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보안법은 한시법이었다고 하네요...

차상현200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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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펌입니다.

 

 

 

국가보안법은 한시법이었다.

국가 보안법은 한시법이었다고 하네요...

국가보안법은 1948년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남로당을 제거려는 목적으로 대한민국 형법보다 5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진 임시법이었다.

제정 당시의 권승렬 법무장관도 이 법안을 두고 "평화시의 밥안은 아닙니다.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니까 이런 경우에 인권옹호 상 조금 손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가불 건국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했던 만큼 한시법적 성격이 강했다. 또한 이 내용은 일제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었다.

함 비교해보자

치안유지법 : 국체를 변혁하거나 또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는 정을 알고 이에 가입한 자는.... (1조)

국가보안법 : 국헌을 위해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는... 그 정을 알고 결사 또는 집단에 가입한 자는.. (1조)

치안유지법 : 본법은 하인을 불문하고 본법시행구역 외에서 죄를 범한 자에게 또한 이를 적용한다 (7조)

국가보안법 : 본장의 규정은 누구든지 본법시행지 외에서 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도 적용한다. (8조, 49년 개정으로 추가됨, 해외에서 일어난 일도 처벌하는 규정)

총 7개 조항이었던 치안유지법을 6개 조항의 국가보안법으로 만들면서 말만 이리저리 바꾼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이야기들 하시는 분들, 이게 윤동주 시인이 체포되어 옥사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치안유지법의 후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케 생각하시는지 졸라 궁금해진다.

여기에 잠깐의 막간 코미디가 등장한다. 1948년 11월 14일자 좃선 사설의 제목이 "국가보안법을 배격함"이었거든.

뿐만 아니다. 5년뒤 1953년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은 형법 초안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특수한 법률로 국가보안법 혹은 비상조치법, 이러한 것이 국회에서 임시로 제정하신 줄 안다. 지금 와서는 그러한 다기다난 한 것을 다 없애고 이 형법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의 목적을 달할 수가 있겠다는 고려를 해보았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이 형법과 대조해 검토해 볼 때 형에 가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이 형법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는가 하는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

남북 대치가 어쩌고 하는 독자덜. 1953년이 어떤 해였는지 기억하시는가? 6.25가 한참 막바지로 달려가던 그 시점이었다. 그 시점에 보수주의자인 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