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트럭의 비애..

정성민200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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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무살의 여름 휴가는 비오는 날에 시작 되었다.
그때 우리집 자가용은 92년식 1톤 트럭으로
10년이나 된 낡은 트럭을 타고 설악동에 사는 아빠의 친구분을 찾아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종주할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만 들떠 있어
엄마,아빠 그리고 연년생인 내 동생까지
네 식구 누구도 트럭이 3인승이라거나 낡았다거나 하는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았었다.
근거리에 자주 이동하는 우리집만의 방법이 있었으니까..
트럭 좌석 위에는 30cm가량의 집 싣는 공간이 있는데
의자를 조금만 앞으로 당기면 키크고 덩치큰 나와 내 동생은 아니지만
키 작고 몸 작고 아담한, 무엇보다 차만 타면 잠이 드는 우리 엄마에겐
하늘 보며 누워 잘 수 있는 침대칸이 되는 것이다.
혹시난 검문에 걸릴까, 짐짝인양 쌀자루 같은걸로 덮고 있어야 하는
문제만 빼면 안성맞춤 이었다.
아무튼 그날 흐리고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을 나섰고
고속도로 보다 국도로 가는게 구경거리가 많을거라는 아빠의 말쓴을 따라
휴게소도 없고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가로수 길을 따라
우리 가족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나 갔을까..
쨍그렁 소리에 뒤돌아 보니 차바퀴의 휠이 빠져 뒤로 뒤로 굴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차는 앞으로 굴러가고 휠은 뒤로 굴러가고..
차를 세운 아빠는 씩씩 거리시며 찾아 뛰어오셔서 화가 나신듯
문을 확 잡아 채는 순간
문 손잡이가 뚝 부러지면서 창유리가 통째로 문짝 아래로 쑥 내려앚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이 여름날 에어컨보다 시원해서 좋다는 기분도 잠깐..
이런걸 엎친데 덮친거라고 하던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정비소는 커녕 인가도 보이지 않고
길을 물어볼 차 한대도 만날수 없는 산골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빗줄기가 좀 수그러 들면 달리고, 빗방울이 굵어지면 나무밑에 쉬고..
그날따라 장거리 여행길이라고 차 청소를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지
평소 그렇게 굴러다니던 비닐봉지 하나 보이지 않고
잡동사니 많기로 소문난 엄마의 가방을 홀랑 뒤집어 옷핀 몇개와 빨래 집게 서너개를 찾아
과자 봉지 들을 얼기 설기 엮어 문에 집게로 찝어 보지만
움직이는 차에 붙어 있을리가 없었다.
그때까지 뒷 자리에 짐짝인양 코를 골며 주무시던 엄마가
비를 맞자 깨어 나셔서 덮고 있던 쌀 자루로 막아 보았지만
그것조차도 굴러가는 차에서는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엄마가 뒷자리에서 부스럭 부스럭 꺼내 놓은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비상용 우산이었다.
"엄마 만세~!"
왜 아무도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집에 비가 새면 방안에서 우산쓴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차안에서 우산 쓰고 가는건 처음본다며
어이 없어 하시는 아빠까지, 우리 모두 배꼽빠지게 웃고 말았다.
우산을 창문에 세우고 엄마가 누운채 발로 받치고 내가 손잡이를 잡고..
우리 가족의 협동정신이 이럴때 제대로 발휘 된것 같았다.
차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고, 물어 물어 정비소를 찾아서 대강 유리를 끼우고
그렇게 설악산에 도착한것은 밤 11시가 넘ㄴ은 시간이었다.

아! 고물 트럭의 비애인가
비 내리는 날의 비애인가
그해 8월은 왜 그리도 비가 많이 내렸는지..
정말 어이 없었던 것은, 사흘 내내 창밖의 비만 바라보다가 
집으로 내려오는 나흘째 되는날의 고속도로는
비 개인후의 산뜻한 거리와 맑은 했상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듯 했다.
내 스무살의 여름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때 우리 식구를 웃기고 울렸던 그 트럭은
지금도 우리 엄마 아빠의 발이 되어 온갖 농장일을 도맞아 하고 있다.
비록 천장의 고무판이 다 떨어져나가 접착제가 타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 뜯기는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