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그리고 마흔...

뽀록200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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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라는 나이에 가슴에 무슨 불 같은 열정이 남아 있으랴…

십수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만난들 무슨 애잔한 설레임인들 남아 있을까.

지금은 남의 사람들이 되어버린 우리는 바다를 보러 떠났다.

중년을 바라보는 마흔살  동갑내기 남녀가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을 뿐, 양심의 거리낌이라든지,

불륜이라든지 그런 감정은 손톱만치도 없었다. 맹세코!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 하고, 남편. 마누라, 아들 딸 이야기, 집장만한 이야기, 그저 그런 잡다한 이야기며…  어쩔 수 없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버린 서로를 보고 우린 씁쓸하게 웃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 잊었노라며, 그땐 정말 죽고 싶도록 네가 미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된다며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너를 보며, 난 ‘사랑은 단지 사랑일 뿐’이라고

때늦은 변명을 했다.

 

대관령 목장을 걸어 오르며 어색하게 너의 손을 잡아 주었을 때, 이젠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며

살며시 웃던 눈가에 주름살이 서글펐다.

 

“그땐 세상 남자 중에 네가 제일 멋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별거 아니네 뭐. 꽁깍지가

끼었었나봐” 깔깔깔~~  

“너는 아직도 이뻐. 우리 마누라 다음으로…” 킬킬킬~~

 

바다를 바라보며 우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구룡포 바닷가 같아….” 긴 한숨을 내쉬며 혼자말처럼 조용하게 읊조렸을 때 난 여전히 말이 없었다.

스물 다섯, 군대를 막 제대하고 떠났던 여행에서 만났던 구룡포의 푸른 바다…

그리고, 바다처럼 푸르렀던 그 날밤….

가슴속에 싸~아 하게 밀려오는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린 스물 다섯 사랑하는 연인처럼 한동안 바다만 바라보았다.

“난 눈이 약한가 봐. 바람만 좀 쐬면 눈물이 난다니까….”

그녀가 어색하게 손수건을 꺼냈을 때도 난 여전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몇일 후면 네 생일이지?”

“아직도 그걸 기억해?”

“응, 이맘때면 그냥 생각이 나”

얼마나 아팠을까… 가슴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이며 목젖이 잠겨왔다.

하지만 따뜻하게 등 한번 토닥거려 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남의 사람… 남의 사랑…

 

내 생일 선물로 그녀는 만년필을 사고, 나는 김광석 CD를 한장 샀다.

 

“ 이렇게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그치?”

뭐가 다행인지 모르지만 난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애들 잘 키우고, 돈 많이 벌고, 신랑하고 오손도손 재미있게 잘 살아”

“ 응, 너도…”

 

그녀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집에 막 들어가는 길인데… 오늘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냥, 묻어두기로 했어….”

나도 그래….  차를 세우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살갖에 닿는 바람이 끈적인다. 비가 오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