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유리로 된 재떨이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텔러는 움찔했다. 기가 죽어 새파랗게 질려있는 그에게 오펜하이머는 소리를 질렀다. “넌 과학자의 자격이 없어! 나가! 꺼져버려!”
독일계 미국인인 오펜하이머는 인류의 비극인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에 적극 참여하였고 1942년 11월 16일 로스앨러모스의 외딴 지역,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 부지를 결정한 뒤 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과학자들은 우라늄-235와 플루토늄을 이용한 최초의 핵폭탄을 제조하였다.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30분, 트리니티(삼위일체)란 이름을 붙인 알바레스크 남쪽 고지대 사막 시험장에서 최초의 핵폭탄이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자 강렬한 섬광과 급격한 열파가 일어나고, 이어 충격파가 일어나 골짜기에 메아리치자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당장 불기둥이 치솟았고, 버섯구름이 12,200m 상공까지 퍼져 올라갔다. 핵폭탄은 20,000t의 TNT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냈다. 반지름 730m 안에 있는 주변 사막의 모래는 완전히 녹아버렸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떨어진 화염이었다. 실험이 끝나자 트리니티 시험장 감독인 케네스 베인브리지는 오펜하이머에게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들입니다”라고 내뱉었다. 그제서야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손으로 악마의 무기를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핵폭탄이 실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랬다. 원래 핵폭탄은 독일군이 개발할 것에 대비해 만든 것이지만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서 완성도 하기 전에 독일군은 패망해버렸다. 일본도 사실상 패색이 짙으므로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미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자 미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전리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니 세계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이치, 승전국이 될 연합국, 그 가운데 주요 국가인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이 전 세계를 나눠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4등분하는 건 너무 아깝다. 미국이 다 차지할 순 없을까? 특히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에게 지분을 허용했다간 나중에 미국의 강력한 경쟁국이 될 것이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던 관료들은 전 세계에 미국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며 특히 소련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소련이 남하하고 있는 동북아의 적국인 일본에 막 개발이 완료된 핵폭탄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플루토늄을 사용한 핵폭탄은 실험을 하였으나 우라늄을 사용한 핵폭탄은 아직 실험하기 전이므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의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235 핵폭탄 ‘리틀 보이’를 떨어뜨렸다. 도시의 2/3이 파괴되고 무고한 주민 35만 명 가운데 14만 명이 죽었다.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는 다른 폭격기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핵폭탄인 ‘팻 맨’을 떨어뜨렸다.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고 주민 27만 명 가운데 7만 명이 죽었다. 피의 향연을 즐기던 미국 관료들은 8월 말 세 번째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었고 아무도 미국을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나가사키에 지옥의 불덩이가 떨어졌을 때,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텔러, 파인만 등 일부 과학자들이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한다. 다음날 실험실에 나와서까지 자신들의 업적(?)을 떠들어대던 텔러는 오펜하이머의 재떨이 공격을 받고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49년 10월,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회의 의장으로 재직중이던 오펜하이머에게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 고문이 된 텔러가 찾아왔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난 8월에 ‘악의 제국’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네. 이러다 우리 미국이 차지하던 지구를 소련과 양분해야 할 처지가 될까 걱정이야.” 오펜하이머는 텔러와 이야기하기 싫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했다. 헝가리계 유대인 출신인 텔러는 전쟁시기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의 과학, 우리의 문화, 우리 미국의 자유와 우리의 문명을 지키기 위해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이 함께 활동해야 한다’는 연설에 감명받아 핵무기 개발에 자기 인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맨해튼 계획에서 핵폭탄보다는 수소폭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아마 그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리라. “알다시피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수소폭탄은 이론상 무제한의 파괴력을 낼 수 있네. 지금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이 지구상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려면 하루빨리 수소폭탄을 만들어야 하네.” 텔러는 집요했다. 오펜하이머는 자기 생각을 빠르게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에서 수십만의 무고한 민간인이 우리가 만든 핵무기에 희생되었네. 지금 그 때 일하던 과학자 가운데 다시 핵무기를 만들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네도 이제 정신 차리게. 나는 악마의 무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네.” “자네가 거부해도 소용없을걸! 난 자네가 소련 스파이라는 걸 다 알아! 난 기필코 수소폭탄을 완성하겠어! 인류가 찾아낸 궁극의 무기 말이야!” 오펜하이머의 등에 대고 텔러는 소리를 질렀다.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위원회는 수소폭탄 개발 계획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과학자 내부의 소련 스파이 침투 사건이 터지면서 수소폭탄 개발은 강행되었다. 오펜하이머는 1953년 12월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고 원자력위원회에서 쫓겨났다. 텔러의 주도 아래 미국은 핵폭탄보다 수천 배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였고 1952년 11월 1일 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이 실시되었다. 텔러는 그 후로도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핵실험금지조약에 반대하고 핵무기의 다양한 사용법을 찾는 연구도 하였다.
수소폭탄 실험으로 미국은 다시 세계 1위의 핵강국이 되었으나 곧바로 소련이 1953년 8월 12일 수소폭탄을 실험했고, 영국이 1957년 5월, 중국이 1967년, 프랑스가 1968년 개발에 각각 성공했다. 현재 세계 핵무기 보유국의 무기창고에는 핵무기가 2만 개 이상 쌓여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국가가 있다.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핵보유국끼리는 파멸이 두려워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핵보유국끼리는 동등한 관계가 성립한다. 반면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사이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성립한다. 비핵보유국은 아무리 재래식 무기로 무장해도 핵무기 하나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갖고자 희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있는 핵보유국들은 다른 비핵보유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왔다. 권력의 독점체, 핵무기의 ‘카르텔’이나 다름없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그 역할을 하였다. 지금 1968년 이전 핵보유국인 미국, 러시아(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는 모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무소불위의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은 과연 우연일까?
핵무기가 힘이다
핵무기가 힘이다
‘퍽...’
유리로 된 재떨이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텔러는 움찔했다. 기가 죽어 새파랗게 질려있는 그에게 오펜하이머는 소리를 질렀다.
“넌 과학자의 자격이 없어! 나가! 꺼져버려!”
독일계 미국인인 오펜하이머는 인류의 비극인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에 적극 참여하였고 1942년 11월 16일 로스앨러모스의 외딴 지역,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 부지를 결정한 뒤 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과학자들은 우라늄-235와 플루토늄을 이용한 최초의 핵폭탄을 제조하였다.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30분, 트리니티(삼위일체)란 이름을 붙인 알바레스크 남쪽 고지대 사막 시험장에서 최초의 핵폭탄이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자 강렬한 섬광과 급격한 열파가 일어나고, 이어 충격파가 일어나 골짜기에 메아리치자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당장 불기둥이 치솟았고, 버섯구름이 12,200m 상공까지 퍼져 올라갔다. 핵폭탄은 20,000t의 TNT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냈다. 반지름 730m 안에 있는 주변 사막의 모래는 완전히 녹아버렸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떨어진 화염이었다.
실험이 끝나자 트리니티 시험장 감독인 케네스 베인브리지는 오펜하이머에게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들입니다”라고 내뱉었다. 그제서야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손으로 악마의 무기를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핵폭탄이 실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랬다. 원래 핵폭탄은 독일군이 개발할 것에 대비해 만든 것이지만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서 완성도 하기 전에 독일군은 패망해버렸다. 일본도 사실상 패색이 짙으므로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미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자 미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전리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니 세계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이치, 승전국이 될 연합국, 그 가운데 주요 국가인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이 전 세계를 나눠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4등분하는 건 너무 아깝다. 미국이 다 차지할 순 없을까? 특히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에게 지분을 허용했다간 나중에 미국의 강력한 경쟁국이 될 것이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던 관료들은 전 세계에 미국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며 특히 소련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소련이 남하하고 있는 동북아의 적국인 일본에 막 개발이 완료된 핵폭탄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플루토늄을 사용한 핵폭탄은 실험을 하였으나 우라늄을 사용한 핵폭탄은 아직 실험하기 전이므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의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235 핵폭탄 ‘리틀 보이’를 떨어뜨렸다. 도시의 2/3이 파괴되고 무고한 주민 35만 명 가운데 14만 명이 죽었다.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는 다른 폭격기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핵폭탄인 ‘팻 맨’을 떨어뜨렸다.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고 주민 27만 명 가운데 7만 명이 죽었다. 피의 향연을 즐기던 미국 관료들은 8월 말 세 번째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었고 아무도 미국을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나가사키에 지옥의 불덩이가 떨어졌을 때,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텔러, 파인만 등 일부 과학자들이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한다. 다음날 실험실에 나와서까지 자신들의 업적(?)을 떠들어대던 텔러는 오펜하이머의 재떨이 공격을 받고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49년 10월,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회의 의장으로 재직중이던 오펜하이머에게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 고문이 된 텔러가 찾아왔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난 8월에 ‘악의 제국’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네. 이러다 우리 미국이 차지하던 지구를 소련과 양분해야 할 처지가 될까 걱정이야.”
오펜하이머는 텔러와 이야기하기 싫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했다.
헝가리계 유대인 출신인 텔러는 전쟁시기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의 과학, 우리의 문화, 우리 미국의 자유와 우리의 문명을 지키기 위해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이 함께 활동해야 한다’는 연설에 감명받아 핵무기 개발에 자기 인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맨해튼 계획에서 핵폭탄보다는 수소폭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아마 그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리라.
“알다시피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수소폭탄은 이론상 무제한의 파괴력을 낼 수 있네. 지금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이 지구상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려면 하루빨리 수소폭탄을 만들어야 하네.”
텔러는 집요했다. 오펜하이머는 자기 생각을 빠르게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에서 수십만의 무고한 민간인이 우리가 만든 핵무기에 희생되었네. 지금 그 때 일하던 과학자 가운데 다시 핵무기를 만들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네도 이제 정신 차리게. 나는 악마의 무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네.”
“자네가 거부해도 소용없을걸! 난 자네가 소련 스파이라는 걸 다 알아! 난 기필코 수소폭탄을 완성하겠어! 인류가 찾아낸 궁극의 무기 말이야!”
오펜하이머의 등에 대고 텔러는 소리를 질렀다.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위원회는 수소폭탄 개발 계획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과학자 내부의 소련 스파이 침투 사건이 터지면서 수소폭탄 개발은 강행되었다. 오펜하이머는 1953년 12월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고 원자력위원회에서 쫓겨났다. 텔러의 주도 아래 미국은 핵폭탄보다 수천 배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였고 1952년 11월 1일 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이 실시되었다. 텔러는 그 후로도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핵실험금지조약에 반대하고 핵무기의 다양한 사용법을 찾는 연구도 하였다.
수소폭탄 실험으로 미국은 다시 세계 1위의 핵강국이 되었으나 곧바로 소련이 1953년 8월 12일 수소폭탄을 실험했고, 영국이 1957년 5월, 중국이 1967년, 프랑스가 1968년 개발에 각각 성공했다. 현재 세계 핵무기 보유국의 무기창고에는 핵무기가 2만 개 이상 쌓여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국가가 있다.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핵보유국끼리는 파멸이 두려워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핵보유국끼리는 동등한 관계가 성립한다. 반면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사이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성립한다. 비핵보유국은 아무리 재래식 무기로 무장해도 핵무기 하나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갖고자 희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있는 핵보유국들은 다른 비핵보유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왔다. 권력의 독점체, 핵무기의 ‘카르텔’이나 다름없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그 역할을 하였다.
지금 1968년 이전 핵보유국인 미국, 러시아(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는 모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무소불위의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은 과연 우연일까?
기획글 2 - 핵보유국의 치사한 농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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