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 얼마를 더 갔는지 몰랐다. 치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밖을 내다 볼 수 없어 답답했지만 거칠게 울리던 마차가 조용하게 간다는 것은 바닥이 잘 닦여진 도시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정도 가자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삼금대가 도착했다. 둘째 아가씨와 셋째 아가씨가 오셨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 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충! 청연합군 만세! 이명 총사령관님 만세!” 치우는 마차 안에서 귀가 울리도록 크게 들리는 소리에 놀라서 마차 틈에 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구멍을 통해 보니 수 백 명의 군사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이하영이 거만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 꿇은 군사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또 다른 여자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본 치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니!” 그녀의 외모는 충격이었다. 한 번 보면 또 다시 눈이 가게 되고 영원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백옥을 깎아 만든다하여도 피부가 저렇게 투명하지 않을 것이며 흑진주를 박아 넣어도 눈동자가 저렇게 맑고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미소는 모든 사람을 행복에 빠지게 했고 그녀의 슬픔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군사들의 함성에 푸른 옷의 여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이곳 하남을 끝까지 잘 지켜주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청연합군이 더욱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모든 군사들이 다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선녀 같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숨소리까지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곧 총사령관님도 이곳에 도착하셔서 여러분들과 축배의 잔을 들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수백의 군사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총사령관님 만세!! 청연합군 만세!! 군모님 만세!!” 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푸른 옷의 여자와 이하영은 안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치우가 탄 마차의 문이 열렸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내가 치우를 보고 말했다. “넌 나와 같이 가자.” 치우는 뚱뚱한 사내의 뒤를 쫒았다. 뚱뚱한 사내가 치우를 보며 말했다. “난 마상태라고 한다. 이 곳 하남 대란성의 노예들은 모두 내가 책임진다. 앞으로 넌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알겠느냐?“ 마상태의 물음에 치우는 아무대답이 없다. 앞서가던 마상태가 걸음을 멈추고 치우를 돌아보았다. “난 내 말에 따르면 항상 인자하지만 불복종하거나 반항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오늘은 첫날이라 내가 네 놈을 좋게 대하지만 계속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은 무척이나 차갑게 들렸다. 치우는 마상태의 몸이 비록 작고 뚱뚱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치우는 노예들이 쓰는 외곽 건물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맡은 일은 마구간의 청소였다. 말들이 쏟아낸 오물들을 치워야 했고 각종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처음 몇 일간은 너무 힘들어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치우는 때때로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성(城) 내부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으나 그의 활동 공간은 정해져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란성 곳곳에 많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아보였다. 이곳의 노예들은 대부분이 대동국 사람들이거나 서대륙에서 잡혀온 백면인들 이었다. 노예들의 생활은 끔직했다. 대란성에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치우는 그렇게 견뎌내야 했다. 치우는 한 달 가량 대란성에서 지내며 상천제 막개가 전수한 순양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미 치우는 곳곳의 혈도가 막혀서 순양기를 느낄 수도 없었다. 완전하게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 간 것이다. 치우는 좌절했다. 그의 한 가닥 희망은 막개가 전수한 무공을 통해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방법조차 불투명했다. 대란성에 잡혀와 10여년을 노예 생활을 한노인으로 부터 들은 말은 더욱 치우를 침통하게 만들었다. 한노인은 치우가 탈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고 안타까이 말했다. “애야! 네 마음은 알겠지만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포기해라. 나도 처음엔 너처럼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지금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렵구나.“ “할아버지는 이곳 지리에 잘 알고 있을 테니 저에게 좀 가르쳐 주세요.” 한노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휴! 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10번의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10번 다 실패하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지. 만약 대부인의 넓으신 아량이 아니었다면 난 이미 사형 당해서 죽었을 게다.“ “대부인이라면?” “이곳 대란성의 총사령관이 이명 장군의 부인이시지. 그녀는 꽃처럼 아름답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다.“ 한노인의 몽롱한 눈빛은 대부인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존경이 담겨있었다. 치우는 한노인에게 매달렸다. “그래도 이곳에 관해 알려줘요. 이 곳에서 탈출 가능한 곳이 어딘지?” 한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놈아! 탈출 가능한 곳이 있음 내가 벌써 탈출 했지.” “제발! 그럼 병사들이 지키기 가장 취약한 곳은 어디죠?” 치우와 한노인의 말을 옆에서 듣던 백면인 하나가 다가왔다. 백면인을 본 한노인이 물었다. “칸지라! 왜 너도 관심 있냐?” 칸지라라고 불린 백면인은 푸른 눈동자에 하얀 백발을 기르고 있었다. 피부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 구리 빛 피부였다. 그의 덩치는 일반 사람의 한 배 반만큼 크고 온 몸이 근육질이었다. 그도 대란성에 잡혀 온지 4년이 넘었다했다. 칸지라는 야간 어색한 발음으로 말했다. “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의 눈빛은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었다. 치우도 이곳에서 지내며 칸지라를 몇 번 보았지만 그의 특이한 생김에 감히 말도 붙여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칸지라의 고향에 가고픈 간절한 몇 마디 말은 그도 자신과 다를게 없는 가슴 따스한 사람이란 것을 느꼈다. 칸지라의 간절한 눈빛을 본 한노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곳 대란성은 군사적 요충지다. 옛날 대동국과의 태무전쟁 때 이곳을 찾이하기 위해 많는 병사들이 죽어갔다. 이곳은 대동국의 수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청연합군이나 대동국이나 죽음으로 서로 싸운 것이지. 사실 이곳은 대동국에도 중요하지만 청연합군 또한 빼앗길 수 없는 곳이다.“ “왜요?” “이곳을 지나면 바로 남청의 수도 남원경까지는 순식간이지. 비록 중간에 거대한 태무산맥이 가로막고 있지만 남청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지. 그리고 동대륙의 모든 나라가 무역거래를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곳이 또한 이곳 하남의 대란성이다. 여기서는 없는 것이 없다. 그만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을 아주 중요한 곳이 여기다 보니 ..... 대란성의 경비는 여타 다른 성의 두 배 세배다“ 한노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 난 무턱대고 병사들이 자리만 비우면 탈출했지 그러나 바보 같은 짓이었다. 병사들은 이중 삼중으로 성을 지키고 있다. 성 뒤쪽은 철산이다. 사람이 올라가기는 불가능하다 해서 철산이라 불린다. 그곳을 오른다 해도 철산 뒤 쪽에 흐르는 파강(波江)은 배도 띄울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험하다.“ 치우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그럼 정말 방법이 없나요?” 치우의 질문에 칸지라가 몸을 더욱 바싹 다가앉으며 한노인을 바라봤다. “글세. 수많은 병사들의 눈을 피하며 성벽을 넘을 수는 없고....그렇다고 철산을 넘어서 파강을 건넌다는 것은 무리고....내 10번의 탈출 중 가장 성공 할 뻔한 적이 있긴 있었지....“ 칸지라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언제? 빨리...빨리...” 그는 동대륙 말이 서툴러 많은 말을 못하고 간단한 말 몇 마디만 했다. 한노인은 칸지라의 재촉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대란성은 내성과 외성 둘로 구분된다. 내성엔 연합군의 수뇌부들이 운집해 있고 외성엔 하남일대의 백성들이 들어와 살지 그렇기 때문에 내성의 수비보다 외성의 수비가 허술 한 편이야.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내성을 나갈 수 없다. 내성 밖으로 나간다는 거의 불가능하지.... 노예들을 외성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내성내의 지리나 군사들의 배치가 외부로 노출 될 것을 미리 방비하는 거지. 노예가 만약 탈출해 적에게 중요한 정보를 준다면 이곳 대란성은 치명적이거든. 그래서 탈출이 더 힘들다는 거다. 이곳을 탈출 한다 해도 대륙에 퍼져있는 청연합군이 온 힘을 다해 쫒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노예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군사비밀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지.“ 칸지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치우 또한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그런데...할아버지는 어떻게 내성을 나갈 수 있었죠?” “세 달에 한번 외성으로부터 내성으로 각종 식량이 들어온다 그때 유일하게 노예들이 외성으로 나갈 수 있다. 많은 식량과 각종 무기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손이 필요한 군이 마상태를 통해 노예들을 부리게 한다. 그러나 그때의 병사들 수는 두 배 이상으로 우리를 지킨다.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지. 그때 난 식량을 싫고 들어 온 마차 밑에 숨어서 나갈 수 있었다. 그 것도 천행이었다. 당시 마차를 철저히 조사하고 있을 때 연합군 사령관인 이명 장군이 성으로 귀환하는 덕분에 내 마차는 조용히 넘어 갔지...그래도 끝내 난 하남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합군의 병사들에 의해 붙잡혀 왔다.“ 치우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 방법 외는 없다는 말입니까?” 한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칸지라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안돼! 난 ....내 고향으로 갈 거다. 꼭!” 그의 애타는 말을 들으며 치우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자신의 왼팔에 있는 천지환을 보았다. ‘이것을....전달해야 하는데....’ 다음 날도 치우는 말들의 똥을 치우고 있었다. 마상태가 치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만두고 날 따라오너라!” 마상태가 앞서 가자 치우가 그 뒤를 쫒았다. 몇 개의 화려한 건물을 지난 후 아름다운 화원으로 들어갔다. 그 곳엔 갖가지의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생김의 나무들도 곳곳에 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두 이국적이고 특이한 화원 이라고 치우는 생각했다. 앞서가 마상태가 화원을 지나 안쪽의 별채에 도착한 후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치우의 귀에 차가운 말소리가 들렸다. “호호. 말똥을 치우느라 고생 많구나” 말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하영이 비웃음을 흘리며 서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건장한 청년 둘이 서 있었는데 하나는 검은 옷에 덩치가 무척 컸다. 커다란 눈에 검고 진한 눈썹이 강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커다란 눈매의 옆이 살짝 올라간 것이 불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또 다른 한명은 그와 반대로 하얀 옷에 아담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흘렀다. 눈이 작고 입술이 얇았지만 전체적인 조합으로 보면 잘생긴 얼굴이었다. 덩치크고 검은 옷의 청년이 청연합군의 좌군태상의 아들 왕견수이고 하얀 옷의 청년이 우군천상의 아들 신기린 이었다. 청연합군은 세 개의 군부로 나뉘어 있는데 좌군, 중군, 우군이 그것이다. 좌군은 북청 출신의 장군들이 이끄는 집단으로 하남의 북쪽을 관리하고 있다. 우군은 남청 출신의 장군들로 남쪽을 관할한다. 그리고 중군은 각종 정보를 모으는 정보 집단으로 청연합군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중군은 북청과 남청의 최고 기재들이 모인 곳으로 그 위세가 삼군 중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그 중 좌군의 좌군태상 왕천민의 아들이 왕견수이고, 우군 우군천상 신묘중의 아들이 신기린이다. 그들은 청연합군 내의 총사령관 이명장군의 세를 얻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며 이하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와 있는 것이다. 왕견수는 이하영과의 결혼으로 연합군내의 세를 넓히고자 하는 것이고 신기린은 이명 장군의 둘째인 이화린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항상 이곳을 찾았다. 치우는 둘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는 자기 성질에 못이길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어느 것도 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하영이 치우를 보며 왕견수에게 말했다. “견수 오라버니 저 놈이 제가 말한 그 버릇없는 놈 이예요.” 옆에서 신기린이 웃으며 말했다. “저런 하찮은 노예 놈을 무엇 때문에 신경쓰냐?” 치우는 신기린의 말에 울컥 화가 나서 눈을 치켜떴다. 신기린이 치우의 사나운 눈빛을 보고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호! 이놈 봐라. 어디 노예 놈이 눈을 들어 쳐다보느냐?” 그는 말과 함께 치우의 뺨을 찰싹하고 때렸다. 치우의 입 주위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하영은 고소한 듯이 웃고 있었고 왕견수는 관심 없다는 듯 쳐다보기만 했다. 치우는 이를 악물고 더욱 눈을 사납게 뜨며 소리쳤다. “내가 뭘 잘 못했다고 사람을 패냐?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냐?” 치우의 말에 신기린이 황당한 듯 쳐다봤고 왕견수가 헛웃음을 쳤다. 이하영이 신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제 말이 맞지요. 오빠들.. 저 놈이 저렇게 간이 부었어요. 노예 주제에 상전에게 대들고 저번에는 잡아 오던 다른 노예들 까지 탈출 시켰다니까요.“ 그녀는 신기린과 왕견수에게 있는 일 없는 일 꾸며가며 치우를 괴롭히도록 유도 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치우만 보면 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두 벌벌 떨고 감히 거절을 하지 못했는데 치우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욕까지 하지 않던가. 지금도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청연합군 내에서도 중요위치에 있는 신기린과 왕견수가 와서 비위를 맞추고 있는데 치우만은 자신을 하찮게 보는 것이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의 멋대로 뭐든지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치우의 오만함을 고쳐서 순종하게 만들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이하영의 말에 신기린이 치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종놈 들어라. 여기는 청연합군의 장군가다 네 놈이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곳이다.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치우가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어느 신분이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난 대동국 사람이다. 너희들이 무슨 권리로 사람을 잡아서 노예를 쓴다는 말이냐?“ 왕견수가 큰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어디 하찮은 노예 놈이....내가 네 놈 버릇을 고쳐 놓아야 겠다” 왕견수가 앞으로 나서자 이하영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호호. 오라버니 그 버릇없는 놈을 혼내 주세요.” 신기린이 웃으며 치우에게 말했다. “이놈! 얼른 잘 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라.” 치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맘대로 해라! 죽기 밖에 더 하냐? 죽어서도 네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치우의 악담에 왕견수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놈 네 놈 입에서 언제까지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보자.” 왕견수의 바위 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치우는 피하려 고개를 숙였지만 왕견수의 주먹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휘어져 들어왔다. 퍽!! “큭!!” 치우는 숨 막힐 듯한 통증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왕견수의 주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치명적인 사혈을 피하며 치우의 몸 곳곳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치우가 한대 맞고 쓰러질 적마다 이하영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신기린은 싱겁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왕견수는 치우를 때릴수록 그의 잔인한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저항 없는 자를 때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비겁한 일이지만 그는 이상하게 치우의 몸을 가격 할수록 묘한 쾌감이 가슴에 퍼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자신 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괜히 괴롭히고 싶고 놀리고 싶었다. 자신의 힘을 마음껏 과시하고 싶었다. “헉!! 헉!!” 고통에 치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이하영이 불안 한 듯 말했다. “견수 오라버니 그 놈을 죽이지는 말아요. 내 종으로 쓸거니.” 그녀의 말에 왕견수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라. 죽지 않을 정도만 손을 봐주지.” 치우는 온 몸의 고통에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죽여라!! 네 놈이 날 죽이지 못하면 다음엔 내가 널 죽이겠다.” 치우의 말에 왕견수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신기린은 치우의 핏발 선 눈을 보고 약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하영도 치우의 악에 바친 소리에 움찔 했지만 왕견수에게 소리쳤다. “견수 오라버니...저 놈을 더 혼내줘요.” 왕견수는 처음에는 내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주먹으로 치우를 쳤지만 이제는 화가 나자 약간의 내력을 끌어 오렸다. “오냐. 이놈 죽어봐라. 병신이 되게 해주지.” 왕견수의 세찬 주먹을 날아와도 이미 치우는 막을 힘이 없었다. 주먹의 기세로 보아 더욱 강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 정말 내 운명은 왜 이리 처참한가....!!!’ "컥!!“ 왕견수의 거센 주먹을 맞고 치우는 잠깐 공중에 떴다 바닥에 떨어졌다. “으.....” 치우는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이번 주먹은 더욱 힘이 컸는데 왜 아까보다 덜 아프고 오히려 내 몸이 시원하지?‘ 치우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왕견수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주먹은 치우의 곳곳을 두들겨 팼다. 그러나 치우는 그의 주먹을 맞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야? 저놈! 변태야? 신나게 맞으면서 뭐가 좋아서 웃어?” 이하영도 치우의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라버니 저 놈 미친 거 아닌가요?” 왕견수도 치우가 낄낄거리며 웃자 처음에는 놀랐다 그러나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 생각되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는 주먹에 더욱 큰 내력을 실어서 치우를 가격했다. “네 놈이 이렇게 맞고도 웃을 수 있나 보자.” 치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왕견수에게 맞을수록 온 몸이 시원했다. 약간 충격에 의한 통증은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이 쾌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하단전이 따스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천일살을 사용 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순양기가 서서히 그의 단전에 피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치우는 오히려 왕견수가 지쳐서 자기를 때려주지 않음 어떻하나 걱정할 정도였다. “하하하. 네 녀석의 주먹은 완전히 솜방망이 같구나.” 치우의 말에 왕견수의 큰 눈이 무섭게 변했다. “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기린이 치우의 행동이 이상함을 보고 앞으로 나서며 발로 치우를 찼다. 퍽!! 강한 타격음과 함께 치우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윽!!”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네 놈이 무슨 재주가 있어. 고통을 이겨낸다 말이냐? 쇠로 만들어진 몸도 아닐진데...‘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치우가 배를 부여잡고 일어서며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후~ 네놈의 발길질도 별것 아니구나.” 치우의 말에 신기린의 얼굴이 빨개졌다. 옆에 있던 이하영과 왕견수 또한 놀랐다. 신기린의 발길질은 일반 사람이 맞으면 뼈가부러져 감히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그 것을 맞고도 웃다니....그들은 치우를 질린 얼굴로 보았다. 치우는 맞을 수록 자신의 몸이 가볍고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다. 하단전에서 순양기가 점점 강하게 일어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이제는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이다. 사실 치우는 억지로 자신의 모든 힘을 파천일살에 쏟아 부으며 몸 곳곳의 혈도가 막혀버린 것이다. 용케 혈도가 막히면서 터져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왕견수의 내력 실린 타격이 치우의 몸을 두두리면서 막혔던 혈도를 오히려 풀어주는 효과를 준 것이다. 일반적인 타격으로는 혈도를 풀 수 없었지만 왕견수나 신기린 같은 무공을 익힌 자들이 자신의 내력을 이용해 혈도를 타격한다면 이야기는 틀려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치우가 죽을 것을 걱정해 치명적인 타격을 하지 피했기 때문에 아주 적당한 힘이 치우의 몸에 적중되어 자연스레 혈도가 풀렸던 것이다. 혈도가 풀리면서 오히려 치우는 순양기의 내력이 더욱 증강되는 효과를 보았다. 아직은 완전히 내력이 자리 잡지 못했지만 시간문제 일 뿐이었다. 치우의 건방짐에 화가 난 신기린과 왕견수는 이제 적당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왕견수는 이하영에게 말했다. “하영아! 저 놈이 죽더라도 날 원망하지 말아라.” 이하영은 뭐라 말하려다 그의 표정이 너무 굳어져 있어 아무 말 못하고 치우를 봤다. 치우도 왕견수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공격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죽음을 각오 해야겠구나.’ 신기린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 놈도 바보같은 놈이군! 죽음은 면할 수 있었는데..왕견수의 대력장(大力掌)을 맞으면 살아남지 못할 텐데....후후“ 왕견수의 손이 순간 붉어졌다. 대력장의 위력은 손의 색이 붉어질수록 그 성과를 알 수 있었다. 왕견수의 손을 신기린이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보았다. ‘흥! 아직 5성을 넘지 못했군. 붉기가 엷어...후후 그렇다면 내 파륜공(波輪功)에 못 미치겠군.‘ 그가 생각하는 동안 왕견수는 빠르게 치우의 등을 향해 대력장을 날렸다. 붉은 기운이 거세게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 치우는 피하려 했지만 너무나 강맹한 기운에 피할 수 없었다. 치우는 자신의 모든 순양기를 끌어올려 최대한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바위처럼 강하게 오장육부를 쳐오는 기운을 감당할 수없었다. “컥!!” 대력장의 기운에 멀리 나가떨어지며 치우가 붉은 피를 토해냈다. 치우는 갑자기 숨이 막히고 모든 사물이 흐릿해 지는 것을 느꼈다. “너....너....” 치우는 왕견수를 향해 무엇인가 이야기 하려다 앞으로 푹 쓰러져 버렸다. 놀란 이하영이 소리쳤다. “견수 오라버니 저 놈을 죽였어요?” 왕견수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했다. “죽었다면 저 놈 명이 짧은 거니 날 탓하지 말아라.” 그는 차갑게 말하고는 바로 후원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이하영에게 말했다. “후후. 왕견수를 탓하지 말아라. 저 노예 놈의 성질이 사나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거니....아마 살아있다 해도 병신이 될 꺼다.“ 신기린의 말에 이하영은 웬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고 무엇인가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하영이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마집사!!” 마상태가 놀라서 달려왔다. “저 노예 놈의 시체를 갔다 버려요.” 이하영의 말에 쓰러져 있는 치우를 보고 마상태는 놀라서 달려갔다. 그가 치우의 숨결을 관찰하고는 이하영에게 말했다. “아가씨! 아직 살아 있는데요.” 마상태의 말에 신기린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호! 그래? 왕견수의 5성에 달한 대력장을 맞고도 살았단 말이지....정말 운이 좋은 놈이군.“ 이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웬지 모르겠지만 치우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분이 안좋았는데 살아 있다 생각하니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이하영은 갑자기 자신이 치우를 걱정하는 듯한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뭐야? 내가 저 노예 놈을 왜 걱정해? 흥!!’ 그녀는 갑자기 표정이 차가워지며 마상태에게 소리쳤다. “저 놈을 내 전용 마굿간에 쳐 넣어라. 살든 죽든 알아서 하겠지.” 이하영의 말에 마상태가 놀라며 물었다. “아가씨! 그 곳에는 흑추마가 있어서 그냥 두면 밟혀 죽을 텐데요. 저희들도 무서워 함부로 접근을 못하는데....더구나 저 흑추마는 아직 아무도 길을 들이지 않아 야생 상태 그대로라......위험합니다.“ 그의 말에 이하영이 발끈 해서 소리쳤다. “뭐야? 네 놈이 지금 날 가르치려드느냐? 나도 알아! 상관없으니 그냥 그 흑추마와 함께 쳐 넣어버려. 둘 다 아주 꼴 보기 싫은 것들이니.“ 마상태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치우를 안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웃으며 이하영에게 말했다. “후후. 아직도 흑추마를 길들이지 못했나 보구나? 힘들게다. 흑추마는 아무나 주인으로 맞지 않지. 자신을 탈 자격이 있어야만 인정해 주지 그리고 그 주인은 오직 한 명뿐이지....죽을 때까지 더구나 네가 가지고 있는 흑추마는 등에 백색 줄이 들어간 희기종이라지?“ 이하영이 원통하드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내 언젠가는 저 흑추마를 타고 말거예요. 내가 타지 못할 바엔 죽여 버리겠어요.” 이하영의 서리찬 모습을 보고 신기린을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글세. 흑추마는 한 번 인정하지 않은 주인은 받아들이지 않는데.... 잘 될까 모르겠다. 내게 그냥 팔지 그러느냐?“ 신기린의 말에 이하영이 펄쩍 뛰며 차갑게 말했다. “뭐예요? 흥! 오라버니도 내 흑추마가 탐나는 거죠? 싫어요. 오늘은 피곤하네요.” 이하영은 말을 마친 후 휭하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신기린이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후후. 뭐 언젠가는 모두 내 것이 될 거니 재촉하지 않아도 되겠지..후후후” 마상태는 후원 뒤 쪽의 마구간으로 치우를 업고 다가갔다. 히이잉!! 히이잉!! 마구간 안쪽에서 흑추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흑추마는 너무 사나와 함부로 사람이 접근하면 거대한 뿔로 박아버린다. 마상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안 쪽에 매어져 있던 흑추마가 마상태를 발견하고는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둠 속에 있었지만 흑추마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어 무척이나 소름이 돋았다. 마상태는 생각 같아서 그냥 아무데나 치우를 던져 놓고 가고 싶었지만 이하영의 말을 거역하고는 대란성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에이 펫!! 젠장 뭘 쳐다보는 거냐? 이 말새끼야!!!” 갑자기 화가 난 마상태가 흑추마를 향해 거칠게 소리치자 히이잉!! 히이잉!! 거리며 더욱 거칠게 울어댔다. 만일 고삐에 매어져 있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마상태를 공격할 태세다. 마상태는 단단하게 고삐에 매어져 있는 것을 확인 후 안심이 되자 더욱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 이 놈 어디서 짐승 새끼가 인간에게 덤벼!!!” 마상태는 가까이 다가가 소리치며 마구간 문을 열었다. 히이잉!! 히이잉!! 흑추마가 앞발을 들고 사납게 울부짖으며 달려들려 했다. 그 모습을 본 마상태는 약간 움찔해서 바닥에 치우를 던져 놓고는 물러났다. “난 갈 테니. 성질 사나운 두 놈이서 잘 놀아라.” 소리치고 마상태가 사라지자 흑추마는 진정하며 쓰러진 치우를 보았다. 온 몸이 피투성이의 치우를 보자 흑추마가 입으로 툭툭 건들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푸르릉!!푸르릉!! 흑추마는 고개를 살랑거리더니 치우의 얼굴을 혀로 핥았다. 그러나 치우는 일어날 줄 몰랐다. 흑추마는 그런 치우을 입으로 물고 한 쪽으로 끌고 갔다. 흑추마는 일반 말과 달리 무척이나 영리한 동물이다. 그리고 고집이 무척이나 세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등에 태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추마와 달리 흑추마를 영물로 본다. 특히, 흑추마 뒤에 하얀 백띠가 있는 종은 천추마라 부르며 최고라 여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온 몸의 고통에 치우는 잠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없었다. 희미한 움직임이 눈에 보였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으.....” 고통에 신음을 내자 앞에서 얼쩡거리던 무엇인가가 치우의 눈앞에 다가왔다. 희미한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온 힘을 다해 사물을 확인하던 치우는 놀라서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 내가 지옥에 떨어졌어!!’ 그가 본 것은 뿔 달린 시커멓고 거대한 머리였다. 어머니를 본적은 없다. 어머니의 품이 어떤지는 더욱 몰랐다. 그러나 어머니가 있다면 이렇게 따스할 것 같았다. 이렇게 포근할 것 같았다. 달콤한 향기가 코 속에 스며들었고 따스한 봄날에 누워서 잠자는 듯 편안했다. 치우는 이 편안함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 했지만 그의 귀속으로 한 여인의 아름다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떤가요? 살 수 있나요?” 그녀는 말하며 치우의 머리를 만져주고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녀의 물음에 누군가 대답했다. “예. 이상하게 상처가 금방 치유되었습니다. 내상을 좀 입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좋아 질 것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아! 하영이는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 모르겠어요. 이 불쌍한 사람을 이렇게 만들다니....그리고 어떻게 왕견수공자와 신기린 공자까지 같이 동조 할 수 있죠?“ “화린아가씨! 저 놈은 그저 대동국의 노예일 뿐입니다. 이렇게 잘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아가씨의 마음이 너무 착하셔서 그럽니다.“ “아니예요. 대동국이나 우리 청나라 사람이나 모두가 같은 사람이예요. 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잡아 와서 노예를 부리는지.“ “후! 아가씨의 아름다운 마음이야 다 알지만 세상은 생각처럼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어쨌든 이제 저 놈도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으니 이제 다른 방으로 옮기시죠. 남들의 눈도 있는데 화린 아가씨 방에서 계속 치료한다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아요.“ “아니요. 깨어나는 것을 꼭 제가 보아야 겠어요. 강태민 신의는 이만 가보세요.” “예. 그럼 전 물러가 보겠습니다.” 치우는 이미 정신이 돌아왔지만 갑자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자신을 치료해 준 여인이 이하영의 언니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악녀 같은 동생에 천사 같은 언니라니...’ 그가 생각하며 눈을 꿈틀거리자 이화린이 보고 웃으며 말했다. “깨어났군요. 어려워 말고 눈을 떠 보세요.” 그녀의 말에 치우가 어색해 하며 눈을 떴다. “아!!” 치우는 눈을 떠 이화린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처음 이곳 대란성에 왔을 때 곡식 실은 마차 구멍으로 보던 그 아름답던 푸른 옷의 여자가 아니던가. 이화린이 치우의 놀람에 찬 소리를 듣고 살짝 웃으며 물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치우의 얼굴 붉어졌다. 이화린이 다시 밝에 웃으며 말했다. “다행 이예요. 전 당신이 죽는 줄 알고....미안해요. 하영이가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그녀의 말에 치우는 이하영을 생각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치우의 굳은 얼굴을 보고 이화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알아요. 하영이를 용서 할 수 없다는 거. 지금 당장은 그 아이를 용서 해 달라고 말하지 않을 께요. 그러나 너무 나쁘게 보지는 말아줘요.“ 치우가 이화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노예로 잡혀온 것도 화가 나 구요.” “미안해요. 저도 사람들이 노예로 붙잡혀 오는 것을 봤지만 나라의 규율이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아가씨 잘 못이 아닙니다.” “아! 전 이화린이라고 해요. 이름이 뭐죠?” “전...치우 입니다.” “치우? 특이한 이름이네요. 참! 몇 살 이예요?” “열여섯 살입니다.” “그래요? 제가 두 살 많으니 누나네요. 호호” 이화린의 꽃과 같은 웃음을 보자 치우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웃음이 또 있을까?’ 치우가 뚫어져라 쳐다보니 웃던 이화린이 미소지으며 살짝 쨰려 보았다. “흥! 뭘 또 그렇게 넋 놓고 봐! 동생!!” “예?....아.....저....” “동생이라 불러도 되지? 난 남동생이 없어. 모두 자매라서....” 치우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마음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누님이 계신다면 정말 좋겠구나’ 치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화린이 좋아하며 웃었다. “호호호. 잘 됐다. 나에게도 이제 동생이 하나 생겼네.” 그녀가 웃고 있을 때 갑자가 방문을 거세게 걷어차며 이하영이 들어왔다. “뭐야? 언니! 도대체 왜 그래?” 이하영은 박차고 들어오자마자 큰소리치며 치우와 이화린을 번갈아 보았다. 이하영이 치우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구나. 노예 놈이 어디 언니 방에 들어와있어.” 이화린이 이하영의 버릇 없는 행동에 화가 나 소리쳤다. “하영아!! 그만두지 못해! 치우는 내가 데려와서 치료해주었다.” 이하영은 사납게 이화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 치우? 참!! 이제는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야? 언니 왜 그래? 청연합군의 군모라는 사람이 노예를 방에 까지 불러들여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빨리 저 놈을 내 쫒지 않으면 내가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어.“ 이하영의 거친말에 이화린은 한숨을 쉬고 치우를 보았다. 치우는 더 이상 자기 때문에 이화린이 어려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이화린이 미안한 듯이 말했다. “미안해 치우 동생.” 그 소리를 들은 이하영이 더욱 방방 뛰며 말했다. “뭐?...뭐라고? 도...동생? 헛!! 참 기가 막혀서 언니!!!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하려고 저런 대동국 노예에게 동생이 뭐야? 미쳤어?“ 그녀의 말에 치우가 인상을 쓰자 이하영이 냅다 소리쳤다. “뭐야? 이 것이 또 그렇게 눈을 뜨지? 여봐라!! 아무도 없냐?” 그녀의 고함에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당장 저 놈을 흑추마가 있는 마구간에 다시 쳐 넣어라.” “예!” 병사가 치우를 데리고 나가자 이화린이 놀라서 말했다. “흑추마가 있는 곳에 넣으면 안돼. 흑추마가 얼마나 사나운지 잘 알잖아?” “흥! 죽고 사는 건 제 놈 운에 달린 거지. 내 알봐 아니야.” “하영아! 너 왜 이렇게 제 멋대로야?” “흥! 내가 제 멋대로라고? 어디 아버지께 지금 상황을 말씀 드려 볼까? 누가 정말 제 멋대로 인지? 이번에는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가지만 한 번만 더 내 일에 방해 하면 흥! 언니라도 가만 안둘꺼야.“ 이하영이 소리치며 나가자 이화린이 한숨을 쉬었다. “휴! 저 애를 어떻게 한다.” 치우를 데리고 가던 병사는 흑추마가 있는 마구간에 도착하자 자신은 더 접근하지 않고 치우에게 말했다. “네 놈은 이제부터 이곳 마구간에서 저 흑추마와 먹고 잔다. 얼른 들어가!!” 병사의 재촉에 치우는 마구간 문을 열었다. “엇!!” 치우가 마구간 문을 열자 흑추마가 거칠게 울어대며 앞발을 들었다. 히히힝!! 히이힝!! 거친 흑추마의 행동을 보자 병사는 뒷걸음치며 말했다. “난 갈 테니. 저 놈과 잘 사귀어 봐라!” 병사가 사라지고 나자 치우는 흑추마의 거친 숨소리와 사나운 뿔을 보고 질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한동안 흑추마가 앞발을 사납게 들고 소리치더니 치우를 보고는 잠잠해 졌다. 그리고는 이내 코 김을 강하게 내불며 조용해 졌다. 치우는 흑추마의 사나움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가 조용해지자 조금씩 뒤 걸음치며 빠져 나가려 했다. 그러나 몇 번 뒷걸음치다 멈추고 생각했다. “이 놈도 싫은 거겠지. 마음껏 뛰 놀던 곳에서 나처럼 잡혀와 묶여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흑추마의 검고 맑은 눈동자를 보자 무서움이 사라졌다. 이내 흑추마도 자신과 같은 신세라고 생각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나처럼 붙잡혀 왔구나? 너도 나처럼 저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지?” 치우의 말에 흑추마는 푸르릉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 내 말을 알아듣니?” 흑추마가 눈을 들어 치우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래! 알아듣는 구나. 나도 너처럼 붙잡혀 왔어. 나도 저 밖으로 나가고 싶구나.” 치우가 말하며 천천히 접근해도 흑추마는 가만히 있었다. 치우가 말갈기를 쓰다듬어도 푸르릉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말등을 쓰다듬던 치우가 거친 느낌에 놀라 보니 등에 상처가 많다. “어? 이게 무슨 상처야?” 치우가 상처를 만지자 흑추마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괜찮아! 잠시 있어봐. 이건 채찍에 맞은 상처구나. 이하영 그 나쁜 계집의 짓이겠지” 이하영은 흑추마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 할 수 없자 채찍질로 다스리려고 한 것이다. “나쁜 계집애!” 치우는 소리치며 품에서 조그만 병을 하나 꺼냈다. “아프지 않을거야. 내가 상처에 약을 발라줄께.” 푸르릉!! 푸르릉!! 흑추마는 알아들은 듯 움직이지 않고 치우를 멀뚱 쳐다봤다. 치우는 예전에 상천제 막개의 치료를 위해 주었던 약을 꺼내서 흑추마의 등에 발라 주었다. 이 약은 효과가 좋았다. 그래서 예전에 상천제 막개도 빠른 회복을 보인 것이었다. “괜찮아. 이제 좋아 질꺼야.” 치우가 웃으며 말하자 흑추마가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며 푸르릉거렸다. 치우는 몇 일간 흑추마와 같이 보냈다. 처음 흑추마에게로 보낸 것은 흑추마의 사나운 기세에 치우를 겁주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흑추마가 치우에게 다정하게 굴자 이하영은 속으로 더욱 열이 났다. 그럴수록 치우는 그녀의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수시로 찾아와 치우에게 시비를 걸며 병사들을 시켜 채찍으로 때리기를 반복했다. 채찍에 치우가 맞을 적 마다 흑추마가 사납게 울어대자 이하영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흥! 내가 그렇게 잘 해주었는데 저 놈에겐 사납게 굴지 않구. 나에게만 못 되게 군단 말이지? 흥! 왜 저 놈이 맞으니 너도 괴롭냐? 더욱 세게 때려라 아주 죽여도 좋다.“ 그녀의 악에 찬 행동에 치우는 거의 죽을 정도로 채찍질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치우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순양기를 찾은것이다. 아니 오히려 공력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일반적인 타격을 받아도 스스로 보호 할 수 있었다. 치우가 마음만 먹었다면 병사들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탈출 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힘을 숨겨야 했다. 이하영은 죽을 만큼 치우를 때린 후 차가운 웃음을 흘린 후 사라졌다. 그녀가 간 후 치우가 고통에 인상을 쓰자 흑추마가 가볍게 울었다. “괜찮아! 네가 맞는 것 보다 차라리 내가 맞는게 좋아.” 예전에는 이하영이 흑추마를 때렸지만 지금은 치우만을 채찍으로 괴롭혔다. 치우가 흑추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뒤에서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항상 네가 힘든 것을 알지만 지켜 줄 수가 없구나.” 이화린이었다. 그녀는 항상 치우가 이하영에게 당할 때마다 찾아와 치우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말은 치우를 감동시켰고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쩔 때는 차라리 계속 이하영의 채찍을 계속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야 계속 이화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치우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말을 할 때마다 그의 가슴은 터질 듯 아파왔다. “치우야 등을 돌려봐! 내가 약 발라 줄께.” 치우가 어색해 하며 말했다. “아.....니예요. 누나 그냥 둬도돼요.” 이화린이 화난 듯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왜? 내가 싫어? 뒤 돌아봐.” “예....누나를 왜 싫어해요.” 치우가 등을 돌리자 이화린의 부드러운 손길이 거칠게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치우의 가슴은 주체 할 수 없이 뛰었다. ‘아! 숨이 왜 이렇게 벅차지. 왜 이렇게 답답할까?’ 치우는 조용히 말했다. “저.....화린이 누나는 왜 제게 잘해주죠?” 그의 물음에 이화린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훗! 치우를 좋아하니 잘해주지. 치우는 내가 싫어?” “아...니요. 좋아해요.” “그럼 됐지 뭐.” 시간이 지날수록 치우는 불안해 졌다. 이하영의 표독스러움은 더욱 심해졌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꼴로 찾아와 치우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치우에게 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치우의 불안은 이화린에게 있었다. 그녀를 하루만 보지 않아도 불안하고 답답했다. 그녀의 밝은 미소를 보지 못하는 것은 죽음과 같았다. 이미 치우의 가슴엔 이화린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몇 일 전부터 이화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항상 이하영이 찾아오는 날은 어김없이 찾아와 위로해 주던 그녀가 오지 않자 치우는 불안하고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치우는 이하영이 외부에 나갔다는 소리를 듣고 이화린이 있는 후원 별채로 찾아갔다. 다행히 치우를 지키는 사람이 없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화린의 거처는 후원 뒤 쪽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앞 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고 양 옆에는 운치있는 정자가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향기로운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치우는 조심히 별채로 들어서며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약간의 의아함도 얼굴에 떠올랐다. 치우는 이화린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프거나 외부에 나가서 그런 줄 알았다. 보고 싶어 비록 찾아왔지만 그녀가 차라리 없기를 바랬다. 몇일 전 이하영이 비웃음을 날리며 말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 언니는 조금 있음 신기린 오라버니와 약혼 할 꺼야. 네 놈 같은 천한 것이 넘볼 상대가 아니지. 언니는 그저 네 놈이 불쌍해서 돌봐준 것뿐이야. 봐! 몇일 동안 화린이 언니를 보지 못했지? 신기린 오라버니가 지금 언니에게 와 있거든. 후후 네 놈 주제에 감히 우리 언니를 넘봐?“ 치우는 아닐 거라 생각하며 이화린을 찾은 것이다.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환하게 웃는 이화린과 신기린이었다. 둘은 연못 위에 떠 있는 정자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화린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신기린의 당당한 모습에 치우는 자신이 초라해 짐을 느꼈다. ‘아! 치우야! 넌 참 바보 같구나. 넌 이곳에서 노예에 불과하고 이화린은 이 곳 청연합군의 군모인데 어떻게 너와 어울린다 생각했더란 말이냐‘ 치우는 다리에 힘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갑자기 자신이 할 일이 모두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살아가야하는지 지금 왜 여기서 자기는 허탈해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이화린과 신기린의 밝은 웃음소리가 치우의 가슴을 차갑게 도려냈다. 아팠다. 너무나 아팠다. 숨이 막힐 듯이 아파서 소리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었다. 이화린과 이야기를 나누던 신기린은 별채 입구 쪽에 치우가 넋놓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호! 이놈! 네 놈이 화린 소저를 넘보았다고? 죽일 놈 노예주제에. 이 놈 잘 보아라 네 놈 가슴에 비수를 꽂아주마.‘ 신기린은 모른 척 이화린을 보고 말했다. “소저 잠깐만....” “왜요?” 신기린은 치우가 이화린의 뒤를 보게끔 뒤로 돌려놓았다. “화린 소저 잠깐만! 벌레가 옷에 떨어졌네요. 가만히 계세요.” 신기린은 이화린을 속이고 벌레를 털어내는 듯 하면서 살짝 이화린을 끌어안았다. 치우는 이화린의 뒤쪽에서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설마 했는데 신기린이 이화린을 안자 가슴에 충격을 받은 듯 무너져 내렸다. 치우는 너무 허탈하고 주체 할 수 없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 그의 아픔에 찬 한숨 소리를 들은 이화린이 놀라며 뒤 돌았다. “누구? 치우?” 이화린이 뒤 돌아 보았을 때 치우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놀란 이화린이 달려가며 치우를 불렀다. “치우야?” 그러나 이미 치우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이화린이 신기린을 보고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한거죠? 왜 갑자기 사람은 끌어안아요?” 신기린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왜 그러시오? 설마 저 노예 녀석을 진짜 좋아 한 것은 아니겠지요?” 이화린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신기린 공자를 좋게 보았는데 제가 잘 못 보았군요. 그만 돌아 가주세요.” 신기린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흥! 저 노예 놈과 당신이 어울리기나 하오? 저 놈도 제 분 수를 알고 있을 거요. 재미삼아 그러는 모양인데....이 쯤 했으면 많이 즐기지 않았소.“ 이화린의 눈이 날카로와 졌다. “뭐라고요? 말을 함부로 하시는 군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신기린은 다시 비릿한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글세요. 과연 제 말이 틀렸을까요? 청연합군의 군모라는 직위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죠. 당신의 그 천재적인 머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청연합군이 이렇게 제자리를 잡지 못했을 거요. 당신의 겉은 아름답고 순수하며 천사같지요. 그런데 과연 당신의 내면도 그럴까요?“ 신기린의 말에 이화린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죠?” “당신과 나 우린 같은 부류의 인간이요. 작은 것 보다 큰 것을 그 큰 것보다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리고 싶어 하는 부류란 말이오.“ “당신은 그런지 모르지만 전 아니예요.” “그래요? 군모 이화린이 도대체 아무 이유 없이 노예를 잘 대해 준다? 하하하. 이거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일이야. 정말 좋아해서? 후후....궁금하군요.“ 이화린의 얼굴이 더욱 무섭게 냉냉해지며 말했다. “신기린 공자 경고하겠어요. 전 연합군 내의 군모예요. 앞으로는 예의를 갖추어 주길 바래요. 그리고 잘 가세요.“ 이화린의 축객령에 신기린은 벌레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흥! 언젠가는 네 년을 내 품에 꼭 품고 말겠다.’ 치우는 처참했다. 자신의 신분이 노예로 전락한 것이 한스럽고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도망치 듯 달려 와야 했던 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치우의 슬픔을 눈치 챘는지 흑추마가 푸르릉거리며 볼을 비벼왔다. “후후. 그래 너만은 내 이 아픈 마음을 아는구나.” 치우가 흑추마와 이야기를 나눌 때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흥. 네 놈은 이곳에서 한발작도 나가지 마라. 지금 성내는 발칵 뒤집혔으니” 치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소리죠?” “노예 하나가 탈출했다. 서대륙에서 잡아온 백면인 한 놈이 식량을 들여온 마차를 타고 사라졌어. 몇 년 전에도 그런 놈이 한 명 있었는데 끝내는 잡히고 말았지. 멍청한 놈들! 이 곳 일대는 모두 우리 군사들이 지키고 있어 도망가지 못한 다는 것을 왜 모를까.“ 병사는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아마도 다른 노예들이 동요되지 않기 위해 단속 나 온 것이다. “칸지라!! 칸지라가 틀림없어! 성공해야 하는데.” 치우는 서대륙의 백면인이라는 말을 듣고 칸지라 임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한노인으로부터 들은 탈출 경로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는가. 치우는 자신의 왼팔에 찬 천지환을 보았다. “이상하다. 분명 예전에는 색이 은색이었는데 왜 금색으로 바뀌었을까?” 천지환은 확실이 그 색이 변해 있었다. 치우가 거의 죽음 직전에 간 이후 은색에서 금색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문양이 생기지는 않았다. 치우는 알 수 없어 고개만 흔들 뿐이다. “이 것을 전해주기로 한 약속을 나도 지켜야해. 이곳을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화린이 누나에 맞는 사람이 되어 돌아 와 야해.“ 치우는 생각하다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야. 그 재수없게 생긴 놈과 약혼을 한다잖아. 휴!” 하늘은 이미 어두워서 별들이 하나 둘씩 빛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 화린이 누나 입으로 직접 들어야해. 이하영 고계집의 말을 어떻게 믿어.....아니야 아까 낮에 봤잖아.....둘이 좋아하는 모습을.....아니야 그래도 누나에게 직접 들어야해.“ 치우의 마음은 수십 갈래로 생각이 갈라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결심이 선 듯 치우는 몸을 움직였다. 밤이라 경비들이 곳곳에 있음 알고 있지만 지금 치우는 이화린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치우는 이미 순양기가 모두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로 공력이 불어나 예전보다 움직임 무척 수월하고 빨랐다. 다만, 치우는 정식으로 신법을 익히지 못해 몸놀림이 자연스럽지는 못했다. 다행히 경비가 도는 시간과 위치를 치우는 이미 잘 알고 있어 그들의 이목을 피하기는 쉬웠다. 몇 번 돌자 이화란의 별채가 나왔다. 치우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화린의 목소리와 낮선 사내의 음성. 치우는 깊은 밤에 이화린의 숙소에서 사내의 목소리를 듣고 놀랐다. “이런! 설마 신기린을....” 그러나 사내의 목소리를 자세히 들은 치우는 신기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 이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다.’ 치우는 익숙한 듯 들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하하. 화린이의 무예가 이제는 이 사부를 능가하겠구나.” 이화린의 말소리가 들렸다. “당치 않습니다. 어찌 제자가 사부님의 하늘같은 무예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갈수록 더욱 네 총명이 더하고 아름다움도 더 하더니 이제는 사부를 즐겁게 하는 말까지 잘하는구나. 하하하“ 치우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다행히 사내가 이화린의 사부라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사내의 목소리는 너무 귀에 익었다. ‘누굴까?’ 치우는 위험을 무릎 쓰고 조심스럽게 더욱 가까지 접근했다. 사내의 말이 들렸다. “이번에 네게 큰 선물을 주려 했는데....일이 틀어졌구나.” 이화린이 놀라며 말했다. “제게 선물을 주시려고 했다니요? 어떤?” “아니다. 내가 성공했다면 네게 조언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조언이라뇨. 소녀가 무슨 재주가 있어 사부님께 조언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뭐라? 하하하. 이제는 겸손까지? 천하의 청연합군의 군모께서....그런 말씀을 하시면 하늘이 웃지. 하하하 세상의 돌아가는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세상의 책은 모두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는 신기묘묘 이화린 군모가 모르는 일이 있다면 세상에서 누가 알겠느냐?“ 사내의 말에 치우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화린 누나의 위치가 그렇게 대단한가?’ 사내가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늦은 밤에 내가 너무 말이 많았구나. 그만 쉬거라”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이화린이 쫒아 나왔다. 치우는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어둠 속에 숨어서 사내를 보았다. 그의 뒤 모습이 무척이나 낯익다. ‘누굴까? 저 뒷모습....분명 어디서 봤는데...뒤 돌아 얼굴을 보여 봐!’ 사내는 이화린과 몇 마디를 나누고 그대로 걸어 나갔다. 치우는 안타까웠다. 분명 자신과 크게 관련된 사람이라 생각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발! 한번만 뒤 돌아봐!! 한 번만!!’ 치우가 외쳤으나 사내는 그대로 사라지려는 듯 보였다. 그때 이화린이 소리쳤다. “아! 사부님!! 잠깐만요! 드릴 것이 있어요.” 이화린의 목소리에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천천히 뒤돌아선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치우의 눈에 불이 튀며 입술을 깨물었다. ‘백괴 갈마웅!!!’ 그는 청도삼괴 중 우두머리 백괴 갈마웅이었다. 이내 이화린이 무엇인가를 들고 백괴 갈마웅에게 내밀었다. “소녀가 사부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래? 하하하. 고맙구나.” 이하린이 밝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호호. 저기 저희 아버지께는 비밀입니다.” 백괴 갈마웅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명이 그 친구가 알면 섭섭해 하겠어. 하하하” 백괴 갈마웅은 이내 웃으며 별채를 나갔다. 이화린은 백괴 갈마웅이 떠난 것을 확인 후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치우는 치를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큰일이다.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청도삼괴가 모두 이곳에 있다는 소리다. 그들에게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몸을 움직이려 던 치운는 이화린이 들어간 방을 쳐다보았다. ‘화린이 누나를 만나야해. 꼭 물어봐야해.....그러나 백괴 갈마웅이 그녀의 사부라면.....언젠가는 나와 원수지간이 되겠구나....아! 무슨 운명이 이렇게 꼬이고 꼬인다 말이냐!‘ 치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춤거릴 때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이화린의 숙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 화린이 누나에게 해하려는 자객이 분명하다.” 놀란 치우가 검은 그림자가 들어간 곳으로 뛰어들려 할 때 이화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무거운 사내의 목소리가 답했다. “예. 군모님! 군모님이 말하신 것을 가지고 가남에 있는 서고를 모두 뒤져서 ‘천지설(天地說)이란 책을 찾았습니다. 여기!“ 치우는 검은 그림자가 이화린을 해하려는 자객이라 생각되었는데 그녀의 심복임을 알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누나의 신분이 군모라더니 무슨 음밀한 일을 저자에게 시켰나보구나. 내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 무척 화내시겠지? 오늘은 그냥 가야겠구나.‘ 치우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라 기쁨에 찬 이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맞구나! 내 생각이 맞았어. ‘천지환’ 그래! 그 노예 놈이 가지고 있던 것이 천지환이 맞았어! 호호호“ 이화린의 말에 치우는 벼락에 맞은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서 흘러나온 말이 치우의 귀속을 때리며 계속 반복되었다. ‘천지환!!......천지환!!..........호호호......노예 놈!!.........노예 놈!! 호호호’ 치우는 심장이 멎는 충격에 휩싸이고 휘청거렸다. 이화린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친지환이 맞았어. 여기 천지설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치우라는 노예 놈이 차고 있던 것이 같다. 역시, 놈을 잘 꼬셔놓기 잘했어.“ 그녀의 말에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검은 인영이 놀라서 말했다. “군모님! 천지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의 말에 이화린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놈도 정말 운이 없구나.” 이화린은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며 지풍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지풍은 그대로 검은 인형의 인중에 박혔다. “예? 무슨.........컥!! 왜......?” 이화린이 차가운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소문이 퍼지면 안좋거든. 천지환을 찾이 하기 위해서 이 비밀이 밖으로 흘러가면 안되거든.“ 치우는 밖에서 이화린의 말을 듣고 그녀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어떻게....저렇게 아름다운 누나가? 이토록 잔인하단 말인가! 그리고 날 좋아하는 척 했던 것이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난.....난! 정말 누나를 좋아했는데........내 모든 것을 줄 만큼 좋아했는데.......차라리 천지환을 그냥 달라고 했어도 주었을 건데......왜......왜..........‘ 치우의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기혈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컥!!” 치우는 심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화린이 소리치며 밖으로 나왔다. “누구냐?” 그러나 그녀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흠! 이상하군! 분명 인기척을 느꼈는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이화린은 바닥에 핏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주위를 살폈다. “흠! 누군가 있었군. 피라.....!!” 그녀는 바닥의 피를 손가락으로 묻혀서 냄새를 맡아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치우가 흑추마에게 먹이를 주고 있을 때 이화린이 찾아왔다. 치우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프고 두근거렸다. ‘아! 그녀의 잔인함과 거짓을 보았건만 이렇게 가슴이 아프도록 두근거리는 느낌은 무엇인가. 냉정해 지자 치우야. 그녀에게 평소처럼 대해야 한다.‘ 치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밝게 웃었다. “화린이 누나! 요즘 왜 이렇게 보이지 않았어요? 전 누나가 어디 아픈지 알고 놀랐잖아요.“ 치우가 반갑게 맞이하자 이화린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성내의 일이 있어서 그 일 좀 처리하느라고....” 그녀는 말하며 치우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 놈이 아닌가?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니....하긴! 이 놈은 무예도 못하는데 내 이목을 피하고 쉽게 도망갔다면 다른 놈이겠군. 어쨌든 상관 없다. 오늘 안에 이 녀석의 천지환을 차이하면 되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치우야. 너 내가 지내는 별채로는 와 본적 없지?” 그녀의 물음에 치우는 찔끔 했지만 모른척 말했다. “아! 예.” “그럼. 나와 같이 가 볼래? 맛있는 것도 만들어 줄께.” 그녀의 말에 치우는 당황되었다. ‘별채로 가자고? 이 곳은 사람들이 눈이 많으니 자신의 숙소로 끌고가 천지환을 찾이 하겠다는 말이구나. 아! 화린이 누나 난 누나가 그냥 달라면 이 천지환을 줄 수도 있어요. 그러데 누나는 이제 절 죽이려고 하는군요.‘ 치우는 가슴이 아팠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치우의 이상한 표정에 이화린이 물었다. “왜? 싫어?” “아....아니요.” “그래? 그럼 가자.” 이화린이 치우의 손을 잡고 이끌자 어쩔 수 없이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하영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나타났다. “흥! 언니!! 언니는 어쩌자고 저 노예 놈을 이제는 여자만 있는 별채로 끌고 갈 생각까지 하는 거죠?“ 이하영의 갑작스런 등장에 이화린은 화가 났다. ‘하영이 요년이 내 계획을 망치려 드는구나. 넌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제발!‘ 이화린은 화가 났지만 밝게 웃으며 말했다. “왜? 안되는 이유라도 있니? 내가 치우를 데려가고 싶으면 어디든 데려갈 수 있어 누가 나를 막을 건데?“ 이하영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안돼!! 오늘은 언니가 양보해! 만약 그렇지 않음 아버지께 모든 이를 꺼야.” 이화린의 눈썹이 올라갔다가 한숨을 쉬며 웃음을 웃었다. “왜? 또 치우를 때리게?” “아니! 오늘은 저 흑추마를 꼭 타고 말거야. 그런데 흑추마와 친한 놈이 저 노예 놈이니 할 수 없잖아. 같이 데리고 나가야지.“ 이하영의 말에 이화린이 놀라서 외쳤다. “너 미쳤니? 그럼 치우를 성밖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거야?” “왜? 저 놈은 노예가 아니라며? 그럼 성밖으로 데리고 나가도 되는 거 아니야?” “뭐? 너 그걸 말이라고해?” 이화린의 이상스런 태도에 이하영이 살며시 째려보며 물었다. “언니! 설마 저 노예 놈이 도망 갈까봐 그래? 그럼 이상하네. 어니는 저 놈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오히려 도망가길 바래야 하는 거 아니야?“ 이화린은 더 이상 이하영과 대화를 하면 안될 것 같았다. ‘할 수 없다. 시간은 많으니....그리고 성 밖으로 치우를 데리고 가도 주위에 많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도망은 못가겠지. 또 녀석이 날 좋아하니 도망 갈 리도 없구.‘ 이화린이 말했다. “그럼 네 맘대로 해! 치우야 우리 그럼 낼 보자.” 이화린은 치우에게 살짝 웃어주고는 걸어 나갔다. 치우는 이하영의 등장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저 얄미운 계집이 날 도울 때가 다 있군.’ 이하영이 말했다. “너 내말 잘 들어. 흑추마는 워낙 사납고 빨리서 성 내에서는 탈 수가 없어. 그래서 성 밖으로 네가 흑추마를 잘 달래서 끌고 가야해. 그리고 내가 흑추마를 탈 수 있도록 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 녀석을 정말 죽여 버릴 꺼야.“ 치우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이하영이 사납게 말했다. “흥! 네 놈이 화린 언니를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난 화린이 언니를 두려워하지 않아.” 치우는 성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면 이하영이 눈치를 챌 것 같아 일부러 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알았다.” 30여명의 병사가 호위를 하며 이하영과 치우는 흑추말를 끌고 내성을 나왔다. 내성과 달리 내성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했고 각종 장사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치우는 마치 예전에 거지 생활을 했던 태동로 거리는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때를 생각하니 초개와의 즐거웠던 일들이 생각나고 상천제 막개와의 만남도 생각났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이 한동안 외성 시내를 걸어가자 거대한 성문이 하나 나왔다. 외성을 빠져 나가는 마지막 문이었다. 치우은 그 문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곳에 잡혀 와서 노예 생활을 한지 벌써 육 개월이 넘었다. 이제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의 긴장감을 느꼈는지 흑추마가 푸르릉거리며 치우의 볼에 머리를 비벼댔다. ‘그래! 너도 좋구나? 답답한 곳에 있다 드넓은 곳으로 가니....너에게도 자유를 주마.‘ 치우가 생각하는 동안 성문 앞에 다 달았다. 병사 하나가 성문지기에게 소리쳤다. “둘째 아가씨가 나가신다 성문을 열어라!!” 그의 외침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임에 거대한 성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는 것에 긴장하고 있던 치우의 귀에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영아 어디를 가느냐?” 이하영이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사부님!!” 치우가 놀라서 쳐다보니 백괴 갈마웅이 웃으며 이하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치운는 기겁을 하고 흑추마 뒤 쪽으로 몸을 재빨리 숨었다. 다행히 백괴 갈마웅은 치우를 보지 못하고 이하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괴 갈마웅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는 네 언니를 보았다. 너도 그새 무공에 진전이 꾀 있었구나.” “호호호. 그래도 사부님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요.” 이하영과 말을 하던 백괴 갈마웅이 흑추마를 보고 찬사를 보냈다. “오호! 천추마가 아니냐? 어디서 저런 영물을....대단한 하구나.” 백괴 갈마웅이 흑추마를 보고 다가오자 치우는 진땀을 흘렸다. 이하영이 자랑하듯 말했다. “히힛. 아버지가 제 생일 날 주신 선물이예요. 서강을 건너서 직접 잡아 오셨대요.“ 흑추마를 탐내듯 바라보던 백괴 갈마웅이 손으로 등을 만지려 하자 흑추마가 사납게 울며 앞발을 들었다. 히히힝!! 히히힝!! 그 모습에 백괴 갈마웅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하하하. 영물이로고! 네 주인이 아니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하하“ 흑추마가 사납게 굴자 이하영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이놈의 노예 녀석이 어딜 갔어. 흑추마를 진정시키라고 데리고 나왔더니.” 그녀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자 백괴 갈마웅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저 흑추마를 다룰 줄 아는 노예가 있었더냐?” “예. 유난히 그 놈만 접근하게 하고 저도 접근 못하게 하잖아요. 내 오늘은 꼭 저 놈을 타고 말거예요.“ 백괴 갈마웅이 물었다. “그 노예 놈은 어디 있냐? 한 번 보고 싶구나. 저런 영물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병사들 뒤 쪽에 숨어있던 치우는 백괴 갈마웅의 말에 기겁을 했다. ‘이런!! 저 죽일 놈이 끝까지 날 죽음으로 몰고 가는구나.’ 백괴 갈마웅의 말에 이하영이 소리쳤다. “노예 놈을 찾아라! 어디 있느냐?” 그녀의 명령에 병사들이 주위를 뒤졌다. 그때 병사하나가 자신의 뒤 쪽에 쭈그리고 숨어있던 치우를 발견했다. “요놈! 여기서 뭣 하는 거냐? 아가씨께 가자.” 치우는 병사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백괴 갈마웅의 눈에 띌 것 같아 그냥 순순히 잡혔다. 치우를 막 백괴 갈망웅에게로 끌고 갈 때 작은 체구의 난장이가 통통거리며 나타났다. 치우는 그 움직임을 보고 이미 소괴 마불웅임을 알 수 있었다. 소괴 마불웅이 백괴 갈마웅을 보고 말했다. “형님! 큰 형님께서 오셨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이하영이 외쳤다. “정말요? 아버지가 벌써 돌아 오셨어요?” 백괴 갈마웅이 이하영을 보며 말했다. “나와 같이 가겠느냐?” 이하영이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곳에 소녀가 가서 무엇해요. 전 저 흑추마나 탈래요.”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지?” 이하영이 갑자기 백괴 갈마웅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부님! 아버지께는 비밀이예요. 저 흑추마 타러 나간 거요. 흑추마가 사납다고 타지 못하게 하세요.“ 백괴 갈마웅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러마! 셋째야 가자!” 이내 백괴 갈마웅과 소괴 마불웅이 사라지자 이하영에게 병사가 다가왔다. “아가씨 이 놈을 뒤 쪽에서 찾았습니다.” 치우를 발견한 이하영의 눈썹이 올라가며 손으로 치우의 뺨을 ‘찰싹’하고 때렸다. “이놈! 어디 쳐 박혀서 이제 와! 사부님이 가버렸잖아.” 병사가 이하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 성문이 다 열였습니다.” 이하영이 소리쳤다. “가자!!” 치우는 이하영게게 맞은 뺨을 만지며 이를 악물었다. ‘이 성문만 빠져나가면 널 가만두지 않겠다.’ 거대한 성문을 통해 삼십여 마리의 말들이 지나갔다. 앞장서서 이하영이 나갔고 그 뒤를 병사들이 호위하며 나갔다. 치우는 중간에서 흑추마의 고삐를 잡고 걸어갔다. 점점 밖으로 발을 내딪을 적마다 치우의 가슴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아직은 아니다. 이곳을 좀 더 벗어난 후! 흑추마야 너만 믿는다.’ 성문을 완전히 나서자 다시 거대한 성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하영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대란성 반대에 있는 개마벌로 간다. 그곳 이면 숲도 없고 넓게 대지가 펼쳐져 있어서 말을 달리기에는 좋을 것이다.“ “예!” 치우는 이하영의 말에 생각했다. ‘넓은 벌판은 내가 도망가기 쉽지 않다. 숲으로 도망 가야한다. 흑추마는 체력이 좋아 급한 산길도 평지처럼 잘 달린다고 했다. 저 병사들이 말을 타고 쫒아 온다면 벌판 보다야 숲이 내게 유리하다.‘ 한동안 길을 가던 치우의 눈에 거대한 숲이 보였다. ‘저기다! 저 숲이라면 가능하다. 저 숲 옆에 드넓게 펼쳐진 곳이 개마벌이로 구나.’ 앞 쪽엔 거대한 푸른 숲이 웅장한 기세로 버티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드넓은 초원이 있었다. 예전 태무전쟁 때 병사들의 피가 흘러넘치던 곳이기도 했다. 이하영은 뒤 돌아 보며 치우에게 말했다. “허튼 생각 말아라.” 그녀도 치우의 움직임을 예상한 듯이 경고했다. 그녀의 말이 신호인 인 것처럼 갑자기 병사들이 치우의 양 옆으로 포위하듯 감쌌다. 치우가 도망 갈 것이 대비한 것이다. ‘흥! 날 예전의 나로 보면 착각 한 것이다.’ 치우는 속으로 싸늘하게 웃으며 숫자를 세었다. 숲까지 도달할 시간과 간격 그리고 자신이 흑추마 위로 뛰어올라서며 병사들을 따돌릴 계획을 머리 속에서 계산을 하였다. ‘하나................둘.......................셋!!’ 속으로 외침과 동시에 치우의 몸이 흑추마 위로 뛰어올랐다. 흑추막 기다렸다는 듯이 거칠게 울어대며 앞발을 들었다. 히히힝!! 히히힝!! 양 옆으리 병사가 놀라며 흑추마의 앞을 막고 칼로 치우를 내려쳤다. 치우는 고개를 숙이며 병사의 손목을 잡고 틀었다. 툭! 뼈뿌러지는 소리가 나며 병사가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병사의 검을 빼앗은 치우가 우측에서 덤벼오는 병사의 목을 쳤다. “큭!”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병사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보고 이하영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하냐? 저 놈을 잡아라!!” 그녀의 명령이 수 십 명의 병사들이 포위 했다. “흥! 모두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치우가 크게 소리치며 흑추마를 앞으로 몰았다. 히히힝!! 히히힝!! 흑추마가 이마의 큰 뿔을 들이대며 거칠게 달려 나가자 병사들이 놀라서 옆으로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이하영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저 놈을 놓치면 네 놈들을 모두 참형에 처하겠다.” 병사들은 막다른 벼랑에 몰린 사람처럼 거세게 치우에게 달려들었다. 치우는 흑추마를 몰고 앞으로 달려가려 해도 수 십명의 병사들이 앞을 막아 달릴 수가 없었다. 흑추마의 뿔에 병사들의 말들이 받혀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병사 둘이 치우의 앞을 막으며 공격해 왔다. 치우는 검을 회전시키며 둘의 검을 튕겨냈다. 그때 흑추마가 병사들의 말을 뿔로 받아버렸다. 히히히힝!! 병사들의 말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쓰러지자 병사들도 같이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병사들이 치우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이미 앞 쪽 길이 뚫려서 흑추마가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하영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썼다. “쫒아! 쫒으란 말야! 잡아!!! 이 멍청이들아!!” 그녀는 흑추마를 향해 뒤 쫒으며 병사들에게 악을 썼다. 병사들도 죽어라 말을 달리며 치우를 쫒았다. 그러나 그들이 쫒는 것은 천하의 흑추마 였다. 천리마 보다 빠른 흑추마가 신나게 달리자 이미 치우의 모습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치우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네가 날 살려주는구나. 하하하. 달리자 흑추마야. 달려!! 우리 힘껏 달려서 이 자유를 만끽하자! 하하하하“ 치우의 통쾌한 웃음이 맑은 하늘에 울려 퍼졌다. - 개인적 사정에 의해 2부를 끝마칩니다. 항상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다음 3부에는 더욱 좋은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늦게 올리고 빨리 끝내고....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네요. 최대한 빨리 3부를 다시 시작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2
THE MASK(탈) 2부 대륙에 부는바람(2부 마지막회)
- 11 -
얼마를 더 갔는지 몰랐다.
치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밖을 내다 볼 수 없어 답답했지만 거칠게 울리던 마차가 조용하게
간다는 것은 바닥이 잘 닦여진 도시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정도 가자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삼금대가 도착했다. 둘째 아가씨와 셋째 아가씨가 오셨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 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충! 청연합군 만세! 이명 총사령관님 만세!”
치우는 마차 안에서 귀가 울리도록 크게 들리는 소리에 놀라서 마차 틈에 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구멍을 통해 보니 수 백 명의 군사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이하영이 거만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 꿇은 군사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또 다른 여자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본 치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니!”
그녀의 외모는 충격이었다.
한 번 보면 또 다시 눈이 가게 되고 영원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백옥을 깎아 만든다하여도 피부가 저렇게 투명하지 않을 것이며
흑진주를 박아 넣어도 눈동자가 저렇게 맑고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미소는 모든 사람을 행복에 빠지게 했고 그녀의 슬픔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군사들의 함성에 푸른 옷의 여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이곳 하남을 끝까지
잘 지켜주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청연합군이 더욱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모든 군사들이 다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선녀 같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숨소리까지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곧 총사령관님도 이곳에 도착하셔서 여러분들과 축배의 잔을 들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수백의 군사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총사령관님 만세!! 청연합군 만세!! 군모님 만세!!”
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푸른 옷의 여자와 이하영은 안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치우가 탄 마차의 문이 열렸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내가 치우를 보고 말했다.
“넌 나와 같이 가자.”
치우는 뚱뚱한 사내의 뒤를 쫒았다.
뚱뚱한 사내가 치우를 보며 말했다.
“난 마상태라고 한다. 이 곳 하남 대란성의 노예들은 모두 내가 책임진다.
앞으로 넌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알겠느냐?“
마상태의 물음에 치우는 아무대답이 없다.
앞서가던 마상태가 걸음을 멈추고 치우를 돌아보았다.
“난 내 말에 따르면 항상 인자하지만 불복종하거나 반항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오늘은 첫날이라 내가 네 놈을 좋게 대하지만 계속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은 무척이나 차갑게 들렸다.
치우는 마상태의 몸이 비록 작고 뚱뚱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치우는 노예들이 쓰는 외곽 건물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맡은 일은 마구간의 청소였다.
말들이 쏟아낸 오물들을 치워야 했고 각종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처음 몇 일간은 너무 힘들어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치우는 때때로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성(城) 내부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으나 그의 활동 공간은 정해져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란성 곳곳에 많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아보였다.
이곳의 노예들은 대부분이 대동국 사람들이거나 서대륙에서
잡혀온 백면인들 이었다.
노예들의 생활은 끔직했다. 대란성에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치우는 그렇게 견뎌내야 했다.
치우는 한 달 가량 대란성에서 지내며 상천제 막개가 전수한 순양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미 치우는 곳곳의 혈도가 막혀서 순양기를 느낄 수도 없었다.
완전하게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 간 것이다.
치우는 좌절했다.
그의 한 가닥 희망은 막개가 전수한 무공을 통해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방법조차 불투명했다.
대란성에 잡혀와 10여년을 노예 생활을 한노인으로 부터 들은 말은
더욱 치우를 침통하게 만들었다.
한노인은 치우가 탈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고 안타까이 말했다.
“애야! 네 마음은 알겠지만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포기해라. 나도 처음엔 너처럼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지금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렵구나.“
“할아버지는 이곳 지리에 잘 알고 있을 테니 저에게 좀 가르쳐 주세요.”
한노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휴! 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10번의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10번 다 실패하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지. 만약 대부인의 넓으신 아량이 아니었다면 난 이미
사형 당해서 죽었을 게다.“
“대부인이라면?”
“이곳 대란성의 총사령관이 이명 장군의 부인이시지. 그녀는 꽃처럼 아름답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다.“
한노인의 몽롱한 눈빛은 대부인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존경이 담겨있었다.
치우는 한노인에게 매달렸다.
“그래도 이곳에 관해 알려줘요. 이 곳에서 탈출 가능한 곳이 어딘지?”
한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놈아! 탈출 가능한 곳이 있음 내가 벌써 탈출 했지.”
“제발! 그럼 병사들이 지키기 가장 취약한 곳은 어디죠?”
치우와 한노인의 말을 옆에서 듣던 백면인 하나가 다가왔다.
백면인을 본 한노인이 물었다.
“칸지라! 왜 너도 관심 있냐?”
칸지라라고 불린 백면인은 푸른 눈동자에 하얀 백발을 기르고 있었다.
피부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 구리 빛 피부였다. 그의 덩치는 일반 사람의 한 배
반만큼 크고 온 몸이 근육질이었다. 그도 대란성에 잡혀 온지 4년이 넘었다했다.
칸지라는 야간 어색한 발음으로 말했다.
“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의 눈빛은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었다. 치우도 이곳에서 지내며 칸지라를
몇 번 보았지만 그의 특이한 생김에 감히 말도 붙여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칸지라의 고향에 가고픈 간절한 몇 마디 말은 그도 자신과 다를게
없는 가슴 따스한 사람이란 것을 느꼈다.
칸지라의 간절한 눈빛을 본 한노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곳 대란성은 군사적 요충지다. 옛날 대동국과의 태무전쟁 때 이곳을
찾이하기 위해 많는 병사들이 죽어갔다. 이곳은 대동국의 수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청연합군이나 대동국이나 죽음으로
서로 싸운 것이지. 사실 이곳은 대동국에도 중요하지만 청연합군 또한
빼앗길 수 없는 곳이다.“
“왜요?”
“이곳을 지나면 바로 남청의 수도 남원경까지는 순식간이지. 비록 중간에
거대한 태무산맥이 가로막고 있지만 남청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지. 그리고
동대륙의 모든 나라가 무역거래를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곳이 또한 이곳
하남의 대란성이다. 여기서는 없는 것이 없다. 그만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을
아주 중요한 곳이 여기다 보니 ..... 대란성의 경비는 여타 다른 성의 두 배 세배다“
한노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 난 무턱대고 병사들이 자리만 비우면 탈출했지 그러나 바보 같은 짓이었다.
병사들은 이중 삼중으로 성을 지키고 있다. 성 뒤쪽은 철산이다. 사람이 올라가기는
불가능하다 해서 철산이라 불린다. 그곳을 오른다 해도 철산 뒤 쪽에 흐르는
파강(波江)은 배도 띄울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험하다.“
치우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그럼 정말 방법이 없나요?”
치우의 질문에 칸지라가 몸을 더욱 바싹 다가앉으며 한노인을 바라봤다.
“글세. 수많은 병사들의 눈을 피하며 성벽을 넘을 수는 없고....그렇다고 철산을
넘어서 파강을 건넌다는 것은 무리고....내 10번의 탈출 중 가장 성공 할 뻔한
적이 있긴 있었지....“
칸지라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언제? 빨리...빨리...”
그는 동대륙 말이 서툴러 많은 말을 못하고 간단한 말 몇 마디만 했다.
한노인은 칸지라의 재촉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대란성은 내성과 외성 둘로 구분된다.
내성엔 연합군의 수뇌부들이 운집해 있고 외성엔 하남일대의 백성들이
들어와 살지 그렇기 때문에 내성의 수비보다 외성의 수비가 허술 한 편이야.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내성을 나갈 수 없다. 내성 밖으로 나간다는 거의 불가능하지....
노예들을 외성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내성내의 지리나 군사들의 배치가
외부로 노출 될 것을 미리 방비하는 거지. 노예가 만약 탈출해 적에게
중요한 정보를 준다면 이곳 대란성은 치명적이거든. 그래서 탈출이 더
힘들다는 거다. 이곳을 탈출 한다 해도 대륙에 퍼져있는 청연합군이 온 힘을
다해 쫒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노예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군사비밀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지.“
칸지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치우 또한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그런데...할아버지는 어떻게 내성을 나갈 수 있었죠?”
“세 달에 한번 외성으로부터 내성으로 각종 식량이 들어온다
그때 유일하게 노예들이 외성으로 나갈 수 있다.
많은 식량과 각종 무기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손이 필요한 군이
마상태를 통해 노예들을 부리게 한다.
그러나 그때의 병사들 수는 두 배 이상으로 우리를 지킨다.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지.
그때 난 식량을 싫고 들어 온 마차 밑에 숨어서 나갈 수 있었다.
그 것도 천행이었다. 당시 마차를 철저히 조사하고 있을 때 연합군 사령관인
이명 장군이 성으로 귀환하는 덕분에 내 마차는 조용히 넘어 갔지...그래도 끝내
난 하남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합군의 병사들에 의해 붙잡혀 왔다.“
치우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 방법 외는 없다는 말입니까?”
한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칸지라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안돼! 난 ....내 고향으로 갈 거다. 꼭!”
그의 애타는 말을 들으며 치우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자신의 왼팔에 있는
천지환을 보았다.
‘이것을....전달해야 하는데....’
다음 날도 치우는 말들의 똥을 치우고 있었다.
마상태가 치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만두고 날 따라오너라!”
마상태가 앞서 가자 치우가 그 뒤를 쫒았다.
몇 개의 화려한 건물을 지난 후 아름다운 화원으로 들어갔다.
그 곳엔 갖가지의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생김의 나무들도 곳곳에
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두 이국적이고 특이한 화원 이라고 치우는 생각했다.
앞서가 마상태가 화원을 지나 안쪽의 별채에 도착한 후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치우의 귀에 차가운 말소리가 들렸다.
“호호. 말똥을 치우느라 고생 많구나”
말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하영이 비웃음을 흘리며 서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건장한 청년 둘이 서 있었는데 하나는 검은 옷에
덩치가 무척 컸다. 커다란 눈에 검고 진한 눈썹이 강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커다란 눈매의 옆이 살짝 올라간 것이 불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또 다른 한명은 그와 반대로 하얀 옷에 아담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흘렀다. 눈이 작고
입술이 얇았지만 전체적인 조합으로 보면 잘생긴 얼굴이었다.
덩치크고 검은 옷의 청년이 청연합군의 좌군태상의 아들 왕견수이고
하얀 옷의 청년이 우군천상의 아들 신기린 이었다.
청연합군은 세 개의 군부로 나뉘어 있는데 좌군, 중군, 우군이 그것이다.
좌군은 북청 출신의 장군들이 이끄는 집단으로 하남의 북쪽을 관리하고
있다. 우군은 남청 출신의 장군들로 남쪽을 관할한다. 그리고 중군은
각종 정보를 모으는 정보 집단으로 청연합군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중군은 북청과 남청의 최고 기재들이 모인 곳으로 그 위세가 삼군 중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그 중 좌군의 좌군태상 왕천민의 아들이 왕견수이고, 우군 우군천상 신묘중의
아들이 신기린이다. 그들은 청연합군 내의 총사령관 이명장군의 세를 얻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며 이하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와 있는 것이다.
왕견수는 이하영과의 결혼으로 연합군내의 세를 넓히고자 하는 것이고 신기린은
이명 장군의 둘째인 이화린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항상 이곳을 찾았다.
치우는 둘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는 자기 성질에 못이길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어느 것도 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하영이 치우를 보며 왕견수에게 말했다.
“견수 오라버니 저 놈이 제가 말한 그 버릇없는 놈 이예요.”
옆에서 신기린이 웃으며 말했다.
“저런 하찮은 노예 놈을 무엇 때문에 신경쓰냐?”
치우는 신기린의 말에 울컥 화가 나서 눈을 치켜떴다.
신기린이 치우의 사나운 눈빛을 보고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호! 이놈 봐라. 어디 노예 놈이 눈을 들어 쳐다보느냐?”
그는 말과 함께 치우의 뺨을 찰싹하고 때렸다.
치우의 입 주위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하영은 고소한 듯이 웃고 있었고 왕견수는 관심 없다는 듯 쳐다보기만 했다.
치우는 이를 악물고 더욱 눈을 사납게 뜨며 소리쳤다.
“내가 뭘 잘 못했다고 사람을 패냐?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냐?”
치우의 말에 신기린이 황당한 듯 쳐다봤고 왕견수가 헛웃음을 쳤다.
이하영이 신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제 말이 맞지요. 오빠들.. 저 놈이 저렇게 간이 부었어요. 노예 주제에
상전에게 대들고 저번에는 잡아 오던 다른 노예들 까지 탈출 시켰다니까요.“
그녀는 신기린과 왕견수에게 있는 일 없는 일 꾸며가며 치우를 괴롭히도록
유도 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치우만 보면 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두 벌벌 떨고 감히 거절을 하지 못했는데 치우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욕까지 하지 않던가. 지금도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청연합군
내에서도 중요위치에 있는 신기린과 왕견수가 와서 비위를 맞추고 있는데
치우만은 자신을 하찮게 보는 것이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의 멋대로
뭐든지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치우의 오만함을 고쳐서 순종하게 만들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이하영의 말에 신기린이 치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종놈 들어라. 여기는 청연합군의 장군가다 네 놈이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곳이다.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치우가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어느 신분이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난 대동국 사람이다.
너희들이 무슨 권리로 사람을 잡아서 노예를 쓴다는 말이냐?“
왕견수가 큰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어디 하찮은 노예 놈이....내가 네 놈
버릇을 고쳐 놓아야 겠다”
왕견수가 앞으로 나서자 이하영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호호. 오라버니 그 버릇없는 놈을 혼내 주세요.”
신기린이 웃으며 치우에게 말했다.
“이놈! 얼른 잘 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라.”
치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맘대로 해라! 죽기 밖에 더 하냐? 죽어서도 네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치우의 악담에 왕견수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놈 네 놈 입에서 언제까지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보자.”
왕견수의 바위 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치우는 피하려 고개를 숙였지만
왕견수의 주먹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휘어져 들어왔다.
퍽!!
“큭!!”
치우는 숨 막힐 듯한 통증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왕견수의 주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치명적인 사혈을 피하며 치우의 몸 곳곳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치우가 한대 맞고 쓰러질 적마다 이하영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신기린은
싱겁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왕견수는 치우를 때릴수록 그의 잔인한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저항 없는 자를 때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비겁한 일이지만
그는 이상하게 치우의 몸을 가격 할수록 묘한 쾌감이 가슴에 퍼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자신 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괜히 괴롭히고
싶고 놀리고 싶었다. 자신의 힘을 마음껏 과시하고 싶었다.
“헉!! 헉!!”
고통에 치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이하영이 불안 한 듯 말했다.
“견수 오라버니 그 놈을 죽이지는 말아요. 내 종으로 쓸거니.”
그녀의 말에 왕견수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라. 죽지 않을 정도만 손을 봐주지.”
치우는 온 몸의 고통에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죽여라!! 네 놈이 날 죽이지 못하면 다음엔 내가 널 죽이겠다.”
치우의 말에 왕견수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신기린은 치우의 핏발 선 눈을 보고 약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하영도 치우의 악에 바친 소리에 움찔 했지만 왕견수에게 소리쳤다.
“견수 오라버니...저 놈을 더 혼내줘요.”
왕견수는 처음에는 내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주먹으로 치우를 쳤지만
이제는 화가 나자 약간의 내력을 끌어 오렸다.
“오냐. 이놈 죽어봐라. 병신이 되게 해주지.”
왕견수의 세찬 주먹을 날아와도 이미 치우는 막을 힘이 없었다.
주먹의 기세로 보아 더욱 강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 정말 내 운명은 왜 이리 처참한가....!!!’
"컥!!“
왕견수의 거센 주먹을 맞고 치우는 잠깐 공중에 떴다 바닥에 떨어졌다.
“으.....”
치우는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이번 주먹은 더욱 힘이 컸는데 왜 아까보다 덜 아프고 오히려
내 몸이 시원하지?‘
치우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왕견수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주먹은
치우의 곳곳을 두들겨 팼다. 그러나 치우는 그의 주먹을 맞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야? 저놈! 변태야? 신나게 맞으면서 뭐가 좋아서 웃어?”
이하영도 치우의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라버니 저 놈 미친 거 아닌가요?”
왕견수도 치우가 낄낄거리며 웃자 처음에는 놀랐다 그러나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 생각되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는 주먹에 더욱 큰 내력을 실어서
치우를 가격했다.
“네 놈이 이렇게 맞고도 웃을 수 있나 보자.”
치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왕견수에게 맞을수록 온 몸이 시원했다.
약간 충격에 의한 통증은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이 쾌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하단전이 따스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천일살을 사용 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순양기가 서서히 그의 단전에 피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치우는 오히려 왕견수가 지쳐서 자기를 때려주지 않음
어떻하나 걱정할 정도였다.
“하하하. 네 녀석의 주먹은 완전히 솜방망이 같구나.”
치우의 말에 왕견수의 큰 눈이 무섭게 변했다.
“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기린이 치우의 행동이 이상함을 보고 앞으로 나서며
발로 치우를 찼다.
퍽!!
강한 타격음과 함께 치우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윽!!”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네 놈이 무슨 재주가 있어. 고통을 이겨낸다 말이냐?
쇠로 만들어진 몸도 아닐진데...‘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치우가 배를 부여잡고 일어서며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후~ 네놈의 발길질도 별것 아니구나.”
치우의 말에 신기린의 얼굴이 빨개졌다. 옆에 있던 이하영과 왕견수 또한
놀랐다. 신기린의 발길질은 일반 사람이 맞으면 뼈가부러져 감히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그 것을 맞고도 웃다니....그들은 치우를 질린 얼굴로 보았다.
치우는 맞을 수록 자신의 몸이 가볍고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다. 하단전에서
순양기가 점점 강하게 일어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이제는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이다.
사실 치우는 억지로 자신의 모든 힘을 파천일살에 쏟아 부으며 몸 곳곳의
혈도가 막혀버린 것이다. 용케 혈도가 막히면서 터져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왕견수의 내력 실린 타격이 치우의 몸을 두두리면서 막혔던 혈도를
오히려 풀어주는 효과를 준 것이다. 일반적인 타격으로는 혈도를 풀 수 없었지만
왕견수나 신기린 같은 무공을 익힌 자들이 자신의 내력을 이용해 혈도를 타격한다면
이야기는 틀려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치우가 죽을 것을 걱정해 치명적인 타격을
하지 피했기 때문에 아주 적당한 힘이 치우의 몸에 적중되어 자연스레 혈도가 풀렸던
것이다. 혈도가 풀리면서 오히려 치우는 순양기의 내력이 더욱 증강되는 효과를 보았다.
아직은 완전히 내력이 자리 잡지 못했지만 시간문제 일 뿐이었다.
치우의 건방짐에 화가 난 신기린과 왕견수는 이제 적당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왕견수는 이하영에게 말했다.
“하영아! 저 놈이 죽더라도 날 원망하지 말아라.”
이하영은 뭐라 말하려다 그의 표정이 너무 굳어져 있어 아무 말 못하고 치우를 봤다.
치우도 왕견수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공격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죽음을 각오 해야겠구나.’
신기린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 놈도 바보같은 놈이군! 죽음은 면할 수 있었는데..왕견수의 대력장(大力掌)을
맞으면 살아남지 못할 텐데....후후“
왕견수의 손이 순간 붉어졌다. 대력장의 위력은 손의 색이 붉어질수록 그 성과를
알 수 있었다.
왕견수의 손을 신기린이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보았다.
‘흥! 아직 5성을 넘지 못했군. 붉기가 엷어...후후 그렇다면 내 파륜공(波輪功)에
못 미치겠군.‘
그가 생각하는 동안 왕견수는 빠르게 치우의 등을 향해 대력장을 날렸다.
붉은 기운이 거세게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 치우는 피하려 했지만 너무나 강맹한
기운에 피할 수 없었다. 치우는 자신의 모든 순양기를 끌어올려 최대한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바위처럼 강하게 오장육부를 쳐오는 기운을 감당할 수없었다.
“컥!!”
대력장의 기운에 멀리 나가떨어지며 치우가 붉은 피를 토해냈다.
치우는 갑자기 숨이 막히고 모든 사물이 흐릿해 지는 것을 느꼈다.
“너....너....”
치우는 왕견수를 향해 무엇인가 이야기 하려다 앞으로 푹 쓰러져 버렸다.
놀란 이하영이 소리쳤다.
“견수 오라버니 저 놈을 죽였어요?”
왕견수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했다.
“죽었다면 저 놈 명이 짧은 거니 날 탓하지 말아라.”
그는 차갑게 말하고는 바로 후원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이하영에게
말했다.
“후후. 왕견수를 탓하지 말아라. 저 노예 놈의 성질이 사나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거니....아마 살아있다 해도 병신이 될 꺼다.“
신기린의 말에 이하영은 웬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고 무엇인가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하영이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마집사!!”
마상태가 놀라서 달려왔다.
“저 노예 놈의 시체를 갔다 버려요.”
이하영의 말에 쓰러져 있는 치우를 보고 마상태는 놀라서 달려갔다.
그가 치우의 숨결을 관찰하고는 이하영에게 말했다.
“아가씨! 아직 살아 있는데요.”
마상태의 말에 신기린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호! 그래? 왕견수의 5성에 달한 대력장을 맞고도 살았단 말이지....정말
운이 좋은 놈이군.“
이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웬지 모르겠지만 치우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분이 안좋았는데
살아 있다 생각하니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이하영은 갑자기 자신이 치우를 걱정하는 듯한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뭐야? 내가 저 노예 놈을 왜 걱정해? 흥!!’
그녀는 갑자기 표정이 차가워지며 마상태에게 소리쳤다.
“저 놈을 내 전용 마굿간에 쳐 넣어라. 살든 죽든 알아서 하겠지.”
이하영의 말에 마상태가 놀라며 물었다.
“아가씨! 그 곳에는 흑추마가 있어서 그냥 두면 밟혀 죽을 텐데요. 저희들도
무서워 함부로 접근을 못하는데....더구나 저 흑추마는 아직 아무도 길을 들이지
않아 야생 상태 그대로라......위험합니다.“
그의 말에 이하영이 발끈 해서 소리쳤다.
“뭐야? 네 놈이 지금 날 가르치려드느냐? 나도 알아! 상관없으니
그냥 그 흑추마와 함께 쳐 넣어버려. 둘 다 아주 꼴 보기 싫은 것들이니.“
마상태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치우를 안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신기린이 웃으며 이하영에게 말했다.
“후후. 아직도 흑추마를 길들이지 못했나 보구나? 힘들게다. 흑추마는 아무나
주인으로 맞지 않지. 자신을 탈 자격이 있어야만 인정해 주지 그리고 그 주인은
오직 한 명뿐이지....죽을 때까지 더구나 네가 가지고 있는 흑추마는 등에 백색
줄이 들어간 희기종이라지?“
이하영이 원통하드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내 언젠가는 저 흑추마를 타고 말거예요. 내가 타지 못할 바엔 죽여 버리겠어요.”
이하영의 서리찬 모습을 보고 신기린을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글세. 흑추마는 한 번 인정하지 않은 주인은 받아들이지 않는데....
잘 될까 모르겠다. 내게 그냥 팔지 그러느냐?“
신기린의 말에 이하영이 펄쩍 뛰며 차갑게 말했다.
“뭐예요? 흥! 오라버니도 내 흑추마가 탐나는 거죠? 싫어요.
오늘은 피곤하네요.”
이하영은 말을 마친 후 휭하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신기린이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후후. 뭐 언젠가는 모두 내 것이 될 거니 재촉하지 않아도 되겠지..후후후”
마상태는 후원 뒤 쪽의 마구간으로 치우를 업고 다가갔다.
히이잉!! 히이잉!!
마구간 안쪽에서 흑추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흑추마는 너무 사나와 함부로 사람이 접근하면 거대한 뿔로 박아버린다.
마상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안 쪽에 매어져 있던 흑추마가 마상태를 발견하고는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둠 속에 있었지만 흑추마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어 무척이나 소름이 돋았다.
마상태는 생각 같아서 그냥 아무데나 치우를 던져 놓고 가고 싶었지만 이하영의
말을 거역하고는 대란성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에이 펫!! 젠장 뭘 쳐다보는 거냐? 이 말새끼야!!!”
갑자기 화가 난 마상태가 흑추마를 향해 거칠게 소리치자
히이잉!! 히이잉!!
거리며 더욱 거칠게 울어댔다. 만일 고삐에 매어져 있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마상태를 공격할 태세다. 마상태는 단단하게 고삐에 매어져 있는 것을 확인 후
안심이 되자 더욱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 이 놈 어디서 짐승 새끼가 인간에게 덤벼!!!”
마상태는 가까이 다가가 소리치며 마구간 문을 열었다.
히이잉!! 히이잉!!
흑추마가 앞발을 들고 사납게 울부짖으며 달려들려 했다.
그 모습을 본 마상태는 약간 움찔해서 바닥에 치우를 던져 놓고는 물러났다.
“난 갈 테니. 성질 사나운 두 놈이서 잘 놀아라.”
소리치고 마상태가 사라지자 흑추마는 진정하며 쓰러진 치우를 보았다.
온 몸이 피투성이의 치우를 보자 흑추마가 입으로 툭툭 건들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푸르릉!!푸르릉!!
흑추마는 고개를 살랑거리더니 치우의 얼굴을 혀로 핥았다.
그러나 치우는 일어날 줄 몰랐다. 흑추마는 그런 치우을 입으로 물고 한 쪽으로
끌고 갔다. 흑추마는 일반 말과 달리 무척이나 영리한 동물이다. 그리고 고집이
무척이나 세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등에 태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추마와 달리 흑추마를 영물로 본다. 특히, 흑추마 뒤에 하얀
백띠가 있는 종은 천추마라 부르며 최고라 여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온 몸의 고통에 치우는 잠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없었다.
희미한 움직임이 눈에 보였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으.....”
고통에 신음을 내자 앞에서 얼쩡거리던 무엇인가가 치우의 눈앞에 다가왔다.
희미한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온 힘을 다해 사물을 확인하던 치우는
놀라서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 내가 지옥에 떨어졌어!!’
그가 본 것은 뿔 달린 시커멓고 거대한 머리였다.
어머니를 본적은 없다.
어머니의 품이 어떤지는 더욱 몰랐다.
그러나 어머니가 있다면 이렇게 따스할 것 같았다.
이렇게 포근할 것 같았다.
달콤한 향기가 코 속에 스며들었고 따스한 봄날에 누워서 잠자는
듯 편안했다.
치우는 이 편안함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 했지만 그의 귀속으로
한 여인의 아름다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떤가요? 살 수 있나요?”
그녀는 말하며 치우의 머리를 만져주고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녀의 물음에 누군가 대답했다.
“예. 이상하게 상처가 금방 치유되었습니다. 내상을 좀 입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좋아 질 것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아! 하영이는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 모르겠어요. 이
불쌍한 사람을 이렇게 만들다니....그리고 어떻게 왕견수공자와 신기린 공자까지
같이 동조 할 수 있죠?“
“화린아가씨! 저 놈은 그저 대동국의 노예일 뿐입니다. 이렇게 잘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아가씨의 마음이 너무 착하셔서 그럽니다.“
“아니예요. 대동국이나 우리 청나라 사람이나 모두가 같은 사람이예요.
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잡아 와서 노예를 부리는지.“
“후! 아가씨의 아름다운 마음이야 다 알지만 세상은 생각처럼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어쨌든 이제 저 놈도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으니 이제 다른 방으로
옮기시죠. 남들의 눈도 있는데 화린 아가씨 방에서 계속 치료한다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아요.“
“아니요. 깨어나는 것을 꼭 제가 보아야 겠어요. 강태민 신의는 이만 가보세요.”
“예. 그럼 전 물러가 보겠습니다.”
치우는 이미 정신이 돌아왔지만 갑자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자신을 치료해 준 여인이
이하영의 언니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악녀 같은 동생에 천사 같은 언니라니...’
그가 생각하며 눈을 꿈틀거리자 이화린이 보고 웃으며 말했다.
“깨어났군요. 어려워 말고 눈을 떠 보세요.”
그녀의 말에 치우가 어색해 하며 눈을 떴다.
“아!!”
치우는 눈을 떠 이화린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처음 이곳 대란성에 왔을 때 곡식 실은 마차 구멍으로 보던
그 아름답던 푸른 옷의 여자가 아니던가.
이화린이 치우의 놀람에 찬 소리를 듣고 살짝 웃으며 물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치우의 얼굴 붉어졌다.
이화린이 다시 밝에 웃으며 말했다.
“다행 이예요. 전 당신이 죽는 줄 알고....미안해요. 하영이가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그녀의 말에 치우는 이하영을 생각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치우의 굳은 얼굴을 보고 이화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알아요. 하영이를 용서 할 수 없다는 거. 지금 당장은 그 아이를 용서
해 달라고 말하지 않을 께요. 그러나 너무 나쁘게 보지는 말아줘요.“
치우가 이화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노예로 잡혀온 것도 화가 나 구요.”
“미안해요. 저도 사람들이 노예로 붙잡혀 오는 것을 봤지만 나라의 규율이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아가씨 잘 못이 아닙니다.”
“아! 전 이화린이라고 해요. 이름이 뭐죠?”
“전...치우 입니다.”
“치우? 특이한 이름이네요. 참! 몇 살 이예요?”
“열여섯 살입니다.”
“그래요? 제가 두 살 많으니 누나네요. 호호”
이화린의 꽃과 같은 웃음을 보자 치우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웃음이 또 있을까?’
치우가 뚫어져라 쳐다보니 웃던 이화린이 미소지으며 살짝 쨰려 보았다.
“흥! 뭘 또 그렇게 넋 놓고 봐! 동생!!”
“예?....아.....저....”
“동생이라 불러도 되지? 난 남동생이 없어. 모두 자매라서....”
치우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마음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누님이 계신다면 정말 좋겠구나’
치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화린이 좋아하며 웃었다.
“호호호. 잘 됐다. 나에게도 이제 동생이 하나 생겼네.”
그녀가 웃고 있을 때 갑자가 방문을 거세게 걷어차며 이하영이 들어왔다.
“뭐야? 언니! 도대체 왜 그래?”
이하영은 박차고 들어오자마자 큰소리치며 치우와 이화린을 번갈아 보았다.
이하영이 치우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구나. 노예 놈이 어디 언니 방에 들어와있어.”
이화린이 이하영의 버릇 없는 행동에 화가 나 소리쳤다.
“하영아!! 그만두지 못해! 치우는 내가 데려와서 치료해주었다.”
이하영은 사납게 이화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 치우? 참!! 이제는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야? 언니 왜 그래?
청연합군의 군모라는 사람이 노예를 방에 까지 불러들여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빨리 저 놈을 내 쫒지 않으면 내가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어.“
이하영의 거친말에 이화린은 한숨을 쉬고 치우를 보았다.
치우는 더 이상 자기 때문에 이화린이 어려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이화린이 미안한 듯이 말했다.
“미안해 치우 동생.”
그 소리를 들은 이하영이 더욱 방방 뛰며 말했다.
“뭐?...뭐라고? 도...동생? 헛!! 참 기가 막혀서 언니!!!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하려고 저런 대동국 노예에게 동생이 뭐야? 미쳤어?“
그녀의 말에 치우가 인상을 쓰자 이하영이 냅다 소리쳤다.
“뭐야? 이 것이 또 그렇게 눈을 뜨지? 여봐라!! 아무도 없냐?”
그녀의 고함에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당장 저 놈을 흑추마가 있는 마구간에 다시 쳐 넣어라.”
“예!”
병사가 치우를 데리고 나가자 이화린이 놀라서 말했다.
“흑추마가 있는 곳에 넣으면 안돼. 흑추마가 얼마나 사나운지 잘 알잖아?”
“흥! 죽고 사는 건 제 놈 운에 달린 거지. 내 알봐 아니야.”
“하영아! 너 왜 이렇게 제 멋대로야?”
“흥! 내가 제 멋대로라고? 어디 아버지께 지금 상황을 말씀 드려 볼까?
누가 정말 제 멋대로 인지? 이번에는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가지만 한 번만
더 내 일에 방해 하면 흥! 언니라도 가만 안둘꺼야.“
이하영이 소리치며 나가자 이화린이 한숨을 쉬었다.
“휴! 저 애를 어떻게 한다.”
치우를 데리고 가던 병사는 흑추마가 있는 마구간에 도착하자 자신은
더 접근하지 않고 치우에게 말했다.
“네 놈은 이제부터 이곳 마구간에서 저 흑추마와 먹고 잔다. 얼른 들어가!!”
병사의 재촉에 치우는 마구간 문을 열었다.
“엇!!”
치우가 마구간 문을 열자 흑추마가 거칠게 울어대며 앞발을 들었다.
히히힝!! 히이힝!!
거친 흑추마의 행동을 보자 병사는 뒷걸음치며 말했다.
“난 갈 테니. 저 놈과 잘 사귀어 봐라!”
병사가 사라지고 나자 치우는 흑추마의 거친 숨소리와 사나운 뿔을
보고 질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한동안 흑추마가 앞발을 사납게
들고 소리치더니 치우를 보고는 잠잠해 졌다. 그리고는 이내
코 김을 강하게 내불며 조용해 졌다. 치우는 흑추마의 사나움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가 조용해지자 조금씩 뒤 걸음치며
빠져 나가려 했다. 그러나 몇 번 뒷걸음치다 멈추고 생각했다.
“이 놈도 싫은 거겠지. 마음껏 뛰 놀던 곳에서 나처럼 잡혀와 묶여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흑추마의 검고 맑은 눈동자를 보자 무서움이 사라졌다. 이내 흑추마도
자신과 같은 신세라고 생각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나처럼 붙잡혀 왔구나? 너도 나처럼 저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지?”
치우의 말에 흑추마는 푸르릉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 내 말을 알아듣니?”
흑추마가 눈을 들어 치우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래! 알아듣는 구나. 나도 너처럼 붙잡혀 왔어. 나도 저 밖으로 나가고 싶구나.”
치우가 말하며 천천히 접근해도 흑추마는 가만히 있었다.
치우가 말갈기를 쓰다듬어도 푸르릉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말등을 쓰다듬던 치우가 거친 느낌에 놀라 보니 등에 상처가 많다.
“어? 이게 무슨 상처야?”
치우가 상처를 만지자 흑추마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괜찮아! 잠시 있어봐. 이건 채찍에 맞은 상처구나. 이하영
그 나쁜 계집의 짓이겠지”
이하영은 흑추마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 할 수 없자
채찍질로 다스리려고 한 것이다.
“나쁜 계집애!”
치우는 소리치며 품에서 조그만 병을 하나 꺼냈다.
“아프지 않을거야. 내가 상처에 약을 발라줄께.”
푸르릉!! 푸르릉!!
흑추마는 알아들은 듯 움직이지 않고 치우를 멀뚱 쳐다봤다.
치우는 예전에 상천제 막개의 치료를 위해 주었던 약을 꺼내서 흑추마의 등에
발라 주었다. 이 약은 효과가 좋았다. 그래서 예전에 상천제 막개도 빠른 회복을
보인 것이었다.
“괜찮아. 이제 좋아 질꺼야.”
치우가 웃으며 말하자 흑추마가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며 푸르릉거렸다.
치우는 몇 일간 흑추마와 같이 보냈다. 처음 흑추마에게로 보낸 것은 흑추마의
사나운 기세에 치우를 겁주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흑추마가 치우에게
다정하게 굴자 이하영은 속으로 더욱 열이 났다. 그럴수록 치우는 그녀의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수시로 찾아와 치우에게 시비를 걸며
병사들을 시켜 채찍으로 때리기를 반복했다. 채찍에 치우가 맞을 적 마다
흑추마가 사납게 울어대자 이하영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흥! 내가 그렇게 잘 해주었는데 저 놈에겐 사납게 굴지 않구. 나에게만
못 되게 군단 말이지? 흥! 왜 저 놈이 맞으니 너도 괴롭냐? 더욱 세게
때려라 아주 죽여도 좋다.“
그녀의 악에 찬 행동에 치우는 거의 죽을 정도로 채찍질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치우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순양기를 찾은것이다.
아니 오히려 공력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일반적인 타격을 받아도 스스로 보호
할 수 있었다. 치우가 마음만 먹었다면 병사들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탈출 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힘을 숨겨야 했다.
이하영은 죽을 만큼 치우를 때린 후 차가운 웃음을 흘린 후 사라졌다.
그녀가 간 후 치우가 고통에 인상을 쓰자 흑추마가 가볍게 울었다.
“괜찮아! 네가 맞는 것 보다 차라리 내가 맞는게 좋아.”
예전에는 이하영이 흑추마를 때렸지만 지금은 치우만을 채찍으로 괴롭혔다.
치우가 흑추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뒤에서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항상 네가 힘든 것을 알지만 지켜 줄 수가 없구나.”
이화린이었다.
그녀는 항상 치우가 이하영에게 당할 때마다 찾아와 치우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말은 치우를 감동시켰고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쩔 때는 차라리 계속 이하영의 채찍을 계속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야 계속 이화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치우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말을 할 때마다 그의 가슴은 터질 듯 아파왔다.
“치우야 등을 돌려봐! 내가 약 발라 줄께.”
치우가 어색해 하며 말했다.
“아.....니예요. 누나 그냥 둬도돼요.”
이화린이 화난 듯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왜? 내가 싫어? 뒤 돌아봐.”
“예....누나를 왜 싫어해요.”
치우가 등을 돌리자 이화린의 부드러운 손길이 거칠게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치우의 가슴은 주체 할 수 없이 뛰었다.
‘아! 숨이 왜 이렇게 벅차지. 왜 이렇게 답답할까?’
치우는 조용히 말했다.
“저.....화린이 누나는 왜 제게 잘해주죠?”
그의 물음에 이화린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훗! 치우를 좋아하니 잘해주지. 치우는 내가 싫어?”
“아...니요. 좋아해요.”
“그럼 됐지 뭐.”
시간이 지날수록 치우는 불안해 졌다.
이하영의 표독스러움은 더욱 심해졌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꼴로 찾아와 치우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치우에게 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치우의 불안은 이화린에게 있었다.
그녀를 하루만 보지 않아도 불안하고 답답했다. 그녀의 밝은 미소를 보지
못하는 것은 죽음과 같았다.
이미 치우의 가슴엔 이화린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몇 일 전부터 이화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항상 이하영이 찾아오는 날은 어김없이 찾아와 위로해 주던 그녀가 오지 않자
치우는 불안하고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치우는 이하영이 외부에 나갔다는 소리를 듣고 이화린이 있는 후원 별채로
찾아갔다. 다행히 치우를 지키는 사람이 없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화린의 거처는 후원 뒤 쪽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앞 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고 양 옆에는 운치있는 정자가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향기로운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치우는 조심히 별채로 들어서며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약간의 의아함도 얼굴에 떠올랐다.
치우는 이화린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프거나 외부에 나가서
그런 줄 알았다. 보고 싶어 비록 찾아왔지만 그녀가 차라리 없기를 바랬다.
몇일 전 이하영이 비웃음을 날리며 말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 언니는 조금 있음 신기린 오라버니와 약혼 할 꺼야. 네 놈 같은 천한 것이
넘볼 상대가 아니지. 언니는 그저 네 놈이 불쌍해서 돌봐준 것뿐이야. 봐!
몇일 동안 화린이 언니를 보지 못했지? 신기린 오라버니가 지금 언니에게
와 있거든. 후후 네 놈 주제에 감히 우리 언니를 넘봐?“
치우는 아닐 거라 생각하며 이화린을 찾은 것이다.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환하게 웃는 이화린과 신기린이었다.
둘은 연못 위에 떠 있는 정자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화린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신기린의 당당한 모습에 치우는 자신이
초라해 짐을 느꼈다.
‘아! 치우야! 넌 참 바보 같구나. 넌 이곳에서 노예에 불과하고 이화린은
이 곳 청연합군의 군모인데 어떻게 너와 어울린다 생각했더란 말이냐‘
치우는 다리에 힘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갑자기 자신이 할 일이 모두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살아가야하는지 지금 왜 여기서 자기는 허탈해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이화린과 신기린의 밝은 웃음소리가 치우의 가슴을 차갑게 도려냈다.
아팠다.
너무나 아팠다.
숨이 막힐 듯이 아파서 소리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었다.
이화린과 이야기를 나누던 신기린은 별채 입구 쪽에 치우가 넋놓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호! 이놈! 네 놈이 화린 소저를 넘보았다고? 죽일 놈 노예주제에. 이 놈
잘 보아라 네 놈 가슴에 비수를 꽂아주마.‘
신기린은 모른 척 이화린을 보고 말했다.
“소저 잠깐만....”
“왜요?”
신기린은 치우가 이화린의 뒤를 보게끔 뒤로 돌려놓았다.
“화린 소저 잠깐만! 벌레가 옷에 떨어졌네요. 가만히 계세요.”
신기린은 이화린을 속이고 벌레를 털어내는 듯 하면서 살짝 이화린을
끌어안았다.
치우는 이화린의 뒤쪽에서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설마 했는데 신기린이 이화린을 안자 가슴에 충격을 받은 듯 무너져
내렸다.
치우는 너무 허탈하고 주체 할 수 없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
그의 아픔에 찬 한숨 소리를 들은 이화린이 놀라며 뒤 돌았다.
“누구? 치우?”
이화린이 뒤 돌아 보았을 때 치우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놀란 이화린이 달려가며 치우를 불렀다.
“치우야?”
그러나 이미 치우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이화린이 신기린을 보고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한거죠? 왜 갑자기 사람은 끌어안아요?”
신기린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왜 그러시오? 설마 저 노예 녀석을 진짜 좋아 한 것은 아니겠지요?”
이화린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신기린 공자를 좋게 보았는데 제가 잘 못 보았군요. 그만 돌아 가주세요.”
신기린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흥! 저 노예 놈과 당신이 어울리기나 하오? 저 놈도 제 분 수를 알고 있을
거요. 재미삼아 그러는 모양인데....이 쯤 했으면 많이 즐기지 않았소.“
이화린의 눈이 날카로와 졌다.
“뭐라고요? 말을 함부로 하시는 군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신기린은 다시 비릿한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글세요. 과연 제 말이 틀렸을까요? 청연합군의 군모라는 직위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죠. 당신의 그 천재적인 머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청연합군이 이렇게
제자리를 잡지 못했을 거요. 당신의 겉은 아름답고 순수하며 천사같지요.
그런데 과연 당신의 내면도 그럴까요?“
신기린의 말에 이화린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죠?”
“당신과 나 우린 같은 부류의 인간이요. 작은 것 보다 큰 것을 그 큰 것보다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리고 싶어 하는 부류란 말이오.“
“당신은 그런지 모르지만 전 아니예요.”
“그래요? 군모 이화린이 도대체 아무 이유 없이 노예를 잘 대해 준다?
하하하. 이거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일이야. 정말 좋아해서? 후후....궁금하군요.“
이화린의 얼굴이 더욱 무섭게 냉냉해지며 말했다.
“신기린 공자 경고하겠어요. 전 연합군 내의 군모예요. 앞으로는 예의를 갖추어
주길 바래요. 그리고 잘 가세요.“
이화린의 축객령에 신기린은 벌레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흥! 언젠가는 네 년을 내 품에 꼭 품고 말겠다.’
치우는 처참했다.
자신의 신분이 노예로 전락한 것이 한스럽고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도망치 듯 달려 와야 했던 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치우의 슬픔을 눈치 챘는지 흑추마가 푸르릉거리며 볼을 비벼왔다.
“후후. 그래 너만은 내 이 아픈 마음을 아는구나.”
치우가 흑추마와 이야기를 나눌 때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흥. 네 놈은 이곳에서 한발작도 나가지 마라. 지금 성내는 발칵 뒤집혔으니”
치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소리죠?”
“노예 하나가 탈출했다. 서대륙에서 잡아온 백면인 한 놈이 식량을 들여온
마차를 타고 사라졌어. 몇 년 전에도 그런 놈이 한 명 있었는데 끝내는 잡히고
말았지. 멍청한 놈들! 이 곳 일대는 모두 우리 군사들이 지키고 있어 도망가지
못한 다는 것을 왜 모를까.“
병사는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아마도 다른 노예들이 동요되지 않기 위해
단속 나 온 것이다.
“칸지라!! 칸지라가 틀림없어! 성공해야 하는데.”
치우는 서대륙의 백면인이라는 말을 듣고 칸지라 임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한노인으로부터 들은 탈출 경로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는가.
치우는 자신의 왼팔에 찬 천지환을 보았다.
“이상하다. 분명 예전에는 색이 은색이었는데 왜 금색으로 바뀌었을까?”
천지환은 확실이 그 색이 변해 있었다. 치우가 거의 죽음 직전에 간 이후
은색에서 금색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문양이 생기지는
않았다. 치우는 알 수 없어 고개만 흔들 뿐이다.
“이 것을 전해주기로 한 약속을 나도 지켜야해. 이곳을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화린이 누나에 맞는 사람이 되어 돌아 와 야해.“
치우는 생각하다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야. 그 재수없게 생긴 놈과 약혼을 한다잖아. 휴!”
하늘은 이미 어두워서 별들이 하나 둘씩 빛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 화린이 누나 입으로 직접 들어야해. 이하영 고계집의 말을 어떻게
믿어.....아니야 아까 낮에 봤잖아.....둘이 좋아하는 모습을.....아니야 그래도
누나에게 직접 들어야해.“
치우의 마음은 수십 갈래로 생각이 갈라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결심이 선 듯 치우는 몸을 움직였다.
밤이라 경비들이 곳곳에 있음 알고 있지만 지금 치우는 이화린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치우는 이미 순양기가 모두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로 공력이
불어나 예전보다 움직임 무척 수월하고 빨랐다. 다만, 치우는 정식으로
신법을 익히지 못해 몸놀림이 자연스럽지는 못했다.
다행히 경비가 도는 시간과 위치를 치우는 이미 잘 알고 있어 그들의
이목을 피하기는 쉬웠다. 몇 번 돌자 이화란의 별채가 나왔다.
치우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화린의 목소리와 낮선 사내의 음성.
치우는 깊은 밤에 이화린의 숙소에서 사내의 목소리를 듣고 놀랐다.
“이런! 설마 신기린을....”
그러나 사내의 목소리를 자세히 들은 치우는 신기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 이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다.’
치우는 익숙한 듯 들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하하. 화린이의 무예가 이제는 이 사부를 능가하겠구나.”
이화린의 말소리가 들렸다.
“당치 않습니다. 어찌 제자가 사부님의 하늘같은 무예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갈수록 더욱 네 총명이 더하고 아름다움도 더 하더니 이제는
사부를 즐겁게 하는 말까지 잘하는구나. 하하하“
치우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다행히 사내가 이화린의 사부라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사내의 목소리는 너무 귀에 익었다.
‘누굴까?’
치우는 위험을 무릎 쓰고 조심스럽게 더욱 가까지 접근했다.
사내의 말이 들렸다.
“이번에 네게 큰 선물을 주려 했는데....일이 틀어졌구나.”
이화린이 놀라며 말했다.
“제게 선물을 주시려고 했다니요? 어떤?”
“아니다. 내가 성공했다면 네게 조언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조언이라뇨. 소녀가 무슨 재주가 있어 사부님께 조언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뭐라? 하하하. 이제는 겸손까지? 천하의 청연합군의 군모께서....그런 말씀을
하시면 하늘이 웃지. 하하하 세상의 돌아가는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세상의 책은 모두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는 신기묘묘 이화린 군모가 모르는
일이 있다면 세상에서 누가 알겠느냐?“
사내의 말에 치우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화린 누나의 위치가 그렇게 대단한가?’
사내가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늦은 밤에 내가 너무 말이 많았구나. 그만 쉬거라”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이화린이 쫒아 나왔다.
치우는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어둠 속에 숨어서 사내를 보았다.
그의 뒤 모습이 무척이나 낯익다.
‘누굴까? 저 뒷모습....분명 어디서 봤는데...뒤 돌아 얼굴을 보여 봐!’
사내는 이화린과 몇 마디를 나누고 그대로 걸어 나갔다.
치우는 안타까웠다. 분명 자신과 크게 관련된 사람이라 생각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발! 한번만 뒤 돌아봐!! 한 번만!!’
치우가 외쳤으나 사내는 그대로 사라지려는 듯 보였다.
그때 이화린이 소리쳤다.
“아! 사부님!! 잠깐만요! 드릴 것이 있어요.”
이화린의 목소리에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천천히 뒤돌아선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치우의 눈에 불이 튀며 입술을 깨물었다.
‘백괴 갈마웅!!!’
그는 청도삼괴 중 우두머리 백괴 갈마웅이었다.
이내 이화린이 무엇인가를 들고 백괴 갈마웅에게 내밀었다.
“소녀가 사부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래? 하하하. 고맙구나.”
이하린이 밝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호호. 저기 저희 아버지께는 비밀입니다.”
백괴 갈마웅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명이 그 친구가 알면 섭섭해 하겠어. 하하하”
백괴 갈마웅은 이내 웃으며 별채를 나갔다.
이화린은 백괴 갈마웅이 떠난 것을 확인 후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치우는 치를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큰일이다.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청도삼괴가 모두 이곳에 있다는
소리다. 그들에게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몸을 움직이려 던 치운는 이화린이 들어간 방을 쳐다보았다.
‘화린이 누나를 만나야해. 꼭 물어봐야해.....그러나 백괴 갈마웅이 그녀의
사부라면.....언젠가는 나와 원수지간이 되겠구나....아! 무슨 운명이 이렇게
꼬이고 꼬인다 말이냐!‘
치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춤거릴 때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이화린의
숙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 화린이 누나에게 해하려는 자객이 분명하다.”
놀란 치우가 검은 그림자가 들어간 곳으로 뛰어들려 할 때 이화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무거운 사내의 목소리가 답했다.
“예. 군모님! 군모님이 말하신 것을 가지고 가남에 있는 서고를 모두 뒤져서
‘천지설(天地說)이란 책을 찾았습니다. 여기!“
치우는 검은 그림자가 이화린을 해하려는 자객이라 생각되었는데 그녀의
심복임을 알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누나의 신분이 군모라더니 무슨 음밀한 일을 저자에게 시켰나보구나. 내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 무척 화내시겠지? 오늘은 그냥 가야겠구나.‘
치우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라 기쁨에 찬 이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맞구나! 내 생각이 맞았어. ‘천지환’ 그래! 그 노예 놈이 가지고 있던
것이 천지환이 맞았어! 호호호“
이화린의 말에 치우는 벼락에 맞은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서 흘러나온 말이 치우의 귀속을 때리며 계속 반복되었다.
‘천지환!!......천지환!!..........호호호......노예 놈!!.........노예 놈!! 호호호’
치우는 심장이 멎는 충격에 휩싸이고 휘청거렸다.
이화린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친지환이 맞았어. 여기 천지설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치우라는 노예 놈이 차고 있던 것이 같다. 역시, 놈을 잘 꼬셔놓기 잘했어.“
그녀의 말에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검은 인영이 놀라서 말했다.
“군모님! 천지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의 말에 이화린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놈도 정말 운이 없구나.”
이화린은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며 지풍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지풍은 그대로 검은 인형의 인중에 박혔다.
“예? 무슨.........컥!! 왜......?”
이화린이 차가운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소문이 퍼지면 안좋거든. 천지환을 찾이 하기 위해서 이 비밀이 밖으로
흘러가면 안되거든.“
치우는 밖에서 이화린의 말을 듣고 그녀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어떻게....저렇게 아름다운 누나가? 이토록 잔인하단 말인가! 그리고 날
좋아하는 척 했던 것이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난.....난! 정말 누나를
좋아했는데........내 모든 것을 줄 만큼 좋아했는데.......차라리 천지환을
그냥 달라고 했어도 주었을 건데......왜......왜..........‘
치우의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기혈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컥!!”
치우는 심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화린이 소리치며 밖으로 나왔다.
“누구냐?”
그러나 그녀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흠! 이상하군! 분명 인기척을 느꼈는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이화린은 바닥에 핏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주위를 살폈다.
“흠! 누군가 있었군. 피라.....!!”
그녀는 바닥의 피를 손가락으로 묻혀서 냄새를 맡아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치우가 흑추마에게 먹이를 주고 있을 때 이화린이 찾아왔다.
치우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프고 두근거렸다.
‘아! 그녀의 잔인함과 거짓을 보았건만 이렇게 가슴이 아프도록 두근거리는
느낌은 무엇인가. 냉정해 지자 치우야. 그녀에게 평소처럼 대해야 한다.‘
치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밝게 웃었다.
“화린이 누나! 요즘 왜 이렇게 보이지 않았어요? 전 누나가 어디 아픈지
알고 놀랐잖아요.“
치우가 반갑게 맞이하자 이화린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성내의 일이 있어서 그 일 좀 처리하느라고....”
그녀는 말하며 치우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 놈이 아닌가?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니....하긴! 이 놈은 무예도
못하는데 내 이목을 피하고 쉽게 도망갔다면 다른 놈이겠군. 어쨌든 상관
없다. 오늘 안에 이 녀석의 천지환을 차이하면 되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치우야. 너 내가 지내는 별채로는 와 본적 없지?”
그녀의 물음에 치우는 찔끔 했지만 모른척 말했다.
“아! 예.”
“그럼. 나와 같이 가 볼래? 맛있는 것도 만들어 줄께.”
그녀의 말에 치우는 당황되었다.
‘별채로 가자고? 이 곳은 사람들이 눈이 많으니 자신의 숙소로 끌고가
천지환을 찾이 하겠다는 말이구나. 아! 화린이 누나 난 누나가 그냥 달라면
이 천지환을 줄 수도 있어요. 그러데 누나는 이제 절 죽이려고 하는군요.‘
치우는 가슴이 아팠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치우의 이상한 표정에 이화린이 물었다.
“왜? 싫어?”
“아....아니요.”
“그래? 그럼 가자.”
이화린이 치우의 손을 잡고 이끌자 어쩔 수 없이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하영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나타났다.
“흥! 언니!! 언니는 어쩌자고 저 노예 놈을 이제는 여자만 있는 별채로
끌고 갈 생각까지 하는 거죠?“
이하영의 갑작스런 등장에 이화린은 화가 났다.
‘하영이 요년이 내 계획을 망치려 드는구나. 넌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제발!‘
이화린은 화가 났지만 밝게 웃으며 말했다.
“왜? 안되는 이유라도 있니? 내가 치우를 데려가고 싶으면 어디든 데려갈 수 있어
누가 나를 막을 건데?“
이하영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안돼!! 오늘은 언니가 양보해! 만약 그렇지 않음 아버지께 모든 이를 꺼야.”
이화린의 눈썹이 올라갔다가 한숨을 쉬며 웃음을 웃었다.
“왜? 또 치우를 때리게?”
“아니! 오늘은 저 흑추마를 꼭 타고 말거야. 그런데 흑추마와 친한 놈이 저
노예 놈이니 할 수 없잖아. 같이 데리고 나가야지.“
이하영의 말에 이화린이 놀라서 외쳤다.
“너 미쳤니? 그럼 치우를 성밖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거야?”
“왜? 저 놈은 노예가 아니라며? 그럼 성밖으로 데리고 나가도 되는 거 아니야?”
“뭐? 너 그걸 말이라고해?”
이화린의 이상스런 태도에 이하영이 살며시 째려보며 물었다.
“언니! 설마 저 노예 놈이 도망 갈까봐 그래? 그럼 이상하네. 어니는 저 놈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오히려 도망가길 바래야 하는 거 아니야?“
이화린은 더 이상 이하영과 대화를 하면 안될 것 같았다.
‘할 수 없다. 시간은 많으니....그리고 성 밖으로 치우를 데리고 가도 주위에
많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도망은 못가겠지. 또 녀석이 날 좋아하니
도망 갈 리도 없구.‘
이화린이 말했다.
“그럼 네 맘대로 해! 치우야 우리 그럼 낼 보자.”
이화린은 치우에게 살짝 웃어주고는 걸어 나갔다.
치우는 이하영의 등장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저 얄미운 계집이 날 도울 때가 다 있군.’
이하영이 말했다.
“너 내말 잘 들어. 흑추마는 워낙 사납고 빨리서 성 내에서는 탈 수가 없어.
그래서 성 밖으로 네가 흑추마를 잘 달래서 끌고 가야해. 그리고 내가
흑추마를 탈 수 있도록 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 녀석을 정말 죽여 버릴 꺼야.“
치우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이하영이 사납게 말했다.
“흥! 네 놈이 화린 언니를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난 화린이 언니를 두려워하지 않아.”
치우는 성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면
이하영이 눈치를 챌 것 같아 일부러 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알았다.”
30여명의 병사가 호위를 하며 이하영과 치우는 흑추말를 끌고 내성을 나왔다.
내성과 달리 내성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했고
각종 장사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치우는 마치 예전에 거지 생활을 했던 태동로 거리는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때를 생각하니 초개와의 즐거웠던 일들이 생각나고 상천제 막개와의
만남도 생각났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이 한동안 외성 시내를 걸어가자 거대한 성문이 하나 나왔다. 외성을 빠져
나가는 마지막 문이었다. 치우은 그 문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곳에 잡혀 와서 노예 생활을 한지 벌써 육 개월이 넘었다. 이제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의 긴장감을 느꼈는지 흑추마가 푸르릉거리며 치우의 볼에 머리를 비벼댔다.
‘그래! 너도 좋구나? 답답한 곳에 있다 드넓은 곳으로 가니....너에게도 자유를
주마.‘
치우가 생각하는 동안 성문 앞에 다 달았다.
병사 하나가 성문지기에게 소리쳤다.
“둘째 아가씨가 나가신다 성문을 열어라!!”
그의 외침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임에 거대한
성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는 것에 긴장하고 있던 치우의 귀에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영아 어디를 가느냐?”
이하영이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사부님!!”
치우가 놀라서 쳐다보니 백괴 갈마웅이 웃으며 이하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치운는 기겁을 하고 흑추마 뒤 쪽으로 몸을 재빨리 숨었다. 다행히 백괴 갈마웅은
치우를 보지 못하고 이하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괴 갈마웅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는 네 언니를 보았다. 너도 그새 무공에 진전이 꾀 있었구나.”
“호호호. 그래도 사부님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요.”
이하영과 말을 하던 백괴 갈마웅이 흑추마를 보고 찬사를 보냈다.
“오호! 천추마가 아니냐? 어디서 저런 영물을....대단한 하구나.”
백괴 갈마웅이 흑추마를 보고 다가오자 치우는 진땀을 흘렸다.
이하영이 자랑하듯 말했다.
“히힛. 아버지가 제 생일 날 주신 선물이예요. 서강을 건너서 직접 잡아
오셨대요.“
흑추마를 탐내듯 바라보던 백괴 갈마웅이 손으로 등을 만지려 하자 흑추마가
사납게 울며 앞발을 들었다.
히히힝!! 히히힝!!
그 모습에 백괴 갈마웅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하하하. 영물이로고! 네 주인이 아니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하하“
흑추마가 사납게 굴자 이하영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이놈의 노예 녀석이 어딜 갔어. 흑추마를 진정시키라고 데리고 나왔더니.”
그녀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자 백괴 갈마웅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저 흑추마를 다룰 줄 아는 노예가 있었더냐?”
“예. 유난히 그 놈만 접근하게 하고 저도 접근 못하게 하잖아요. 내 오늘은
꼭 저 놈을 타고 말거예요.“
백괴 갈마웅이 물었다.
“그 노예 놈은 어디 있냐? 한 번 보고 싶구나. 저런 영물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병사들 뒤 쪽에 숨어있던 치우는 백괴 갈마웅의 말에 기겁을 했다.
‘이런!! 저 죽일 놈이 끝까지 날 죽음으로 몰고 가는구나.’
백괴 갈마웅의 말에 이하영이 소리쳤다.
“노예 놈을 찾아라! 어디 있느냐?”
그녀의 명령에 병사들이 주위를 뒤졌다.
그때 병사하나가 자신의 뒤 쪽에 쭈그리고 숨어있던 치우를 발견했다.
“요놈! 여기서 뭣 하는 거냐? 아가씨께 가자.”
치우는 병사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백괴 갈마웅의 눈에 띌 것
같아 그냥 순순히 잡혔다.
치우를 막 백괴 갈망웅에게로 끌고 갈 때 작은 체구의 난장이가 통통거리며
나타났다.
치우는 그 움직임을 보고 이미 소괴 마불웅임을 알 수 있었다.
소괴 마불웅이 백괴 갈마웅을 보고 말했다.
“형님! 큰 형님께서 오셨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이하영이 외쳤다.
“정말요? 아버지가 벌써 돌아 오셨어요?”
백괴 갈마웅이 이하영을 보며 말했다.
“나와 같이 가겠느냐?”
이하영이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곳에 소녀가 가서 무엇해요. 전 저 흑추마나 탈래요.”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지?”
이하영이 갑자기 백괴 갈마웅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부님! 아버지께는 비밀이예요. 저 흑추마 타러 나간 거요. 흑추마가
사납다고 타지 못하게 하세요.“
백괴 갈마웅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러마! 셋째야 가자!”
이내 백괴 갈마웅과 소괴 마불웅이 사라지자 이하영에게 병사가 다가왔다.
“아가씨 이 놈을 뒤 쪽에서 찾았습니다.”
치우를 발견한 이하영의 눈썹이 올라가며 손으로 치우의 뺨을 ‘찰싹’하고
때렸다.
“이놈! 어디 쳐 박혀서 이제 와! 사부님이 가버렸잖아.”
병사가 이하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 성문이 다 열였습니다.”
이하영이 소리쳤다.
“가자!!”
치우는 이하영게게 맞은 뺨을 만지며 이를 악물었다.
‘이 성문만 빠져나가면 널 가만두지 않겠다.’
거대한 성문을 통해 삼십여 마리의 말들이 지나갔다. 앞장서서 이하영이 나갔고
그 뒤를 병사들이 호위하며 나갔다. 치우는 중간에서 흑추마의 고삐를 잡고
걸어갔다. 점점 밖으로 발을 내딪을 적마다 치우의 가슴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아직은 아니다. 이곳을 좀 더 벗어난 후! 흑추마야 너만 믿는다.’
성문을 완전히 나서자 다시 거대한 성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하영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대란성 반대에 있는 개마벌로 간다. 그곳 이면 숲도 없고 넓게 대지가
펼쳐져 있어서 말을 달리기에는 좋을 것이다.“
“예!”
치우는 이하영의 말에 생각했다.
‘넓은 벌판은 내가 도망가기 쉽지 않다. 숲으로 도망 가야한다. 흑추마는
체력이 좋아 급한 산길도 평지처럼 잘 달린다고 했다. 저 병사들이 말을
타고 쫒아 온다면 벌판 보다야 숲이 내게 유리하다.‘
한동안 길을 가던 치우의 눈에 거대한 숲이 보였다.
‘저기다! 저 숲이라면 가능하다. 저 숲 옆에 드넓게 펼쳐진 곳이 개마벌이로 구나.’
앞 쪽엔 거대한 푸른 숲이 웅장한 기세로 버티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드넓은 초원이 있었다. 예전 태무전쟁 때 병사들의
피가 흘러넘치던 곳이기도 했다.
이하영은 뒤 돌아 보며 치우에게 말했다.
“허튼 생각 말아라.”
그녀도 치우의 움직임을 예상한 듯이 경고했다.
그녀의 말이 신호인 인 것처럼 갑자기 병사들이 치우의 양 옆으로 포위하듯
감쌌다. 치우가 도망 갈 것이 대비한 것이다.
‘흥! 날 예전의 나로 보면 착각 한 것이다.’
치우는 속으로 싸늘하게 웃으며 숫자를 세었다.
숲까지 도달할 시간과 간격 그리고 자신이 흑추마 위로 뛰어올라서며 병사들을
따돌릴 계획을 머리 속에서 계산을 하였다.
‘하나................둘.......................셋!!’
속으로 외침과 동시에 치우의 몸이 흑추마 위로 뛰어올랐다.
흑추막 기다렸다는 듯이 거칠게 울어대며 앞발을 들었다.
히히힝!! 히히힝!!
양 옆으리 병사가 놀라며 흑추마의 앞을 막고 칼로 치우를 내려쳤다.
치우는 고개를 숙이며 병사의 손목을 잡고 틀었다.
툭!
뼈뿌러지는 소리가 나며 병사가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병사의 검을 빼앗은 치우가 우측에서 덤벼오는 병사의 목을 쳤다.
“큭!”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병사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보고 이하영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하냐? 저 놈을 잡아라!!”
그녀의 명령이 수 십 명의 병사들이 포위 했다.
“흥! 모두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치우가 크게 소리치며 흑추마를 앞으로 몰았다.
히히힝!! 히히힝!!
흑추마가 이마의 큰 뿔을 들이대며 거칠게 달려 나가자 병사들이 놀라서
옆으로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이하영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저 놈을 놓치면 네 놈들을 모두 참형에 처하겠다.”
병사들은 막다른 벼랑에 몰린 사람처럼 거세게 치우에게 달려들었다.
치우는 흑추마를 몰고 앞으로 달려가려 해도 수 십명의 병사들이 앞을 막아
달릴 수가 없었다.
흑추마의 뿔에 병사들의 말들이 받혀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병사 둘이 치우의 앞을 막으며 공격해 왔다. 치우는 검을 회전시키며 둘의
검을 튕겨냈다. 그때 흑추마가 병사들의 말을 뿔로 받아버렸다.
히히히힝!!
병사들의 말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쓰러지자 병사들도 같이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병사들이 치우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이미 앞 쪽 길이
뚫려서 흑추마가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하영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썼다.
“쫒아! 쫒으란 말야! 잡아!!! 이 멍청이들아!!”
그녀는 흑추마를 향해 뒤 쫒으며 병사들에게 악을 썼다. 병사들도
죽어라 말을 달리며 치우를 쫒았다. 그러나 그들이 쫒는 것은 천하의 흑추마
였다. 천리마 보다 빠른 흑추마가 신나게 달리자 이미 치우의 모습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치우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네가 날 살려주는구나. 하하하. 달리자 흑추마야. 달려!! 우리 힘껏
달려서 이 자유를 만끽하자! 하하하하“
치우의 통쾌한 웃음이 맑은 하늘에 울려 퍼졌다.
- 개인적 사정에 의해 2부를 끝마칩니다. 항상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다음 3부에는 더욱 좋은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늦게 올리고 빨리 끝내고....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네요. 최대한 빨리 3부를 다시 시작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