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한 친일파. 남로당 군책을 지내다 체포되자 저 혼자 살기 위해 동료의 목숨을 판 기회주의자. 민간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 시월유신으로 종신집권을 획책한 헌정파괴범. 정적을 투옥, 고문, 암살한 반인권사범. 사회전체를 거대한 병영으로 만든 파시스트. 경제주권이 외국에 넘어가도록 썩은 경제구조를 남긴 부패한 권력자. 아니던가?
이 모든 범죄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서 그가 발휘한 공로만은 인정해야 한단다. 경제성장이 왜 박정희 덕일까? 국가주의자. 박정희가 경제를 직접 지도한 덕에 경제발전이 이뤄졌단다. 자유주의자는 거꾸로 자기의 무식을 안 박정희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방임한 게 주효했다고 말한다. 상반되는 이 두 목소리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사이좋게 외치기를, ‘박정희가 경제발전의 주역이었다’, ‘하면 된다’는 박정희의 격려에 국민들이 ‘신나게’ 일을 한 게 경제성장의 원인이었다고도 한다. 치어 리더?
박정희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성을 지켰다고도 한다. 박정희는 집권 초기 미국의 신임을 얻으려고 「민족일보」 조용수와 같은 우익인사를 간첩으로 몰아 살해했다. 쿠데타 후에는 권력을 승인받으러 미국을 찾았다. 그의 독재가 파시즘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본 미국에서 미군철수 운운하자, 그제야 자주국방을 부르짖었다. 파쇼독재를 위한 반미가 민족자주성?
박정희의 피해자 김대중씨가 그를 용서하겠단다. 개인적으로 남을 용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김대중이 국민인가? 게다가 ‘용서하는 것’과 ‘기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정권의 속셈은 박정희 미신이 널리 퍼진 영남의 민심에 아첨하겠다는 것. 기념관이 지역감정을 없앤다면 누구 말대로 ‘내 돈을 내서 짓겠다’. 게다가 <경제=박정희, 민주=김대중, 고로 박정희와 김대중은 한국 근대사의 두 기둥>이라는 김대중씨의 야무진 꿈.
박정희 기념관이 ‘대통령학’을 위한 도서관이라고 한다. 거짓말. 지금 추진되는 것은 신전이지 공공 도서관이 아니다. 기록관도 아니다. 기록관은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자료만을 제공하나, 지금 지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가치평가에 기초한 박정희교 전당이다. 그런데 보수우익의 성지가 될 이 흉물을 짓는 일에 왜 내 세금을 써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죽은 독재자에게 공물을 바쳐야 하나?
박정희를 존경하든, 숭배하든, 개인의 자유다. 그렇다면 각자 자기 집 안방에 각하의 흉상을 모실 일. 왜 특정한 집단의 정치적 작업을 공공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백 번을 양보해도 박정희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합의가 도출된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기념관을 추진하는 것은 이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하는 상징의 폭력이 아닐까?
이 모든 무리를 해가며 굳이 박정희 기념관을 지으려는 이유? 한 마디로 친일과 독재, 부패와 유착의 역사를 가진 한국 보수우익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다. 박정희 개인을 기리는 것은 곧 이 나라를 망쳐온 한국 수구세력의 자랑스런(?) 역사를 기념하는 것. 죽은 독재자에 대한 네크로필리아는 그의 시체만큼 썩은 냄새가 나는 한국 보수우익의 자기애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는 풍흉(豊凶)의 덕과 탓을 왕에게 떠넘기는 원시풍속 얘기가 나온다. 발전의 ‘원인’ 대신에 감사할 ‘은인’을 찾고, 위기의 ‘원인’ 대신에 성토할 ‘범인’을 찾는 것. 조국의 21세기는 아득한 고대의 이 원시풍속으로 시작할 모양이다. 그 건물에는 한국민의 미련함이 그 건물의 재료인 콘크리트만큼 구체적인 형상으로 응결될 예정이다.
"박정희교" 신전건립에 관하여...진중권(예전 글)
박정희?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한 친일파. 남로당 군책을 지내다 체포되자 저 혼자 살기 위해 동료의 목숨을 판 기회주의자. 민간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 시월유신으로 종신집권을 획책한 헌정파괴범. 정적을 투옥, 고문, 암살한 반인권사범. 사회전체를 거대한 병영으로 만든 파시스트. 경제주권이 외국에 넘어가도록 썩은 경제구조를 남긴 부패한 권력자. 아니던가?
이 모든 범죄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서 그가 발휘한 공로만은 인정해야 한단다. 경제성장이 왜 박정희 덕일까? 국가주의자. 박정희가 경제를 직접 지도한 덕에 경제발전이 이뤄졌단다. 자유주의자는 거꾸로 자기의 무식을 안 박정희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방임한 게 주효했다고 말한다. 상반되는 이 두 목소리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사이좋게 외치기를, ‘박정희가 경제발전의 주역이었다’, ‘하면 된다’는 박정희의 격려에 국민들이 ‘신나게’ 일을 한 게 경제성장의 원인이었다고도 한다. 치어 리더?
박정희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성을 지켰다고도 한다. 박정희는 집권 초기 미국의 신임을 얻으려고 「민족일보」 조용수와 같은 우익인사를 간첩으로 몰아 살해했다. 쿠데타 후에는 권력을 승인받으러 미국을 찾았다. 그의 독재가 파시즘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본 미국에서 미군철수 운운하자, 그제야 자주국방을 부르짖었다. 파쇼독재를 위한 반미가 민족자주성?
박정희의 피해자 김대중씨가 그를 용서하겠단다. 개인적으로 남을 용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김대중이 국민인가? 게다가 ‘용서하는 것’과 ‘기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정권의 속셈은 박정희 미신이 널리 퍼진 영남의 민심에 아첨하겠다는 것. 기념관이 지역감정을 없앤다면 누구 말대로 ‘내 돈을 내서 짓겠다’. 게다가 <경제=박정희, 민주=김대중, 고로 박정희와 김대중은 한국 근대사의 두 기둥>이라는 김대중씨의 야무진 꿈.
박정희 기념관이 ‘대통령학’을 위한 도서관이라고 한다. 거짓말. 지금 추진되는 것은 신전이지 공공 도서관이 아니다. 기록관도 아니다. 기록관은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자료만을 제공하나, 지금 지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가치평가에 기초한 박정희교 전당이다. 그런데 보수우익의 성지가 될 이 흉물을 짓는 일에 왜 내 세금을 써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죽은 독재자에게 공물을 바쳐야 하나?
박정희를 존경하든, 숭배하든, 개인의 자유다. 그렇다면 각자 자기 집 안방에 각하의 흉상을 모실 일. 왜 특정한 집단의 정치적 작업을 공공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백 번을 양보해도 박정희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합의가 도출된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기념관을 추진하는 것은 이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하는 상징의 폭력이 아닐까?
이 모든 무리를 해가며 굳이 박정희 기념관을 지으려는 이유? 한 마디로 친일과 독재, 부패와 유착의 역사를 가진 한국 보수우익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다. 박정희 개인을 기리는 것은 곧 이 나라를 망쳐온 한국 수구세력의 자랑스런(?) 역사를 기념하는 것. 죽은 독재자에 대한 네크로필리아는 그의 시체만큼 썩은 냄새가 나는 한국 보수우익의 자기애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는 풍흉(豊凶)의 덕과 탓을 왕에게 떠넘기는 원시풍속 얘기가 나온다. 발전의 ‘원인’ 대신에 감사할 ‘은인’을 찾고, 위기의 ‘원인’ 대신에 성토할 ‘범인’을 찾는 것. 조국의 21세기는 아득한 고대의 이 원시풍속으로 시작할 모양이다. 그 건물에는 한국민의 미련함이 그 건물의 재료인 콘크리트만큼 구체적인 형상으로 응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