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15-②]-당신이 내게 보여 준 의지※

미강200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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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혁의 얼굴에서 또다시 어두침침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딱딱하게 경직되며 찌를 듯한 날카로운 긴장감이 전해지자

 

하연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건드렸구나. 아픈 상처를 건드렸구나.

 

8년 전 일어났던 일 때문에 세상과 담을 쌓고 살게 되었음을

 

하연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1년 삼백 육십 오일. 팔 년이라는 시간은 이천 구백 이십일.

 

 

삼천 일이 채 안 되는 날들이지만

 

무수히 쌓인 시간들로 따져보면

 

어마어마한 시간의 테두리인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이 남자는 혼자서 어둠 속에 숨어서

 

얼마나 많은 고통들을 참아 왔을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했다.

 

 

하연의 가슴 속에 순식간에 차오르는 먹먹한 아픔을

 

민혁도 눈치 챘던 지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팔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죽지 않고 버텼던 건 단 한 가지 이유뿐이었지.

 

갚음! 복수는 피를 부르지만 난 그저 갚아주기만을 바랬었어.

 

내가 받은 만큼이라도 고스란히 갚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며 내는 아픔들을 씹고 또 곱씹었지.”

 

 

 

“그만해요. 아픈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말하는 동안 또다시 무뎌졌던 아픔들이 고스란히 살아날까봐, 하연은 민혁을 말렸다.

 

 

하지만 민혁은 가만히 팔목을 잡고 있는 하연의 손을 잡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어느 정도 갚음은 끝났지.

 

지금은 망설이고 있는 중이야.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 아니면 저절로 덮어지게 놔둘까.”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상현은

 

뒷좌석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다행히 짙은 선글라스는 이럴 때마다 상현의 표정을 가려 주었다.

 

 

도련님, 이제야 망설이시는 겁니까.

 

망설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던 민혁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민혁이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 지 상현은 벌써 알고 있었다.

 

 

진실로 지켜주고 싶은 사랑 때문에.

 

행여라도 진하연이라는 여자에게

 

파편이 튈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심장을 찔러 버리겠다던 민혁의 결심은

 

가슴 속에 품은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상현의 짐작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민혁의 당부가 이어졌다.

 

 

 

“…밖에 나갈 일 있으면 조비서에게 연락해.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괜찮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고맙지만…!”

 

 

“내 말대로 해! 내 사람이면 내 사람 답게 굴어!”

 

 

“…아, 알았어요. 왜…화를 내고 그래요…. 난 그저…!”

 

 

“나 몰래 돌아다니는 것 따위 딱 질색이니까!”

 

 

 

상현은 속으로만 씨익 웃었다.

 

그냥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항상 조비서와 같이 다니라는 말 한 마디면 될 것을

 

민혁은 일부러 에둘러 말하고 있었다.

 

 

하연이 입을 열려던 찰나, 상현이 차를 세우며 짤막하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지.”

 

 

 

하연은 민혁이 내민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행복에 감사했다.

 

 

누군가를 다정하게 배려해주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던 사람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하연은 민혁에게 물었다.

 

 

 

“…민혁씨는 담배도 피우지 않나요?”

 

 

“끊었어! 왜?”

 

 

“왜 끊었어요?”

 

 

“…담배를 피우면 감정이 너무 쉽게 드러나니까.”

 

 

 

담배를 피우면 감정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

 

잠깐 생각을 한 뒤에야 하연은 민혁의 말이 이해 할 수 있었다.

 

 

불안할 때는 담배 연기마저도 불안하게 피어오르는 법이다.

 

 

응급실 밖이나 수술실 밖에서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 보호자들은

 

대부분의 병원이 그렇듯 금연이라는 사실을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때로는 여유로움과 당당함을 드러내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

 

 

민혁이 그런 모든 감정의 끈들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왠지 모를 아픔으로 다가섰다.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는 냉담함.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훈련받은 냉담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민혁의 말에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

 

 

 도무지 순간순간 놀라지 않는 때가 없었다.

 

 

하연은 눈앞에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반지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아직도 왜 반지를 골라야 하는 지 골똘히 고민하는 중이었다.

 

 

벌써 살펴 본 것 만 해도 열 개가 훨씬 넘었다.

 

 

물론 편안히 자리에 앉아서 반지만 들여다봤기에

 

특별히 힘든 건 없었지만 그 빛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민혁은 아예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대 앉아

 

오밤중까지라도 기다리겠다는 자세였다.

 

 

 

“…저기, 민혁씨 반지…필요 없는데…. 왜 이걸…?”

 

 

역시나 묵묵부답.

 

하연은 민혁의 성격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리 당황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그가 서리서리 냉기를 뿜어낼 것 같은 표정으로

 

한 마디 말도 없이 앉아 있으니

 

점원들은 굵은 땀방울을 닦아낼 만큼이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하연은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프린세스 컷, 페어 컷 등

 

다양하게 커팅된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들을 계속해서 봤지만

 

도무지 아무 것도 모르기에

 

그저 매니저의 설명에 열심히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어떠십니까? 지금 보신 것들은 모두 최상급의 품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시지 않습니까?”

 

 

 

열심히 설명을 해대느라 목이 마른지 매니저가 냉수 한 잔을 쭉 들이킨 뒤에

 

하연의 선택을 재촉했다.

 

 

하연은 점원들의 난감해 하는 표정을 한 사람씩 들여다 본 뒤,

 

정작 모든 상황의 주범이나 마찬가지인 민혁의 태연한 모습에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저, 죄송한데요…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자리 좀….”

 

 

“아, 예! 그러십시오. 언제든 필요하시면 손짓만 하십시오.”

 

 

 

이미 알음알이로 거물급 손님이라는 것을 안 매니저는

 

손짓 한 번으로 점원들을 모두 물러가게 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상냥한 웃음까지 잊지 않은 채

 

매니저도 저 쪽으로 가서 다른 손님을 상대했다.

 

 

하연은 민혁의 곁으로 다가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민혁씨, 도대체 여길 왜 데려온 거에요?”

 

 

“…맘에 안 들어? 그럼 다른 데로 가고.”

 

 

“그런 뜻이 아니구요. 왜 제가 여기, 아니 반지를 골라야 하냐구요!”

 

 

 

사실 하연은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자란데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기에

 

다이아몬드나 루비같은 보석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보석 반지를 끼고 있는 엄마가 없는데!

 

반지라고는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액세서리 하나 사서 끼워본 게 전체경력이었다.

 

 

다음부터는 꼭 어디론가 가기 전에는 목적지부터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하연은 재차 물었다.

 

 

 

“…내가 왜 반지를 골라야 하냐구요!”

 

 

“반지가 싫으면 목걸이를 골라도 돼. 그렇지만 반지가 제일 나을 것 같은데.”

 

 

“그러니깐…그 이유가 뭔지 물어보는 거잖아요.”

 

 

“…날 아주 파렴치한 놈으로 몰아붙이는 군!”

 

 

 

하연은 아예 입을 딱 벌렸다.

 

 

파렴치한 놈? 뭐가?

 

 

민혁의 말투는 으르렁거리며 폭발 직전까지 간 맹수를 떠올리게 했다.

 

설마 어마어마한 값들의 반지들을 모조리 집어 던지려는 건 아니겠지.

 

 

나지막하지만 위협적인 민혁의 목소리를 듣고서

 

바로 곁에 있던 점원 한 명이 움찔 놀라며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이동해갔다.

 

 

이봐요, 이민혁씨. 나랑 단 둘이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성격을 감당해내지 못한단 말이에요.

 

정말이지 자기 멋 대로라니깐.

 

 

 

“…뭐가…파렴치하다는 거예요?”

 

 

민혁은 하연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아 자기를 바라보도록 했다.

 

하연은 점원들의 시선에 잔뜩 신경을 쓰며

 

얼굴에 닿은 민혁의 손을 말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 사람들이 봐요! 민혁씨!”

 

 

“아무 여자나 집에 끌어들이는 그런 놈으로 만들고 있잖아, 지금!”

 

 

“…곡해하지 말아요. 내가 언제…!”

 

 

“아무 남자나 덜컥 따라나서서 한 집에 사는 여자 아니잖아! 그럼 반지 받아!”

 

 

“그, 그게 무슨…소리에요…? 지금…뭐라고 했어요…?”

 

 

“…알아들었으면서 뭘 또 물어봐. 좋아. 다시 설명해 주지!

 

진하연, 당신하고 난 지금 동거관계야.

 

그리고 당신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놓으려는 건

 

단순한 동거관계로 끝내지 않겠다는 내 의지이기도 하고!”

 

 

 

하연은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하연은 지금까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민혁의 뒷모습을 쫓아서 따라왔을 뿐.

 

 

한 집에 살고 있으니 분명 동거관계라는 민혁의 말은 틀림없었다.

 

 

다만, 아직까지 하연은 그 묘한 관계조차 눈치 채지 못했고

 

지금에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뻣뻣하게 굳어진 하연을 느끼며

 

민혁은 조심스럽게 볼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아직 시간을 좀 더 두고 볼 걸 그랬다.

 

조심스럽게 확실한 결심이 선 뒤에 말을 꺼내도 늦지 않았을 걸.

 

 

어쩌면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뒷걸음질 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혁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제길! 그건 안 돼! 절대로!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여자를 보자

 

실수했다는 생각에 속이 뒤틀렸다.

 

 

여자의 반응 하나하나에 이토록 좌지우지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싫으면 됐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하는 남자.

 

 

미적지근하거나 늦장 부리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남자는

 

이미 모든 것을 단념한 뒷모습을 한 채

 

그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진하연, 빨리 대답해!

 

하연의 자아가 재빠르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혁의 등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반지들 중 한 개를 손에 든 채로.

 

 

 

“…민혁씨! 나 결정했어요! 이걸로 할께요!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하연의 대답이 날아가 꽂히자마자

 

민혁은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천천히 돌아서는 민혁의 표정 속에 환한 미소가 녹아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하연에게 주는 매우 값진 선물이었다.

 

 

 

그래요, 그걸로 충분해요.

 

난 당신의 환한 미소 하나면 돼요.

 

짧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하연은 민혁을 향해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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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로그인이 되질 않아서 새글 등록을 못하고 갔었답니다. ㅎ;

 

아침부터 불볕더위를 예상하게 만드는 햇살이 너무나 따갑네요. ㅠ_ㅠ

 

더운 하루, 기운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울함도 툴툴 털어버리고, 짜증도 확 던져 버리고...

 

활짝 웃는 하루 되시길~*^^* 그럼 전 이만 총총총~

 

수욜 저녁에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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