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안으로 들어서면서 루씨는 새삼스레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분명 이곳은 예전 자신의 어린 시절 생사를 넘나들던 바로 그 장소임이 분명했다. 축축한 바위를 밟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곧 넓다란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으로 들어서니 모래가 깔린 평평한 평지에 먼지가 가득 쌓인 다 해진 검은 망토자락과 갑옷이 몇개의 해골들과 함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발견되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이빨 빠진 커다란 중검이 보이자 루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과거 그의 유년 시절에 혼돈계 체험 수련을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 일주일 동안이나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준 무명의 스켈레톤을 아직도 루씨는 잊지 않고 있었다. 비록 혼돈계에 속하는 마물이라는 존재였지만 그는 루씨의 지금까지의 생애에 있어 가장 은혜로운 자였다.
루씨는 주위의 해골들을 모아 자신의 장검으로 땅을 파서 각각 묻었다. 당시 동굴안에서 죽어간 것은 스켈레톤 뿐만 아니라 데스나이트도 몇기 더 있었는데 널려진 유골들 중 어느 것이 스켈레톤의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갑옷과 망토들도 따로 모아 먼지를 털어내 고이 땅 속에 묻고는 봉우리가 생기도록 둥글게 흙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루씨는 중검을 집어들고는 먼지를 쓸어 내렸다.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루씨는 퍼뜩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중검을 봉우리에 세워 비석으로 삼았다. 루씨가 두어 걸음 물러나 기도를 드린다.
'아저씨~!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지켜드리지 못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 차한잔 마실 쯤의 시간이 지나고 루씨의 표정을 살피던 아이리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루시퍼님도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고 계시는가요?"
요괴들에게 들킬 새라 불도 피지 못한 차가운 동굴. 아이리스는 몸을 꼬옥 웅크리고 앉은채 눈을 새초롬히 뜨고는 루씨를 올려다보았다. 루씨는 갑작스런 질문에 적잖이 당황하여 적당히 얼버무리려 한다.
"아... 네. 저기... 아니 뭐 꼭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그런 루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리스가 계속 말을 잇는다.
"어렸을 적엔 저도 항상 어머님이 그리웠어요."
"어머님은 제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돌아가셨는지라 전 한번도 뵌 적이 없었거든요. 어린 시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맨날맨날 떼를 쓰고 그랬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쓸쓸한 표정으로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분이셨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의 그런 쓸쓸한 표정이 저 때문인 걸 알고 그 담부터는 언제 어디서라도 떼도 안쓰고 울지도 않는 씩씩한 아이리스가 되자고 맘먹었죠."
이렇게 말하며 아이리스가 잠시 생긋 웃자 그 모습이 한 떨기 수선화같다. 루씨는 그런 아이리스의 표정에 괜시리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동굴안이 어두워서 성녀님에게 들키지는 않은 듯 하다.
아이리스는 계속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다가 자신도 모르게 울먹거린다. 무슨 얘기를 해도 아버지 얘기가 나와버리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루씨가 이를 알아채리고 어쩔 줄을 모른다.
"아... 아이리스님..."
아이리스가 곧 눈물을 닦아내며 말한다.
"저도 알고 있어요. 루시퍼님... 루시퍼님도 저희 아버지를 살릴 수 없다는 걸 말이에요. 만약 그럴 힘이 있으셨다면 루시퍼님이 사흘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계실 일도 없을테지요. 안 그런가요?"
"아..네..."
루씨가 뜨끔하여 말꼬리를 흐린다.
"괜찮아요. 루시퍼님. 전 씩씩한 아이리스거든요."
아이리스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연신 눈물을 닦아낸다.
"루시퍼님은 천사가 아니라 꼭 사람 같아요. 그것도 수줍음 많이 타는 어린애요. 하하하!!!"
아이리스가 밝게 웃었다. 루씨는 엉뚱한 그녀의 한마디에 어찌할 바를 몰라 동굴 안을 서성거리다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아이리스를 덮어주었다.
갑자기 동굴 입구 쪽에서 컹컹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일단의 요괴들이 들어서는 것이 보이는데 머리가 세 개이고 꼬리는 뱀 모양이며 목 둘레에 살아 움직이는 여러 마리의 뱀 머리가 달려 있는 개들이 수십마리요. 그 개들을 끌고 있는 녹색 피부의 요괴인간 두 명이 각자의 손에 개줄을 한 움큼씩 잡고 있었다. 컹컹대는 소리는 바로 그 개들이 짖는 소리였다.
"여기닷! 여기! 여기에 천사가 있다!"
"천사다. 천사~! 케켓!"
"저 녀석을 잡아다가 어서 대왕께 바치자. 에헹에헹!!"
"아니야 아니야 ~! 천사 고기를 먹으면 불사신이 된대~! 잡아서 우리가 몰래 먹자"
"안돼 안돼. 그러다가 만약 대왕께서 아시면 우리 목이 남아나질 않을꺼야"
둘은 루씨와 아이리스 앞에서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무시무시한 대왕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다.
"대왕께 바치는 걸로 하자~! 케켓케켓!! 에헹에헹!!"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마주보며 서로 웃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루씨가 얼른 장검을 빼어들었다. 녹색 피부의 요괴인간들이 서로 잠시 바라보다가 루씨를 노려본다.
두 요괴인간이 끈을 놓자 개들이 일시에 루씨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머리가 셋이요 꼬리는 뱀 모양이며 목 둘레엔 살아 움직이는 뱀 머리가 파도를 친다. 혼돈계 곳곳에 살고 있는 이 개들의 이름은 켈베로스였다. 이들은 켈베로스들을 길들여 자신의 수족으로 삼고 있는 듯 보였다. 루씨가 검광을 번쩍이자 벌써 몇마리가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개의 마리수는 아직도 오십이 조금 더 남아 보인다. 정신없이 켈베로스들을 베고 있는데 뭔가가 '휘익' 하고 양쪽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느샌가 녹색의 요괴인간 둘이 루씨를 스쳐 지나 아이리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루씨가 이를 제지하려고 하는데 켈베로스들이 끊임없이 달려든다.
"이 여자 아이는 누구지? 에헹!"
"글쎄 저 천사 녀석의 여자 친구가 아닐까?"
"여자 친구라기 보다는 마누라가 아닐까?"
"오오! 천사도 마누라가 있는거냐? 처음 알았다. 케켓!"
두 녀석은 아이리스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고 또다시 헛소리들을 하기 시작했다.
"손대지 마라~!"
루씨가 눈에 불을 켜고 아이리스에게로 달렸다. 검을 흔들자 또다시 열마리 남짓한 켈베로스들이 나가 떨어진다.
"우아우~! 마누라가 맞는 모양이다! 에헹!"
"케켓! 이거 정말 신나는데. 이건 먹어도 되겠지? 어디 맛좀 볼까? 천사의 마누라 고기를 말이야~! 케켓!"
말을 마치자 마자 쉴새 없이 혀를 낼름거리던 두 녀석들 중 한녀석이 아이리스의 목을 물어뜯었다. 루씨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리더니 녀석의 머리통이 눈깜짝할 사이에 펑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은 한 녀석이 무슨 영문인가 어리둥절해 있다가 본능적으로 재빨리 아이리스의 팔을 놓고 옆으로 물러섰다. 이 말랑말랑한 애송이 천사에게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의 살수! '
십이천사대원들만이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비급. 주위의 공간을 왜곡시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파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하지만 루씨는 이 기술을 싫어했다. 그 수법이 너무나도 잔인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물이라도 그렇게 잔인한 수법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평소의 루씨였다. 그러한 루씨가 지금 '신의 살수'중 하나를 발동했다. 아이리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새하얀 아이리스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끊임없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씨는 오른손으로 아이리스를 부축한 채 왼손으로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켈베로스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자 남은 한 마리의 녹색 요괴인간은 이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동굴밖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루씨가 황급히 뒤쫓았으나 요괴인간은 벌써 숲속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린 후였다. 동굴안으로 돌아온 루씨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아이리스의 상처를 지혈하고 감쌌다.
그리고는 죽은 개들의 개줄을 모아 아이리스의 몸을 칭칭 동여매 단단히 묶어 자신의 등에 업었다.
녀석이 도망쳤으니 다른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 올 것이 분명하므로 그전에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리스님의 상처도 심상치 않아 어서 베르베르님에게 보여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리스를 등에 지고 루씨가 황급히 동굴입구를 나서려던 찰나 하늘 위에서 거대한 와이번 한마리가 핏줄이 파랗게 선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와이번의 목덜미에는 안장이 하나 씌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검정색 갑옷을 두른 건장한 기사 하나가 망토를 펄럭이고 있었다. 와이번의 커다란 머리가 루씨에게로 달려들자 루씨는 다시금 동굴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곧 검정 갑옷의 기사가 와이번에서 내려 동굴안으로 들어서자 숲속에서 아까 도망쳤던 녹색 요괴 녀석이 튀어나와 그의 옆에 넙죽 엎드린다.
"암흑 대왕~!! 어찌 여기까지 행차하셨나이까? 에헹!"
녹색 요괴인간이 자신을 향해 촐싹거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본척 만척 검정 갑옷의 기사는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선다. 녹색 요괴인간 녀석이 따라들어오면서 루씨에게 손가락질 해대며 소리친다.
"야~! 이 되먹지 못한 천사놈아~! 이 분이 누구신줄 아느냐? 혜성처럼 나타나서 어지러운 혼돈계를 한방에 통일하시고 이제 곧 인간계와 천공계까지 정복하실 이 시대 최고의 멋쟁이, 이 시대 최고의 카리스마, 이 시대 최고의 몸짱. 아앗 이건 아닌가? 에헹에헹~! 하여간 우리들 마물들의 영원불멸할 두목이신 암흑대왕님이시다. 넌 이제 주~욱었따~!!"
루씨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음을 알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검정 갑옷의 기사는 머리에 온통 뿔장식으로 가득찬 빛이 번쩍번쩍 나는 검정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루씨가 달려들자 어느샌가 자신의 등뒤에 찬 커다란 검을 뽑아들었다.
루씨가 이 커다란 검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검의 모양새가 중검의 모양새와 완전히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날카로와 보였다.
마계건국기 1부-11편: 암흑대왕
동굴안으로 들어서면서 루씨는 새삼스레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분명 이곳은 예전 자신의 어린 시절 생사를 넘나들던 바로 그 장소임이 분명했다.
축축한 바위를 밟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곧 넓다란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으로 들어서니 모래가 깔린 평평한 평지에 먼지가 가득 쌓인 다 해진 검은 망토자락과 갑옷이 몇개의 해골들과 함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발견되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이빨 빠진 커다란 중검이 보이자 루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과거 그의 유년 시절에 혼돈계 체험 수련을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 일주일 동안이나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준 무명의 스켈레톤을 아직도 루씨는 잊지 않고 있었다.
비록 혼돈계에 속하는 마물이라는 존재였지만 그는 루씨의 지금까지의 생애에 있어 가장 은혜로운 자였다.
루씨는 주위의 해골들을 모아 자신의 장검으로 땅을 파서 각각 묻었다. 당시 동굴안에서 죽어간 것은 스켈레톤 뿐만 아니라 데스나이트도 몇기 더 있었는데 널려진 유골들 중 어느 것이 스켈레톤의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갑옷과 망토들도 따로 모아 먼지를 털어내 고이 땅 속에 묻고는 봉우리가 생기도록 둥글게 흙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루씨는 중검을 집어들고는 먼지를 쓸어 내렸다.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루씨는 퍼뜩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중검을 봉우리에 세워 비석으로 삼았다.
루씨가 두어 걸음 물러나 기도를 드린다.
'아저씨~!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지켜드리지 못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 차한잔 마실 쯤의 시간이 지나고 루씨의 표정을 살피던 아이리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루시퍼님도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고 계시는가요?"
요괴들에게 들킬 새라 불도 피지 못한 차가운 동굴. 아이리스는 몸을 꼬옥 웅크리고 앉은채 눈을 새초롬히 뜨고는 루씨를 올려다보았다.
루씨는 갑작스런 질문에 적잖이 당황하여 적당히 얼버무리려 한다.
"아... 네. 저기... 아니 뭐 꼭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그런 루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리스가 계속 말을 잇는다.
"어렸을 적엔 저도 항상 어머님이 그리웠어요."
"어머님은 제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돌아가셨는지라 전 한번도 뵌 적이 없었거든요.
어린 시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맨날맨날 떼를 쓰고 그랬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쓸쓸한 표정으로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분이셨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의 그런 쓸쓸한 표정이 저 때문인 걸 알고 그 담부터는 언제 어디서라도 떼도 안쓰고 울지도 않는 씩씩한 아이리스가 되자고 맘먹었죠."
이렇게 말하며 아이리스가 잠시 생긋 웃자 그 모습이 한 떨기 수선화같다.
루씨는 그런 아이리스의 표정에 괜시리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동굴안이 어두워서 성녀님에게 들키지는 않은 듯 하다.
아이리스는 계속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다가 자신도 모르게 울먹거린다. 무슨 얘기를 해도 아버지 얘기가 나와버리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루씨가 이를 알아채리고 어쩔 줄을 모른다.
"아... 아이리스님..."
아이리스가 곧 눈물을 닦아내며 말한다.
"저도 알고 있어요. 루시퍼님... 루시퍼님도 저희 아버지를 살릴 수 없다는 걸 말이에요. 만약 그럴 힘이 있으셨다면 루시퍼님이 사흘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계실 일도 없을테지요. 안 그런가요?"
"아..네..."
루씨가 뜨끔하여 말꼬리를 흐린다.
"괜찮아요. 루시퍼님. 전 씩씩한 아이리스거든요."
아이리스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연신 눈물을 닦아낸다.
"루시퍼님은 천사가 아니라 꼭 사람 같아요. 그것도 수줍음 많이 타는 어린애요. 하하하!!!"
아이리스가 밝게 웃었다.
루씨는 엉뚱한 그녀의 한마디에 어찌할 바를 몰라 동굴 안을 서성거리다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아이리스를 덮어주었다.
갑자기 동굴 입구 쪽에서 컹컹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일단의 요괴들이 들어서는 것이 보이는데 머리가 세 개이고 꼬리는 뱀 모양이며 목 둘레에 살아 움직이는 여러 마리의 뱀 머리가 달려 있는 개들이 수십마리요. 그 개들을 끌고 있는 녹색 피부의 요괴인간 두 명이 각자의 손에 개줄을 한 움큼씩 잡고 있었다.
컹컹대는 소리는 바로 그 개들이 짖는 소리였다.
"여기닷! 여기! 여기에 천사가 있다!"
"천사다. 천사~! 케켓!"
"저 녀석을 잡아다가 어서 대왕께 바치자. 에헹에헹!!"
"아니야 아니야 ~! 천사 고기를 먹으면 불사신이 된대~! 잡아서 우리가 몰래 먹자"
"안돼 안돼. 그러다가 만약 대왕께서 아시면 우리 목이 남아나질 않을꺼야"
둘은 루씨와 아이리스 앞에서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무시무시한 대왕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다.
"대왕께 바치는 걸로 하자~! 케켓케켓!! 에헹에헹!!"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마주보며 서로 웃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루씨가 얼른 장검을 빼어들었다. 녹색 피부의 요괴인간들이 서로 잠시 바라보다가 루씨를 노려본다.
두 요괴인간이 끈을 놓자 개들이 일시에 루씨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머리가 셋이요 꼬리는 뱀 모양이며 목 둘레엔 살아 움직이는 뱀 머리가 파도를 친다. 혼돈계 곳곳에 살고 있는 이 개들의 이름은 켈베로스였다. 이들은 켈베로스들을 길들여 자신의 수족으로 삼고 있는 듯 보였다.
루씨가 검광을 번쩍이자 벌써 몇마리가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개의 마리수는 아직도 오십이 조금 더 남아 보인다.
정신없이 켈베로스들을 베고 있는데 뭔가가 '휘익' 하고 양쪽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느샌가 녹색의 요괴인간 둘이 루씨를 스쳐 지나 아이리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루씨가 이를 제지하려고 하는데 켈베로스들이 끊임없이 달려든다.
"이 여자 아이는 누구지? 에헹!"
"글쎄 저 천사 녀석의 여자 친구가 아닐까?"
"여자 친구라기 보다는 마누라가 아닐까?"
"오오! 천사도 마누라가 있는거냐? 처음 알았다. 케켓!"
두 녀석은 아이리스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고 또다시 헛소리들을 하기 시작했다.
"손대지 마라~!"
루씨가 눈에 불을 켜고 아이리스에게로 달렸다.
검을 흔들자 또다시 열마리 남짓한 켈베로스들이 나가 떨어진다.
"우아우~! 마누라가 맞는 모양이다! 에헹!"
"케켓! 이거 정말 신나는데. 이건 먹어도 되겠지? 어디 맛좀 볼까? 천사의 마누라 고기를 말이야~! 케켓!"
말을 마치자 마자 쉴새 없이 혀를 낼름거리던 두 녀석들 중 한녀석이 아이리스의 목을 물어뜯었다.
루씨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리더니 녀석의 머리통이 눈깜짝할 사이에 펑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은 한 녀석이 무슨 영문인가 어리둥절해 있다가 본능적으로 재빨리 아이리스의 팔을 놓고 옆으로 물러섰다. 이 말랑말랑한 애송이 천사에게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의 살수! '
십이천사대원들만이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비급. 주위의 공간을 왜곡시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파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하지만 루씨는 이 기술을 싫어했다. 그 수법이 너무나도 잔인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물이라도 그렇게 잔인한 수법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평소의 루씨였다.
그러한 루씨가 지금 '신의 살수'중 하나를 발동했다.
아이리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새하얀 아이리스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끊임없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씨는 오른손으로 아이리스를 부축한 채 왼손으로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켈베로스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자 남은 한 마리의 녹색 요괴인간은 이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동굴밖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루씨가 황급히 뒤쫓았으나 요괴인간은 벌써 숲속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린 후였다.
동굴안으로 돌아온 루씨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아이리스의 상처를 지혈하고 감쌌다.
그리고는 죽은 개들의 개줄을 모아 아이리스의 몸을 칭칭 동여매 단단히 묶어 자신의 등에 업었다.
녀석이 도망쳤으니 다른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 올 것이 분명하므로 그전에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리스님의 상처도 심상치 않아 어서 베르베르님에게 보여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리스를 등에 지고 루씨가 황급히 동굴입구를 나서려던 찰나 하늘 위에서 거대한 와이번 한마리가 핏줄이 파랗게 선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와이번의 목덜미에는 안장이 하나 씌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검정색 갑옷을 두른 건장한 기사 하나가 망토를 펄럭이고 있었다.
와이번의 커다란 머리가 루씨에게로 달려들자 루씨는 다시금 동굴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곧 검정 갑옷의 기사가 와이번에서 내려 동굴안으로 들어서자 숲속에서 아까 도망쳤던 녹색 요괴 녀석이 튀어나와 그의 옆에 넙죽 엎드린다.
"암흑 대왕~!! 어찌 여기까지 행차하셨나이까? 에헹!"
녹색 요괴인간이 자신을 향해 촐싹거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본척 만척 검정 갑옷의 기사는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선다. 녹색 요괴인간 녀석이 따라들어오면서 루씨에게 손가락질 해대며 소리친다.
"야~! 이 되먹지 못한 천사놈아~! 이 분이 누구신줄 아느냐? 혜성처럼 나타나서 어지러운 혼돈계를 한방에 통일하시고 이제 곧 인간계와 천공계까지 정복하실 이 시대 최고의 멋쟁이, 이 시대 최고의 카리스마, 이 시대 최고의 몸짱. 아앗 이건 아닌가? 에헹에헹~! 하여간 우리들 마물들의 영원불멸할 두목이신 암흑대왕님이시다. 넌 이제 주~욱었따~!!"
루씨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음을 알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검정 갑옷의 기사는 머리에 온통 뿔장식으로 가득찬 빛이 번쩍번쩍 나는 검정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루씨가 달려들자 어느샌가 자신의 등뒤에 찬 커다란 검을 뽑아들었다.
루씨가 이 커다란 검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검의 모양새가 중검의 모양새와 완전히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날카로와 보였다.
루씨가 소리쳤다.
"다...당신은?"
검과 검이 맞부딫히자 검정 갑옷의 기사의 엄청난 검세에 루씨의 장검은 힘없이 부러져 나가고 루씨는 아이리스를 등에 업은채 공중으로 붕 떠올라 내동댕이쳐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