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대물림

염전에 빠지다..2004.09.06
조회2,255

가난의 대물림...
잘사는 사람들은 계속 잘살고.. 못 사는 사람은 대를 이어 못사는 나라...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고 있는 나라입니까..!
가난을 벗어 던지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결국 가난이란 족쇄에 얽히고 마는 자신을 보며...

제가 중학교때 아버지가 친척어른의 보증을 섰지요.
친척분이 회사를 부도내고 도망가는 바람에 저희는 영문도 모른채 전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참 어린 나이에 못 볼 것을 많이 봤습니다. 못 드시는 술을 드시고 토하는 엄마의 등을 두들겨 드리기를 수차례, 눈물방울 섞인 북어국을 끓이며.. 다짐했습니다.
꼭 성공해서 이렇게 아파하는 울 엄마 꼭 호강시켜 주겠다고.. 그리고 나는 보증이란걸 서지 않겠다고..
하지만 당시 중학생 이였던 제가 엄마에게 해 드릴건 아무것도 없더군요.
단지 해 드릴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거 밖엔.. 경북 포항은 비 평준화지역이죠..
1년동안 열심히 공부한 끝에 포항에선 제일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울 엄마의 얼굴에 비친 미소. 울 아들 포고 다닌다고 엄청 좋아 하셨죠..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후 성적은 항상 중하위권 이였습니다. 반 석차가 중학교때 전교 석차보다도 못했죠.
열심히 해서 일류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졌지만.. 안되더군요..
계속 중하위권. 아니 하위권이라고 해야 맞겠군요.. 스스로 좌절하게 되고 벽에 부딪치는 제 자신을 발견하며 많은 자책을 하게되었습니다.

3년뒤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게 되었죠. 집에선 제 뒷바라지를 위해 조그만 식당을 열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의 큰 좌절이 시작될꺼라곤 아무도 모른채 말이죠.
제대를 한 뒤 복학을 해야 할 시기였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생을 하신 울 엄마. 두 번의 허리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넘 힘이 드셨는지 입안에 피가 흥건히 고여있습니다. 흰 이빨이 피에 물들어 있더군요. 그순간... 그냥 눈물밖에....  그냥 눈물밖에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울 엄마가 혹시나 들을까봐 그냥 눈물만 한없이 흘렸습니다.
복학을 포기하고 노가다도 하고 공장도 다니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첫 월급을 타고 제가 제일 먼저 한건 엄마 목거리를 하나 사는 거였습니다. 변변한 반지 하나 없는 울 엄마.. 정말 꼭 하나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울 엄마는 그 목거리를 안하십니다. 넘 고맙고 좋아서 며느리한테 준다며.. 안하고 계십니다.

공장을 다니다 삼촌의 도움으로 전문대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삼촌이 농장을 막 시작한 시기라서 학교에 있는 시간외에는 열심히 삼촌과 일했습니다. 저도 개를 몇 마리 사서 숫자도 늘리고.. 열심히 2년동안하면 조그만 돈이지만 어느정도 종자돈이 모일 것 같았습니다. 당시 개값이 넘 비싸서 농장에 콘테이너를 갔다놓고 개들을 지키며 잠을 잤습니다. 학교안가는 날은 개집도 짓고, 똥도 치우고.. 희망이 보였기에 몸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였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죠.
그런데 하늘은 왜 그리 무심한지.. 농장에 불이 나고 태풍 매미로 손해를 조금씩 보더니 갑자기 개값이 대폭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동안 열심히 해서 거의 300두까지 식구들이 불어났지만 변변한 수익이 발생하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2년동안 삼촌의 그늘아래 학교를 무사히 마칠수 있었기에 미련없이 취업을 위해 인천으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던 작년 4월. 어버지가 갑자기 인감이랑 인감도장을 집으로 보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인감도 만들고 집에 보내드렸죠.
그러곤 2004년 8월일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카드를 조금 사용했는데... 돌려막고, 카드깡을 해서 막고. 그러다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죠. LG카드에서 독촉을 받던 아버지는 저를 보증인으로 내 세웠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를 보증인으로 세웠겠습니까? 저한테 말도 없이.
한달에 6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5월달까지 꼬박꼬박 잘 갚아 나가셨습니다. 가게 월세는 근 2년을 내지도 못했으면서 아들한테 미안했는지... 그러다가 넘 어려우셨는지 2달을 연체 하게 되셨는데.. LG카드에서 일시불로 한번에 다 갚으라는 연락을 받으셨답니다. 2달 연체하면 대환대출건이 무효가 된다면서...
일이 다 터진 다음에야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어떻게 된건지.. 왜 제가 보증인이 되어있는지..
며칠전에 집에 가보니 사채에 카드빚에 전 재산을 몽땅 털어도 한참 모자라더군요..
그래서 삼촌이랑 아버지랑 LG카드 채권팀 포항지점으로 가게되었습니다.
우선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제가 걱정되셨는지 삼촌께서 어떻게 본인도 모르고 보증인이 될 수 있으며 소득도 없는 제가 어떻게 보증인의 자격이 될 수 있냐고 항변을 했습니다.
담당자 박준영씨의 말에 의하면 2003년 4월 21일 당시 대환대출 보증인은 신용이 깨끗한 만 20세이상의 성인이면 자필 서명 그런 것 필요 없이 가능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내더군요. 오히려 아들을 끌어들인 아버지의 책임을 묻습니다.
참 어이가 없더군요. 만 20세만 넘으면 소득이 있든 없든, 대학생이든 실업자든 간에 신용만 깨끗하면 무조건 보증인이 될 수가 있다며. 본인 확인 자필서명도 필요 없다며..
당시 이런식으로 저희처럼 한 가족이 얽힌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윽박을 지릅니다.
이제 한참 사회일꾼으로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할 시기에 영문도 모른채 조금 있으면 신용불량자로 등록됩니다. 그동안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도 이제 물건너 갔습니다. 집은 도저히 갚을 능력고 여력도 없는 상태입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이터져 죽을것만 같습니다.
한가족을 싸그리 묶어 구렁텅이로 내 던지는 LG카드 증오합니다.
물론 돈을 사용하고 갚지 못한 아버지가 제일 큰 잘못입니다. 하지만 매달 갚아가는 금액의 절반은 이자입니다. 가게 세를 못내도 카드값은 꼬박꼬박 갚다가 넘 어려워서 2달 연체를 했더니 남은금액 일시불로 전부 내라고 하면... 서민들을 모두 죽이는 것 아닙니까? 당장 길거리로 내쫓는 꼴이 아니고 뭡니까..
제가 직접 LG카드에 가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제가 직접 서명하고 보증인이 되었으면 그래도 덜 억울합니다.
도대체 당사자를 배제한 보증이 어디있습니까? 아버지가 인감을 달라고 하는데 무슨 의심을 해서 안드립니까?
LG카드에 가서 아무리 항변을 해도 우리 서민, 갖은거 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말은 그냥 무시됩니다.

혹시나 다른분들이 저같은 경우가 생길까 넘 걱정됩니다. 제가 겪어보니 정말 어리가 없고 미칠 지경입니다.
가난을 대물림 시키지말자고 한참 사회 운동이 시작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힘있고 있는 분들은 잘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가난의 대물림입니다.
가족 한사람의 잘못을 모두의 잘못으로 묶어 한가족을 구렁텅이로 내 모는일... 이것이 진정한 가난의 대물림입니다. 1년이 넘게 준비한 시험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어디 취업을 해도 바로 급여압류가 들어오겠죠..
그동안 또 이자는 엄청나게 불어나서 지금까진 원금과 이자가 1:1인데 이젠 이자가 원금보다 더 많아 지겠죠.
그럼 점점더 일어서기는 힘들어지고. 한 청년은 정말 엄마를 잘 모시고 싶었는데... 그 꿈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정작 본인은 모른채 사라져 갑니다. 이 사회를 저주하며..
강자에겐 약하게... 약자에겐 강하게...
LG카드 부도나기전에 구씨일가는 주식대부분을 처분해서 손실을 최소화 하고 개미들은 쪽박차고.
이게 진정 이사회의 진정한 모습입니까...

 

정말 앞이 깜깜해서 보이지가 않습니다. 전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