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는 고운 미간을 눈에 띄게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사장이 시키는 일인지라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 놓여진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실크소재의 검은 드레스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몸에 붙는 슬립한 디자인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파진 가슴 부분과 허벅지가 다 보이도록 찢어진 치마선은 화려한 검은 레이스로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감싸여 있었다.
“와.. 이거 왠만해서 소화하기 힘든 디자인인걸? 유미씨같은 사람 아니면 힘들겠어..사장님이 직접 고르신 건가?”
옆에서 보고 있던 김비서가 드레스를 보며 감탄했다. 유미가 봐도 굉장히 섹시해보이고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샌들도 너무 이쁜데.. 이 악세사리들도 다 맞춘건가봐.. 검은 드레스에 흑진주라.. 유미씨 이대로 차려입고 가면 파티에서 남자들 코피터트리겠어.”
“김비서님도 참..”
김비서가 다른 상자에 들어있던 검은 샌들과 악세사리를 꺼내며 말했다. 김비서의 장난어린 말에 유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었지만 내심 자신이 이 옷을 입고, 그와 파티를 가야한나는 사실이 막막해졌다.
“일단은 어서 갈아입자고.. 여기서 더 늦었다가 유미씨나 나나 사장님한테 한소리 듣겠다.”
“...네.”
유미는 드레스를 들고, 휴게실 한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은 유미의 사이즈에 맞춘 듯 어색한 곳 없이 딱 맞아서 슬립한 디자인임에도 움직이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유미가 드레스를 갈아입기가 무섭게 김비서는 유미를 의자에 앉히고 화장품꾸러미를 꺼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에 콤플렉스가 많아서 그걸 감추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익혀왔다는 김비서의 능수능란한 손길에 유미의 얼굴은 금새 마무리되었고, 유미의 긴 생머리는 특별한 장식 없이 한쪽으로 말아 올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진주로 장식된 샌들과 귀걸이, 목걸이, 팔찌까지 온갖 악세사리로 치장하는 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15분. 자신을 꾸미는 데 능숙한 김비서의 솜씨는 짧은 시간에 유미를 한상운사장의 완벽한 파트너로 탈바꿈시켰다.
“역시.. 내 솜씨는 죽지 않았다니까... 몇 십년동안 끈질기게 노력하면 실력은 나이먹는 것하고 상관없다니까!”
예전에 사장의 파트너가 유행에 한참 뒤진 나이 30넘은 아줌마에게 메이크업 받을 수 없다는 그 말에 받았던 상처가 꽤 컸었는지 김비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단호하게 말했다. 유미는 김비서의 표정에 피식 웃으면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유미씨 너무 이쁘다. 안 그래도 원판이 이쁜데 거기다가 내가 봐주니깐.. 우와.. 이거 다른 남자들은 둘째치고 사장님도 유미씨한테 반하는 거 아냐?”
“하하하.. 농담도 참.. 어서 나가봐야겠어요.”
유미는 속으로 ‘그가 그럴 리가 없지’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신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거울속의 그녀는 밑바닥까지 간 더러운 강유미가 아닌 고혹적인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더러운 유미의 모습을 얄미울 정도로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에게 있어 그녀는 단지 인형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유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세상사람 모두가 유미를 그래도 아름답다고 추켜세워도 그는 그들 뒤에서 비웃음으로 그녀를 바라볼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머, 유미씨. 그렇게 쉽게 문 열고 나가면 안되지.. 아무리 사장님이 냉혈한이라도 생물학적으로 남잔데.. 놀라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내가 먼저 나가서 짠! 하고 문열어줄게.”
“아니..그럴 필요는.. 김비서님!”
그런 유치한 발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말릴 틈도 없이 김비서는 잽싸게 나가 문을 닫았다. 워낙 방음이 잘되는 문인지라 김비서가 그에게 뭐라고 말하는 지 전혀 들리지 않아 문 앞에 가만히 서있는데, 정말로 짠! 하는 김비서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버렸다.
“사장님! 유미씨 너무 이쁘죠? 제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도 유미씨같은 원판이 아니면 이런 작품 나오기 힘들다니까요.”
회사 내에서도 냉철하고 상대하기 힘들다고 소문난 사장이었지만 김비서는 그런 것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했다. 회사가 세워질 때부터 계속 그의 비서를 하고 있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비서는 회사 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그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비서는 방문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 유미의 손목을 붙잡고 그의 앞으로 끌고 같다. 그는 유미를 보는 순간부터 여전히 예의 그 무심한 눈빛으로 발끝부터 흘낏 훑어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덮었다.
“지금 출발하지. 김비서, 차 대기시켜. ...가지.”
쇼파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정장 마이를 차려 입고서 성큼 성큼 앞서 걸어가는 그의 뒤를 유미는 두발자국 정도의 보폭을 유지한 채 따라갔다. 김비서는 사무실에 남아있고 어딜 갔는지 또 다른 그의 비서인 윤찬영씨가 보이지 않는 탓에 12층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와 유미 단 둘이 있어야 하는 유미로서는 그다지 탐탁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둘만 있었을 때는 많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 때문에 있었던 것이었고 지금은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드레스 차림에 그의 파트너로 파티에 간다는 상황 때문인지 다른 때보다 그의 옆에 있다는 것이 유미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어색한 엘리베이터안의 침묵은 사장 전용의 빠른 엘리베이터 속도에도 불구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땡!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소리에,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고 한참을 긴장한 채 서있던 유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와 곧바로 연결되어있는 지하주차장에는 이미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는 그의 운전기사와 윤비서가 있었다. 윤비서는 사장의 뒤에서 걸어오는 유미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사장에게 서류를 건냈다.
“말씀하신 서류입니다. 장소는 안에 메모되어 있고, 장기사에게도 말해두었습니다.”
“수고했어. 오늘은 이만 퇴근해.”
“다녀오십시오.”
윤비서의 서류를 받아들고 차의 뒷자리에 타는 그를 따라 움직이던 유미는 순간 멈칫했다. 지금 그의 파트너로서 파티에 가는 것 이라해도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그의 개인비서이자 비공식적으로는 단순한 인형정도의 존재였기 때문에 항상 앞자리에 왔었는데, 옷차림에 바뀌자 어디에 타야 하는 지 망설여 진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유미는 이내 언제 망설였냐는 듯 앞자리의 문을 열고 앉았고 그런 유미의 언제나와 같은 당연한 행동에 오히려 윤비서가 당황했다.
윤비서 역시 유미가 사장의 비서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녀의 옷차림새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유미가 당당하게 앞자리에 앉자 당황한 것이었다. 윤비서나 유미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사장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유미씨만 언제나 불쌍하게 됐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윤비서는 한숨쉬듯 중얼거렸다. 김비서와 마찬가지로 회사가 생길 무렵부터 사장의 옆에 있었던 그였기에 사장이 유미를 어떻게 대하는 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유미가 살고 있는 원룸과 그녀의 차 모두 윤비서의 손을 거쳤으니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더군다나 사장의 지시로 유미의 뒷조사까지 했었던 윤비서였기에 유미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사랑할 권리는 있다...03
6시 20분 전.
까페가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었던 덕분에 유미는 조금 더 일찍 회사로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하게 사장실로 올라가보니 사장은 기다리고 있었는 지 살짝 인상을 쓰며 유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6시에 딱 맞춰오는 뻔뻔함은 많이 나아졌군. 김비서, 빨리 준비시켜."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미례 비서는 유미를 데리고 사장실 옆에 딸려있는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비서들이나 유미가 휴식을 취할 때 쓰는 방인데, 그 곳에는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들이 놓여있었다.
"김비서님, 무슨 일이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오늘 저녁에 있는 파티에 유미씨가 같이 가게 되는 거 같아.."
"네? 제가요?"
유미는 김비서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2년 여 동안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의 온갖 잡다한 일들을 다 떠맡아 했고,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왔지만 그와 함께 파티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응.. 사장님께서 갑자기 이쪽으로 드레스를 배달시키시더니.. 유미씨를 오늘 파티에 데려갈 거라시더라구.“
“하지만.. 사장님의 공식석상 파트너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했었는데..”
“그러게 말야.. 갑자기 왜 그러신지는 나도 모르겠어..”
유미는 고운 미간을 눈에 띄게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사장이 시키는 일인지라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 놓여진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실크소재의 검은 드레스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몸에 붙는 슬립한 디자인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파진 가슴 부분과 허벅지가 다 보이도록 찢어진 치마선은 화려한 검은 레이스로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감싸여 있었다.
“와.. 이거 왠만해서 소화하기 힘든 디자인인걸? 유미씨같은 사람 아니면 힘들겠어..사장님이 직접 고르신 건가?”
옆에서 보고 있던 김비서가 드레스를 보며 감탄했다. 유미가 봐도 굉장히 섹시해보이고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샌들도 너무 이쁜데.. 이 악세사리들도 다 맞춘건가봐.. 검은 드레스에 흑진주라.. 유미씨 이대로 차려입고 가면 파티에서 남자들 코피터트리겠어.”
“김비서님도 참..”
김비서가 다른 상자에 들어있던 검은 샌들과 악세사리를 꺼내며 말했다. 김비서의 장난어린 말에 유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었지만 내심 자신이 이 옷을 입고, 그와 파티를 가야한나는 사실이 막막해졌다.
“일단은 어서 갈아입자고.. 여기서 더 늦었다가 유미씨나 나나 사장님한테 한소리 듣겠다.”
“...네.”
유미는 드레스를 들고, 휴게실 한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은 유미의 사이즈에 맞춘 듯 어색한 곳 없이 딱 맞아서 슬립한 디자인임에도 움직이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유미가 드레스를 갈아입기가 무섭게 김비서는 유미를 의자에 앉히고 화장품꾸러미를 꺼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에 콤플렉스가 많아서 그걸 감추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익혀왔다는 김비서의 능수능란한 손길에 유미의 얼굴은 금새 마무리되었고, 유미의 긴 생머리는 특별한 장식 없이 한쪽으로 말아 올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진주로 장식된 샌들과 귀걸이, 목걸이, 팔찌까지 온갖 악세사리로 치장하는 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15분. 자신을 꾸미는 데 능숙한 김비서의 솜씨는 짧은 시간에 유미를 한상운사장의 완벽한 파트너로 탈바꿈시켰다.
“역시.. 내 솜씨는 죽지 않았다니까... 몇 십년동안 끈질기게 노력하면 실력은 나이먹는 것하고 상관없다니까!”
예전에 사장의 파트너가 유행에 한참 뒤진 나이 30넘은 아줌마에게 메이크업 받을 수 없다는 그 말에 받았던 상처가 꽤 컸었는지 김비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단호하게 말했다. 유미는 김비서의 표정에 피식 웃으면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유미씨 너무 이쁘다. 안 그래도 원판이 이쁜데 거기다가 내가 봐주니깐.. 우와.. 이거 다른 남자들은 둘째치고 사장님도 유미씨한테 반하는 거 아냐?”
“하하하.. 농담도 참.. 어서 나가봐야겠어요.”
유미는 속으로 ‘그가 그럴 리가 없지’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신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거울속의 그녀는 밑바닥까지 간 더러운 강유미가 아닌 고혹적인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더러운 유미의 모습을 얄미울 정도로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에게 있어 그녀는 단지 인형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유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세상사람 모두가 유미를 그래도 아름답다고 추켜세워도 그는 그들 뒤에서 비웃음으로 그녀를 바라볼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머, 유미씨. 그렇게 쉽게 문 열고 나가면 안되지.. 아무리 사장님이 냉혈한이라도 생물학적으로 남잔데.. 놀라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내가 먼저 나가서 짠! 하고 문열어줄게.”
“아니..그럴 필요는.. 김비서님!”
그런 유치한 발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말릴 틈도 없이 김비서는 잽싸게 나가 문을 닫았다. 워낙 방음이 잘되는 문인지라 김비서가 그에게 뭐라고 말하는 지 전혀 들리지 않아 문 앞에 가만히 서있는데, 정말로 짠! 하는 김비서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버렸다.
“사장님! 유미씨 너무 이쁘죠? 제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도 유미씨같은 원판이 아니면 이런 작품 나오기 힘들다니까요.”
회사 내에서도 냉철하고 상대하기 힘들다고 소문난 사장이었지만 김비서는 그런 것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했다. 회사가 세워질 때부터 계속 그의 비서를 하고 있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비서는 회사 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그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비서는 방문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 유미의 손목을 붙잡고 그의 앞으로 끌고 같다. 그는 유미를 보는 순간부터 여전히 예의 그 무심한 눈빛으로 발끝부터 흘낏 훑어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덮었다.
“지금 출발하지. 김비서, 차 대기시켜. ...가지.”
쇼파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정장 마이를 차려 입고서 성큼 성큼 앞서 걸어가는 그의 뒤를 유미는 두발자국 정도의 보폭을 유지한 채 따라갔다. 김비서는 사무실에 남아있고 어딜 갔는지 또 다른 그의 비서인 윤찬영씨가 보이지 않는 탓에 12층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와 유미 단 둘이 있어야 하는 유미로서는 그다지 탐탁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둘만 있었을 때는 많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 때문에 있었던 것이었고 지금은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드레스 차림에 그의 파트너로 파티에 간다는 상황 때문인지 다른 때보다 그의 옆에 있다는 것이 유미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어색한 엘리베이터안의 침묵은 사장 전용의 빠른 엘리베이터 속도에도 불구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땡!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소리에,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고 한참을 긴장한 채 서있던 유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와 곧바로 연결되어있는 지하주차장에는 이미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는 그의 운전기사와 윤비서가 있었다. 윤비서는 사장의 뒤에서 걸어오는 유미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사장에게 서류를 건냈다.
“말씀하신 서류입니다. 장소는 안에 메모되어 있고, 장기사에게도 말해두었습니다.”
“수고했어. 오늘은 이만 퇴근해.”
“다녀오십시오.”
윤비서의 서류를 받아들고 차의 뒷자리에 타는 그를 따라 움직이던 유미는 순간 멈칫했다. 지금 그의 파트너로서 파티에 가는 것 이라해도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그의 개인비서이자 비공식적으로는 단순한 인형정도의 존재였기 때문에 항상 앞자리에 왔었는데, 옷차림에 바뀌자 어디에 타야 하는 지 망설여 진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유미는 이내 언제 망설였냐는 듯 앞자리의 문을 열고 앉았고 그런 유미의 언제나와 같은 당연한 행동에 오히려 윤비서가 당황했다.
윤비서 역시 유미가 사장의 비서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녀의 옷차림새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유미가 당당하게 앞자리에 앉자 당황한 것이었다. 윤비서나 유미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사장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유미씨만 언제나 불쌍하게 됐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윤비서는 한숨쉬듯 중얼거렸다. 김비서와 마찬가지로 회사가 생길 무렵부터 사장의 옆에 있었던 그였기에 사장이 유미를 어떻게 대하는 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유미가 살고 있는 원룸과 그녀의 차 모두 윤비서의 손을 거쳤으니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더군다나 사장의 지시로 유미의 뒷조사까지 했었던 윤비서였기에 유미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