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낸 김종선씨 가족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 앉은 김씨부터 시계 방향으로 다섯째 곽미경(연세대 의대 본과 4학년), 넷째 은경(교사), 첫째 현경(의사), 둘째 희경씨(변호사), 막내 형석군(경문고 2), 남편 곽경운씨.
“엄마, 괜찮아요. 돈 안 드는 공부 하면 되잖아요."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에 다니던 둘째딸이 어느 날 엄마 김종선(59)씨한테 한 말이다. 딸은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재수를 선택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할 때까지 다시는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았다.
피아노 레슨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대겠다며 수석합격자에게 주는 장학금 전액을 학교에 되돌려줄 정도로 자신감 있던 딸아이의 진로를 바꾼 것은 집안 형편이다.
온 가족이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까지 하면서 예원중, 서울예고를 거쳐 바라던 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항공료가 없어 국제콩쿠르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딸아이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둘째딸은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현재는 법률법인 율촌에서 새내기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댁 눈치에 못이겨 아들을 보기까지 자식을 계속 낳다 5녀1남을 둔 김씨는 6남매를 모두 수재로 키워 지금은 남부러울 것이 없다. 가난은 배움의 원동력이지 인생의 걸림돌은 아니라는 소신도 굳혔다. 모의고사 전국 석차에서 단 한 번도 10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던 첫딸은 “강북에선 의대 못 간다"는 담임 선생의 우려를 딛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의사로 당당히 일하고 있다. 의대 재학 내내 장학금을 받았지만 마지막 학기엔 다른 친구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며 장학금 신청도 하지 않을 만큼 가슴도 따뜻하다.
쌍둥이인 셋째와 넷째 딸은 각각 서울대 약대와 한양대 수학과 대학원을 졸업해 약사와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수능에서 단 1개만 틀린 다섯째 딸은 연세대 의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의사이고, 전교 1∼2등을 다투는 막내아들은 고3 진학을 앞두고 있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 99등을 기록했던 막내는 홀로 노력한 끝에 전교 2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학으로 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잠깐 한 김씨는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공인중개사인 남편과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평범한 주부. 김씨는 돈이 없어 애들 학원 보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직접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좁은 집에서 여덟 명이 생활하자니 모든 게 부족했다. 공부방이 없어 식탁에서 여섯 자녀가 나란히 공부했다. 어쩌다 귤이라도 사 갖고 가면 “엄마, 몇 개씩 먹어요" 하고 묻는 애들에게 “두 개씩"이라고 대답하며 남몰래 눈물 지은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김씨는 최근 출간한 ‘방배동 김선생의 공부가 희망이다’(이다미디어)를 통해 어려운 여건으로 과외는 물론 학원 한번 안 보내고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낸 비결을 털어놨다.
김씨는 먼 동네로 손수 만든 밑반찬과 보리빵을 팔러 돌아다니다 딸에게 들킨 이야기를 다룬 ‘나를 꿈꾸게 했던 아이들’편에서 “저희가 크고 있으니까 힘들어하지 마세요"라던 큰딸의 말을 힘들 때마다 되새겼다고 회고했다.
“공부는 습관이고, 습관은 훈련으로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는 김씨는 “공부도 음식처럼 맛있게 하게 해야 효과가 좋다"고 귀띔한다. 김씨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항상 눈·귀 열어두기 ▲싫증을 내면 즉각 그만두게 하기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 ▲학교수업 예습·복습 철저히 하기 등 어찌 보면 평범하기까지 한 나름의 비결을 들려줬다.
의사·변호사·교사…6남매 모두 수재로 키운 김종선씨
의사·변호사·교사…6남매 모두 수재로 키운 김종선씨

◇책을 낸 김종선씨 가족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 앉은 김씨부터 시계 방향으로 다섯째 곽미경(연세대 의대 본과 4학년), 넷째 은경(교사), 첫째 현경(의사), 둘째 희경씨(변호사), 막내 형석군(경문고 2), 남편 곽경운씨.
“엄마, 괜찮아요. 돈 안 드는 공부 하면 되잖아요."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에 다니던 둘째딸이 어느 날 엄마 김종선(59)씨한테 한 말이다. 딸은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재수를 선택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할 때까지 다시는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았다.
피아노 레슨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대겠다며 수석합격자에게 주는 장학금 전액을 학교에 되돌려줄 정도로 자신감 있던 딸아이의 진로를 바꾼 것은 집안 형편이다.
온 가족이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까지 하면서 예원중, 서울예고를 거쳐 바라던 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항공료가 없어 국제콩쿠르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딸아이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둘째딸은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현재는 법률법인 율촌에서 새내기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댁 눈치에 못이겨 아들을 보기까지 자식을 계속 낳다 5녀1남을 둔 김씨는 6남매를 모두 수재로 키워 지금은 남부러울 것이 없다. 가난은 배움의 원동력이지 인생의 걸림돌은 아니라는 소신도 굳혔다. 모의고사 전국 석차에서 단 한 번도 10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던 첫딸은 “강북에선 의대 못 간다"는 담임 선생의 우려를 딛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의사로 당당히 일하고 있다. 의대 재학 내내 장학금을 받았지만 마지막 학기엔 다른 친구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며 장학금 신청도 하지 않을 만큼 가슴도 따뜻하다.
쌍둥이인 셋째와 넷째 딸은 각각 서울대 약대와 한양대 수학과 대학원을 졸업해 약사와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수능에서 단 1개만 틀린 다섯째 딸은 연세대 의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의사이고, 전교 1∼2등을 다투는 막내아들은 고3 진학을 앞두고 있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 99등을 기록했던 막내는 홀로 노력한 끝에 전교 2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학으로 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잠깐 한 김씨는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공인중개사인 남편과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평범한 주부. 김씨는 돈이 없어 애들 학원 보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직접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좁은 집에서 여덟 명이 생활하자니 모든 게 부족했다. 공부방이 없어 식탁에서 여섯 자녀가 나란히 공부했다. 어쩌다 귤이라도 사 갖고 가면 “엄마, 몇 개씩 먹어요" 하고 묻는 애들에게 “두 개씩"이라고 대답하며 남몰래 눈물 지은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김씨는 최근 출간한 ‘방배동 김선생의 공부가 희망이다’(이다미디어)를 통해 어려운 여건으로 과외는 물론 학원 한번 안 보내고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낸 비결을 털어놨다.
김씨는 먼 동네로 손수 만든 밑반찬과 보리빵을 팔러 돌아다니다 딸에게 들킨 이야기를 다룬 ‘나를 꿈꾸게 했던 아이들’편에서 “저희가 크고 있으니까 힘들어하지 마세요"라던 큰딸의 말을 힘들 때마다 되새겼다고 회고했다.
“공부는 습관이고, 습관은 훈련으로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는 김씨는 “공부도 음식처럼 맛있게 하게 해야 효과가 좋다"고 귀띔한다. 김씨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항상 눈·귀 열어두기 ▲싫증을 내면 즉각 그만두게 하기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 ▲학교수업 예습·복습 철저히 하기 등 어찌 보면 평범하기까지 한 나름의 비결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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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진정한 엄마친구 아들&딸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