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아르헨티나 사람과 일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사람을 의심하며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그것도 직원을....고민에 빠졌다. 사람을 못구하니 애꿎은 정육점 성규씨만 죽어났다. ㅋㅋ 정육점 일보랴 휘암브레 썰랴 바빴다. 나도 뛰어가서 쓸어서 대충 백그램씩 싸놓기도 했는데 그건 손님들이 신선한거가 아닌줄 알고 싫어해서 그 짓도 못했다.
성규씨보고 어디서 사람좀 구해보라고 부탁했더니 친구들을 동원해서 알바생을 하나 구해왔다. 자기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목사님 아들이었고, 같은 한국사람이라 믿음직스러웠다. 일도 잘하고 성실해서 정육점 성규씨와 같이 셋이서 일을 보게 되어 이젠 휘암브레리아 쪽은 한시름 덜게 됐다.
내 생일이 돌아왔는데, 랑이 출장중이어서 너무 심심했다. 그들은 내 생일이라고 백구에 있는 한국 식품점에서 쵸코파이 한 통을 사와서 거기 초를 붙여서 생일 잔치를 해줬다 ㅋㅋ 후훗~ 거참 쵸코파이에 생일 잔치를 하고 한창 먹보인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걸 다 먹어치웠다. 고마웠다.
더벅머리 여드름쟁이 총각둘이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면서 (난 되게 나이가 어려보였고 생머리라 중딩같았다.) 내게 형수님, 형수님하며 잘 도와주고 아버님이 어려운 일은 다해주시고 그래서 별로 힘든지 모르고 지내게 됐다.
슈퍼마켓 옆 길에 작은 빵가게가 하나 생겼다.
손님이 뜸한 시간엔 아버님이 아들내미를 유모차까지 싣고 가게를 오셨다. 그래서 아버님이 잠깐 가게 카운터에 앉아 계실동안 동네 한바퀴를 돌곤했는데, 주위엔 기차역도 있어서 길 위로 기찻길도 나있었다. 가끔 거기로 조그만 기차가 지나갔는데 꼭 장난감 기차모양 크기가 작았다. 조금만 나가면 번화가가 있어서 커다란 극장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향수가게도 있어서 그 집 쇼윈도에 있는 향수병의 모양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그 빵가게를 지날 때마다 맛있는 빵냄새가 식욕을 자극했고, 그 모양이 너무나도 이뻐서 앞에서 한참이나 구경을 했다. 근데 좀체로 사먹기가 겁나는게 이 아르헨티나 음식이 너무나도 달다는거다. 사봤자 너무 달쳐서 버릴텐데...아까운 맘에 구경만했다.
하루는 아가씨가 학교가 일찍 파해서 가게에 오면서 그 집에서 따르따 한 조각을 먹으라고 사다주었다. 따르따는 얇게 과자처럼 바삭하니 빵을 만들고 그 위에 젤라틴을 얹고 그 위에 생크림과 복숭아 통조림을 얹어서 파는 거였다. 아, 근데 어찌나 맛있던지 아가씨와 난 눈깜짝할 새 그걸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 먹어치웠다. 우잉~ 진짜 맛있었다.
아가씨와 난 먹보인지라 더 사먹기로 결정하고 아예 통째로 하나 사다가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다. 생각보다 그리고 다른 케잌보다 비쌌지만 어케 그리 맛있게 만들 수가 있는지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다른 집에도 그 따르따가 있어서 사먹었지만 그 맛이 안났다. 아마도 그 빵집 아줌마의 어떤 특별한 기술이 가미된건가부다. 밑에 깔린 빵이 바삭하니 넘 고소했고 달지도 않았으며 빨간 딸기 젤라틴은 쫄깃했고 하얀 생크림도 적당한 달기에 복숭아 통조림과 어울린 맛이 일품이었다.
이젠 가게를 나가서 간식으로 그 빵집에 들려서 빵을 사먹는게 일과가 되었다.
난 항상 꾸안또 (얼마?) 꾸안도 (언제)를 헷갈려 했는데, 그 헷갈려서 말하는게 한국인 휘암브레로에게 웃기게 들렸나부다. 대학생이던 그는 그걸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여러가지 틀렸던 발음이며 필요한 몇가지를 일러주곤해서 정육점 성규씨가 이젠 더이상 나한테 잘난척을 하며 가르쳐주는걸 못하게 됐다. 나도 이제 가게를 하기엔 전혀 불편함이 없이 말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외국어란게 그렇다. 첨엔 그 배워가고 알아가는 걸 그래프프로 그린다면 선이 완전 경사가 급하게 올라가는데...웬만큼 시간이 지나면 완만한 선을 유지하며 올라간다. 내가 그 시기가 됐다. 여유를 부리며 농담도 할 정도가 되고 슈퍼마켓에 재미도 들려서 그리고 아가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랑이 출장가서 오래 안와도 별로 외로운 것도 모르고 지내게 됐다.
우리 가게는 늘 오는 단골 손님으로 자리를 잡아가서 그리 북적이지도 그리 한산하지도 않은 그런 가게였다. 근데 내가 국경일을 잘 모르니 그냥 가게문을 열 때가 많았는데 어떤 날은 손님이 미어터졌다. 그건 국경일이라 놀기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인들이 가게문을 안열어 그 옆 동네 사람들까지 와서 줄을 한 이십명씩 서서 사가곤 했다. 그럴땐 내 손이 안보이게 자판을 쳐댔는데, 난 정확하게 쳤는데도 손님들은 손이 넘 빠르게 움직여 숫자를 쳐대니 다시 하나하나 물건과 가격을 영수증보며 대조해서 가져가서 어떨 때는 더 늦게 끝날 때도 있었다.
그들은 줄서서 기다리는데 넘 익숙해있는 민족이다. 줄서는 덴 이등이라면 서러워 할 일등가는 민족일꺼다. 모든 일이 줄서기에서 시작된다. 관공서에 가면 한국인은 그 줄서 있는 줄의 길이를 보고 기가 질리게 되는데 그들은 아무 말없이 그냥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난 아예 아가를 안고 가는데 그건 아가를 안고 가면 무조건 먼저 해주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무쟈게 신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가를 데리고 버스를 타도 무조건 자리가 생긴다.
다른데 가서 뭘 사려고 해도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리다 물건을 사게 되는데 주인과 손님은 뒤에 줄이 열명이 있건 이십명이 있건 전혀 상관을 안한다. 농담할꺼 다하고 전화 받을꺼 다 받으며 돈을 세고 물건값을 계산한다. 느리기 한이 없는데, 우리같이 뭐든지 빨리 해치우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뜨랑낄로' (천천히)
그들은 뜨랑낄로 민족이다. 그런 민족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댄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시아버님보고 늘 부르는 말이 있는데 그건 '오르미가' (개미)같단다. 아버님이 한국인 중에서도 성질 급한 분인데 그들이 보기엔 거의 불같이 보이는데다 걸음걸이가 빨라서 개미가 걸어가는 것 같단다.
암튼 그들은 그들이고 난 나다. 그래서 우리 가게에 와서 물건을 사고 그렇게 긴 줄이 있으면 난 당황하고 빨리 처리해줘야지 하고 급하게 자판을 치게 되는데 그들은 정말 느긋한 표정으로 잘도 기다린다. 오히려 서두르는 내 모습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나보고 말한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9. 뜨랑낄로~
아 정말 아르헨티나 사람과 일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사람을 의심하며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그것도 직원을....고민에 빠졌다. 사람을 못구하니 애꿎은 정육점 성규씨만 죽어났다. ㅋㅋ 정육점 일보랴 휘암브레 썰랴 바빴다. 나도 뛰어가서 쓸어서 대충 백그램씩 싸놓기도 했는데 그건 손님들이 신선한거가 아닌줄 알고 싫어해서 그 짓도 못했다.
성규씨보고 어디서 사람좀 구해보라고 부탁했더니 친구들을 동원해서 알바생을 하나 구해왔다. 자기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목사님 아들이었고, 같은 한국사람이라 믿음직스러웠다. 일도 잘하고 성실해서 정육점 성규씨와 같이 셋이서 일을 보게 되어 이젠 휘암브레리아 쪽은 한시름 덜게 됐다.
내 생일이 돌아왔는데, 랑이 출장중이어서 너무 심심했다. 그들은 내 생일이라고 백구에 있는 한국 식품점에서 쵸코파이 한 통을 사와서 거기 초를 붙여서 생일 잔치를 해줬다 ㅋㅋ 후훗~ 거참 쵸코파이에 생일 잔치를 하고 한창 먹보인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걸 다 먹어치웠다. 고마웠다.
더벅머리 여드름쟁이 총각둘이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면서 (난 되게 나이가 어려보였고 생머리라 중딩같았다.) 내게 형수님, 형수님하며 잘 도와주고 아버님이 어려운 일은 다해주시고 그래서 별로 힘든지 모르고 지내게 됐다.
슈퍼마켓 옆 길에 작은 빵가게가 하나 생겼다.
손님이 뜸한 시간엔 아버님이 아들내미를 유모차까지 싣고 가게를 오셨다. 그래서 아버님이 잠깐 가게 카운터에 앉아 계실동안 동네 한바퀴를 돌곤했는데, 주위엔 기차역도 있어서 길 위로 기찻길도 나있었다. 가끔 거기로 조그만 기차가 지나갔는데 꼭 장난감 기차모양 크기가 작았다. 조금만 나가면 번화가가 있어서 커다란 극장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향수가게도 있어서 그 집 쇼윈도에 있는 향수병의 모양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그 빵가게를 지날 때마다 맛있는 빵냄새가 식욕을 자극했고, 그 모양이 너무나도 이뻐서 앞에서 한참이나 구경을 했다. 근데 좀체로 사먹기가 겁나는게 이 아르헨티나 음식이 너무나도 달다는거다. 사봤자 너무 달쳐서 버릴텐데...아까운 맘에 구경만했다.
하루는 아가씨가 학교가 일찍 파해서 가게에 오면서 그 집에서 따르따 한 조각을 먹으라고 사다주었다. 따르따는 얇게 과자처럼 바삭하니 빵을 만들고 그 위에 젤라틴을 얹고 그 위에 생크림과 복숭아 통조림을 얹어서 파는 거였다. 아, 근데 어찌나 맛있던지 아가씨와 난 눈깜짝할 새 그걸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 먹어치웠다. 우잉~ 진짜 맛있었다.
아가씨와 난 먹보인지라 더 사먹기로 결정하고 아예 통째로 하나 사다가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다. 생각보다 그리고 다른 케잌보다 비쌌지만 어케 그리 맛있게 만들 수가 있는지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다른 집에도 그 따르따가 있어서 사먹었지만 그 맛이 안났다. 아마도 그 빵집 아줌마의 어떤 특별한 기술이 가미된건가부다.
밑에 깔린 빵이 바삭하니 넘 고소했고 달지도 않았으며 빨간 딸기 젤라틴은 쫄깃했고 하얀 생크림도 적당한 달기에 복숭아 통조림과 어울린 맛이 일품이었다.
이젠 가게를 나가서 간식으로 그 빵집에 들려서 빵을 사먹는게 일과가 되었다.
난 항상 꾸안또 (얼마?) 꾸안도 (언제)를 헷갈려 했는데, 그 헷갈려서 말하는게 한국인 휘암브레로에게 웃기게 들렸나부다. 대학생이던 그는 그걸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여러가지 틀렸던 발음이며 필요한 몇가지를 일러주곤해서 정육점 성규씨가 이젠 더이상 나한테 잘난척을 하며 가르쳐주는걸 못하게 됐다. 나도 이제 가게를 하기엔 전혀 불편함이 없이 말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외국어란게 그렇다. 첨엔 그 배워가고 알아가는 걸 그래프프로 그린다면 선이 완전 경사가 급하게 올라가는데...웬만큼 시간이 지나면 완만한 선을 유지하며 올라간다. 내가 그 시기가 됐다. 여유를 부리며 농담도 할 정도가 되고 슈퍼마켓에 재미도 들려서 그리고 아가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랑이 출장가서 오래 안와도 별로 외로운 것도 모르고 지내게 됐다.
우리 가게는 늘 오는 단골 손님으로 자리를 잡아가서 그리 북적이지도 그리 한산하지도 않은 그런 가게였다. 근데 내가 국경일을 잘 모르니 그냥 가게문을 열 때가 많았는데 어떤 날은 손님이 미어터졌다. 그건 국경일이라 놀기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인들이 가게문을 안열어 그 옆 동네 사람들까지 와서 줄을 한 이십명씩 서서 사가곤 했다. 그럴땐 내 손이 안보이게 자판을 쳐댔는데, 난 정확하게 쳤는데도 손님들은 손이 넘 빠르게 움직여 숫자를 쳐대니 다시 하나하나 물건과 가격을 영수증보며 대조해서 가져가서 어떨 때는 더 늦게 끝날 때도 있었다.
그들은 줄서서 기다리는데 넘 익숙해있는 민족이다. 줄서는 덴 이등이라면 서러워 할 일등가는 민족일꺼다. 모든 일이 줄서기에서 시작된다. 관공서에 가면 한국인은 그 줄서 있는 줄의 길이를 보고 기가 질리게 되는데 그들은 아무 말없이 그냥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난 아예 아가를 안고 가는데 그건 아가를 안고 가면 무조건 먼저 해주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무쟈게 신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가를 데리고 버스를 타도 무조건 자리가 생긴다.
다른데 가서 뭘 사려고 해도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리다 물건을 사게 되는데 주인과 손님은 뒤에 줄이 열명이 있건 이십명이 있건 전혀 상관을 안한다. 농담할꺼 다하고 전화 받을꺼 다 받으며 돈을 세고 물건값을 계산한다. 느리기 한이 없는데, 우리같이 뭐든지 빨리 해치우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뜨랑낄로' (천천히)
그들은 뜨랑낄로 민족이다. 그런 민족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댄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시아버님보고 늘 부르는 말이 있는데 그건 '오르미가' (개미)같단다. 아버님이 한국인 중에서도 성질 급한 분인데 그들이 보기엔 거의 불같이 보이는데다 걸음걸이가 빨라서 개미가 걸어가는 것 같단다.
암튼 그들은 그들이고 난 나다.
그래서 우리 가게에 와서 물건을 사고 그렇게 긴 줄이 있으면 난 당황하고 빨리 처리해줘야지 하고 급하게 자판을 치게 되는데 그들은 정말 느긋한 표정으로 잘도 기다린다. 오히려 서두르는 내 모습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나보고 말한다.
"뜨랑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