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온 저녁입니다. 코스모스 핀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저는 콘크리트로 숲을 이룬 서울 한 복판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보이는 파란 하늘에, 그리고 지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가을을 느낍니다.
제가 젊었을 적에는 등산을 많이 다녔습니다. 가을에 배낭을 지고 훌쩍 떠나는 여행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것도 혼자 말입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의 명산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비밀로 한 나만의 산이 이런 날에는 더욱 잘 어울립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산이지만 20여 년 전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산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가평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명지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철철 물이 넘치는 계곡의 오솔길을 잠시 따라 들어가면 조그만 절이 나오는데, 그 곳에서부터 등산은 시작됩니다. 단풍과 갈색 낙엽이 어깨를 스치고 꼬불꼬불한 등산로는 무척 아기자기 합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누군가 그리울 때,
혹은 가을에 취하여 몸살을 앓을 때에 자주 찾았습니다.
남들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한 그 산을 누구에겐가 자랑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조그만 키에, 갸름한 얼굴, 그리고 빨개진 얼굴로 화를 잘 내기도 하던 그 여자는, 비밀스런 나만의 산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누구의 비밀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 누구의 누가 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망설이다가 그녀를 데리고 명지산으로 향했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이상할 정도로 그녀는 들떴는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웃을 적에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단풍잎이 팔랑거리고, 낙엽이 날리고, 파란 하늘도 들어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떻게 조그만 눈동자 속에 그런 것이 다 들어 있는지 참 신기했습니다.
가파른 산등선을 올라서 정상부근에 도착하면 내가 만들어 둔 비밀샘터가 있습니다. 언젠가 바위틈에서 물이 자꾸 나오는 것을 유심히 보던 내가 그 물을 한곳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흙을 파내고는 조그만 돌로 바닥을 덮고 또 흙이 안으로 쏟아지지 않게 옆에도 쌓아 올렸습니다.
그녀와 나는 비밀샘터에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메뉴는 김치찌개였는데, 저는 돼지고기보다는 멸치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돼지고기를 넣은 찌개를 더 좋아했고,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 좋은 대로 굵은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넣고 끓였습니다. 그녀는 울퉁불퉁 비계가 달린 고기를 입속에 쏙 넣으며 맛있으니 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안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물컹한 고기를 씹으며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씩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더 큰 고깃덩어리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내 입을 벌리라고 했습니다.
또 먹어야만 했습니다.
식사를 다 한 후에 둘이서 발을 쭉 뻗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을 보다가 나는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까 산을 올라올 때에 그녀 눈동자 속에 들어있던 팔랑이는 단풍잎, 날리던 낙엽, 그리고 하늘이 들어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갑자기 몸을 반쯤 일으킨 나를 보며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아하,
내가 실수했습니다. 그 자세는 영화에서 나올 법한 키스하는 장면과 똑같았습니다. 의아한 시선이었을까요, 아니면 키스를 했으면 하는 바램의 표정이었을까요, 나는 멈칫 얼굴을 뒤로 빼야했습니다. 너무도 강렬한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3초, 아니면 4초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이십 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을이 오면 추억의 길을 타고 여지없이 찾아옵니다.
오늘 그녀가 그립습니다.
오늘 그녀가 그립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저녁입니다. 코스모스 핀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저는 콘크리트로 숲을 이룬 서울 한 복판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보이는 파란 하늘에, 그리고 지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가을을 느낍니다.
제가 젊었을 적에는 등산을 많이 다녔습니다. 가을에 배낭을 지고 훌쩍 떠나는 여행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것도 혼자 말입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의 명산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비밀로 한 나만의 산이 이런 날에는 더욱 잘 어울립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산이지만 20여 년 전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산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가평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명지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철철 물이 넘치는 계곡의 오솔길을 잠시 따라 들어가면 조그만 절이 나오는데, 그 곳에서부터 등산은 시작됩니다. 단풍과 갈색 낙엽이 어깨를 스치고 꼬불꼬불한 등산로는 무척 아기자기 합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누군가 그리울 때,
혹은 가을에 취하여 몸살을 앓을 때에 자주 찾았습니다.
남들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한 그 산을 누구에겐가 자랑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조그만 키에, 갸름한 얼굴, 그리고 빨개진 얼굴로 화를 잘 내기도 하던 그 여자는, 비밀스런 나만의 산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누구의 비밀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 누구의 누가 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망설이다가 그녀를 데리고 명지산으로 향했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이상할 정도로 그녀는 들떴는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웃을 적에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단풍잎이 팔랑거리고, 낙엽이 날리고, 파란 하늘도 들어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떻게 조그만 눈동자 속에 그런 것이 다 들어 있는지 참 신기했습니다.
가파른 산등선을 올라서 정상부근에 도착하면 내가 만들어 둔 비밀샘터가 있습니다. 언젠가 바위틈에서 물이 자꾸 나오는 것을 유심히 보던 내가 그 물을 한곳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흙을 파내고는 조그만 돌로 바닥을 덮고 또 흙이 안으로 쏟아지지 않게 옆에도 쌓아 올렸습니다.
그녀와 나는 비밀샘터에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메뉴는 김치찌개였는데, 저는 돼지고기보다는 멸치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돼지고기를 넣은 찌개를 더 좋아했고,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 좋은 대로 굵은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넣고 끓였습니다. 그녀는 울퉁불퉁 비계가 달린 고기를 입속에 쏙 넣으며 맛있으니 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안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물컹한 고기를 씹으며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씩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더 큰 고깃덩어리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내 입을 벌리라고 했습니다.
또 먹어야만 했습니다.
식사를 다 한 후에 둘이서 발을 쭉 뻗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을 보다가 나는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까 산을 올라올 때에 그녀 눈동자 속에 들어있던 팔랑이는 단풍잎, 날리던 낙엽, 그리고 하늘이 들어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갑자기 몸을 반쯤 일으킨 나를 보며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아하,
내가 실수했습니다. 그 자세는 영화에서 나올 법한 키스하는 장면과 똑같았습니다. 의아한 시선이었을까요, 아니면 키스를 했으면 하는 바램의 표정이었을까요, 나는 멈칫 얼굴을 뒤로 빼야했습니다. 너무도 강렬한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3초, 아니면 4초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이십 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을이 오면 추억의 길을 타고 여지없이 찾아옵니다.
오늘,
그녀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