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요즘 정치분위기 초치나?

졸려200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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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뉴스로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머금고 등장한 노 대통령이 개헌론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잠시 시청했는데, 심히 불쾌했습니다. 채널을 즉각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대한민국을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인내하며 시청해야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호언장담대로 ‘대한민국 미래와 정치발전을 위해 불합리한 제도를 합리적인 제도로 변경시키고자 하는 것’이라는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호언장담에 진정성이 있을까요? 지난 4년을 되돌아볼 때, 정치도박의 꼼수라는 의심이 강하게 솟구칠 뿐입니다.

 


내가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내 탓’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탓’입니다. 어떻게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된 이야기(‘동해’를 ‘평화의 바다’라고 하자)를 일본총리에게 꺼낼 수 있습니까?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경솔한 지도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전직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등이 전시작통권 단독행사에 반대하는 게 어떻게 미국 엉덩이 뒤에서 형님, 형님 하는 것일 수 있으며, 대통령에게 구박을 주는 것일 수 있습니까?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이 있다면 결단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많은 전직 국방 원로들이 무슨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전시작통권 단독행사에 반대했겠습니까? 대통령에게 기본적인 애국심이 있었다면, ‘도대체 그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반대하는지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경청해보자’며 그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썩는다는 표현도 국가 최고 지도자가 결코 입에 담으면 아니 될 말이었습니다. 국방부와 심도 있는 의견조율을 거치지도 않고 ‘군복무기간 단축’이라는 의제를 불쑥 내던진 것도 책임감 있는 지도자의 선택일 수는 없습니다. 노 대통령은, 군대에서 썩히는 기간이 줄어야 그동안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가게 되고 아이도 빨리 낳을 것이라고 했는데, 착각입니다. 일자리가 없는데 군대에서 빨리 나오면 뭘 합니까? 노 대통령에게 ‘장가 일찍 가서 아이도 빨리 낳는 사회’를 향한 참다운 책임감이 있었다면 진작부터 ‘일자리 창출’에 진지한 총력을 기울여  ‘이구백(20대의 90%가 백수), 십장생(10대도 장래에 백수가 될 생각을 해야 한다)’ 같은 절망의 단어가 시원하게 청산되게 하는 국정수행을 했겠지요.

 


무능과 독선과 언론 탓 국정수행으로 선거에서 거듭되는 참패를 겪던 열린당은 노 대통령을 배제하고 사분오열로 쪼개지며 예전의 ‘난닝구-빽바지’ 싸움판을 재현하는 중이며, 한나라당의 빅쓰리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희망을 국민들에게 전하면서 모두 합하면 지지율 60%를 육박하면서 여론을 장악해가고 있었는데, 노 대통령의 개헌론이 그 모든 분위기를 뒤집어엎어버리고 있습니다.

 


대선자금 정국의 수법이 떠오릅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에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 노 대통령 아들 결혼식날 기업의 뭉칫돈을 먹은 부패범죄가 드러났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재신임을 거론하며 판을 거대하게 키운 다음, 대선자금 문제로 국면을 전환시켰고 대선 패배자인 이회창씨를 다시 정치판에 끌어내고는, 이회창씨를 난도질하면서 한나라당에 차떼기당 이미지를 덮어씌우는데 성공했지요. 측근 비리는 쏙, 들어가 버렸고, 대선자금 정국은 탄핵정국으로 이어졌고, 노무현 세력의 대박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엉망진창으로 뒤숭숭했지요.

 


노 대통령에게 국가 최고 책임자다운 진정성과 애국심이 있었다면, 측근비리가 터졌을 때 결코 재신임 국민투표를 거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나의 직관이었기에, 바로 그때부터 환멸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측근이 10억인가 얼마인가를 먹은 것 때문에 1000억 가까이 든다는 국민투표를 해야 합니까? 그 발상이 아주 웃겼습니다. 그 측근이 법대로 처벌받게 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비판여론을 겸허하게 수렴하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정수행에 최선을 다할 일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의 어느 측근은 노 대통령에게 도덕적 결벽증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도덕적 결벽증이 있다면 노 대통령이 숱한 막말로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성품을 나타내지 않았겠지요. 청결하게 정제된 언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백 걸음 천 걸음을 양보하여 노 대통령이 제기한 개헌론이 정치도박 꼼수가 아니라 할지라도 노 대통령의 논리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노 대통령은 “단임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훼손합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고, 또한 국가적 전략과제나 미래과제들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렵습니다. 특히 임기 후반기에는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심하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4년 연임제를 하면 책임정치가 구현되고 미래과제가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된다는 게 보장됩니까?

 


4년을 해먹는 중인데, 다음 4년을 더 해먹기 위해 초기 4년 후반기에 노무현 대통령처럼 복무단축이나 수도이전 같은 얼치기 선심공약을 쓰면 책임정치겠습니까? 만일, 4년을 해먹었는데 그 다음에 낙선되면 어차피 일관성과 연속성을 잃게 되겠지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는데,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중간평가를 하며 권력의 독선을 견제하게 되는 장점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5년 단임제와 대선총선 시기의 불일치가 국가발전을 지체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주장에도 무비판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난 4년 동안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책임정치를 못했다면 그런 주장에 타당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책임정치를 하지 못한 것은, 애국심과 진정성과 통찰력이 결핍된 것에 있다는 게 저의 확신이기에 제도의 변경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5년 단임제 하에서 노무현 정권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다면, 노 대통령을 계승하는 세력이 차기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며, 결국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유지되게 되었을 것입니다. 4년 연임제를 도입해야만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문학 교수이자 기독교 변증가로, 치밀한 논리와 문학적인 문체로 유명한 C.S. 루이스(1898-1963)의 사상에 적극 동의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도의 개선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이 여전히 부정직하며 횡포 부리기를 좋아하는 한,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예전에 하던 짓을 계속할 새로운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법으로는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선해지지 않는 한 사회는 좋아질 수 없습니다…”

 


만일 4년 연임제를 도입했는데, 제 2, 제 3의 노무현 세력이 당선됨으로써 선거정국에서 무책임한 정치도박 꼼수를 쓰게 되고, 국민의 표심을 후리는데 성공하고, 결국 8년을 해먹게 된다면, 4년 연임제는 나라를 극도로 비참하게 망치는 제도가 되겠지요.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기간 동안 또 어떤 선택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할지 걱정이 앞설 뿐입니다. 굳이 헌법이나 중요한 제도를 바꿔야 한다면, 노 대통령처럼 10%를 밑도는 신뢰를 받는 지도자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깊이 사랑하는 애국심과 책임감이 충실한 지도자의 제안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프리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