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여행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마을을 지날때였다. 내 기억에 그곳은 참외로 유명한 고장이었는데,
마을에서 참외를 사먹어 보려고 잠시 차를 세웠던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만해도 흔했던 원두막에 우리가족은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나는 호기심에 과수원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과수원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동산의 공터. 그곳엔 얼굴이 벌개진 어른들이 몰려있었고, 그 사람들은 어린 내가 보기에, 굉장히 충격적이고, 야만적인 짓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개를 잡고 있었다. 꽤나 덩치가 큰 개의 목을 공터에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고는, 야구방망이로 개를 치고 있었다. 개는 털 군데군데에 피를 뭍히고 있었고, 짖어야 정상이겠지만, 목이 매달려 있기때문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은 죽음이다. 사람의 죽음은 임종이고 돌아가심이어서 심각한 것이며, [매운탕 고깃감]의 죽음이라고 해서 도축이라는 말과같이 가벼운것은 아닌것이다. 어쨌든 난생 처음으로 난 [죽음]이란것이 한 생명에게 어떻게 드리워지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개가 거의 죽어가고 있을때였다. 맞을때마다 개의 몸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에 느슨해졌던 나무에 묶은 줄이 풀어져 개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술을 먹어 얼굴이 벌건 어른들이 잠시 주춤할때 개는 뒷산으로 순식간에 도망쳤다. 삶에 대한 본능. 심하게 절룩거리는 다리였지만 매우 빨라서 어른들이 쫓아갈때 즈음에는 개가 가까운 뒷산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때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빌고 있었다. 그저 아담의 아버지인 존재에게
나는 그 개를 살려달라고 바라고 있었다. 일곱살이었으니까.
[니이미...ㅈ ㅗ ㅈ 나게 빠르네.]라는 등의 욕설섞인 어른들의 투덜거림. 그것으로 나는 그 사건이 통쾌한 탈출극의 끝이리라 생각했다.
그때, 강아지의 주인으로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누렁아-] 그사람은 개가 사라져버린 산을 향해 무성의하게 지었을것이 뻔한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리고, 나는 믿기지 않는 순간을 보게되었다. 그사람이 두어번 누렁이를 외치고 잠시후, 피투성이가된 개한마리가 절룩거리며 뒷산을 내려와 공터로 향하고 있었다. 절룩,절룩. 힘이 다 빠져버린 걸음걸이. 하지만, 그 [복날 매운탕거리]는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조금이라도 빨리 그에게 닿으려고 애를쓰고 있었다. 주인은 손에 피가 잔뜩 배인 밧줄을 들고 있었다.
개를 핏물이 가득 고인눈을 한채 주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꼬리를 흔들며 그 다리에 몸을 비볐다. 주인이 개의 머리를 툭툭 친후 그 목에 다시 줄을 묶었는데, 줄을 목에 묶자마자, 개는 숨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어린 눈에 처음 접한 죽음이었다. 생각했을때의 그것은 슬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지나서 생각해본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게 내가 본 사랑이다. 동물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은 종족보호본능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리고, 개에게 있어서의 본능은 줄이 풀어졌을때의 도망치는것이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랑]이라고 발음되는 그 추상적인 낱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종족보호본능. 그리고 집착. 대부분, 그 두개를 그럴싸하게 합리화시키는 말로써, 인간이라는 동물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노아의 홍수. 전세계의 인간을 집단익사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너희도 말안들으면 이렇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신의 사랑. 아들딸낳고 오손도손사는 종족보호. 영원히 너는 나에게만이라는 치졸한 집착. 그것이 사랑인가.
나는 신에게서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이성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사랑을 보았다.
자신의 목을 조르는 그 손길마저도 구원일 수 있는, 사랑말이다.
....이곳저곳에서,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루에 열댓번은 더 듣지만,
내가 어린날 보았던 그 장면과 같은 절실함은 아니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지만, 그 개같은것은. 분명히 사랑이다.
목을 조르는 그 따스한 체온아래 숨을 거두는것.
..세상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목적의식과 표리부동과 배신, 상처로 가득차있다.
사랑따윈 해본적도 없고 믿지도 않아.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개같은 사랑을 꿈꾼다.
언젠가....한번 뿐이겠지만, 그 한번으로 족하겠지. --어느 네티즌의 글...
이 글을 보고도 느낌이 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가 정녕 정신병자 일 것이다.
아니, 정신병자도 인간이기에 느낌은 있을 것이다.
아마 존재의 가치가 없는 자존감 없는 유형물에 불가하다.
세상이 만든 공산품 정도로 취급해도 될 것이다.
개껌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듯 하다...
애완동물이아니다. 반려동물이다.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애완동물이기에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 대하듯 싫증나면 버리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짦은 생각의 인간들이기에 이번 방송을 보고 맞장구치는 것이다.
생명을 아는가? 생명에대해 얼마나 많은 이해와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했는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녀에게 생명에 대해 가르칠수있는가?
그렇지 않기에 같은 인간을 찔러죽이고 던져죽이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쁜 꽃과 나무를 더욱 지켜주고 아껴주는 교육이 아니라 예쁘니까 꺽는 교육을 받았고
지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그들을 어떻게 매도하는가?
정신병자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동료이다. 단지 장애를 겪는 이유 밖에는 없다.
그 장애에 대해 왜 질타하고 배척하고 외면하는가? 안아주려는 표현은 없다.
정신병자...미친 노옴...그냥 그 단어 속에 내포하고 있는 공격성들로 장애를 겪는 그들을 죽이고 있지는
나는 개같은 사랑을 하고싶다
나는 개같은 사랑을 하고싶다.
[.. 당신은 사랑을 믿는가.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그것을 보았는데.]
...일곱살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여행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마을을 지날때였다.
내 기억에 그곳은 참외로 유명한 고장이었는데,
마을에서 참외를 사먹어 보려고 잠시 차를 세웠던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만해도 흔했던 원두막에 우리가족은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나는 호기심에 과수원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과수원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동산의 공터.
그곳엔 얼굴이 벌개진 어른들이 몰려있었고, 그 사람들은
어린 내가 보기에, 굉장히 충격적이고, 야만적인 짓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개를 잡고 있었다.
꽤나 덩치가 큰 개의 목을 공터에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고는, 야구방망이로 개를 치고 있었다.
개는 털 군데군데에 피를 뭍히고 있었고,
짖어야 정상이겠지만, 목이 매달려 있기때문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은 죽음이다.
사람의 죽음은 임종이고 돌아가심이어서 심각한 것이며,
[매운탕 고깃감]의 죽음이라고 해서 도축이라는 말과같이 가벼운것은 아닌것이다.
어쨌든 난생 처음으로 난 [죽음]이란것이
한 생명에게 어떻게 드리워지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개가 거의 죽어가고 있을때였다.
맞을때마다 개의 몸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에
느슨해졌던 나무에 묶은 줄이 풀어져 개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술을 먹어 얼굴이 벌건 어른들이 잠시 주춤할때
개는 뒷산으로 순식간에 도망쳤다.
삶에 대한 본능. 심하게 절룩거리는 다리였지만 매우 빨라서
어른들이 쫓아갈때 즈음에는
개가 가까운 뒷산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때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빌고 있었다.
그저 아담의 아버지인 존재에게
나는 그 개를 살려달라고 바라고 있었다.
일곱살이었으니까.
[니이미...ㅈ ㅗ ㅈ 나게 빠르네.]라는 등의 욕설섞인 어른들의 투덜거림.
그것으로 나는 그 사건이 통쾌한 탈출극의 끝이리라 생각했다.
그때, 강아지의 주인으로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누렁아-] 그사람은 개가 사라져버린 산을 향해
무성의하게 지었을것이 뻔한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리고, 나는 믿기지 않는 순간을 보게되었다.
그사람이 두어번 누렁이를 외치고 잠시후,
피투성이가된 개한마리가
절룩거리며 뒷산을 내려와 공터로 향하고 있었다. 절룩,절룩.
힘이 다 빠져버린 걸음걸이.
하지만, 그 [복날 매운탕거리]는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조금이라도 빨리 그에게 닿으려고 애를쓰고 있었다.
주인은 손에 피가 잔뜩 배인 밧줄을 들고 있었다.
개를 핏물이 가득 고인눈을 한채 주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꼬리를 흔들며 그 다리에 몸을 비볐다.
주인이 개의 머리를 툭툭 친후 그 목에 다시 줄을 묶었는데,
줄을 목에 묶자마자, 개는 숨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어린 눈에 처음 접한 죽음이었다.
생각했을때의 그것은 슬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지나서 생각해본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게 내가 본 사랑이다.
동물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은 종족보호본능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리고,
개에게 있어서의 본능은 줄이 풀어졌을때의 도망치는것이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랑]이라고 발음되는 그 추상적인 낱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종족보호본능.
그리고 집착.
대부분, 그 두개를 그럴싸하게 합리화시키는 말로써,
인간이라는 동물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노아의 홍수. 전세계의 인간을 집단익사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너희도 말안들으면 이렇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신의 사랑.
아들딸낳고 오손도손사는 종족보호.
영원히 너는 나에게만이라는 치졸한 집착.
그것이 사랑인가.
나는 신에게서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이성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사랑을 보았다.
자신의 목을 조르는 그 손길마저도 구원일 수 있는, 사랑말이다.
....이곳저곳에서,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루에 열댓번은 더 듣지만,
내가 어린날 보았던 그 장면과 같은 절실함은 아니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지만, 그 개같은것은. 분명히 사랑이다.
목을 조르는 그 따스한 체온아래 숨을 거두는것.
..세상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목적의식과 표리부동과 배신, 상처로 가득차있다.
사랑따윈 해본적도 없고 믿지도 않아.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개같은 사랑을 꿈꾼다.
언젠가....한번 뿐이겠지만, 그 한번으로 족하겠지. --어느 네티즌의 글...
이 글을 보고도 느낌이 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가 정녕 정신병자 일 것이다.
아니, 정신병자도 인간이기에 느낌은 있을 것이다.
아마 존재의 가치가 없는 자존감 없는 유형물에 불가하다.
세상이 만든 공산품 정도로 취급해도 될 것이다.
개껌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듯 하다...
애완동물이아니다. 반려동물이다.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애완동물이기에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 대하듯 싫증나면 버리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짦은 생각의 인간들이기에 이번 방송을 보고 맞장구치는 것이다.
생명을 아는가? 생명에대해 얼마나 많은 이해와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했는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녀에게 생명에 대해 가르칠수있는가?
그렇지 않기에 같은 인간을 찔러죽이고 던져죽이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쁜 꽃과 나무를 더욱 지켜주고 아껴주는 교육이 아니라 예쁘니까 꺽는 교육을 받았고
지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그들을 어떻게 매도하는가?
정신병자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동료이다. 단지 장애를 겪는 이유 밖에는 없다.
그 장애에 대해 왜 질타하고 배척하고 외면하는가? 안아주려는 표현은 없다.
정신병자...미친 노옴...그냥 그 단어 속에 내포하고 있는 공격성들로 장애를 겪는 그들을 죽이고 있지는
않는가?
반성하고, 각성하고, 기도해라...
자신이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그 외의 종교를 가진 이든, 무신론자이든...
기도해라...
티끌같은 느낌과 반성도 없다면 자신은 개껌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