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에서 기적이 일어났을 때, 전국민은 환호했었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얻던 당시보다 더 기쁘다고 말씀들을 하실 정도였다. 우리 모두는 기적을 보았고, 꿈을 꿀 수 있었다. 우리에게 꿈은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바로 이때, 우리 모두 기적에 감격하고, 한창 꿈속에 있을 때, 노무현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가 5공 청문회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았음에도 고시에 합격, 검사가 되었으며, 후에 노동운동을 위해 오랫동안 변호사로 활동해왔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가난했고 소위 빽도 절도 없었지만. 오직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학벌도 없으면서도 출세를 했던 것이다. 그는 도저히 대통령 감이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귀티’도 나지 않았다. 그는 못생겼었다. 그리고 비록 정치계에 오랜 동안 몸을 담갔지만, 무슨 대단한 연줄이나 배경도 없는 소수세력이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는 배경도 없으며, 내세울 것도 변변치 못했다. 더욱이 그와 경쟁하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위세가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회창과 노무현의 대결은 마치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우리니라와의 대결과도 같아보였다. 그 누구도 우리의 승리를 예상할 수 없었듯이, 소위 최고 엘리트 코스를 겪었으며, 언제나 주류의 핵심에 있었던, 그리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당해본 적이 없었던 귀족 이회창을 노무현이 이기리라고는 감히 기대하기조차 어려웠었다.
그랬던 노무현이 기적을 일으켰다. 그는 가장 밑에서부터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가면서 성장했다. 처음에는 지지율에서도 비교될 수 없었던 그가 마침내 이회창과 대등한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선거에서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 생각하며 감격해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무엇이든지 진실로 꿈을 꾸면, 그것이 아무리 허황되어 보일지라도 현실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아무리 기득권층이 반발을 하고, 억압을 하려 해도 국민의 의지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역사적 진실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던 이유로,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앞으로 그가 해쳐나갈 어려움들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걱정할 정도였다. 그는 기적 자체였다. 당시, 나는 그의 승리를 보면서, 성배전설과 그 주인공인 ‘파르지팔’을 떠올리곤 했었다. 오직 진실에 대한 순수한 갈망만이 진실에 다가가게 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만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전설의 교훈을 되새기곤 했었다.
그렇게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그의 모습은 다시, 몇 년 뒤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세계 과학계의 기적의 인물인 황우석 박사와 많이 겹쳐졌다. 월드컵 4강의 기적과 진정한 축제의 부활, 노무현과 그의 정치적 혁명, 그리고 순수 토종 학자인 황우석 박사의 업적, 아마도 우리 국민들에게 이 몇 년 동안은 참으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리라.
노무현이 그렇게 단단한 정치적 입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에 단단히 고생을 할 것이라는 점 등은 거의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으며, 오직 이런 난관들을 그 자신의 검투사적 용맹한 기질과 열광적인 국민적 지지를 통해 극복해내기를 실로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원했었다.
제 아무리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하고, 미국의 압력이 심각했을지라도 그는 그의 초심을 유지해야 했으며, 뚝심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개혁을 말하고, 국가적 자존심을 목 놓아 외쳤지만. 그가 이 정권을 운영하면서 보여주었던 것은 오직 실망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그는 미국의 반테러 세계 전쟁에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우리 군인들을 참전시켰으며, 우리나라의 굵직한 공기업들과 은행들을 민영화(개인 사유화)시키려는 초국적 자본들의 날도둑질에 그 어떤 반대의사도 하기는커녕, 그 앞잡이들을 국가관료로 등용시켜서는 ‘호율성과 합리화’를 이름으로 허용했으며, 대북한 문제에서 미국과 보수세력들의 압력에 굴복, 한반도 위기를 자초하면서 매우 어정쩡하며 결국은 아무 도움 안되는 중국에게 비굴할 정도로 의존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부동산 관련 이상징후와 문제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도 그것을 외면, 늘 비현실적이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만적 정책들만을 입안시켜서 부동산 시장을 더욱 교란하기만 했으며, 마침내 망국적 경제거품붕괴의 위기 상황까지 오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개인적으로 어떤 성격적 결함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이상한 변덕을 부려서 늘 모든 것을 불안하게 한다는 식의 비판에 별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은 사람마다의 개성의 차이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라, 그의 이성과 판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이제 와서 비판하려는 것은 바로 그의 이성과 판단, 그리고 도덕성에 관한 것들이다.
며칠 전 그는 갑자기 생뚱맞게 보일정도로 대통령 이전 시절의 모습을 연출해냈다. 솔직해 보이고, 다소 과격하게 맘속에 있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보통의 국민들과 정적들은 경악했으며, 그의 팬들은 환호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참으로 노무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위기 상황마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자기정체성 게임’을 통해서 살아남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언제나 소수자라는 피해의식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애매모호함’이다. 그에게 불확정성과 비규정성은 ‘적대적’인 상황을 의미할 뿐이다. 그에게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임에도 전체를 고려하기 보다는, 그래서 그것과 관련된 애매모호함을 운영하기 보다는, 그는 늘 확실한 ‘자기편’에 집착한다.
그에게 ‘적’은 선험적인 존재이며, 주어진 것이라면, ‘자기편’은 자신의 노력으로 확보해야만 하는 생존을 위한 ‘당위’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적을 의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래서 이제 중요한 것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에게 얼마만큼의 동지가 있는가일 뿐이다. 그에게 ‘중간자’는 별 의미가 없거나 적극적으로 자기편으로 만들어야할 대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언제 자기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기에 그는 중간자의 존재를 가장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제외하고는 잘못한 것이 없으며 반대 세력들의 집요한 공작으로 인해서 자신의 개혁이 성공하기 힘들었다는 새로운 음모론을 만들고 변명을 해댔으며, 자신의 정적들에 대해서 거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의 황당한 모습에 당황했으며, 어이없어했다.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연 그는 오직 부동산 문제에서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며, 그 부동산 문제라고 하는 것은 ‘오직 부동산 문제뿐’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의 이런 변명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부동산 문제가 ‘오직 부동산 문제뿐’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식의 논법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김영삼 정권은 'IMF 사태‘ 말고는 성공적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학살 말고는 성공적이었다”식의 논법에도 동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내년 말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다음에 매우 위태롭게 될 것이라 판단한다. 전두환의 경우, 그렇게도 배경이 많고, 지원세력이 튼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다음에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그는 자신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단지 그 정도의 정치적 희생물이 될 수 있었으며, 오히려 그런 유배생활로 말미암아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의 실제적 과오에 비하면, 그가 치렀던 대가는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현재의 정국 상황에서 보면, 자신의 집권기에 있었던 과오는 물론이거니와 전대의 김대중 정권부터 시작했던 문제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운명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설사 그가 별로 실정이 없더라도, 정적들은 그를 철저히 희생시켜서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다질 요량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무현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으며, 그의 피해의식은 극대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칫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이제껏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에서 뒤끝이 좋았던 대통령은 거의 없다. 거기에 노무현은 아무 것도 없기에 그야말로 그는 완전 ‘봉’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생리 속에서 그가 살 길은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미국 등 외국으로 도망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뭔가 자신을 지켜줄 세력을 단단히 확보해두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가족들 대부분을 미국으로 이주시켰다. 물론, 그가 집권기에 정치적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시, 다소 무리하게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지세력들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 노무현은 여기 있소! 내가 바로 그때의 노무현이오!”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으로부터 떠난 마당에 그들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오직 아직도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치는 ‘자기 정체성’ 게임을 통해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 여권의 차기 주자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차기 대권에서 현 야권이 승리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미 한나라당과 그 세력들은 지난날의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꼴보수’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다. 조갑제, 정형근, 김용갑, 그리고 박근혜의 원죄이다. 한나라당은 이들 때문에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지금 그들의 인기는 ‘환영’일 뿐이다. 여권에 인물이 없는데서 오는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만일 여권에 어떤 인물이 나타나게 되면, 전세는 급격히 반전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현 여당인 ‘우리당’은 다른 이름을 가짐으로써 과거로부터 단절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노무현은 가장 만만하고 확실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나는 인간적으로 노무현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그는 용서받기 힘든 많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과거의 인물들과는 달리 피할 구멍이 거의 없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팔자가 박복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의 비극은 우리 대한민국의 불행을 의미할 뿐이다.
노무현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는 가난했고 소위 빽도 절도 없었지만. 오직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학벌도 없으면서도 출세를 했던 것이다. 그는 도저히 대통령 감이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귀티’도 나지 않았다. 그는 못생겼었다. 그리고 비록 정치계에 오랜 동안 몸을 담갔지만, 무슨 대단한 연줄이나 배경도 없는 소수세력이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는 배경도 없으며, 내세울 것도 변변치 못했다. 더욱이 그와 경쟁하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위세가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회창과 노무현의 대결은 마치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우리니라와의 대결과도 같아보였다. 그 누구도 우리의 승리를 예상할 수 없었듯이, 소위 최고 엘리트 코스를 겪었으며, 언제나 주류의 핵심에 있었던, 그리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당해본 적이 없었던 귀족 이회창을 노무현이 이기리라고는 감히 기대하기조차 어려웠었다.
그랬던 노무현이 기적을 일으켰다. 그는 가장 밑에서부터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가면서 성장했다. 처음에는 지지율에서도 비교될 수 없었던 그가 마침내 이회창과 대등한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선거에서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 생각하며 감격해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무엇이든지 진실로 꿈을 꾸면, 그것이 아무리 허황되어 보일지라도 현실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아무리 기득권층이 반발을 하고, 억압을 하려 해도 국민의 의지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역사적 진실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던 이유로,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앞으로 그가 해쳐나갈 어려움들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걱정할 정도였다. 그는 기적 자체였다. 당시, 나는 그의 승리를 보면서, 성배전설과 그 주인공인 ‘파르지팔’을 떠올리곤 했었다. 오직 진실에 대한 순수한 갈망만이 진실에 다가가게 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만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전설의 교훈을 되새기곤 했었다.
그렇게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그의 모습은 다시, 몇 년 뒤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세계 과학계의 기적의 인물인 황우석 박사와 많이 겹쳐졌다. 월드컵 4강의 기적과 진정한 축제의 부활, 노무현과 그의 정치적 혁명, 그리고 순수 토종 학자인 황우석 박사의 업적, 아마도 우리 국민들에게 이 몇 년 동안은 참으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리라.
노무현이 그렇게 단단한 정치적 입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에 단단히 고생을 할 것이라는 점 등은 거의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으며, 오직 이런 난관들을 그 자신의 검투사적 용맹한 기질과 열광적인 국민적 지지를 통해 극복해내기를 실로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원했었다.
제 아무리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하고, 미국의 압력이 심각했을지라도 그는 그의 초심을 유지해야 했으며, 뚝심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개혁을 말하고, 국가적 자존심을 목 놓아 외쳤지만. 그가 이 정권을 운영하면서 보여주었던 것은 오직 실망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그는 미국의 반테러 세계 전쟁에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우리 군인들을 참전시켰으며, 우리나라의 굵직한 공기업들과 은행들을 민영화(개인 사유화)시키려는 초국적 자본들의 날도둑질에 그 어떤 반대의사도 하기는커녕, 그 앞잡이들을 국가관료로 등용시켜서는 ‘호율성과 합리화’를 이름으로 허용했으며, 대북한 문제에서 미국과 보수세력들의 압력에 굴복, 한반도 위기를 자초하면서 매우 어정쩡하며 결국은 아무 도움 안되는 중국에게 비굴할 정도로 의존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부동산 관련 이상징후와 문제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도 그것을 외면, 늘 비현실적이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만적 정책들만을 입안시켜서 부동산 시장을 더욱 교란하기만 했으며, 마침내 망국적 경제거품붕괴의 위기 상황까지 오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개인적으로 어떤 성격적 결함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이상한 변덕을 부려서 늘 모든 것을 불안하게 한다는 식의 비판에 별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은 사람마다의 개성의 차이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라, 그의 이성과 판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이제 와서 비판하려는 것은 바로 그의 이성과 판단, 그리고 도덕성에 관한 것들이다.
며칠 전 그는 갑자기 생뚱맞게 보일정도로 대통령 이전 시절의 모습을 연출해냈다. 솔직해 보이고, 다소 과격하게 맘속에 있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보통의 국민들과 정적들은 경악했으며, 그의 팬들은 환호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참으로 노무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위기 상황마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자기정체성 게임’을 통해서 살아남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언제나 소수자라는 피해의식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애매모호함’이다. 그에게 불확정성과 비규정성은 ‘적대적’인 상황을 의미할 뿐이다. 그에게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임에도 전체를 고려하기 보다는, 그래서 그것과 관련된 애매모호함을 운영하기 보다는, 그는 늘 확실한 ‘자기편’에 집착한다.
그에게 ‘적’은 선험적인 존재이며, 주어진 것이라면, ‘자기편’은 자신의 노력으로 확보해야만 하는 생존을 위한 ‘당위’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적을 의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래서 이제 중요한 것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에게 얼마만큼의 동지가 있는가일 뿐이다. 그에게 ‘중간자’는 별 의미가 없거나 적극적으로 자기편으로 만들어야할 대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언제 자기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기에 그는 중간자의 존재를 가장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제외하고는 잘못한 것이 없으며 반대 세력들의 집요한 공작으로 인해서 자신의 개혁이 성공하기 힘들었다는 새로운 음모론을 만들고 변명을 해댔으며, 자신의 정적들에 대해서 거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의 황당한 모습에 당황했으며, 어이없어했다.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연 그는 오직 부동산 문제에서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며, 그 부동산 문제라고 하는 것은 ‘오직 부동산 문제뿐’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의 이런 변명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부동산 문제가 ‘오직 부동산 문제뿐’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식의 논법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김영삼 정권은 'IMF 사태‘ 말고는 성공적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학살 말고는 성공적이었다”식의 논법에도 동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내년 말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다음에 매우 위태롭게 될 것이라 판단한다. 전두환의 경우, 그렇게도 배경이 많고, 지원세력이 튼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다음에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그는 자신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단지 그 정도의 정치적 희생물이 될 수 있었으며, 오히려 그런 유배생활로 말미암아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의 실제적 과오에 비하면, 그가 치렀던 대가는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현재의 정국 상황에서 보면, 자신의 집권기에 있었던 과오는 물론이거니와 전대의 김대중 정권부터 시작했던 문제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운명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설사 그가 별로 실정이 없더라도, 정적들은 그를 철저히 희생시켜서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다질 요량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무현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으며, 그의 피해의식은 극대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칫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이제껏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에서 뒤끝이 좋았던 대통령은 거의 없다. 거기에 노무현은 아무 것도 없기에 그야말로 그는 완전 ‘봉’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생리 속에서 그가 살 길은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미국 등 외국으로 도망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뭔가 자신을 지켜줄 세력을 단단히 확보해두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가족들 대부분을 미국으로 이주시켰다. 물론, 그가 집권기에 정치적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시, 다소 무리하게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지세력들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 노무현은 여기 있소! 내가 바로 그때의 노무현이오!”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으로부터 떠난 마당에 그들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오직 아직도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치는 ‘자기 정체성’ 게임을 통해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 여권의 차기 주자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차기 대권에서 현 야권이 승리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미 한나라당과 그 세력들은 지난날의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꼴보수’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다. 조갑제, 정형근, 김용갑, 그리고 박근혜의 원죄이다. 한나라당은 이들 때문에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지금 그들의 인기는 ‘환영’일 뿐이다. 여권에 인물이 없는데서 오는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만일 여권에 어떤 인물이 나타나게 되면, 전세는 급격히 반전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현 여당인 ‘우리당’은 다른 이름을 가짐으로써 과거로부터 단절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노무현은 가장 만만하고 확실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나는 인간적으로 노무현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그는 용서받기 힘든 많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과거의 인물들과는 달리 피할 구멍이 거의 없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팔자가 박복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의 비극은 우리 대한민국의 불행을 의미할 뿐이다.
나참, 시대소리독자
시대소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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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2 [01:20] ⓒ 시대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