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병역을 미필한, 국방의무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65년,군대가기를 거부했다. 머나먼 이국땅 월남에서 국국은 수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남자라면 군대가서 사람되어 나온다는 말이 우리의 정서였다. 국방,애국과는 전혀 연관성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가 현대건설에서 3년간 부장까지 승승장구할때 우리 국군은 월남에서,전방에서 젊은 혈기를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 바쳤다. 나라를 유지시키는 근간은 국방이거늘 나라에 대한 기초적인 국방의무마저 져버리다니, 에이허~ 무슨 말을 다한단 말이요, 휴우~속에서 깊은 한숨만 정주영회장은 92년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일개 평사원에서 최대건설업체 회장까지 최고의 대접으로 키워 주었던 이명박을 불렀다. 그러나 이명박은 그 주인을 배신하고 주인에게 오히려 독화살이 되어 돌아와 버렸다. 현대 정주영회장이 이명박의 배신에 좌절감을 느끼고 울었다고 한다. 김영삼정부로 귀속한 이명박은 정주영의 국민당을 매몰차게 차버렸으며 정주영이 대선후보로 나섰을때에는 그를 길러준 은인을 비난하는 대열에 서 있었다. 너무도 서글픈 마음,정주영은 가눌 길 없었어라. 이명박은 김영삼 정부하에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다. 당선은 되었다.그러나 얼마후 금전살포 부정선거로 국회의원 불명예사퇴를 하였다.그 공석이 된 빈자리를 바로 누가 됐는지 아는가? 노무현이 종로구 국회의원 자리를 궤찼다. 노무현이 낭인처럼 배회하던 시절, 노무현 이름세자가 알려진건 바로 종로구 국회의원이 되고나서 부터이다.어쩜 그리도 노무현과 궁합이 잘맞을까? 이명박은 백만장자요,강남갑부라는 명성하나로 더욱 알려져 있다.강남에서의 이명박은 유명하다. 그런 그가 2002년 서울시장에 뛰어 들었을때 이회창은 선뜻 응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회창의 인기에 힘입어 수월하게 당선 되었다.이회창의 힘이었다. 이회창의 배려를 한몸에 받은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이명박은 서울시장을 물러나면서 그 이회창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노무현이 이회창보다는 훨씬 낫다고 이회창은 그만 그말에 쑈크를 받고 쓰러졌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다니,이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박근혜는 2004년 한나라당 당대표가 되어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만나, 한나라당의 보배라고 추켜 세워졌다.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사업이 성공하라고 기원까지 하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은 청계천사업이 완성되자 노무현의 보살핌에 감사한다는 말로 박근혜의 너그러운 마음을 내동댕이질 쳤다. 오히려 박근혜를 무너뜨려서 한나라당을 자기의 수중에 넣으려는 만용을 이재오를 통해 내비쳤다. 결국 박근혜의 너그러움을 배신으로 갚은 것이다. 지난 추석이후,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여론조사 전문가로 변신한 노무현실세 안희정과의 연대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이 묻지마 여론퍼주기로 무조건 20%이상 차이로 1위를 달렸다. 왜?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지 아는 건 노무현 실세중의 실세 안희정이 이명박의 고려대 후배라는 사실과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사실외에는...............
한국인에게 배신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 이명박
이명박은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병역을 미필한, 국방의무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65년,군대가기를 거부했다.
머나먼 이국땅 월남에서 국국은 수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남자라면 군대가서 사람되어 나온다는 말이 우리의 정서였다.
국방,애국과는 전혀 연관성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가 현대건설에서 3년간 부장까지 승승장구할때
우리 국군은 월남에서,전방에서 젊은 혈기를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 바쳤다.
나라를 유지시키는 근간은 국방이거늘
나라에 대한 기초적인 국방의무마저 져버리다니,
에이허~ 무슨 말을 다한단 말이요,
휴우~속에서 깊은 한숨만
정주영회장은 92년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일개 평사원에서 최대건설업체 회장까지
최고의 대접으로 키워 주었던 이명박을 불렀다.
그러나 이명박은 그 주인을 배신하고 주인에게 오히려
독화살이 되어 돌아와 버렸다.
현대 정주영회장이 이명박의 배신에 좌절감을 느끼고 울었다고 한다.
김영삼정부로 귀속한 이명박은
정주영의 국민당을 매몰차게 차버렸으며
정주영이 대선후보로 나섰을때에는
그를 길러준 은인을 비난하는 대열에 서 있었다.
너무도 서글픈 마음,정주영은 가눌 길 없었어라.
이명박은 김영삼 정부하에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다.
당선은 되었다.그러나 얼마후 금전살포 부정선거로
국회의원 불명예사퇴를 하였다.그 공석이 된
빈자리를 바로 누가 됐는지 아는가?
노무현이 종로구 국회의원 자리를 궤찼다.
노무현이 낭인처럼 배회하던 시절,
노무현 이름세자가 알려진건 바로 종로구 국회의원이
되고나서 부터이다.어쩜 그리도 노무현과 궁합이 잘맞을까?
이명박은 백만장자요,강남갑부라는 명성하나로
더욱 알려져 있다.강남에서의 이명박은 유명하다.
그런 그가 2002년 서울시장에 뛰어 들었을때
이회창은 선뜻 응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회창의 인기에
힘입어 수월하게 당선 되었다.이회창의 힘이었다.
이회창의 배려를 한몸에 받은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이명박은 서울시장을 물러나면서
그 이회창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노무현이 이회창보다는 훨씬 낫다고
이회창은 그만 그말에 쑈크를 받고 쓰러졌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다니,이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박근혜는 2004년 한나라당 당대표가 되어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만나, 한나라당의 보배라고
추켜 세워졌다.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사업이
성공하라고 기원까지 하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은 청계천사업이 완성되자
노무현의 보살핌에 감사한다는 말로
박근혜의 너그러운 마음을 내동댕이질 쳤다.
오히려 박근혜를 무너뜨려서 한나라당을
자기의 수중에 넣으려는 만용을 이재오를 통해 내비쳤다.
결국 박근혜의 너그러움을 배신으로 갚은 것이다.
지난 추석이후,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여론조사 전문가로 변신한 노무현실세 안희정과의 연대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이 묻지마 여론퍼주기로
무조건 20%이상 차이로 1위를 달렸다.
왜?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지 아는 건 노무현 실세중의 실세 안희정이
이명박의 고려대 후배라는 사실과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사실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