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적절한 남자(30)

리드미온200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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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장 저런 사람 어디서 알았어? 잘생기고 매너 좋구..딱이야. 전엔 무역회사 다녔다던데? 뭐 지금 일이랑 그렇게 관계 없는 것 같지도 않고..."

중국팀장은 현수의 면접을 보고 나서 신나서 말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현수에게 나는 별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갖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중국 팀장은 저렇게 신이 나서 말하는 것일까. 이번에 현수는 평소에 나에게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친절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오늘 당장 결정해야겠어. 2주 후에 중국 출장도 있고 그때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

중국 팀장이 만족해 하는 표정을 보며 그제야 내가 깨달은 것은 내일부터라도 현수와 한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현수를 소개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다지 즐거운 일도 기분 나쁜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현수는 나에 대해서 직장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있고 거기다 같이 살았던 사이가 아닌가? 나이를 먹으면 때론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것도 꺼려질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후가 되자 정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마음 속에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유혹이 느껴졌지만 이제 다시 만날 사이가 아니라는 이성적인 제어로 버티고 있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정훈은 문자를 보냈다.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을래? 저녁 때 회사 앞으로 갈게.'

기가 막히다. 어제 난 정훈과 이별을 하고 나름대로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맥주를 마셨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실연도 했고 술도 마셨다. 그냥 다음 날 이젠 그를 잊어야지 하면서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 누구나 겪는 이별의 과정이 아닌가...

나는 정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시 만날 일 없어. 부인하고 행복하게 살아.'

첫문장을 찍고 두번째 문장을 찍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부인을 인정하는 일은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아야. 미안해 하지만 사랑해. 만나줘.'

다시 정훈에게 답문자가 왔다.

미안해, 사랑해, 만나줘...그 짧은 문장들이 너무나 함축적으로 느껴졌다.

현수의 말이 떠올랐다.

결혼한 사람이라고 무작정 사랑을 부정하지 말라고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현수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정말로 자신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면 어려움은 극복해야 한다고.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훈에 대한 나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보고 싶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강한 사랑인지 혹은 정말로 정훈의 인생의 동반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옛사랑의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불명확하기만 했다.

사장은 오후에 나를 불러 한 달 후에 스위스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모인 학생들도 데리고 출국하고 스위스 본사 사장에게 인사라도 하고 오라고 했다.

마음 같아선 한달 후가 아니라 당장 떠나고 싶었다.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중국 팀장은 사장에게 현수에 대해 얼마나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는지 일주일 후에 출근하는 것으로 하라는 얘기를 듣고는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할 수 있으면 일단 출근하게 하겠다고 나한테 알려주었다.

"이현수씨에게는 연락하셨어요? 그 쪽 사정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아직도 현수가 처음 내가 말했을 때 왠지 꺼려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현수가 거절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수도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아까 면접 볼 때 대충 확인했는데 괜찮은 것 같던데? 전화해야지. 암튼 강팀장 고마워. 내가 한턱 낼 게."

정훈과의 문자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거기서 끊긴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왠지 느낌이 정훈이 내 회사 앞에서 기다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음...강팀장 강팀장이 좀 이현수씨 좀 만나볼래?"

중국 팀장은 현수와 통화를 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져서 말했다.

"왜요?"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네..."

"그래요?"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나름대로 능력 있는 사람이 오랜 동안 일을 구하지 않은 건 나름대로 까다로워서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아니면 내가 예상한 대로 나와 일하는 것이 꺼려겨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또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 팀장 성격으로 보아 내가 거절하면 내가 승낙할 때까지 귀찮게 할 것 같아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현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민아씨 덕분에 고마워요. 그런데 상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저 신경쓰지 마시고 본인 뜻대로 결정하세요."

나는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음...제가 저녁 때 그 쪽으로 갈까요?"

애매한 약속이었다. 내가 정훈을 만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현수를 만나야겠지만 만약 내가 정훈을 만난다면 현수와의 약속을 늦추거나 미뤄야 했다.

그런데 현수는 중국 팀장에게 생각할 시간을 하루를 달라고 했고 아마 결정하기 전에 나와 만나서 상의하려는 것 같은데 현수는 반드시 오늘 만나야할 것만 같았다.

"아직 끝날 시간이 확실하지 않은데..."

"그럼 제가 집에서라도 기다릴까요? 아님 민아씨가 늦게라도 전화주실래요?"

현수는 오늘 중으로 나를 꼭 만날 모양이었다.

"좋아요. 그럼 7시에 회사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나요. 일단 그 때쯤 전화 주실래요?"

나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정훈을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알았어요. 회사 근처에서 전화드릴게요. 제가 저녁 사드릴게요."

"네."

일단 현수와 약속을 잡아두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현수가 무엇 때문에 갈등하는지 궁금했지만 그 때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현수씨랑 통화했어?"

중국 팀장은 내 예상대로 나를 쪼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말로 일에 대해서는 대단했다.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저 태도는 때론 배우고 싶기도 했다.

"네. 제가 만나서 얘기해 볼게요."

"알았어. 강팀장만 믿을게. 사장이 중국 시장만 잘 뚫으면 우리 회사 수익이 3배쯤 뛴다고 생각하나봐."

그렇지, 모든 회사는 수익으로 인해 움직이는 거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6시 50분 쯤 되어 현수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회사 건물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내가 먼저 발견한 사람은 정훈이었다. 현수는 약간 회사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민아야. 전화하면 안나올까봐 기다리고 있었어."

정훈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때서야 통화가 끝났는지 현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날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는 현수와 눈이 마주쳤다.

"안만난다고 했잖아."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현수는 정훈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그대로 멀찍이 서 있었다.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하자."

왠지 이런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왜 정훈은 이렇게 나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오빠답지 않게 왜 그래?"

"너야 말로 너답지 않게 왜 그러니?"

무엇이 정훈답고 나다운 것일까?

이별이 멋있길 바라는 것도 나의 욕심인가?

그냥 어제로 끝났으면 좋겠다. 오늘 또 정훈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가?

"날 위해 한 시간도 내줄 수 없니?"

정훈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현수에게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까 의식되었다.

일단은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현수에게도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일단 어디 가서 얘기하자."

나는 정훈의 뒤를 따라 걸었다.

현수는 서 있던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듯 했다. 정훈과 얘기가 끝나고 현수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나는 공적인 약속을 무시한 거였지만 현수가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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