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월 20 일, 이슬람 최대 방송국인 알 자지라 방송국에서 알 카에다의 두 번째 리더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비디오가 방영되었다. 그동안 주로 알 카에다에서 제작한 영상물은 자체 미디어 생산 기지인 아스-사합을 통해 방영되어 왔던 점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 점이 비디오 방영 시점과 맞물려 알 카에다의 현재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추측을 가능케하고 있다.
<알 카에다 1인자 오사마와 2인자 알 자와히리>
우선, 비록 아스-사합이 지하드 주의자들의 웹 사이트와 채팅 방에 비디오의 방영을 알리는 배너 광고를 띄우긴 했지만, 비디오가 아스-사합이 아닌 알 자지라를 통해 방송된 것은 드문 일이었다. 지난 1 월 13 일에 알 카에다의 기지라고 생각됐던 파키스탄의 다마돌라가 폭격된 후, 알 카에다는 알 자지라를 통한 성명 발표를 중단했었다. 메시지를 방송국에 전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실패하여 수행원 시스템을 통해 알 자지라에 여러 성명을 전달해왔었다. 메세지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판단한 알 카에다 측은 이후 대부분의 성명과 예고 등을 알 자지라보다 아스-사합을 통해 온라인으로 발표했다.
이것을 고려할 때, 지난 10월 30일에 있었던 칭가이 마을의 한 신학교-알 카에다의 고위 지도자들이 거주했다고 알려진 파키스탄 바자우르 지역에 있던- 폭격이, 아스-사합의 중요한 부분을 파괴한 것은 아닐까 의심된다. 또한, 아스-사합의 인터넷 소식 분배 방식이 외부 정보 기관에 의해 타격을 입었거나 해킹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12월 20일에 방영된 비디오에서 알 자와히리는 여느 때와 같이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매고 검은색 터번과 하얀색 덮개를 둘러 쓰고 나타났다. 비디오의 갈색 배경은 2004 년 4 월, 2005 년 10 월, 2006 년 1 월, 2006 년 9 월에 방영되었던 비디오에서 보였던 것과 동일하다. 언뜻 봐서는 예전에 촬영해놓은 것과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비디오에서 알 자와히리는 10 월 30 일 칭가이 폭격, 미국 중간 선거, 그리고 11월 30일에 있었던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총리 누리 알 말리키의 만남을 언급했다. 따라서 테이프는 분명히 그 날짜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알 자와히리는 칭가이 폭격과 상관없이 살아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어깨 너머 총과 회갈색 배경을 잊지 않는 알 자와히리>
칭가이 폭격은 10월 30일이었는데 비디오는 한 달도 더 지난 11월 30일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 자와히리가 칭가이 폭격에 대해 언급하기까지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마돌라 폭격의 경우, 3주 내로 폭격을 비난하는 비디오를 아스-사합을 통해 내놓았던 것에 비하면 더 확연해진다. 그동안은 이러한 시간의 경과가 그가 죽었을 거라는 추측을 불러왔다. 이제 알 자와히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외부 정보 기관이 얻은 정보로 인해 칭가이 폭격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알 카에다의 미디어 분배 네트워크가 노출되었음은 알 카에다 입장에서 매우 위기의식을 느낄 만한 사건이다. 아마 알 카에다 측은 불필요한 내부 사정 노출을 막는 새로운 대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예전에 알 카에다 지도부 핵심들이 사건에 반응하고 성명을 발표하는 데는 거의 2주 정도, 길어야 3주 이상은 걸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의 10월 8일 지진을 언급한 10월 23일 알 자와히리의 성명 같은 경우 말이다. 칭가이 폭격 이후 알 카에다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증거를 제공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과 평소답지 않은 방법을 통해 최근 비디오를 내놓았다는 점은, 알 카에다 그룹의 미디어 분배 네트워크가 칭가이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알 카에다 비디오 방영의 의미
12 월 20 일, 이슬람 최대 방송국인 알 자지라 방송국에서 알 카에다의 두 번째 리더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비디오가 방영되었다. 그동안 주로 알 카에다에서 제작한 영상물은 자체 미디어 생산 기지인 아스-사합을 통해 방영되어 왔던 점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 점이 비디오 방영 시점과 맞물려 알 카에다의 현재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추측을 가능케하고 있다.
<알 카에다 1인자 오사마와 2인자 알 자와히리>
우선, 비록 아스-사합이 지하드 주의자들의 웹 사이트와 채팅 방에 비디오의 방영을 알리는 배너 광고를 띄우긴 했지만, 비디오가 아스-사합이 아닌 알 자지라를 통해 방송된 것은 드문 일이었다. 지난 1 월 13 일에 알 카에다의 기지라고 생각됐던 파키스탄의 다마돌라가 폭격된 후, 알 카에다는 알 자지라를 통한 성명 발표를 중단했었다. 메시지를 방송국에 전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실패하여 수행원 시스템을 통해 알 자지라에 여러 성명을 전달해왔었다. 메세지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판단한 알 카에다 측은 이후 대부분의 성명과 예고 등을 알 자지라보다 아스-사합을 통해 온라인으로 발표했다.
이것을 고려할 때, 지난 10월 30일에 있었던 칭가이 마을의 한 신학교-알 카에다의 고위 지도자들이 거주했다고 알려진 파키스탄 바자우르 지역에 있던- 폭격이, 아스-사합의 중요한 부분을 파괴한 것은 아닐까 의심된다. 또한, 아스-사합의 인터넷 소식 분배 방식이 외부 정보 기관에 의해 타격을 입었거나 해킹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12월 20일에 방영된 비디오에서 알 자와히리는 여느 때와 같이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매고 검은색 터번과 하얀색 덮개를 둘러 쓰고 나타났다. 비디오의 갈색 배경은 2004 년 4 월, 2005 년 10 월, 2006 년 1 월, 2006 년 9 월에 방영되었던 비디오에서 보였던 것과 동일하다. 언뜻 봐서는 예전에 촬영해놓은 것과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비디오에서 알 자와히리는 10 월 30 일 칭가이 폭격, 미국 중간 선거, 그리고 11월 30일에 있었던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총리 누리 알 말리키의 만남을 언급했다. 따라서 테이프는 분명히 그 날짜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알 자와히리는 칭가이 폭격과 상관없이 살아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어깨 너머 총과 회갈색 배경을 잊지 않는 알 자와히리>
칭가이 폭격은 10월 30일이었는데 비디오는 한 달도 더 지난 11월 30일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 자와히리가 칭가이 폭격에 대해 언급하기까지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마돌라 폭격의 경우, 3주 내로 폭격을 비난하는 비디오를 아스-사합을 통해 내놓았던 것에 비하면 더 확연해진다. 그동안은 이러한 시간의 경과가 그가 죽었을 거라는 추측을 불러왔다. 이제 알 자와히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외부 정보 기관이 얻은 정보로 인해 칭가이 폭격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알 카에다의 미디어 분배 네트워크가 노출되었음은 알 카에다 입장에서 매우 위기의식을 느낄 만한 사건이다. 아마 알 카에다 측은 불필요한 내부 사정 노출을 막는 새로운 대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예전에 알 카에다 지도부 핵심들이 사건에 반응하고 성명을 발표하는 데는 거의 2주 정도, 길어야 3주 이상은 걸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의 10월 8일 지진을 언급한 10월 23일 알 자와히리의 성명 같은 경우 말이다. 칭가이 폭격 이후 알 카에다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증거를 제공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과 평소답지 않은 방법을 통해 최근 비디오를 내놓았다는 점은, 알 카에다 그룹의 미디어 분배 네트워크가 칭가이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