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미국을 좋아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은 떠나야 할 그들만의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좁은 한반도가 또 반 토막으로 허리가 잘린 채 우리 세대는 북쪽을 모르고 살았어요. 휴전선을 통과하여서 북쪽의 평양으로 달리고 또 압록강을 건너서 넓은 만주벌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태평양 건너에 있는 대륙으로 진출하려고 할 필요가 없겠죠. 겉으로는 자녀교육이라든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다는 이유로 이민을 가지만, 깊은 심리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민족의 특유한 기질이 발버둥치고 있어요.
중앙아시아의 넓은 대륙에서 좁은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우리는 기마민족의 핏줄이거든요. 출생할 적에 몽고반점이라는 푸른 반점을 몸에 지닌 몽골리언은 끊임없이 이동하던 민족이었어요. 북미의 주인인 인디언도 역시 몽골리언이고 남미도 역시 몽골리언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에요. 40대 한국남자가 세계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고 한국의 중년여성이 다른 나라의 중년여성과는 달리 점점 거칠어지고 남성화되어 가는 이유도 역시 좁은 땅에서 느끼는 갑갑증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어요.
캔디는 좁은 도로, 조그만 아파트, 작은 자동차, 넓은 벌판이 보이지 않고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이 너무도 좁아 보였어요. 또한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된 사람들의 피부색과 눈동자, 획일적인 유행의 여성 옷차림 등이 답답하게 느껴졌죠. 당당하게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독신녀인데 자꾸 옆에서 재혼을 거론하는 것도 거북했어요.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몸의 컨디션도 엉망이고 우울증도 심각했어요. 학교동창이나 동네사람들은 캔디만 보면 또렷한 눈초리로 말을 자꾸 걸었고 같이 어울리자고 보챘으니 캔디는 도피하듯 방에서만 지냈어요. 하루는 막내 동생이 보자고 했으며 그 다음날은 또 바로 밑의 동생이 사는 충청도까지 가자고 오빠가 끌어내었어요. 형제들은 탐색하듯 캔디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았고 과연 한국에서 캔디가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캔디는 자기가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침묵하고 말았어요.
어느 날 캔디는 지하철계단 중간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지하도에는 사람들이 제각기 바쁜 모습으로 오가고, 자기의 행선지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어요.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았지만 급한 마음에 영어가 자꾸 튀어 나왔고, 사람들은 힐긋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스쳐지나갔어요. 전철마저도 이렇게 힘겹게 타야 하는데, 앞으로의 일이 캄캄하게만 느껴졌죠. 사방이 절벽처럼 보이는 곳에서 부대끼며 생존해야 한다는 현실이 절망감으로 다가왔어요. 귀국할 적에 죽어도 고향 땅에서 죽겠다는 결심을 했고, 다시는 미국 쪽을 돌아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막한 파도만 몰아치는 듯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죠. 그날 입술을 깨물고 어찌어찌하여 집을 찾아 왔어요. 오빠나 올케는 잘 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방안에 쑥 들어간 캔디는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고는 꼼짝하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남자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남자친구는 언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냐고 당연한 듯이 물었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꾹 입을 다물었어요. 한참 통화하다가 마지막으로 말을 던졌어요.
"한국에서 그냥 살 거야.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아."
이것이 캔디의 자존심이었어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토록 얄미운 미국에게 패배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은 거대한 힘으로 캔디에게 버티고 한국은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깃발은 펄럭였어요.
24년 전의 한국,
캔디의 의식은 24년 전의 한국에 머물러 있었어요. 재미동포들이 국내에서 사는 사람보다는 더욱 보수적이에요. 비록 영어를 쓰면서 앞서가는 미국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향에 대한 의식은 한국을 떠날 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 있거든요. 즉 고향을 비운 24년의 변화를 캔디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우선 음식의 맛이 달라졌어요. 각종 나물이나 김치찌개,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나 상큼한 김치를 좋아했는데, 지금의 한국은 옛날의 담백한 음식 맛이 아니고 기름진 음식만 사방에 가득 했어요. 올케가 갈비집을 해서 그런지 캔디의 집안 식탁은 더 했어요. 햄버거를 사먹었지만 미국의 그 맛도 아니고, 친척들이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데려간 집은 기껏해야 고기만 파는 집이였어요. 오리나 닭, 혹은 개를 직접 잡아서 파는 식당에라도 가면 속으로 기겁했어요. 그러다보니 빈속에 술이나 들이키기 일쑤였죠.
"임마, 한국은 미국과는 달라. 아무 것이나 막 먹고, 뻑시게 살아야 돼. 여기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야."
점점 기죽어가는 캔디를 보고 오빠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이 말은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에게 캔디가 했던 말이에요.
"미국은 한국과는 달라. 열심히 일해야 돼. 여기는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
오빠나 친척들은 캔디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직 캔디가 한국에 잘 적응되어야 한다는 조바심만 앞섰던 것이죠. 사람이 사는 곳이란 다 똑같아요. 지구에는 유토피아가 없거든요. 침묵하고 밥도 잘 안 먹고, 오직 커피나 답답한 심정에 아이스크림만 찾는 캔디가 친척들의 눈에는 무척 여기게 보였고, 올케는 캔디를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님처럼 생각했죠.
미국에서 새벽 4시에 문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 캔디의 가게였어요. 캔디 가게의 주변에는 포도, 체리, 사과, 야채 농장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농장으로 일하러 새벽길을 가는 사람에게 샌드위치나 빵, 혹은 우유나 음료수를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하여 새벽 4시에 문을 열면 밤 11시까지 손님에게 시달렸어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쇳덩이처럼 무거웠지만,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을 또 체크해보는 캔디였어요. 곰곰이 물건과 손님을 떠올리며, 어떤 손님이 이런 말을 오늘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뜻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일은 내가 그 손님에게 이렇게 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며 잠에 떨어졌죠. 또 두 명의 어린 자식을 혼자서 키워야 했으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거든요. 이렇게 고생한 캔디를 보고 오빠나 친척들은 공주병에 걸린 사람 취급을 했으니, 캔디는 의문을 품었어요.
캔디 이야기 5.
캔디 이야기 5.
한국인이 미국을 좋아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은 떠나야 할 그들만의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좁은 한반도가 또 반 토막으로 허리가 잘린 채 우리 세대는 북쪽을 모르고 살았어요. 휴전선을 통과하여서 북쪽의 평양으로 달리고 또 압록강을 건너서 넓은 만주벌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태평양 건너에 있는 대륙으로 진출하려고 할 필요가 없겠죠. 겉으로는 자녀교육이라든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다는 이유로 이민을 가지만, 깊은 심리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민족의 특유한 기질이 발버둥치고 있어요.
중앙아시아의 넓은 대륙에서 좁은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우리는 기마민족의 핏줄이거든요. 출생할 적에 몽고반점이라는 푸른 반점을 몸에 지닌 몽골리언은 끊임없이 이동하던 민족이었어요. 북미의 주인인 인디언도 역시 몽골리언이고 남미도 역시 몽골리언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에요. 40대 한국남자가 세계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고 한국의 중년여성이 다른 나라의 중년여성과는 달리 점점 거칠어지고 남성화되어 가는 이유도 역시 좁은 땅에서 느끼는 갑갑증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어요.
캔디는 좁은 도로, 조그만 아파트, 작은 자동차, 넓은 벌판이 보이지 않고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이 너무도 좁아 보였어요. 또한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된 사람들의 피부색과 눈동자, 획일적인 유행의 여성 옷차림 등이 답답하게 느껴졌죠. 당당하게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독신녀인데 자꾸 옆에서 재혼을 거론하는 것도 거북했어요.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몸의 컨디션도 엉망이고 우울증도 심각했어요. 학교동창이나 동네사람들은 캔디만 보면 또렷한 눈초리로 말을 자꾸 걸었고 같이 어울리자고 보챘으니 캔디는 도피하듯 방에서만 지냈어요. 하루는 막내 동생이 보자고 했으며 그 다음날은 또 바로 밑의 동생이 사는 충청도까지 가자고 오빠가 끌어내었어요. 형제들은 탐색하듯 캔디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았고 과연 한국에서 캔디가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캔디는 자기가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침묵하고 말았어요.
어느 날 캔디는 지하철계단 중간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지하도에는 사람들이 제각기 바쁜 모습으로 오가고, 자기의 행선지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어요.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았지만 급한 마음에 영어가 자꾸 튀어 나왔고, 사람들은 힐긋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스쳐지나갔어요. 전철마저도 이렇게 힘겹게 타야 하는데, 앞으로의 일이 캄캄하게만 느껴졌죠. 사방이 절벽처럼 보이는 곳에서 부대끼며 생존해야 한다는 현실이 절망감으로 다가왔어요. 귀국할 적에 죽어도 고향 땅에서 죽겠다는 결심을 했고, 다시는 미국 쪽을 돌아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막한 파도만 몰아치는 듯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죠. 그날 입술을 깨물고 어찌어찌하여 집을 찾아 왔어요. 오빠나 올케는 잘 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방안에 쑥 들어간 캔디는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고는 꼼짝하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남자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남자친구는 언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냐고 당연한 듯이 물었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꾹 입을 다물었어요. 한참 통화하다가 마지막으로 말을 던졌어요.
"한국에서 그냥 살 거야.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아."
이것이 캔디의 자존심이었어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토록 얄미운 미국에게 패배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은 거대한 힘으로 캔디에게 버티고 한국은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깃발은 펄럭였어요.
24년 전의 한국,
캔디의 의식은 24년 전의 한국에 머물러 있었어요. 재미동포들이 국내에서 사는 사람보다는 더욱 보수적이에요. 비록 영어를 쓰면서 앞서가는 미국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향에 대한 의식은 한국을 떠날 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 있거든요. 즉 고향을 비운 24년의 변화를 캔디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우선 음식의 맛이 달라졌어요. 각종 나물이나 김치찌개,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나 상큼한 김치를 좋아했는데, 지금의 한국은 옛날의 담백한 음식 맛이 아니고 기름진 음식만 사방에 가득 했어요. 올케가 갈비집을 해서 그런지 캔디의 집안 식탁은 더 했어요. 햄버거를 사먹었지만 미국의 그 맛도 아니고, 친척들이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데려간 집은 기껏해야 고기만 파는 집이였어요. 오리나 닭, 혹은 개를 직접 잡아서 파는 식당에라도 가면 속으로 기겁했어요. 그러다보니 빈속에 술이나 들이키기 일쑤였죠.
"임마, 한국은 미국과는 달라. 아무 것이나 막 먹고, 뻑시게 살아야 돼. 여기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야."
점점 기죽어가는 캔디를 보고 오빠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이 말은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에게 캔디가 했던 말이에요.
"미국은 한국과는 달라. 열심히 일해야 돼. 여기는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
오빠나 친척들은 캔디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직 캔디가 한국에 잘 적응되어야 한다는 조바심만 앞섰던 것이죠. 사람이 사는 곳이란 다 똑같아요. 지구에는 유토피아가 없거든요. 침묵하고 밥도 잘 안 먹고, 오직 커피나 답답한 심정에 아이스크림만 찾는 캔디가 친척들의 눈에는 무척 여기게 보였고, 올케는 캔디를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님처럼 생각했죠.
미국에서 새벽 4시에 문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 캔디의 가게였어요. 캔디 가게의 주변에는 포도, 체리, 사과, 야채 농장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농장으로 일하러 새벽길을 가는 사람에게 샌드위치나 빵, 혹은 우유나 음료수를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하여 새벽 4시에 문을 열면 밤 11시까지 손님에게 시달렸어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쇳덩이처럼 무거웠지만,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을 또 체크해보는 캔디였어요. 곰곰이 물건과 손님을 떠올리며, 어떤 손님이 이런 말을 오늘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뜻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일은 내가 그 손님에게 이렇게 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며 잠에 떨어졌죠. 또 두 명의 어린 자식을 혼자서 키워야 했으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거든요. 이렇게 고생한 캔디를 보고 오빠나 친척들은 공주병에 걸린 사람 취급을 했으니, 캔디는 의문을 품었어요.
"나는 너희들을 알지만, 너희들은 나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계속)
☞ 클릭, 캔디 이야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