이 쥐어져 있다. 낑낑대며 도로 앞으로 나와 빈 택시를 잡고 차에 오른다. *************** 신라호텔 마케팅 부서에 들어선 태희는 자신의 짐이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박스 안에 챙겨 넣는다. 총지배인이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와 태희 옆에 다가와 선다. -어젠 어디 갔었냐? -남이야. -에이, 말을 해도. 내가 어떻게 너랑 남이냐? -신경 꺼주셔. 무시하고 태희는 서둘러 짐을 챙겨 넣는다. -너무 그러지 마라, 앞으로 제주도에서 동고동락할 사인데. -동고동락이 아니라, 감시겠지. 가면 갈수록 형은 우리 아버지 닮아가는 것 같아. 사람이 좀 줏대 있게 사시지? 태희의 말에 총지배인이 슬쩍 웃음을 흘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태희가 이쁘고 귀엽다. -근데, 걔는 어쩔거냐? -누구? -니 애인. 총지배인이 새끼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자 태희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본다. -데리고 갈 거야. -뒷감당은 어찌 하고? -왜, 내가 설마 형더러 감당하라 그럴까봐 걱정돼? -태희야. -내 이름 부르지마, 배신자. -장난 아니다. 정말로 걔를 맘에 두고 있는 거냐, 아님 그냥 한때 재미냐? -형은 재미로 제주도까지 여잘 데리고 가냐? -장난이 아닌가 보네. 회장님께는 말씀 드려? -형이 왜? 그냥 입 단속 좀 하고 계시지 그러셔? 태희가 투덜대며 못마땅하듯 내뱉자 총지배인이 피식 웃으며 태희의 어깨에 팔을 올린다. -강태희씨, 나한테 너무 그러지 마. 안 그러는 게 좋을 걸? 원한다면 내가 회장님께 잘 말씀 드려서 수정이 데리고 가는 거 문제 없게 해줄 수도 있단 말이지. 그래도 뭐, 협상 보기 싫으면 말구. 총지배인이 웃으며 돌아서자 태희가 그의 팔을 확 잡는다.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해줄거야? 혀엉. -너 하는 거 봐서. 능글맞게 총지배인이 웃으며 말하자 태희가 지배인의 팔짱을 끼며 애살스럽게 들러 붙는다.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야? 형하구 나 피 나눈 형제같은 사인데...알지 내가. **************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진우는 겨우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낯선 공간이다. 그때 욕실에서 윤미가 나온다. 놀란 눈으로 진우는 윤미를 쳐다본다. -속은 괜찮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다가와 침대위에 앉는다. -어떻게 된 거야? -기억 안나니? 윤미의 말에 진우는 간 밤의 있었던 일들을 애써 떠올려 보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진우가 순간 시계를 보는데 이미 오전 9시가 넘어섰다. -뭐야, 일찍 좀 깨우지. 벌떡 일어나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려 하자 윤미가 진우의 팔을 잡는다. -그럴 거 없어. -무슨 소리야? 윤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와 마주 선다. -회사 그만둬. 아버지한테 니 자리 달라구 말할거야. -무슨 소리냐구 글쎄. -못 알아 듣니? 결혼하자 우리. 윤미의 말에 진우는 놀란 눈으로 윤미를 쳐다 보고는 아무런 말을 못한다. -이런식으로 내가 먼저 프로포즈하고 싶진 않았어. 니가 먼저 해주길 기다렸는데, 그러다간 나, 꼬부랑 할머니 될 것 같어. 너무 하지 않니 너? 윤미의 말에 진우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잠자코 윤미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다. -집에서 내 결혼 서둘러. 너 자꾸 이렇게 미적대면 나, 다른 사람하고 정말 결혼해야 할지도 몰라. 상대가 누군지 니가 더 잘 알지? 어쩔거야? 진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 대문을 열고 수정이 들어서자 새어머니는 벌써 나가고 없고, 혜지는 막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오려던 참이었다. -이게 누구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니? -아직두 취직 안했어? 수정이 들고 온 짐들을 마루청에 내려 놓고 묻자 기가 막힌다는 듯 혜지가 흘기며 마루청에서 내려 선다. -니가 무슨 상관이야? -정신 좀 차리구 살어. 니 나이가 몇이냐? 일하기 싫음 빨랑 시집이나 가든지. 어머니, 남의 집 파출부 다니는 거 보기 좋니? -이게 증말, 야 니가 뭔데 잔소리야? 혜지가 쌍짐질을 키며 소리를 버럭 지르자 문을 열고 부친이 방에서 힘겹게 걸어 나온다. -수정이 왔냐? -네, 아버지. 수정이 마루청에 올라서자 혜지는 분하고 화난 표정으로 수정과 부친을 번갈아 노려 보다 신경질적으로 나가 버린다. -회사는 어쩌고? -드릴 말씀 있어요, 들어가세요. -아니다, 답답해서. 마루청에 앉으며 부친이 말하자 수정이 짐을 주방으로 옮겨 놓고 나온다. -아버지, 몸은 어떠세요? -괜찮아, 움직일만 해. 수정아... -네. -니 엄마 너무 미워하지 마라. 나 만나서 지금껏 고생만 한 사람이야. 니가 한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가 사실 낯을 들 수가 없다. 부친의 말에 수정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안 미워해요, 고마우신 분이라는 거 알아요 아버지. -그래, 알면 됐다. -아버지. -? -다음 주에 저, 서울 떠나요. -떠나다니? -취직했어요,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요. -호텔? 잘 됐다, 잘 됐어. 근데, 너무 멀어서 어쩌냐? -휴가 때나, 쉬는 날에 아버지 뵈로 올거에요. 당분간은 좀 힘들겠지만 자주 연락 드릴게요. -내 걱정은 말어. 너나 잘 됐으면 내가 눈이라도 제대로 감을 수가 있는데. 수정이 그런 부친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애써 눈물을 감춘다. 그리곤 가방에서 두 개의 봉투를 꺼내 내민다. -하나는 아버지꺼에요. 비상금으로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할 때 쓰세요. 그리고, 하나는 어머니꺼요. 그동안 생활비 못 드려서 아마 힘드셨을 거에요. 제주도 가면, 제 때 생활비 보낼 수 있을 거에요. -이건 너나 써, 내가 이런 돈이 뭐가 필요하냐? -아버지, 가끔 바람 쐬러도 다니시구, 맛난 것도 사 드시구 그러세요. 안 그럼 저 아버지 때문에 마음 안좋아서 내내 일도 손에 안 잡힐 것에요.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시구요. -내가....너한테 정말 짐이구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앞으론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도 아버지가 곁에 계시니까 제 맘이 얼마나 든든한데. 눈물이 나려는 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찬거리 정리 좀 하고 나올게요. 주방으로 들어간 수정이 마루청 쪽으로 힐끔 보다 기어이 눈물이 흐른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찬거리를 냉장고 안에 채워 넣고, 정리한다. **************** 젖은 빨래감을 탁탁 털어 정원에 있는 건조대에 널고 있는 새어머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늘을 본다. -아이고 허리야, 날씨 한 번 끝내주게 좋네. 손으로 제 어깨와 허리를 툭툭 치며 람보를 돌아본다. -너는 주인 잘 만나서 팔자 고쳤구나. 어찌 이눔의 팔자는 너보다 더 못하냐? 아이구, 내 신세야. 새어머니가 부러운 듯 람보를 보다 고개를 젓고는 남은 빨래감을 털어 넌다. 그때 대문을 열고 외출 갔던 모친이 들어온다. -일찍 오셨네요? -네, 그렇게 됐어요. 그새 빨래를 다 했어요? -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서둘렀어요. 점심은요? -아직 못했는데, 우리 국수나 삶아 먹을까요? -좋죠, 마저 널어 놓고 들어가 준비할테니 씻으세요. -네. 빨래를 다 널고 들어온 새어머니는 국수를 삶아 찬 육수에 말아 놓고는 모친을 부른다. 둘이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말은 국수를 맛있게 먹는다. -음식 솜씨가 좋아요. 모친이 먹으며 칭찬을 하자 새어머니는 금세 표정이 환해진다. -그런 소릴 좀 들었지요. -근데, 자녀는 어떻게 돼요? -딸만 둘이에요, 아들이나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아들 다 소용없어요, 딸이 좋지. 따님들은 뭐해요? -큰 딸은 대학 졸업하고 지금 신부 수업 받고 있죠 뭐. -네에. 작은 딸은요? -아유, 걔는 뭐....저 맘대로 사는 애라서. 근데, 어디 좋은 혼처가 없을까요? 우리 큰 딸이 인물도 좋고, 대학도 일류대 나왔거든요. 괜찮은 집안 몇 군데에서 선 자리가 들어오긴 하는데, 눈은 어찌나 높은지 영 인연을 못 만나네요. 모친은 새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서 보내야 내 맘도 편한데.... 선뜻 나서겠다 말 없는 모친을 힐끔 보며 혼잣말로 궁시렁 거리는 새어머니. **************** 태희는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눈다. 그리곤 돌아서 나온다. 짐은 이미 차에 실어 놓고, 태희는 호텔 실내를 한 번 훑어 보고는 돌아서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른다. **************** 현숙의 가게 앞에 서서 땅바닥을 발로 툭툭 치고 있는 수정. 잠시 후에 현숙이 가게 문을 열고 나온다. 수정이 재빨리 현숙이 팔짱을 낀다. -뭐 사줄건데? -뭐 먹고 싶어? 사달라는 거 다 사줄게. -정말이지? -응. -그럼, 나두 돈 많은 놈 하나 사줘. 현숙의 말에 수정이 피식 웃는다. 둘이 보기 좋게 나란히 서서 걸어간다. 둘이 들어 간 곳은 레스토랑이다. 자리에 앉으며 현숙이 주위를 둘러보며 기 죽은 듯한 표정으로 수정에게 묻는다. -너 로또 당첨이라도 된거냐? 현숙의 말에 수정이 피식 웃고 종업원이 건네 준 메뉴판을 들여다 보는데 죄다 영어와 일본어로 적혀 있어 순간 당황한다. 메뉴판을 덮고 건네주며 수정이 당당하게 말한다. -여기서 젤루 비싼 걸루 주시구요, 와인두 주세요. 종업원이 위아래를 훑어 보더니 억지 웃음을 지으며 수정에게 묻는다. -와인은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손님? -젤루 좋은 걸루요. -아, 네 손님. 준비 하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업원이 사라지자 수정이 현숙을 보며 씨익 웃는다. -그러게, 개뿔도 모르는 여길 왜 와서 개망신이냐구. 아유, 쪽팔려. -뭐 어때? -그 놈이 돈뭉치라두 덥썩 안겨주디? -현숙아, 사실은 나.....담주에 제주도 가기로 했어. -신혼여행이냐? -아니,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 취직했어. 수정이 가방을 열고 봉투를 꺼내 현숙이 앞에 밀어 놓는다. -이건 뭐냐? 유서냐? 현숙이 봉투를 열어 보자 현금이 있는 걸 보고 놀란 눈으로 수정일 본다. -정말 돈뭉치라도 받은 거니? -접때 내가 빌렸던 것에서 조금 더 넣었어. 그동안 내가 신세만 졌잖어. -당연히 신세만 졌지, 암. 현숙이 다시 봉투를 열어 돈을 힐끔 세워 보는데, 생각보다 많다.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가방안에 덥썩 집어 넣는다. -이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어, 자주 연락은 할게. 수정의 말에 현숙이 손을 들어 가만히 있어 보라는 듯 표정을 짓고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가방 안에서 다시 돈봉투를 꺼내 수정에게 내민다. -나 이 돈 안 받어. -왜? -나 이 돈 필요없어, 대신.....나도 좀 데려가주라. -뭐? -나두 호텔에서 일하고 싶단 말야. 나두 여기가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다구. 맨날 가위 들고 다니면서 고기나 자르며 살순 없잖냐. 친구 덕에 나두 호텔에서 한 번 일해보자. 수정아, 나두 데리고 가주라. 현숙의 말에 수정이 당황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이 돈으로 내가 오늘 여기서 쏠게. 됐지? 현숙이 손을 번쩍 들더니 큰 소리로 말한다. -아저씨, 와인 한 병 더 추가요. 젤루 비싼 걸루요. *************** 태희의 집 앞에 차가 멈춰서고 차에서 내린 태희는 휘파람을 불며 차문을 잠근다. 그리곤 돌아서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와 선다. -강태희.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진우다. 태희가 그런 진우를 경계하듯 쳐다 보고 섰다. 진우의 표정 역시 진지하고 태희 앞을 가로 막고 선다. -이게 누구야? 배신자 아냐? 태희가 먼저 비아냥 거리며 말하자 진우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다. -배신자가 나한테 무슨 볼 일인가? -잠깐 얘기 좀 하자. -내가 왜? -잠깐이면 돼. 진우가 돌아서 앞서 내려가자 태희가 그런 진우를 보고 서 있다가 빠른 걸음으로 진우를 앞질러 내려간다. -니가 따라 와 임마. 태희의 뒷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다 진우가 뒤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드뎌 제가 오늘부로 자유인이 되었답니다^^ 오늘로써 인수인계는 끝났구요, 지금부터 저는 백조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아~꿈에도 그리던 백조생활이 이제 시작됩니다. 키키키키....다들 즐건 주말 되시구요, 더위 조심하세요^^
신데렐라를 꿈꾸며-20부-
제 20 부
대형마트를 돌며 여러 가지 장을 보고 있는 수정. 과일을 이것 저것
집어 들고 기분 좋게 향을 맡는 모습이 보이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캐리어 안에 집어 넣고는 계산대앞에 와서 선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제 차례가 돌아오자 지갑에서 태희가 준 카드를 꺼내
내밀고, 잠시 후에 밖으로 나온 수정의 손에 가득 봉지들이 쥐어져 있다.
낑낑대며 도로 앞으로 나와 빈 택시를 잡고 차에 오른다.
***************
신라호텔 마케팅 부서에 들어선 태희는 자신의 짐이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박스 안에 챙겨 넣는다. 총지배인이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와
태희 옆에 다가와 선다.
-어젠 어디 갔었냐?
-남이야.
-에이, 말을 해도. 내가 어떻게 너랑 남이냐?
-신경 꺼주셔.
무시하고 태희는 서둘러 짐을 챙겨 넣는다.
-너무 그러지 마라, 앞으로 제주도에서 동고동락할 사인데.
-동고동락이 아니라, 감시겠지. 가면 갈수록 형은 우리 아버지 닮아가는
것 같아. 사람이 좀 줏대 있게 사시지?
태희의 말에 총지배인이 슬쩍 웃음을 흘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태희가
이쁘고 귀엽다.
-근데, 걔는 어쩔거냐?
-누구?
-니 애인.
총지배인이 새끼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자 태희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본다.
-데리고 갈 거야.
-뒷감당은 어찌 하고?
-왜, 내가 설마 형더러 감당하라 그럴까봐 걱정돼?
-태희야.
-내 이름 부르지마, 배신자.
-장난 아니다. 정말로 걔를 맘에 두고 있는 거냐, 아님 그냥 한때 재미냐?
-형은 재미로 제주도까지 여잘 데리고 가냐?
-장난이 아닌가 보네. 회장님께는 말씀 드려?
-형이 왜? 그냥 입 단속 좀 하고 계시지 그러셔?
태희가 투덜대며 못마땅하듯 내뱉자 총지배인이 피식 웃으며 태희의
어깨에 팔을 올린다.
-강태희씨, 나한테 너무 그러지 마. 안 그러는 게 좋을 걸? 원한다면
내가 회장님께 잘 말씀 드려서 수정이 데리고 가는 거 문제 없게 해줄 수도
있단 말이지. 그래도 뭐, 협상 보기 싫으면 말구.
총지배인이 웃으며 돌아서자 태희가 그의 팔을 확 잡는다.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해줄거야? 혀엉.
-너 하는 거 봐서.
능글맞게 총지배인이 웃으며 말하자 태희가 지배인의 팔짱을 끼며 애살스럽게
들러 붙는다.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야? 형하구 나 피 나눈 형제같은 사인데...알지 내가.
**************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진우는 겨우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낯선 공간이다. 그때 욕실에서
윤미가 나온다. 놀란 눈으로 진우는 윤미를 쳐다본다.
-속은 괜찮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다가와 침대위에 앉는다.
-어떻게 된 거야?
-기억 안나니?
윤미의 말에 진우는 간 밤의 있었던 일들을 애써 떠올려 보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진우가 순간 시계를 보는데 이미 오전 9시가 넘어섰다.
-뭐야, 일찍 좀 깨우지.
벌떡 일어나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려 하자 윤미가 진우의 팔을 잡는다.
-그럴 거 없어.
-무슨 소리야?
윤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와 마주 선다.
-회사 그만둬. 아버지한테 니 자리 달라구 말할거야.
-무슨 소리냐구 글쎄.
-못 알아 듣니? 결혼하자 우리.
윤미의 말에 진우는 놀란 눈으로 윤미를 쳐다 보고는 아무런 말을 못한다.
-이런식으로 내가 먼저 프로포즈하고 싶진 않았어. 니가 먼저 해주길
기다렸는데, 그러다간 나, 꼬부랑 할머니 될 것 같어. 너무 하지 않니 너?
윤미의 말에 진우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잠자코 윤미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다.
-집에서 내 결혼 서둘러. 너 자꾸 이렇게 미적대면 나, 다른 사람하고
정말 결혼해야 할지도 몰라. 상대가 누군지 니가 더 잘 알지? 어쩔거야?
진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
대문을 열고 수정이 들어서자 새어머니는 벌써 나가고 없고, 혜지는
막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오려던 참이었다.
-이게 누구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니?
-아직두 취직 안했어?
수정이 들고 온 짐들을 마루청에 내려 놓고 묻자 기가 막힌다는 듯
혜지가 흘기며 마루청에서 내려 선다.
-니가 무슨 상관이야?
-정신 좀 차리구 살어. 니 나이가 몇이냐? 일하기 싫음 빨랑 시집이나
가든지. 어머니, 남의 집 파출부 다니는 거 보기 좋니?
-이게 증말, 야 니가 뭔데 잔소리야?
혜지가 쌍짐질을 키며 소리를 버럭 지르자 문을 열고 부친이 방에서
힘겹게 걸어 나온다.
-수정이 왔냐?
-네, 아버지.
수정이 마루청에 올라서자 혜지는 분하고 화난 표정으로 수정과 부친을
번갈아 노려 보다 신경질적으로 나가 버린다.
-회사는 어쩌고?
-드릴 말씀 있어요, 들어가세요.
-아니다, 답답해서.
마루청에 앉으며 부친이 말하자 수정이 짐을 주방으로 옮겨 놓고 나온다.
-아버지, 몸은 어떠세요?
-괜찮아, 움직일만 해. 수정아...
-네.
-니 엄마 너무 미워하지 마라. 나 만나서 지금껏 고생만 한 사람이야. 니가
한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가 사실 낯을 들 수가 없다.
부친의 말에 수정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안 미워해요, 고마우신 분이라는 거 알아요 아버지.
-그래, 알면 됐다.
-아버지.
-?
-다음 주에 저, 서울 떠나요.
-떠나다니?
-취직했어요,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요.
-호텔? 잘 됐다, 잘 됐어. 근데, 너무 멀어서 어쩌냐?
-휴가 때나, 쉬는 날에 아버지 뵈로 올거에요. 당분간은 좀 힘들겠지만
자주 연락 드릴게요.
-내 걱정은 말어. 너나 잘 됐으면 내가 눈이라도 제대로 감을 수가 있는데.
수정이 그런 부친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애써 눈물을 감춘다. 그리곤
가방에서 두 개의 봉투를 꺼내 내민다.
-하나는 아버지꺼에요. 비상금으로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할 때 쓰세요.
그리고, 하나는 어머니꺼요. 그동안 생활비 못 드려서 아마 힘드셨을 거에요.
제주도 가면, 제 때 생활비 보낼 수 있을 거에요.
-이건 너나 써, 내가 이런 돈이 뭐가 필요하냐?
-아버지, 가끔 바람 쐬러도 다니시구, 맛난 것도 사 드시구 그러세요.
안 그럼 저 아버지 때문에 마음 안좋아서 내내 일도 손에 안 잡힐 것에요.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시구요.
-내가....너한테 정말 짐이구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앞으론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도 아버지가
곁에 계시니까 제 맘이 얼마나 든든한데.
눈물이 나려는 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찬거리 정리 좀 하고 나올게요.
주방으로 들어간 수정이 마루청 쪽으로 힐끔 보다 기어이 눈물이 흐른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찬거리를 냉장고 안에 채워 넣고, 정리한다.
****************
젖은 빨래감을 탁탁 털어 정원에 있는 건조대에 널고 있는 새어머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늘을 본다.
-아이고 허리야, 날씨 한 번 끝내주게 좋네.
손으로 제 어깨와 허리를 툭툭 치며 람보를 돌아본다.
-너는 주인 잘 만나서 팔자 고쳤구나. 어찌 이눔의 팔자는 너보다 더
못하냐? 아이구, 내 신세야.
새어머니가 부러운 듯 람보를 보다 고개를 젓고는 남은 빨래감을 털어 넌다.
그때 대문을 열고 외출 갔던 모친이 들어온다.
-일찍 오셨네요?
-네, 그렇게 됐어요. 그새 빨래를 다 했어요?
-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서둘렀어요. 점심은요?
-아직 못했는데, 우리 국수나 삶아 먹을까요?
-좋죠, 마저 널어 놓고 들어가 준비할테니 씻으세요.
-네.
빨래를 다 널고 들어온 새어머니는 국수를 삶아 찬 육수에 말아 놓고는
모친을 부른다. 둘이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말은 국수를 맛있게 먹는다.
-음식 솜씨가 좋아요.
모친이 먹으며 칭찬을 하자 새어머니는 금세 표정이 환해진다.
-그런 소릴 좀 들었지요.
-근데, 자녀는 어떻게 돼요?
-딸만 둘이에요, 아들이나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아들 다 소용없어요, 딸이 좋지. 따님들은 뭐해요?
-큰 딸은 대학 졸업하고 지금 신부 수업 받고 있죠 뭐.
-네에. 작은 딸은요?
-아유, 걔는 뭐....저 맘대로 사는 애라서. 근데, 어디 좋은 혼처가 없을까요?
우리 큰 딸이 인물도 좋고, 대학도 일류대 나왔거든요. 괜찮은 집안 몇 군데에서
선 자리가 들어오긴 하는데, 눈은 어찌나 높은지 영 인연을 못 만나네요.
모친은 새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서 보내야 내 맘도 편한데....
선뜻 나서겠다 말 없는 모친을 힐끔 보며 혼잣말로 궁시렁 거리는 새어머니.
****************
태희는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눈다. 그리곤 돌아서 나온다.
짐은 이미 차에 실어 놓고, 태희는 호텔 실내를 한 번 훑어 보고는 돌아서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른다.
****************
현숙의 가게 앞에 서서 땅바닥을 발로 툭툭 치고 있는 수정. 잠시 후에
현숙이 가게 문을 열고 나온다. 수정이 재빨리 현숙이 팔짱을 낀다.
-뭐 사줄건데?
-뭐 먹고 싶어? 사달라는 거 다 사줄게.
-정말이지?
-응.
-그럼, 나두 돈 많은 놈 하나 사줘.
현숙의 말에 수정이 피식 웃는다. 둘이 보기 좋게 나란히 서서 걸어간다.
둘이 들어 간 곳은 레스토랑이다. 자리에 앉으며 현숙이 주위를 둘러보며
기 죽은 듯한 표정으로 수정에게 묻는다.
-너 로또 당첨이라도 된거냐?
현숙의 말에 수정이 피식 웃고 종업원이 건네 준 메뉴판을 들여다 보는데
죄다 영어와 일본어로 적혀 있어 순간 당황한다. 메뉴판을 덮고 건네주며
수정이 당당하게 말한다.
-여기서 젤루 비싼 걸루 주시구요, 와인두 주세요.
종업원이 위아래를 훑어 보더니 억지 웃음을 지으며 수정에게 묻는다.
-와인은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손님?
-젤루 좋은 걸루요.
-아, 네 손님. 준비 하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업원이 사라지자 수정이 현숙을 보며 씨익 웃는다.
-그러게, 개뿔도 모르는 여길 왜 와서 개망신이냐구. 아유, 쪽팔려.
-뭐 어때?
-그 놈이 돈뭉치라두 덥썩 안겨주디?
-현숙아, 사실은 나.....담주에 제주도 가기로 했어.
-신혼여행이냐?
-아니,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 취직했어.
수정이 가방을 열고 봉투를 꺼내 현숙이 앞에 밀어 놓는다.
-이건 뭐냐? 유서냐?
현숙이 봉투를 열어 보자 현금이 있는 걸 보고 놀란 눈으로 수정일 본다.
-정말 돈뭉치라도 받은 거니?
-접때 내가 빌렸던 것에서 조금 더 넣었어. 그동안 내가 신세만 졌잖어.
-당연히 신세만 졌지, 암.
현숙이 다시 봉투를 열어 돈을 힐끔 세워 보는데, 생각보다 많다.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가방안에 덥썩 집어 넣는다.
-이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어, 자주 연락은 할게.
수정의 말에 현숙이 손을 들어 가만히 있어 보라는 듯 표정을 짓고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가방 안에서 다시 돈봉투를 꺼내 수정에게 내민다.
-나 이 돈 안 받어.
-왜?
-나 이 돈 필요없어, 대신.....나도 좀 데려가주라.
-뭐?
-나두 호텔에서 일하고 싶단 말야. 나두 여기가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다구.
맨날 가위 들고 다니면서 고기나 자르며 살순 없잖냐. 친구 덕에 나두 호텔에서
한 번 일해보자. 수정아, 나두 데리고 가주라.
현숙의 말에 수정이 당황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이 돈으로 내가 오늘 여기서 쏠게. 됐지?
현숙이 손을 번쩍 들더니 큰 소리로 말한다.
-아저씨, 와인 한 병 더 추가요. 젤루 비싼 걸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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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의 집 앞에 차가 멈춰서고 차에서 내린 태희는 휘파람을 불며 차문을
잠근다. 그리곤 돌아서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와 선다.
-강태희.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진우다. 태희가 그런 진우를 경계하듯 쳐다 보고 섰다.
진우의 표정 역시 진지하고 태희 앞을 가로 막고 선다.
-이게 누구야? 배신자 아냐?
태희가 먼저 비아냥 거리며 말하자 진우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다.
-배신자가 나한테 무슨 볼 일인가?
-잠깐 얘기 좀 하자.
-내가 왜?
-잠깐이면 돼.
진우가 돌아서 앞서 내려가자 태희가 그런 진우를 보고 서 있다가 빠른 걸음으로
진우를 앞질러 내려간다.
-니가 따라 와 임마.
태희의 뒷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다 진우가 뒤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드뎌 제가 오늘부로 자유인이 되었답니다^^
오늘로써 인수인계는 끝났구요, 지금부터 저는 백조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아~꿈에도 그리던 백조생활이 이제
시작됩니다. 키키키키....다들 즐건 주말 되시구요, 더위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