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14-①]-장막을 걷어내다.※

미강200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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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장막을 걷어내다.


 

 

 하연은 입 안에 있는 빵을 오물거리며

 

줄곧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식탁 한 켠에 놓여 있던 쪽지 한 장.

 

 

간밤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더랬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나 싶더니 그만 아침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바로 옆방에 그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하연의 몸 속 깊숙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

 

잠을 설칠 만큼이나 가슴 떨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은 지금도

 

그 사람의 단단한 팔에 매달려 있던 자신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을 때, 이미 그 사람은 없었다.

 

깔깔해진 목을 축이러 주방에 들어갔을 때

 

하연을 반긴 건 싱싱한 토마토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와 조그마한 쪽지 한 장이었다.

 

 

설레는 가슴으로 쪽지를 읽어 본 하연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아침 거르지 말 것!〕

 

 

 

단 일곱 글자로 쓰인 메모와 그 옆에 달려 있는 느낌표까지!

 

메모 한 장에도 그의 체취가 묻어났고

 

거침없는 필체 속에 드러난 강함이 느껴졌다.

 

 

미간에 주름이 생길 만큼 애써 집중해보려 했지만

 

하연은 도무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상상도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것에만 허용되는 지,

 

어렴풋이 떠올릴라치면 흩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피이, 무슨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 부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아침 거르지 말 것!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더 알쏭달쏭한 사람 같으니.

 

 

 

샌드위치와 오렌지 쥬스 한 잔을 다 먹은 하연은

 

문득 향긋한 커피가 그리워 싱크대로 갔다.

 

 

찬장 문을 연 하연의 손이 또다시 멈칫 했다. 다른 한 장의 메모.

 

 

 

〔접시 다 비웠으면 전화할 것! 지금 당장.〕

 

 

 

빙그레 웃던 하연은 지금 당장 전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다가

 

장난기를 거뒀다.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토마토에 물기가 너무 많아서 빵이 눅눅해졌다는 것을 빼면

 

너무 배불리 잘 먹었다는 얘기는 해줘야 하니까.

 

 

어떤 경우든지 그를 기다리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생각들을 잠시 멈춘 뒤 하연은 전화기로 갔다.

 

 

전화를 하고 싶어도 번호를 모르는데 어쩌나, 하는 하연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한 장의 메모가 하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2687-××51〕

 

 

 

이번에는 달랑 전화번호 하나.

 

하연은 민혁이 정말 나간 게 맞는지 잠깐 두리번거렸다.

 

 

곁에 없어도 바로 옆에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하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이나 기쁨이 차올랐다.

 

 

비온 뒤 유난히 맑은 햇빛을 바라보며 하연은 버튼을 꾹꾹 눌렀다.

 

 

뚜르르르― 하는 소리가 정확히 세 번 울린 뒤 목소리가 들렸다.

 

 

 

“…응.”

 

 

겨우 응 한 마디.

 

‘여보세요’도 아니고, ‘일어났어?’도 아니고,

 

‘전화 했군’도 아니라 응 한 마디.

 

 

마치 전화 올 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딱딱한 그의 목소리를 듣자 하연은 조금 약이 올랐다.

 

 

이럴 줄 알았음 정오가 훨씬 지나서 느지막이 전화할걸 그랬지?

 

 

 

“그럼 이제 끊어요.”

 

 

“…잠깐만. 왜 끊지?”

 

 

“별로 할 말 없잖아요.”

 

 

“아니, 있어! 내가 전화 끊기 전에 먼저 끊지 마! 그리고…잠깐 이 쪽으로 나와.”

 

 

“이 쪽이 어딘데요?”

 

 

“조비서 그 쪽으로 보낼게.”

 

 

 

하연은 배시시 웃었다.

 

 

이 쪽과 그 쪽.

 

 

민혁이 있는 곳은 이 쪽이고 하연이 있는 곳은 그 쪽.

 

서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거구나.

 

남자가 차려 놓은 아침 식사를 먹고,

 

하루의 시작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대신하고,

 

짤막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런 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감정일까.

 

 

 

 

“…간밤에 잘 잤어요?”

 

 

“아니. 전혀!”

 

 

“…왜요? 잠자리가 불편했어요? 아니면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예요?”

 

 

“…당신이란 여자가 벽 하나 건너서 있으니까! 당신 때문에 못 잤어!”

 

 

 

툴툴거리며 투정 부리는 듯한 민혁의 목소리를 듣던 하연은

 

묘한 행복감에 젖어 전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어 버렸다.

 

 

나도 그랬어요.

 

당신이란 남자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뒤척거렸어요.

 

순간순간 당신이 내 가슴 속으로 뛰어들어 와서

 

온통 헤집어 놓고 가요.

 

 

그럼 흐트러진 마음 정리하면서 난 또다시 당신 생각을 해요.

 

 

이럼 안 되는데.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리면 안 되는 건데.

 

 

순간적으로 하연은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바보가 되어 버린 걸까.

 

 

 

“민혁씨…나…당신 사랑하나 봐요…. 아니, 사랑해요!”

 

 

“…알아!”

 

 

 

입 밖으로 사랑 고백을 했는데도 이 남자는 끄떡없다.

 

 

오히려 고백을 던진 하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만큼이나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달콤한 어투는커녕 툭, 하고 한 마디 던진 대답일 뿐이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다른 데 있었다.

 

 

알고 있다는 것!

 

 

하연의 마음을 알고 있고,

 

그 마음을 밀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약속.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당당하고 거침없는 고백.

 

 

하연은 민혁의 짤막한 말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그 사람의 숨소리.

 

예전에는 할 말만 하고서 뚝, 끊어버리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끊어야 해!”

 

 

“알았어요. 있다 봐요….”

 

 

결국 샌드위치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뒤 하연은 커피를 홀짝이며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묻어나는 사람냄새.

 

두껍게 쳐진 커튼도 없었고,

 

어두침침한 그늘을 만들어 내는 곳도 없었으며

 

짙게 깔린 어둠도 없었다.

 

 

적막 대신 창 밖에서는 짹짹 지저귀는 참새 소리가 들렸고,

 

간간이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사람이 사는 집다운 집.

 

 

어둠 속으로부터 빛으로 걸어 나온 그가 만들어 낸 두 번째 공간도 너무나 완벽했다.

 

 

따스하고 아늑하고 기쁨이 충만할 것 같은 공간.

 

하연은 쉼 없이 흘러가는 시계 초침을 보며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가야지.

 

그 사람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지.

 

 

 

☆★☆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까칠했다.

 

 

뻣뻣하고 생기를 잃어버린 피부가 손바닥을 스치며

 

꽤나 불쾌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긴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왔지만 오히려 꽈악 주먹을 쥐었다.

 

 

얄푸름한 입술은 군데군데 부르터 있었고

 

눈 밑은 피곤이 만들어 낸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정확해? 여기가 맞아?”

 

 

“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기가 틀림없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후후후후. 그렇단 말이지….”

 

 

 

소름끼치는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마치 살갗을 싹둑 베어내듯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놈이 날 잘못 건드렸어!

 

이 정도로 무너질 나였으면 애초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어!

 

두고 봐! 두고 봐! 절대로…가만 놔두지 않아.”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쨍, 하며 앞좌석에 타고 있는 검은 양복차림의 사내를 향해

 

여자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한껏 비틀린 그녀의 입술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목 뒤로 슬그머니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곧장 행동에 들어갈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저 쪽에서 잔뜩 촉각을 세우고 있어!

 

어설프게 건드리지 마! 그리고…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여자의 입술 사이로 아드득, 하며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간드러지면서도 유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하연이라….

 

몹쓸 병에나 걸려서 꼬들꼬들 말라비틀어질 이름 같으니라고!”

 

 

 

 

사내는 급기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아 내고는

 

몸속으로 전해지는 오싹한 한기를 고스란히 견뎌냈다.

 

 

백미러에 비친 여자의 눈에서 살기를 읽었다.

 

 

살기(殺氣)!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여자의 말을 기다렸다.

 

 

 

“…8년 전에 그랬듯이, 네놈의 목을 그대로 비틀어 버리고 말거야.

 

그 때는 실수했지만, 두 번의 실수는 내 사전에 없어!

 

네놈은 날 잘못 건드린 거야!”

 

 

 

여자의 입에서 8년 전이라는 과거의 이야기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면서

 

그녀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눈빛에 불꽃이 튀며 부르르르 떨었다.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는 몸을 두 팔로 붙잡고 있었지만

 

여자의 분노는 이미 극에 달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깔끔한 반소매 원피스를 차려 입은 하연이 막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린 사내는 더듬거리며 조사한 사항들을 읊었다.

 

 

 

 

“…직업은 간병인이지만 지금 현재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모친 없이 자랐고 아버지는 몇 년 전 병으로 죽었으며

 

특별히 교류하는 친척도 없습니다.”

 

 

“의지가지 할 데 없는 고아라….”

 

 

“…계속 지켜볼까요?”

 

 

“멍청한! 오늘은 이걸로 됐어! 출발해!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야.

 

가끔씩 와서 살펴보면 되겠지. 눈치 채지 못하게 해! 절대로!”

 

 

“예. 알겠습니다.”

 

 

 

부르르릉,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어둠 속에 얼굴을 숨기고 있던 여자가

 

바짝 고개를 쳐들었다.

 

 

독기와 살기로 뒤엉킨 표정은 상냥한 미소로 가려진 얼굴 뒤에 숨어 있었다.

 

 

손가락만 갖다대도 쩍, 하고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는

 

이미 지나갔다.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 같은 분노만 있을 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을 억지로 짓누르던 여자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타고 있는 검은 차는

 

상현이 운전하고 있던 차와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위험한 서곡이 여자의 콧노래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명적이고 지독한 음모의 서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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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소나기가 그쳤습니다.

 

사정없이 빗방울이 튀어 들어올 만큼, 거센 비였는데.

 

짧게나마 더위를 식혀줘서 그런 지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합니다. ^^

 

휴가는 어디로 다녀 오셨나요? 전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을 좋아하는데..

 

아직 못가고 있답니다. ㅎ

 

 

늘 님들이 주신 추천과 발자취에 힘 얻는 미강이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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