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을 욕하지 마라

지니200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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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와 체첸.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너무나 닮은 꼴의 나라들이다. 두 나라 모두 지금 거대한 제국들의 희생양으로 고난의 역사를 보내고 있다. 이라크는 미국의 희생양이고 체첸은 러시아의 희생양으로 말이다. 다르다면 이라크의 대미 항전에는 좋든 나쁘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만 체첸은 세계의 버림을 받은 채 세계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다.

1990년대초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많은 소비에트가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면서도 유독 체첸의 독립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체첸이 러시아의 의지를 무시하고 독립을 시도하자 침공해서 강제로 점령하고는 괴뢰정권을 앞세워 체첸인들을 억압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점령에 항거해서 체첸 전사들은 지금도 러시아 전역에서 때와 장소와 수단을 가리지 않고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러시아가 체첸의 독립을 결사코 막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석유 때문이다. 체첸에 매장된 엄청난 석유 자원의 확보는 러시아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그러므로 푸틴의 러시아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지킬 확고한 의지가 있다. 러시아의 이익 앞에는 소수 민족의 민족자결이니 독립은 사치이다. 오직 강대국의 힘과 폭력만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의 체첸 점령은 미국이 이라크의 엄청난 석유 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세계의 비난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곳을 침공한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지금 체첸인들이 러시아의 초등학생들을 인질로 잡아 끔찍한 테러를 한 것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행위에 대해 양식있는(?) 세계의 비난을 쉽게 떨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인질극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 정부의 테러진압 방법이다.

적어도 신문 지상에 난 진압 과정만 본다면 러시아 정부에게는 인질의 보호는 거의 관심밖이다. 오직 인질범의 살해가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이런 러시아 정부의 태도는 테러를 감행한 체첸 반군들의 행위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잔인하다. 적어도 체첸 반군들에게는 러시아 초등학생들은 '적'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에게는 그 초등학생들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살려내야 할 가장 소중한 국민이다. 정부의 제일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그런 국민들의 목숨을 전혀 개의치 않고 무모하게 진압하는 정부라면 그 정부의 존재의의가 의심스럽다.

러시아의 이번 비극은 러시아 정부의 비인간적인 야만성이 낳은 결과이다. 제국의 잔혹한 폭력이 존재하는 한 이라크에서이든 체첸에서이든 그것에 항거하는 폭력은 똑 같이 계속될 것이다. 제국의 폭력이 강화될수록 저항의 폭력도 한층 거칠고 잔인해질 것이다. 이번 인질 사건은 체첸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비인간성과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의 야만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처럼 말이다.

제국은 본질적으로 악하다. 제국에게는 오직 제국 자체의 존재만 있을 뿐이다. 제국은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자국민마저 거리낌없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물며 타국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런 제국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신물나게 경험했다. 그런데 우리의 양심이 그런 침략자의 거대한 폭력에는 눈을 감고 저항세력의 '작은' 폭력에만 눈을 부라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다. 하물며 침략자의 그 폭력에 협력한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수치이다. 그들의 강고한 투쟁에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 망정 만에 하나 체첸을 욕하지는 마라.

 

출처 : 한토마 해외뉴스포럼의 wkfgo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