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나쁜남자-프롤로그

김은영200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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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서울의 전경이 한 눈에 내다보이는 어두운 방안에는 네온 불빛만이 넓은 창가에 흘러들어와 창 반대편에 있는 침대 위에 한 몸으로 엉켜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사빈은 손을 뻗어 옆에 누워있는 여자의 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쓸어보았다.  방금 전의 사랑의 행위로 촉촉하게 땀이 베인 여체에서는 다시 그의 몸을 긴장하게 만드는 유혹의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그 향기에 취해 곤히 자고 있는 여자의 몸 위로 올라가 달콤한 향기를 내고 있는 살결 위로 손과 입술을 가져가 다시 한번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과 입이 살짝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곤히 자고 있던 여자의 목에서는 들뜬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의 신음소리에 그의 욕망은 한층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사빈은 여자의 입술에 뜨겁게 키스하며 그녀의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여자를 배려하는 조금의 마음도 없이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풀기위해 그는 익숙한 리듬을 타며 정열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열정적인 시간이 흐르고 사빈은 나른하게 지친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나온 그는 한쪽에 벗어둔 옷을 입고 평소의 차갑고 냉철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집에 가도 기다리는 와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꼭 집에 들어가는 거죠?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나하고 같이 있어요? 이렇게 함께 밤을 보내고 당신이 돌아가면 내가 꼭 당신이 전용으로 이용하는 창녀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고요."

여자는 그가 만든 것이 분명한 흔적들로 붉게 물든 몸을 가리지도 않고 걸어와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뜨거운 입술을 그의 귀에 데고 말했다.

"떨어져.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섹스가 끝난 다음에는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그 정도도 기억하지 못할만큼 머리가 나쁜가?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너와 난 단순히 서로의 즐거움 때문에 만나는 관계지.  서로 사랑해서 만나는 사이가 아니야.  착각하지 마."

여자의 알몸과 대조적으로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예의 그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는 그의 잔인한 말에 그의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고 침대로 가 자신의 감정처럼 구겨진 시트로 몸을 가리고 앉아 탁자에 놓여있는 담배를 피웠다.

"그럼 그동안 난 당신의 육체적 욕망을 풀기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가요? 내가 그런 싸구려 창녀로 보여요?"

“혹시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지금까지 만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웃기지마.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게 너 같은 여자야.  내가 그런 흔한 여자를 내 옆에 둘 거라 생각해.  까불지마.  애교로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니까.  너하고 난 단지 육체적인 욕망을 풀기위한 도구일 뿐이야.  너나 나나 그래서 만난 것 아닌가? 성적인 도구로써 말이야.”

철썩!

“이 나쁜 자식.  당신은 악마야.  넌 얼음으로 된 심장을 가진 냉혈한이야.  이 나쁜 자식.”

그는 여자에게 맞은 뺨을 한번 만져보고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여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방안을 나가고 있는 남자를 붙잡았다.

“그러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말아요.  당신을 사랑해요.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요.  아니 날 성적인 도구로 이용해도 좋아요.  얼마든지 그래도 괜찮아요.  제발 날 버리지만 말아줘요.  제발요.”

“난 이렇게 자존심도 없이 매달리는 여자는 딱 질색이야.  다시는 그 얼굴 내 앞에 내밀지마.  넌 이제 내 육체적인 욕망도 만족시켜주지 못해.  이제 넌 성적인 도구로써의 이용가치조차 없었졌어.  이런 말 너한테 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나 다음주에 결혼해.  이제 널 찾을 이유도 이젠 없다는 거야.  알았어?  만약 돈을 원하면 얼마든지 주지.  돈을 원하나?”

여자는 그의 잔인한 말에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녀에게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었다.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자존심이었지만 더 이상은 싫었다.  더 이상은 그가 자신에게 상처 입히도록 나두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두 손을 꼭 쥐고 그를 향해 똑바로 서서 당당한 얼굴로 그를 마주보았다.

“당신 돈은 필요 없어요.  나도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언제까지 그렇게 차가운 얼굴로 있을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요.  당신 같은 남자가 한번 사랑에 빠지면 물불 안 가리고 무섭게 한다고 하더군요.  지켜보겠어요.  당신이 어떤 사랑을 하는지 말이에요.  여기서 더 바란다면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나하고 똑같은 아니 나보다 더한 상처를 받기를 빌겠어요.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어요? 저도 이젠 귀하신 선우그룹의 사장님한테 볼 일이 없거든요.”

그녀는 마지막까지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며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그는 잠시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랑? 나에겐 누군가를 사랑할 가슴이 없다.  그 가슴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아직 돌려받지를 못했으니까.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그녀에게서 나의 심장을 돌려받았다는 것이 될 것이다.  나의 심장을 가지고 떠나버린 그녀.  나의 사랑은 그녀가 마지막인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여자는 그녀 한사람뿐이며 나의 아내는 그저 선우그룹의 안주인이라는 이름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마 내 아내라는 여자도 그것 때문에 나와의 결혼을 승락했을 테니까.  돈에 팔려오는 여자.  그것이 곧 내 아내가 되는 여자의 실체니까.  사랑? 내 아내는 나에게 어떠한 감정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  돈 때문에 나와의 결혼을 승낙해 버린 여자.  그녀는 나에게 단지 합법적으로 허락된 섹스파트너일 뿐이다. 

한소리.  나의 아내가 될 여자.  당신도 나에게 사랑을 원하나? 난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한다.  당신으로 인해 난 이제 나의 여자와 만날 수도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도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  난 한소리 당신을 영원히 미워하고 원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