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의 로맨스](32)호락하지 않은 집안

瓚禧200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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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락하지 않은 집안




산넘어 산이라는 말이 여기서 사용되어야 하나??!



한참을 진정 못하고 꿈속을 헤매이던 나에게 덜컥 하균이 등장한건 그때였다. 안그래도 심장 한구석이 울렁거려서 곧 멈출 것처럼 뛰어대더니 하균을 보니 더 심해졌다.




“오랜만이네요! 혜진씨...”


“............그러네요...”


“서로 알고 있던 사이니?!”


“네... 큰어머니도 잘 계셨죠?!”


“그럼! 이리와서 앉아라. 시원한 화채내줄께!”



라며 신이난 표정으로 주방으로 어머님이 들어가고 나서야 난 멈추었던 숨을 쉴수 있었다.




“왠일이야?!”


“내가 형네 집에 오는게 왠일이라는 소리 들을정도인가??!”




라며 하균은 연우의 물음에 싸늘히 대답하였다. 그리곤 내 옆에 털썩 주저 앉듯 앉았다. 그와 간격이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어머님이 투명한 유리 그릇에 수박 냉채를 담아와 작은 투명 유리 그릇에 담아 하균과 나와 연우씨 앞에 각각 하나씩 놓아주었다.


어머님의 성화에 못이겨 냉채를 한모금넘길때 마다 가슴이 알싸해져 오기 시작했다.



“근데 혜진씨라고 했던가?! 혜진씨랑 하균이는 어떻게 아는거야?!”


“그게....저.....”


“전번에 편의점 알바했을때 그 동네 살던 누나예요...”




누나라... 하균의 입에서 누나란 소리 처음 듣는 말 같았다. 그의 입을 타고 누나라는 두 단어가 흘러나왔을때의 그 느낌이란.....


좀 허무한 감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끔 세현이와 아버님이 들어간 방에서 깔깔 대는 세현의 웃음소리가 신경에 거슬렸고, 내 옆에 앉은 하균과 그를 노려보는 연우씨, 어리둥절 두 얼굴을 쳐다보는 어머님... 그 사이에 껴 고래싸움에 낀 새우마냥 앉아있는 나...



첫 대면은 그러했다.



그의 손을 잡고 저녁도 먹지 않은채 나온 그의 집은 내가 들어갈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였다. 아름답고 손길 많이 닿아 보였던 그 집은 이젠 악마의 소굴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도 지금 내가 많이 긴장해서 그러겠지...했지만...두번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집밖으로 나오면서 잔뜩 굳어있는 그의 표정과, 내 손 마주잡고 있는 그의 떨리는 손길이...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세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예상했었지만 무척이나 강적이였고, 아버님 역시 그녀를 아직도 예비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계심에 틀림 없었다. 여우같은 장세현씨.....


여우와 대적할려면 내가 여우가 되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싸움엔 항상 밀리는 나지만, 지고 싶지 않다는 경쟁의식 만큼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 나였다.



말없이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던 그는 돌아서 집에 들어가려던 나의 팔을 잡고 휙 돌려 세웠다. 그리곤 날 말없이 꼬옥 껴 앉아주었다.




“미안...힘들었지?!”



따스한 그의 품에 쌓여 난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예요...나 노력해 볼께요. 어머님, 아버님 마음에 들게...노력해 볼께요....”



내 말에 그의 팔에 조금더 힘이 들어왔다. 아마도 그는 이래서 나에게 프로포즈를 쉽사리 하지 못했나 싶으니깐 가슴이 아파왔다. 자기 자신보다도 날 먼저 배려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미안...이렇게 힘들게 상황이 되서...미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나 힘들까봐 당신이 그랬던거...나 이젠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날 밤 우리는 한없이 서로를 끌어앉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그의 따스한 맥박과 심장소리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난 넓고 따스한 그의 등에 기대어 마치 둥지에 돌아온 새마냥 그렇게 안락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회사 퇴근하기 무섭게 난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본 어머님은 천상여자셨다. 그런 여인네의 미덕은 요리솜씨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낸 결론은 세현! 그 여자보다 훨씬더 좋은 요리솜씨를 내는거였다.


물론 내가 그렇게 결정을 내린데에는 엄마의 영향력이 컸지만 서도 말이다...




-연우 엄마??! 천상 여자지... 전에 언젠가??! 자긴 며느리 들이면 꼭 살림 잘하고 현모양처로 들일꺼라고 하던데??!



내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첫날이라 그런지 어리버리 하고 아직은 뭐가 뭔지도 모르겠었지만, 난 다시 고3 수험생이 된 마냥 선생님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다시 적고 하느라 어떻게 수업이 진행됐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은영이에게 전화를 걸어 간만에 은영이와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휴.... 안할려다 할려니깐 정신이 멍해....”


“왠 고생이니?! 그래도 니가 이젠 연우씨가 좋긴 한가부다?! 그렇게 노력도 다 하고....”


“좋기야...하지! 근데 첩첩 산중이야....”


“하긴..그렇겠지.....간만에 술이나 한잔 할까?!”




은영이와 나는 근처 허름한 대포집으로 향했다. 커피숍이나 다른 기타 밥집 같은경우는 깔끔 한 곳만 찾는 반면, 술집만큼은 아주 허름한 곳만 찾는 우리였다. 누가 그러자고 한것도 아닌데... 어느새 법칙처럼 정해진 일종의 규칙같은 것이였다.



은영이와 나는 간만에 참이슬을 벗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은영인 자기잔을 말끔히 비우고선 매콤한 김치전을 우물대며 아무렇지도 않게 툭 하니 한 마디 내 뱉었다.




“너 하균이가.... 아직도 널 못잊는거 알지?!”


“어?!.........”




물론 그 일에 대해선 나도 은영이도 서로 알고 있었지만, 서로 알면서도 쉬쉬했던 일이였다. 난 은영이가 상처받을까봐 쉬쉬 했던 거였고, 은영이는 자기 자신이 들어내놓고 자신의 치부를 보이는 것 같을거란 생각에 나에게 말을 안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은영이가 자신의 입으로 그 일을 꺼내올렸다.



“그렇게 놀랄 것 없어. 나  하균과 사귀면서 니 이야기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다. 쿡쿡”




은영이는 그 말과 함께 개구진 표정으로 귀를 파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그 모습이 가슴 저려 난 말간 소주잔을 또 한번 꿀꺽 넘겼다. 알싸한 소주맛이 밀려왔지만 굳이 안주를 입에 넣어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난 말없이 은영이의 소주잔을 가득 채우고선, 내 소주잔도 자작으로 채워 넣었다.



은영이도 아마 알것이다. 그런 내 행동이 마시고 죽자라는 것을.....



은영이와 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주를 탁 털어 넣었다.





“가끔은 말야...니가 미웠어. 하균이한테 마음이 가버린 내 자신도 그렇고, 그렇게 널 잡고 못 놓는 사람... 내 곁에 놔두는것도 그렇고....”


“...................”


“하지만...나 그 사람 가질꺼야. 나 그사람이랑 결혼 할꺼야. 그럴래....그럴꺼야..... 난 그래서 니가 빨리 연우씨와 결혼하길 바라는거야.....”


“나도 빨리 하고 싶어....”


“알고...있어.. 그치만..조금만 더 서둘러 주면 안될까?! ... 나 사실 조금 힘들다... 너 연우씨네 집에 상견례 간다고 했던날...그날 저녁 하균씨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 나랑 너도 구분 못하더라...날 잡고, 니 이름 부르면서 우는데.... 나 할 말이 없더라..... ”





서로 어긋난 사랑을 붙들고 사는건...썪은 동앗줄을 붙들고 사는 것 같다. 가슴 아픈사랑...서로 서로가 아님을 알면서도 서로를 외면 못하는 그런 사랑.....



은영이의 아픔이 나한테 고스란히 전해져 손끝부터 찌릿 찌릿하게 올라왔다.



그 흔한 미안하다는 말도 목구멍에 탁 막혀버려 입만 벙긋댈뿐 어떤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척, 못들은척 소주잔만 넘길뿐.....




은영이와 나는 늘어가는 소주잔 만큼이나 눈물을 쏟아내었다. 알콜이 몸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엇이 그토록 서럽던지.... 눈물로 수분을 다 빼어낼 정도로 우리는 울고 웃고 또 울었다.





“그래서!!!!! 난 니가 싫어! 어?! 미친년....친구만 아님!! 넌 아웃이야 아웃!”




은영이는 잔뜩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아웃이라는 포즈까지 취하면서 나한테 시비였다. 난 그런 은영이를 보며 피식 피식 웃을 정도로 취해있었다.




“나도 너 싫어!!! 왜 하필 하균이야! 하균이!!!! 아씨...몰라 몰라! 아줌마! 여기 얼마예요?!”




잔뜩 취해 버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술값을 내곤 잔돈은 주머니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두고선, 연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연우씨가 잠을 깬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저.... 혜진인데요! 저 내일 회사 못가요!”


“왜?! 무슨일 있어?!”


“은영이랑 술마셨는데..요... 못가요! 월차처리좀 해달라구요...”


“지금 어디야?! 내가 갈께!”


“남자가 끼면 안될때라서 그래요..부탁해요!”





물론 이런식으로 직장 상사에게 내일 회사를 못간다는사실을 고하면 안될테지만, 이래서 직장상사랑 사귀는게 좋은 것 같았았다. 이유 불문 ‘ 나 내일 회사 못가!’ 통보식 월차라...쿡쿡 웃음이 나올 일이였다.



은영이와 나는 서로 잔뜩 취해 버려 서로의 몸에 서로를 기대고는 비틀거리면서 우리집으로 향했다. 물론 가는길에 내 손에는 훈제 오징어와 아주 차가운 맥주 몇병이 담긴 봉지가 들려있었던건 당연한 일이였다.




“말 안하고 넘어갈라고 했는데...그건 말이지....곪아버린 종기같은거야! 그치?! 그치?!”


“그럼..말하고 짜버리면 그당시에만 아프지..나중엔 괜찮잖아....”


“그치?! 그런거지?!”


“응.... 많이 힘들었니?!”



많이 힘들었냐는 내 말에 은영이는 가만히 맥주캔을 옆으로 밀어넣고 내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누었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은영이가 눈을 감자 미쳐 떨어지지 못했던 눈물이 조로록 흘러 내렸다. 난 아무말 없이 은영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많이 힘들었어. 너한테 내색할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균이 한테 말할수도 없었던 거잖아...그래서 힘들더라...근데...근데 이젠 좀 괜찮아. ”


“우리 이렇게 친한데 결혼하면 또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기겠네?!”


“그렇네?! 너 형님 노릇 할꺼야?!”


“형님??!”


“듣자하니... 하균이네 부모님은 외국에 계시고, 연우씨 부모님을 친 부모처럼 여긴다는데...그럼 내가 너한테 형님이라고 해야 하는거잖아. ”


“듣자하니 그렇네?! 쿡쿡 형님이라..... ”




우리는 웃고 있었다. 물론 그 웃음 뒤에는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가 빨갛고 흉한 모양새를 들어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이 지나가면 상처는 아물것이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서로를 대면할 것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나다 보면 내 앞에 놓여진 커다란 산같은 일들은 없어지겠지?!.....



나와 은영이는 서로 누워 작은 창문으로 어스름 하게 흘러 나오는 태양빛을 받으며 그대로 잠이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