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8. 지연아... 내 상황이 그랬어...

무늬만여우공주200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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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없는 랑 때문에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어떤 걱정거리를 내게 안겨주고 나갈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곤했다. 그래도 커다란 나무들이 많은 아르헨티나라 여기저기 새소리가 들렸다. 우리방 난로 환풍기에도 새가 사는지 아침마다 새소리가 들렸다. 가끔 새끼도 낳는지 가느다란 새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아침에 연통속을 통해 듣는 새소리는 음악처럼 맑고 투명했다.

이 해의 아르헨티나 여름은 너무 더워서 집 안이 찜통이었다.
게다가 3층집의 맨 꼭대기 층이라 뜨거운 햇볕을 하루종일 받아 달궈진 집은 오븐 상태였다. 빵이라도 궈질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온 집안 식구들이 약간의 짜증기가 항상 있게 되었고, 아이보랴 젖먹이랴 정신없던 난 온 몸에 난 땀띠로 인해 너무 고생스러웠다. 생전 땀띠나 여드름이 안나는 체질인데 온몸에 실핏줄이 터져있던 상태였고 면역기가 떨어져 있던 시기라 그런지 온몸에 난 땀띠가 간지럽고 따가워서 잠을 못 이루었다.

특히 목에서부터 앞 가슴엔 땀띠가 너무 나서 진물까지 흐르게 되어서 소금물 목욕과 온몸을 아가분으로 바르고 견뎌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알레르기 내지는 풍토병이 의심스러운데 그렇게 심한 땀띠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땀띠로 착각하고 지나간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그 이후로 적응이 되었는지 그런 땀띠가 나지 않았다.

매일이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으로 사는 난 랑이 미웠다. 어떻게 해결도 못해주면서 속만 썩이고 되려 야단만 맞게 하던지, 나몰라라 팽개쳐 버린게 먼 외국 땅에서 자기 하나 믿고 간 날 배신한 거 같아서 속이 상했다. 아침을 먹은 랑에게 부엌을 청소하며 한마디 했다. 내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아침이라 되도록이면 말조심하고 기분좋게 내보내려 했지만 한숨과 뱉어지는 내 넋두린 그대로 한마디 말로 쏟아졌다.

"그렇게 눈치없이 행동하고 나 힘들게 하면 난 차라리 죽는게 날꺼같아."

랑은 마시던 컵을 식탁에 탁~! 소리가 나게 놓았다.
기가 뻗쳤는지, 아님 힘이 너무 좋았는지 컵만 놓았는데 그 두꺼운 식탁유리가 금이 가며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맑은 유리로 타원형으로 이뤄진 현대적 감각의 유리식탁은 힘없이도 깨져서 온 부엌 바닥을 유리가루 천지로 만들었다. 나도 놀랬고 랑도 놀랬다. 아무 말 없이 랑은 나갔고, 나도 아무 말없이 바닥을 치웠다. 부엌으로 나온 어머님은 내가 당신 아들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저런 행동을 하냐고 다그쳤지만 난 입을 꽉 다물고 유리처럼 깨진 내 마음 문도 꽉 닫았으며 단지 유리컵을 세게 내려놓은 것 같다고만 했다.

저녁에 랑은 그 식탁 유리와 비슷한 유리를 사들고 왔고, 그 일 이후로 랑은 사업과 출장 핑계로 몇 달 씩 집을 비우고 돌아다녔다.

한국에 가서도 한달이 다되도록 울엄마에게 연락을 안하다 나중에 엄마가 우연히 알게되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울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귀한 딸이던가. 그런 딸을 머나먼 타국 땅에 데려다 구박만 하는게 아닐까하는 엄마의 의심이 불같은 화를 일으켜 난리가 일어났다.
엄만 내 딸내미 내가 거둬 먹일테니 도로 보내라고 난리를 치셨고, 그건 또 시어머님에게 또하나의 친정 어머니 흉꺼리가 되었다.
이미 시집 간 딸 다시 돌려보내란게 말이 되냐는 거였다. 물론 당신 아들이 잘못도 했지만 니네엄마 잘못하고 있다고 내게 흉을 보셨다. 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렇게 행동한 랑만 미웠다.

그 때 내게 한국에서 편지가 하나 왔는데, 그건 대학에서 친하게 지냈던 지연이란 친구였다. 내가 떠밀리듯 휴학하고 포기하듯 결혼한 것에 대해서 가장 마음 아파하던 친구였다. 순수하고 착한 그 친구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 다시한번 생각해보라며 권유의 편지를 주었던 친구다. 내가 선택을 해야하는 일이 결혼 말고도 많다는 걸 가르쳐줬는데 난 그 때 그냥 결혼으로 숨고 싶었고, 도피하고 싶었기에 그 친구의 편지를 그냥 웃음으로 별거 아닌 일로 위로하며 넘겼다. 그런 친구에게서 편지가 온 것이었다.

당차고 똑똑하며 항상 지혜로웠던 지연이답지않게 편지 내용은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 젊은 24살 나이에 그렇게 힘들었었나. 아무 것도 모르던 철없는 나이에 지연이와 난 공통점도 없는 슬픔 때문에 울었다. 그 친구의 편지를 읽고 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도 왜그렇게 슬픈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깨알같은 글씨로 다섯장에 걸친 심경의 토로는 내 눈물샘을 자극하였고, 난 무언가 꺼리가 없어서 울지 못했는데 친구의 편지를 잡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지연이의 깊은 속 사정이 궁금했지만, 왜그렇게 슬퍼하는지 삶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난 그야말로 내 코가 석자였다.

지연이의 구원을 요청하는 SOS 같은 편지를 보며....답장을 보내야지. 왜 그렇게 힘든지 물어보고 위로해 줘야지. 하면서도 난 내 사는게 힘들어서 답장 한마디 전화 한통 못하고 그 시기를 지났다. 그 편지를 두고 두고 읽으며 편지지를 향해서 지연이 보듯 대화를 하곤했다.

몇 년 후에 한국에 방문 하면서 대학 동창들과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는데, 내게 편지를 보낸 이후로 한 달쯤 있다가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은 내게 그런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몰랐지만 내가 시기를 따져보니 그랬다. 난 얼어붙은 듯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혹시 내가 답장을 보내어 위로를 제대로 했더라면, 나와 대화를 좀더 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지도 모를텐데...하는 자책감이 머리를 들었다. 너무 미안했다. 내게 뭔가 위로해 달라는 누가 봐도 SOS의 편지가 확연한 걸 난 내 상황이 힘들다는 핑계로 그렇게 친구를 방치해 버린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지연아......정말 미안하다. 그 때 나도 너무 힘든 상황이었단다. 네가 이해해줬음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