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정하고 나니 넘 거창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제가 겪었던 어렸을적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현재 저는 사내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30대중반의 평범한 주부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저의 부모님들은 양가의 반대로 인해 저를 먼저 낳으신 후에 결혼한 케이스였습니다 두분의 성격은 불과 불이었던거 같습니다 자주 싸우셨죠 아버지가 술드시면 주사도 심하셨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1학년에 갓들어갔을 때였던가 그당시에 초등학교는 오전 오후반이 있었습니다 그날 전 오후반이었고요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하셨던터라 저혼자 시간맞춰 가야하는 상황이었죠 1시까지 가야하는데 그만 정신없이 놀다 시간을 놓쳐버렸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멀 알겠습니까 하지만,아빠께 혼날걸 생각하니 엄청 겁먹었었죠 조그만 잘못에도 아빤 어린아이에겐 너무할정도로 혼내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도 굶긴채, 책가방엔 책을 잔뜩 넣고 벌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물론,일차로 맞기도 했습니다 벌은 계속됐습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팔 무지 아팠습니다 (지금생각해도 생생하네요) 엄마가 말리는통에 더욱더 격분한 아빠는 술을 드시고와서 다같이 죽자며 석유곤로 아시죠? 그걸 방안에 틀어놓고 골아 떨어지셨죠 그때까지도 전 벌서고 있었습니다(아빠 술드시러 가실때 잠깐 쉬긴 했지만)덕분에 저 지구력 좋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짐을 싸더니 절 데리고 그대로 가출이었죠 이 남자하고는 아니라는 생각이셨나봅니다 그뒤로 엄마랑 한 일년정도 둘이서 같이 살았습니다 아빠는 계속 우리 둘을 찾아다니셨던거 같습니다 그 일년동안은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죠 하지만,경제적인 어려움과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니 밤늦게까지 혼자 있어야하는 외로움과 무서움은 말도 못했습니다 엄마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괴로움때문인지 늘 술에 취해서 밤 열두시 한시 귀가였습니다 들어오시자마자 토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기지 못할 술을 그렇게 드시는건 많이 힘드셨나봅니다 그 뒷치닥거리 하느라 저도 힘들었습니다.밥도 했습니다.이제 초등학교 일학년이... 지금 생각하니 조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년뒤, 제가 국민학교 2학년 이었죠 아빠가 저희 두모녀를 찾아냈습니다 아빠는 조금 달라진거 같았습니다 술도 잘 안드시구요 자상해지신거 같았습니다 두분이 다시 합치실것같았죠 근데,일년동안 는건 엄마의 주량이었습니다 그날도 엄만 만취상태로 열두시가 다되서 들어오시고 담날 아침엔 이불에 오줌까지 누셨습니다 그걸 아침에 본가에 다녀오신 아빠가 보신겁니다 그 계기로 두분이 헤어지기로 하셨는지 아빠가 제게 묻더군여 너 누구랑 살래? 아빠,엄마, 아니면 할머니집? 어린마음에도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아빠랑 사는것은 무섭고,엄마랑 사는거는 삶이 힘들고 할머니집을 택했죠.그래야 나중에 다 같이 살수 있는줄 알았습니다 어린게 멀 알겠습니까?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는한 .....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울엄마 참 독한여자인거 같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실때까지 자식새끼 얼굴한번 안볼수가 있는지....(이모말에 의하면) 그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게됐습니다 아빠는 가끔 보러 오시고. 안오시는게 나았습니다 오실때마다 야단과 매채를 들었습니다 아빠는 내겐 공포 그자체였습니다 그뒤 국민학교 4학년 때인거 같습니다 아빠의 바로 밑에 남동생 그러니까 제겐 삼촌이죠 삼촌이 결혼해서 작은엄마가 생겼습니다 작은아버지의 능력도 안되고 본가의 능력도 안되는고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작은엄마와 저의 악연은 시작되었던거 같습니다 할머니 살아계실때도 제 빨래는 제가 해 입었습니다 작은엄마 눈치보느라고...(할머니가 눈치주신것도 있구요) 작은엄마 임신하셨을땐 늘 설거지는 제 차지였구요(평상시에도 잘시켰슴) 사촌동생 생기고선 늘 아기보는건 제일이었구여(사촌동생들 셋입니다) 등에 업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늘 데리고 다녀서,아기하난 참 잘봅니다 제가 아기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보니까 누가 애좀 한두시간이라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더군여.넘 힘들어요 아이를 키우기란 그일만 생각해도 작은엄만 저한테 감사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여 (저를 시댁에 혹이란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집안에서 하는 부업도 많이 도왔습니다 그래도 작은엄만 머가 그리 미운지 먹을거로 차별하더군여 고모가 친정오면서 귤을 조금 사오면 할머니와 사촌동생들만 주고 저를 안주니,다음에 고모가올땐 아예 한보따리씩 사오더군여,그땐 조금 얻어먹을수 있었죠 한창 먹을때 아닌가여,그나이땐.무지 먹고싶었습니다 저 중학교 2학년때 울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그앞전에 가시고) 이젠 완전히 눈칫밥이었죠 아침에 도시락 제가 싸갔고 다녔습니다 늘 똑같은 반찬으로 사촌동생이 유치원 다니기 시작하자 일주일에 두세번은 도시락 싸더군여 계란반찬 햄반찬 해서. 싸는김에 조금만 주면 좋을텐데 한번도 안주더군여 사촌동생이 무지 부러웠습니다 전 어릴때 소풍이나 운동회가 싫었습니다 김밥싸가야 되잖아여 지금은 흔하지만 그당시엔 김밥파는데가 없었죠 늘 소풍때가 되면 전날 작은엄마한테 얘기합니다 `내일 소풍가요` 늘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부답 담날 김밥 싸주긴 싸줍니다 짜증난 말투와 얼굴로 늘 소풍때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학창시절땐 책읽고 독후감 쓰기나 일기쓰기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1,2학년때면 한창 사춘기때죠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일기에다 매일 썼죠 그아이 얘기를... 그걸 작은엄마가 제 물건 뒤져서 봤습니다 그것까진 좋습니다 그얘길 하더군여 비꼬듯이 일기내용을 줄줄... 예민한 사춘기 소녀때입니다 너무나 큰 상처 됐습니다 일기 다 찢었습니다 그리고 일기장 첫 페이지에 신문에서 오린 공포영화사진 오려 붙였습니다 다음에 또 뒤져서 보게되면 보라고...... (저에게 못됫다고 하실 분들 있으시겠죠.하지만 저에겐 그일이 아직도 큰 상처가 됐습니다.이렇게 다큰 어른이 됐는데도......) 며칠뒤에 보긴 봤나봅니다 사진이 쫙쫙 찢어져 있더군여 조금 마음이 후련해지더군여 저 그뒤론 다시는 일기 안씁니다. 마음에 병이 됬나봅니다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신부전증이란 병이 생기셨습니다 시골에 계시다가 병때문에 같이 사시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여자 입장에서 시아주버님에 조카를 데리고 살아야하는 작은엄마의 고충이나 어려움을 모르는건 아닙니다 고모말에 의하면 작은집도 형편이 어려워 할아버지 집에 들어와 산 덕분에 집이라도 건진셈 아닌가.하더군여 울 아버지 2년 반동안 앓으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병간호 제가 다했습니다 학교다니면서 , 기운 없으신 날은 방에서 머리도 감겨드리고 밤이면 온몸을 주무르기 시작해서 어떨땐 새벽 5시까지 주무를때도 있었구요 일요일이면 아빠옷 내옷 손으로 다빨았습니다 세탁기 있었지만 눈치보느라 못쓰고 , 한겨울에도 바깥 수도에서 목장갑 고무장갑끼고 빨래했습니다 방학이면,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할때도 있었습니다 그덕분에 아빠 돌아가시고 효녀소리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몹시 부끄럽습니다 긴병에 효자없다고,내몸이 괴로울땐 ,아빠 원망을 많이 했으니까요 작은집 식구들이 무지 원망스러울때가 있었습니다 아빠가 병원가계시면 항상 삼겸살을 궈먹더군여 조카는 먹어보란 말도없이. 물론 아빠는 드시면 안되는 음식이긴 했지만서도.어린마음에 맘이 아팠습니다 엄마가 없어서 제대로 된 음식한번 못드시는 아빠가...... 첫수학여행때였습니다 또 김밥 싸가야했져 싫었습니다 아빠가 작은엄마에게 말하라 하더군여 `저 내일 수학여행가여` 또 묵묵부답 아빠가 만원주시며, 김밥재료 사오라 하셨져 제가 머 알겠습니까. 생각나는대로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 사왔습니다 담날 아침 작은엄마 시금치는 머 이런걸 사왔냐 이거는 머가 이러냐 저거는.... 이소리에 아빠가 저한테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내셨습니다 `수학여행 가지마 김밥 재료도 하나 못사와! 그때서야 암말 없이 김밥싸는 작은엄마 하지만 아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가지마라고 소리소리 지르시는 상황 밖에선 친구가 기다리기에 부랴부랴 김밥과 작은엄마가 주신 3천원을 들고 도망치듯이 울면서 친구와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그나마 가져간 3천원은 역에서 반장이 선생님들 선물 사야한다며 가져가더군여 덕분에 전 무일푼, 왜 수학여행가면 마지막날 선물사는 시간 주잔아여 전 돈이 없어서 방에서 혼자 누워있는데 우리집 상황을 다 봤던 친구가 오천원을 꿔주더군여 아빠 선물 샀습니다 조그만거.. 집에오니 많이 화내실줄 알았는데 저 수학여행 갔다오는동안 내내 돈도 없이 갔는데 어쩌나 걱정하셨단 소리에 참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프신 몸에 걱정까지 끼쳐드렸단 생각에... 아빠가 절 미워하는줄,진짜로 화가 나신줄 알았거든요 지금도 그생각을 하니 목이 메이네요 고등학교 졸업여행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땐 이미 아빠도 돌아가시고 안계셨기에... 고3때 졸업사진들 찍잔아요 경복궁 같은데서 그날은 각자 수업없이 곧장 경복궁으로 가는거였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생활보호 대상자 1종으로 매달 후원자가 5만원씩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그돈은 받으면 꼬박꼬박 작은엄마 드리고(시집갈때 돈이 많이 든다며 지금부터 열심히 저금해야된다고 늘상얘기 했슴) 거기서 차비며 용돈을 얻어 썼습니다 그날도 차비를 달라고 하자 없다더군여. 평상시에도 차비나 학용품살돈을 달라고 하면 없다며 보란듯이 옆집에서 꾸어서 줄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꾸어서도 안주더군여 그날 경복궁 못갔습니다 하루종일 길거리 돌아다녔습니다 울면서...... 다음날, 학교가니 저만 안갔더군여.선생님 탁자 앞으로 부르십니다 `너 어제 경복궁 왜 안왔니?` 저 대답 못했습니다 어떻게 반아이들 다보는데서 차비없어서 못갔다는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대답안한다고 손바닥 때리시더군여 맞아도 대답 안했습니다 상담실로 부르셨습니다 그때서야 저 사실대로 말하고 선생님과 부둥껴안고 울었습니다 지금도 졸업사진엔 저만 없습니다 볼때마다 제겐 상처입니다 고2때 사환 아르바이트 했을때도 한달 급여 받으면 작은엄마 갖다 드렸습니다 늘 받으실땐 그말 하져 `시집갈때 돈 많이 든다 열심히 모아야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서 급여 받으면 꼬박꼬박 갖다 드렸습니다 직장에 다니게 되면 옷은 깔끔하게 입고 다녀야 하기에 몇벌 없는옷 저녁이면 열심히 빨아서 옷없는 티 안내려 자주자주 갈아입었져 그걸보고 작은엄마 `니가 패션쇼하냐 매일매일 갈아입게` 하더군여 지금 제 사촌동생들 직장인에 대학생입니다 옷 무지 많더군여. 악세서리도 요란하더군여. 머 세월이 많이 변했다하지만 전 요란하다거나 그 흔한 목걸이 반지 하나 않했습니다 23살때까진가 그집에 살다 옷값으로 인해 작은엄마한테 맞기까지 했습니다 아예 지지 밟혔습니다 바로 가출했져 친구집으로 그랫더니 작은아버지 작은엄마랑 절 찾으러 글쎄 사창가를 돌아다녔다 하네요 학생때부터 나쁜짓이란 요만큼도 안한 저를 어떻게 그럴수있는지... 그때이후로 따로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준비를 할때였습니다 작은엄마가 혼수 목록 적어 오라기에 고등학생때부터 모은 돈 주시는줄 알았습니다 적어갔더니 정말 간단하게 적었는데 , 제가 미리사둔 것도 꽤 있었거든요 왜이리 많냐 하데요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그날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결혼준비 저 혼자 했습니다 그 작은엄마와 막내작은엄마 두분이 보낸거 나열하자면 세탁기.냉장고(젤 작은거)가스레인지.전자렌지 ~ 이것두 막내 작은엄마가 돈 다내신건지도 모릅니다 결혼하고나서 이바지 음식 있져 시댁에 드리는거 아는데 있으면 맞추라기에 돈준다고 왠일인가 싶었져 나중에 준다기에 헌데 지금까지 깜깜 무속입니다 결혼하고 친정이라고 갔더니 부엌으로 살짝 부르더군여 작은 아버지가 혼수 어떻게 마련했냐고 하면 니힘으로 했다고 해라 하데요 그럼 내힘으로 했지 누구 힘으로 했습니까 무슨 꿍꿍인지..... 결혼식때 작은엄마 두분 한복 한벌씩 해드리려 했었는데 말았습니다 막내 작은엄마께는 정말 해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친정이라고 생각하고 명절때 꼬박꼬박 갑니다만, 갈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막내 작은엄마는 바리바리 뭘 싸주시면서 그것도 넘 티나게 전 암것도 안줄때 , 그거 못가져가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져. 부모없는 제가 머가 그리 미운것일까여? 제가 구질구질한 저의 과거라면 과거랄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요 어른들이 하는 무책임한 말이나 행동들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지 우리 어른들은 모를때가 많습니다 제 자라온 과정이 평탄치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제 성격이 과히 좋은편은 아닙니다 제 아이들에게 말보다는 손이 먼저 올라갈때도 많습니다 아마 은연중에 내가 젤 혐오하던 폭력성을 나도 모르게 내몸에 베게 했나봅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또 한가지 저에겐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늘 비관적이죠 누군가 나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게 칭찬과사랑이 담긴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낙천적인 온화한 성격을 가진 엄마가 됬을거란 생각이 드는것은 저의 망상에 지나지않을까요? 그냥한번 쓸데없이 지껄여봅니다 끝까지 읽어주신분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요 넋두리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클릭, 오늘의 톡! 둘째는 내맘에 드는 며느리로 고를란다
이땅의 모든 새엄마들에게...
제목을 정하고 나니 넘 거창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제가 겪었던 어렸을적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현재 저는 사내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30대중반의 평범한 주부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저의 부모님들은
양가의 반대로 인해 저를 먼저 낳으신 후에 결혼한 케이스였습니다
두분의 성격은 불과 불이었던거 같습니다
자주 싸우셨죠
아버지가 술드시면 주사도 심하셨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1학년에 갓들어갔을 때였던가
그당시에 초등학교는 오전 오후반이 있었습니다
그날 전 오후반이었고요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하셨던터라
저혼자 시간맞춰 가야하는 상황이었죠
1시까지 가야하는데 그만 정신없이 놀다 시간을 놓쳐버렸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멀 알겠습니까
하지만,아빠께 혼날걸 생각하니 엄청 겁먹었었죠
조그만 잘못에도 아빤 어린아이에겐 너무할정도로 혼내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도 굶긴채,
책가방엔 책을 잔뜩 넣고 벌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물론,일차로 맞기도 했습니다
벌은 계속됐습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팔 무지 아팠습니다 (지금생각해도 생생하네요)
엄마가 말리는통에 더욱더 격분한 아빠는
술을 드시고와서 다같이 죽자며
석유곤로 아시죠? 그걸 방안에 틀어놓고 골아 떨어지셨죠
그때까지도 전 벌서고 있었습니다(아빠 술드시러 가실때 잠깐 쉬긴 했지만)덕분에 저 지구력 좋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짐을 싸더니 절 데리고 그대로 가출이었죠
이 남자하고는 아니라는 생각이셨나봅니다
그뒤로 엄마랑 한 일년정도
둘이서 같이 살았습니다
아빠는 계속 우리 둘을 찾아다니셨던거 같습니다
그 일년동안은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죠
하지만,경제적인 어려움과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니 밤늦게까지
혼자 있어야하는 외로움과 무서움은 말도 못했습니다
엄마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괴로움때문인지
늘 술에 취해서 밤 열두시 한시 귀가였습니다
들어오시자마자 토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기지 못할 술을 그렇게 드시는건 많이 힘드셨나봅니다
그 뒷치닥거리 하느라 저도 힘들었습니다.밥도 했습니다.이제 초등학교 일학년이...
지금 생각하니 조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년뒤,
제가 국민학교 2학년 이었죠
아빠가 저희 두모녀를 찾아냈습니다
아빠는 조금 달라진거 같았습니다
술도 잘 안드시구요
자상해지신거 같았습니다
두분이 다시 합치실것같았죠
근데,일년동안 는건 엄마의 주량이었습니다
그날도 엄만 만취상태로 열두시가 다되서 들어오시고
담날 아침엔 이불에 오줌까지 누셨습니다
그걸 아침에 본가에 다녀오신 아빠가 보신겁니다
그 계기로 두분이 헤어지기로 하셨는지
아빠가 제게 묻더군여
너 누구랑 살래? 아빠,엄마, 아니면 할머니집?
어린마음에도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아빠랑 사는것은 무섭고,엄마랑 사는거는 삶이 힘들고
할머니집을 택했죠.그래야 나중에 다 같이 살수 있는줄 알았습니다
어린게 멀 알겠습니까?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는한 .....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울엄마 참 독한여자인거 같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실때까지 자식새끼 얼굴한번 안볼수가 있는지....(이모말에 의하면)
그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게됐습니다
아빠는 가끔 보러 오시고. 안오시는게 나았습니다
오실때마다 야단과 매채를 들었습니다 아빠는 내겐 공포 그자체였습니다
그뒤 국민학교 4학년 때인거 같습니다
아빠의 바로 밑에 남동생 그러니까 제겐 삼촌이죠
삼촌이 결혼해서 작은엄마가 생겼습니다
작은아버지의 능력도 안되고 본가의 능력도 안되는고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작은엄마와 저의 악연은 시작되었던거 같습니다
할머니 살아계실때도 제 빨래는 제가 해 입었습니다
작은엄마 눈치보느라고...(할머니가 눈치주신것도 있구요)
작은엄마 임신하셨을땐 늘 설거지는 제 차지였구요(평상시에도 잘시켰슴)
사촌동생 생기고선 늘 아기보는건 제일이었구여(사촌동생들 셋입니다)
등에 업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늘 데리고 다녀서,아기하난 참 잘봅니다
제가 아기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보니까 누가 애좀 한두시간이라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더군여.넘 힘들어요 아이를 키우기란
그일만 생각해도 작은엄만 저한테 감사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여
(저를 시댁에 혹이란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집안에서 하는 부업도 많이 도왔습니다
그래도 작은엄만 머가 그리 미운지 먹을거로 차별하더군여
고모가 친정오면서 귤을 조금 사오면 할머니와 사촌동생들만 주고
저를 안주니,다음에 고모가올땐 아예 한보따리씩 사오더군여,그땐 조금 얻어먹을수 있었죠
한창 먹을때 아닌가여,그나이땐.무지 먹고싶었습니다
저 중학교 2학년때 울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그앞전에 가시고)
이젠 완전히 눈칫밥이었죠
아침에 도시락 제가 싸갔고 다녔습니다
늘 똑같은 반찬으로
사촌동생이 유치원 다니기 시작하자 일주일에 두세번은 도시락 싸더군여
계란반찬 햄반찬 해서. 싸는김에 조금만 주면 좋을텐데 한번도 안주더군여
사촌동생이 무지 부러웠습니다
전 어릴때 소풍이나 운동회가 싫었습니다
김밥싸가야 되잖아여
지금은 흔하지만 그당시엔 김밥파는데가 없었죠
늘 소풍때가 되면 전날 작은엄마한테 얘기합니다
`내일 소풍가요` 늘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부답
담날 김밥 싸주긴 싸줍니다 짜증난 말투와 얼굴로
늘 소풍때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학창시절땐 책읽고 독후감 쓰기나 일기쓰기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1,2학년때면 한창 사춘기때죠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일기에다 매일 썼죠 그아이 얘기를...
그걸 작은엄마가 제 물건 뒤져서 봤습니다
그것까진 좋습니다
그얘길 하더군여 비꼬듯이 일기내용을 줄줄...
예민한 사춘기 소녀때입니다
너무나 큰 상처 됐습니다
일기 다 찢었습니다
그리고 일기장 첫 페이지에 신문에서 오린 공포영화사진 오려 붙였습니다
다음에 또 뒤져서 보게되면 보라고...... (저에게 못됫다고 하실 분들 있으시겠죠.하지만 저에겐 그일이 아직도 큰 상처가 됐습니다.이렇게 다큰 어른이 됐는데도......)
며칠뒤에 보긴 봤나봅니다
사진이 쫙쫙 찢어져 있더군여
조금 마음이 후련해지더군여
저 그뒤론 다시는 일기 안씁니다. 마음에 병이 됬나봅니다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신부전증이란 병이 생기셨습니다
시골에 계시다가 병때문에 같이 사시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여자 입장에서 시아주버님에 조카를 데리고 살아야하는
작은엄마의 고충이나 어려움을 모르는건 아닙니다
고모말에 의하면 작은집도 형편이 어려워 할아버지 집에 들어와 산 덕분에 집이라도
건진셈 아닌가.하더군여
울 아버지 2년 반동안 앓으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병간호 제가 다했습니다
학교다니면서 , 기운 없으신 날은 방에서 머리도 감겨드리고 밤이면 온몸을 주무르기 시작해서
어떨땐 새벽 5시까지 주무를때도 있었구요
일요일이면 아빠옷 내옷 손으로 다빨았습니다
세탁기 있었지만 눈치보느라 못쓰고 , 한겨울에도 바깥 수도에서 목장갑 고무장갑끼고 빨래했습니다
방학이면,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할때도 있었습니다
그덕분에 아빠 돌아가시고 효녀소리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몹시 부끄럽습니다
긴병에 효자없다고,내몸이 괴로울땐 ,아빠 원망을 많이 했으니까요
작은집 식구들이 무지 원망스러울때가 있었습니다
아빠가 병원가계시면 항상 삼겸살을 궈먹더군여
조카는 먹어보란 말도없이.
물론 아빠는 드시면 안되는 음식이긴 했지만서도.어린마음에 맘이 아팠습니다
엄마가 없어서 제대로 된 음식한번 못드시는 아빠가......
첫수학여행때였습니다
또 김밥 싸가야했져 싫었습니다
아빠가 작은엄마에게 말하라 하더군여
`저 내일 수학여행가여` 또 묵묵부답
아빠가 만원주시며, 김밥재료 사오라 하셨져
제가 머 알겠습니까. 생각나는대로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 사왔습니다
담날 아침 작은엄마 시금치는 머 이런걸 사왔냐
이거는 머가 이러냐 저거는....
이소리에 아빠가 저한테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내셨습니다
`수학여행 가지마 김밥 재료도 하나 못사와!
그때서야 암말 없이 김밥싸는 작은엄마
하지만 아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가지마라고 소리소리 지르시는 상황
밖에선 친구가 기다리기에 부랴부랴 김밥과 작은엄마가 주신 3천원을 들고
도망치듯이 울면서 친구와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그나마 가져간 3천원은 역에서 반장이 선생님들 선물 사야한다며 가져가더군여
덕분에 전 무일푼,
왜 수학여행가면 마지막날 선물사는 시간 주잔아여
전 돈이 없어서 방에서 혼자 누워있는데
우리집 상황을 다 봤던 친구가 오천원을 꿔주더군여
아빠 선물 샀습니다 조그만거..
집에오니 많이 화내실줄 알았는데
저 수학여행 갔다오는동안 내내 돈도 없이 갔는데 어쩌나 걱정하셨단 소리에 참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프신 몸에 걱정까지 끼쳐드렸단 생각에... 아빠가 절 미워하는줄,진짜로 화가 나신줄 알았거든요
지금도 그생각을 하니 목이 메이네요
고등학교 졸업여행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땐 이미 아빠도 돌아가시고 안계셨기에...
고3때
졸업사진들 찍잔아요
경복궁 같은데서
그날은 각자 수업없이 곧장 경복궁으로 가는거였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생활보호 대상자 1종으로
매달 후원자가 5만원씩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그돈은 받으면 꼬박꼬박 작은엄마 드리고(시집갈때 돈이 많이 든다며 지금부터 열심히 저금해야된다고 늘상얘기 했슴)
거기서 차비며 용돈을 얻어 썼습니다
그날도 차비를 달라고 하자
없다더군여. 평상시에도 차비나 학용품살돈을 달라고 하면 없다며 보란듯이
옆집에서 꾸어서 줄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꾸어서도 안주더군여
그날 경복궁 못갔습니다
하루종일 길거리 돌아다녔습니다 울면서......
다음날, 학교가니
저만 안갔더군여.선생님 탁자 앞으로 부르십니다
`너 어제 경복궁 왜 안왔니?`
저 대답 못했습니다
어떻게 반아이들 다보는데서 차비없어서 못갔다는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대답안한다고 손바닥 때리시더군여
맞아도 대답 안했습니다
상담실로 부르셨습니다
그때서야 저 사실대로 말하고 선생님과 부둥껴안고 울었습니다
지금도 졸업사진엔 저만 없습니다
볼때마다 제겐 상처입니다
고2때 사환 아르바이트 했을때도
한달 급여 받으면 작은엄마 갖다 드렸습니다
늘 받으실땐 그말 하져 `시집갈때 돈 많이 든다 열심히 모아야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서 급여 받으면 꼬박꼬박 갖다 드렸습니다
직장에 다니게 되면 옷은 깔끔하게 입고 다녀야 하기에
몇벌 없는옷 저녁이면 열심히 빨아서 옷없는 티 안내려
자주자주 갈아입었져
그걸보고 작은엄마 `니가 패션쇼하냐 매일매일 갈아입게`
하더군여
지금 제 사촌동생들 직장인에 대학생입니다
옷 무지 많더군여.
악세서리도 요란하더군여. 머 세월이 많이 변했다하지만
전 요란하다거나 그 흔한 목걸이 반지 하나 않했습니다
23살때까진가 그집에 살다
옷값으로 인해 작은엄마한테 맞기까지 했습니다
아예 지지 밟혔습니다
바로 가출했져 친구집으로
그랫더니 작은아버지 작은엄마랑 절 찾으러 글쎄 사창가를 돌아다녔다 하네요
학생때부터 나쁜짓이란 요만큼도 안한 저를 어떻게 그럴수있는지...
그때이후로
따로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준비를 할때였습니다
작은엄마가 혼수 목록 적어 오라기에
고등학생때부터 모은 돈 주시는줄 알았습니다
적어갔더니 정말 간단하게 적었는데 ,
제가 미리사둔 것도 꽤 있었거든요
왜이리 많냐 하데요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그날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결혼준비 저 혼자 했습니다
그 작은엄마와 막내작은엄마 두분이 보낸거 나열하자면
세탁기.냉장고(젤 작은거)가스레인지.전자렌지 ~
이것두 막내 작은엄마가 돈 다내신건지도 모릅니다
결혼하고나서 이바지 음식 있져
시댁에 드리는거
아는데 있으면 맞추라기에 돈준다고
왠일인가 싶었져
나중에 준다기에
헌데 지금까지 깜깜 무속입니다
결혼하고 친정이라고 갔더니
부엌으로 살짝 부르더군여
작은 아버지가 혼수 어떻게 마련했냐고 하면
니힘으로 했다고 해라 하데요
그럼 내힘으로 했지 누구 힘으로 했습니까
무슨 꿍꿍인지.....
결혼식때 작은엄마 두분 한복 한벌씩 해드리려
했었는데 말았습니다
막내 작은엄마께는 정말 해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친정이라고 생각하고
명절때 꼬박꼬박 갑니다만,
갈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막내 작은엄마는 바리바리 뭘 싸주시면서
그것도 넘 티나게 전 암것도 안줄때 , 그거 못가져가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져.
부모없는 제가 머가 그리 미운것일까여?
제가 구질구질한 저의 과거라면 과거랄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요
어른들이 하는 무책임한 말이나 행동들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지 우리 어른들은 모를때가 많습니다
제 자라온 과정이 평탄치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제 성격이 과히 좋은편은 아닙니다
제 아이들에게 말보다는 손이 먼저 올라갈때도 많습니다
아마 은연중에 내가 젤 혐오하던 폭력성을 나도 모르게 내몸에 베게 했나봅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또 한가지 저에겐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늘 비관적이죠
누군가 나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게 칭찬과사랑이 담긴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낙천적인 온화한 성격을 가진 엄마가 됬을거란
생각이 드는것은
저의 망상에 지나지않을까요?
그냥한번 쓸데없이 지껄여봅니다
끝까지 읽어주신분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요
넋두리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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