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워드)가 슈퍼보울 MVP를 먹었는데, 그가 50% 한국인의 혈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이 사실과 현상을 포착한 언론과 상업주의는 또 다시 한국인의 후진국 콤플렉스를 들쑤시기로 기획한다.
대 놓고 상업주의를 실현하려 하고, 대 놓고 한국인의 후진국 콤플렉스에 대한 psychologic DDRism(심리적자위행위)을 행할 수 없던 이들은 "혼혈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 이란 닭살 돗는 명분을 하나 마련한다.
잠시 각설해서,
미국 내의 혼혈문제와 한국 내의 혼혈문제는 그 것의 근본 부터 서로 전혀 다르다. 한국사회는 혈통주의가 존재하며, 더 나아가 강한 폐쇄성과 이상한 민족주의 까지 판치는 사회기에 혼혈인들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미국은 혈통주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혼혈이란 사실이 한 사람의 인생과 신분과 흥망에 큰 영향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매체들은 하인스는 50프로 <한국인>이었단 이유로 성공하기 까지 엄청난 인종적 박해와 소외를 겪었으며, 결국 <한국인>어머니의 <한국적 사랑>을 통해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신화를 이룬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전체적 컨셉을 맞추었다.
그리고선
1)심파극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하인스와 그의 어머니가 미국사회에서 겪었다는(?) 인종차별과 가난, 그리고 소외를 터무니 없는 과장으로 살을 덧붙혀 슬픈 심파극화 한 후, 대중들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억지로 쑤셔 넣었고,
2)국민들이 갖고 있는 대국콤플렉스, 서구콤플렉스, 사대주의의식 등에서 오는 '종합형 후진국콤플렉스'를 하인스를 톨해 DDR해 주었다. 즉, 하인스를 모셔와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주고, 김치를 먹이고, 한복을 입히는 쇼를 통해 대중들이 그를 '한국인'으로 반정도 착각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매한 대중들은 <한국인 하인스>가 '대 미국'의 가장 미국적 스포츠인 풋볼을 평정한 <위대한 '우리' 한국인>으로 또 이상한 착각을 하게 되어 그 동안 갖고 살던 종합형 후진국콤플렉스가 한 번 사정하듯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해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쇼비즈를 한 매체와, 그 매체들과 이해관계를 맺은 상업주의에 의해 하인스는 한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업모델이 되었고, 우매한 대중들은 시원하게 즐딸 한 번 때린 것이다.(물론 그 후에 좀 허무 했겠지만).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 맞다. 그렇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어차피 이 쇼비즈 프로젝트의 '명분'이었던 <혼혈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명분으로서의 가치 밖에 없는 허상이었지만, 이 하인스 열풍이 지난 후 혼혈인들이 느낀 감정은 아주 머시기 했을 듯 하다.
하인스와 그의 상업적 이해관계자들은 다 하나 씩 챙겨 갖고 떠난 지금, 축제의 들러리로 쓰이고 내 팽겨쳐 진 <한국사회의 혼혈인>들은 하인스가 겪었다는(?)미국 내의 혼혈문제(???)가 도대체 한국사회에서의 혼혈문제와 어떤 직접적 연관성이 있어서 그 동안 언론들이 징하게도 매체질을 했는지 이해도 안되고 황당하다 못 해 울화가 치밀 것이다.
하인스 열풍 이후로 혼혈이란 것이 하나의 쿨한 트렌드 코드가 되기도 했지만, 그 것은 그냥 거기 까지이다. 그 것으로 인해 "미국사회에 사는 미국인이지만 한국 혈통을 가진 혼혈인"이 아닌, "한국사회에 사는 한국 혈통 혼혈인, 즉 다 한국인인데 피부색과 외모만 달라 소외를 겪는 일부의 <한국인>"들의 문제는 하인스건 전이나 지금이나 내팽겨진체 그대로란 말이다.
결국 한국의 대중들은 작년에 큰 착각을 했던 것이다.
하인스에게 도취되어 눈물을 짜며 공허한 심파극 하나 감상한 주제에 스스로 혈통주의란 악습을 벗어나 뭔가 진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 것 같은 우월감에 빠져봤던 것이며, 미국인 하인스를 '한국인 하인스'로 착각해서 종합형 후진국 콤플렉스를 자위하기 위해 신나게 한 번 DDR을 땡겨 줬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미국에 사는 한국계 혼혈인>이 아닌 <한국에 사는 한국국적 혼혈인>이 겪는 불평등은 말이다.
하인스워드 영웅만들기가 한심했던 이유
한국의 질 떨어지는 매체들이 작년에 벌인 위선스런 짓거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인스(워드)가 슈퍼보울 MVP를 먹었는데, 그가 50% 한국인의 혈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이 사실과 현상을 포착한 언론과 상업주의는 또 다시 한국인의 후진국 콤플렉스를 들쑤시기로 기획한다.
대 놓고 상업주의를 실현하려 하고, 대 놓고 한국인의 후진국 콤플렉스에 대한 psychologic DDRism(심리적자위행위)을 행할 수 없던 이들은 "혼혈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 이란 닭살 돗는 명분을 하나 마련한다.
잠시 각설해서,
미국 내의 혼혈문제와 한국 내의 혼혈문제는 그 것의 근본 부터 서로 전혀 다르다. 한국사회는 혈통주의가 존재하며, 더 나아가 강한 폐쇄성과 이상한 민족주의 까지 판치는 사회기에 혼혈인들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미국은 혈통주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혼혈이란 사실이 한 사람의 인생과 신분과 흥망에 큰 영향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매체들은 하인스는 50프로 <한국인>이었단 이유로 성공하기 까지 엄청난 인종적 박해와 소외를 겪었으며, 결국 <한국인>어머니의 <한국적 사랑>을 통해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신화를 이룬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전체적 컨셉을 맞추었다.
그리고선
1)심파극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하인스와 그의 어머니가 미국사회에서 겪었다는(?) 인종차별과 가난, 그리고 소외를 터무니 없는 과장으로 살을 덧붙혀 슬픈 심파극화 한 후, 대중들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억지로 쑤셔 넣었고,
2)국민들이 갖고 있는 대국콤플렉스, 서구콤플렉스, 사대주의의식 등에서 오는 '종합형 후진국콤플렉스'를 하인스를 톨해 DDR해 주었다. 즉, 하인스를 모셔와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주고, 김치를 먹이고, 한복을 입히는 쇼를 통해 대중들이 그를 '한국인'으로 반정도 착각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매한 대중들은 <한국인 하인스>가 '대 미국'의 가장 미국적 스포츠인 풋볼을 평정한 <위대한 '우리' 한국인>으로 또 이상한 착각을 하게 되어 그 동안 갖고 살던 종합형 후진국콤플렉스가 한 번 사정하듯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해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쇼비즈를 한 매체와, 그 매체들과 이해관계를 맺은 상업주의에 의해 하인스는 한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업모델이 되었고, 우매한 대중들은 시원하게 즐딸 한 번 때린 것이다.(물론 그 후에 좀 허무 했겠지만).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 맞다. 그렇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어차피 이 쇼비즈 프로젝트의 '명분'이었던 <혼혈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명분으로서의 가치 밖에 없는 허상이었지만, 이 하인스 열풍이 지난 후 혼혈인들이 느낀 감정은 아주 머시기 했을 듯 하다.
하인스와 그의 상업적 이해관계자들은 다 하나 씩 챙겨 갖고 떠난 지금, 축제의 들러리로 쓰이고 내 팽겨쳐 진 <한국사회의 혼혈인>들은 하인스가 겪었다는(?)미국 내의 혼혈문제(???)가 도대체 한국사회에서의 혼혈문제와 어떤 직접적 연관성이 있어서 그 동안 언론들이 징하게도 매체질을 했는지 이해도 안되고 황당하다 못 해 울화가 치밀 것이다.
하인스 열풍 이후로 혼혈이란 것이 하나의 쿨한 트렌드 코드가 되기도 했지만, 그 것은 그냥 거기 까지이다. 그 것으로 인해 "미국사회에 사는 미국인이지만 한국 혈통을 가진 혼혈인"이 아닌, "한국사회에 사는 한국 혈통 혼혈인, 즉 다 한국인인데 피부색과 외모만 달라 소외를 겪는 일부의 <한국인>"들의 문제는 하인스건 전이나 지금이나 내팽겨진체 그대로란 말이다.
결국 한국의 대중들은 작년에 큰 착각을 했던 것이다.
하인스에게 도취되어 눈물을 짜며 공허한 심파극 하나 감상한 주제에 스스로 혈통주의란 악습을 벗어나 뭔가 진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 것 같은 우월감에 빠져봤던 것이며, 미국인 하인스를 '한국인 하인스'로 착각해서 종합형 후진국 콤플렉스를 자위하기 위해 신나게 한 번 DDR을 땡겨 줬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미국에 사는 한국계 혼혈인>이 아닌 <한국에 사는 한국국적 혼혈인>이 겪는 불평등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