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던 붉은 이방인은 잠시 멈추어 서 장내를 응시하더니 다시 걸음을 옮겨 비류천을 향해 나아갔다.
"..쿵...쿵....."
그가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는 지나치게 규칙적이고 여유로와서 듣는 사람의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저런 규칙성은 곧 깨지기 마련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법이었다.
" 쿵....!"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면서 그가 천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관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천제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용서 받지 못할 천하의 죄인을 앞에 두고 비난하는 듯 싸늘하고 차가운 분노의 눈빛이었다.
기약없이 이어질 듯 하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붉은 갑옷의 그 였다.
" 초율이 지고지존이신 천제의 은덕에 죄를 사하여 받고 비로소 태양 아래 서게 되었으니 이를 갚을 길이 없나이다"
관지는 붉은 갑옷의 그가 격이 높은 말투를 쓰는 것으로 미루어 높은 신분일 거라 짐작했다.
" 천계와 황가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대죄를 지었음을 알 것이다! 단 한 번....다시는 너를 용서하는 일이 없을 것이야!"
천제는 단호하게 그를 향해 소리쳤다.
천제의 분노로 보아 붉은 갑옷의 그가 지은 죄의 무게는 상상 이상인 것에 틀림없었지만, 관지는 도무지 그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초율은 고개를 조아린 채 얌전히 천제의 노여움을 받아들였다.
" 뼛 속 깊이 전하의 말을 새겨 명심하겠나이다"
" 일어나라"
천제의 명령에 초율은 끓었던 무릎을 세웠고 천제는 뒤를 이어,
" 태자는 나와서 절 받으라"
관지는 갑작스런 천제의 명에 당황하여 서투르게 초율의 앞으로 나와 섰다.
가면에 가려져있었지만, 관지는 초율의 차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불쾌한 시선으로 관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머리카락 한 올, 땀 구멍 하나까지도 기억 속에 새겨놓을 듯 자신을 훑고 있었다.
" 태자, 제 4황자의 절을 받으라."
관지는 천제의 말에 정신이 아득했다. 관지 뿐만 아니라 이미 초율의 신분을 알고 있던 후강을 제외한 모든 그의 형제들이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초율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하니 서 있는 관지를 향해 거북스런 태도로 손을 모아 읍하며 억지로 예를 올렸다. 관지는 초율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왠지 섬뜩해 졌다.
하지만, 초율의 진심이야 어쨌든 천제는 비교적 고분고분해진 제 4황자의 태도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 제 4황자의 복위에 따라 짐이 영지를 하사하겠노라. 갖고자 하는 곳이 있느냐?"
황자와 황녀들은 그 서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천제로부터 영지를 하사 받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그 영지에 대해선 차후 천제조차 간섭할 수 없는 거의 절대적인 소유와 관리권을 가지게 되었고 무단 침입자에 대해서도 임의적으로 처리할 수 잇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그러니, 초율이 황자로 밝혀진 이상 영지를 하사받는 일은 당연했지만 이어지는 초율의 말이 다시 모두를 질리게 만들었다.
" 제게 촉룡산을 돌려주십시오"
초율은 일말의 망설임없이 천제에게 요구를 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자동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문제는 촉룡산이었다. 아미산과 더불어 천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4대 성산(聖山) 가운데 하나인 촉룡산을 그는 분명히 "돌려" 달라고 했다. 수많은 천마의 무리가 살고, 진귀한 약초의 군락이 있으며 보석을 박아놓은 듯 빛나는 촉룡산의 전 주인이 초율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들은 적이 없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 그 산은 이미 새 주인이 생겼느니라. 동방성 지국천에게 주었다."
관지는 동쪽 변방을 넘나들던 수라족을 대거 토벌한 지국천왕의 공을 칭찬하며 천제가 촉룡산을 상을 하사한 일을 기억해냈다. 그는 초율이 별 수 없이 다른 영지를 요구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촉룡산에 대한 초율의 집착은 강했다.
" 제가 지국천에게서 다시 촉룡산을 받아오면 제 것이 되는 것이겠지요?"
뜻밖의 말에 천제도 놀란 표정이었고 다른 형제들도 긴장하여 천제의 결정을 기다렸다.
" 흠...뜻대로 하라. 다만 내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디시는 너를 용서하는 일이 없을것이다. "
천제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초율이 기적적으로 사면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제서야 초율은 그 곳에서의 볼 일이 다 끝났다는 듯 일어서서,
" 빛이 익숙치 않아 돌아가 쉬겠습니다."
하고 천제와 그의 형제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천제는 그 짧은 시간을 보내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자녀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제 3황비의 시중을 받으며 서둘러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 거대한 제황성에는 수많은 황족들이 살고 있었다. 서로가 얼굴을 대면할 기회는 흔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첩의 자식들이나 먼 친척뻘인 황족들을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하지만 초율처럼 괴상하고 눈에 띄는 황자를 어째서 다들 모르고 있엇는지 모두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더구나 관지는 자기 바로 아랫동생인 그를 모르고 있엇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 누님! 아까 그 분이 제 형님되시는 분이시라구요?"
다들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아까부터 눈빛을 반짝이고 초율을 바라보던 현강이 반가운 목소리로 지우에게 되물었다. 현강만이 초율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작은 황자는 방실거리며,
"보셨죠? 누님, 형님? 굉장히 멋진 갑옷이었어요!"
현강은 관지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 그리고..검은 머리였어요. 아버님을 닮은 근사한 검을 빛이요. 밤하늘을 닮은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형님이셧어요!"
관지와 후강과 지우는 이 작은 황자의 발견에 동시에 소름 끼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천제의 수많은 자녀들 중에 검은 머리는 없었다. 정작 천제 자신이 아름다운 흑단의 머리카락을 가졌음에도 그를 닮은 검은 머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초율은 유일하게 아버지의 검고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직감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지우는 현강의 머리를 쓰다음으며 달래듯 말했다.
" 현강, 제 4황자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접도록 해. 절대 그에게 가까이 가지 말거라"
" 네...? 왜요?"
현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우는 뭔가 더 말 하려다 그저 현강의 손을 잡아 끌면서,
礎律(초율) 11화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던 붉은 이방인은 잠시 멈추어 서 장내를 응시하더니 다시 걸음을 옮겨 비류천을 향해 나아갔다.
"..쿵...쿵....."
그가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는 지나치게 규칙적이고 여유로와서 듣는 사람의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저런 규칙성은 곧 깨지기 마련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법이었다.
" 쿵....!"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면서 그가 천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관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천제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용서 받지 못할 천하의 죄인을 앞에 두고 비난하는 듯 싸늘하고 차가운 분노의 눈빛이었다.
기약없이 이어질 듯 하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붉은 갑옷의 그 였다.
" 초율이 지고지존이신 천제의 은덕에 죄를 사하여 받고 비로소 태양 아래 서게 되었으니 이를 갚을 길이 없나이다"
관지는 붉은 갑옷의 그가 격이 높은 말투를 쓰는 것으로 미루어 높은 신분일 거라 짐작했다.
" 천계와 황가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대죄를 지었음을 알 것이다! 단 한 번....다시는 너를 용서하는 일이 없을 것이야!"
천제는 단호하게 그를 향해 소리쳤다.
천제의 분노로 보아 붉은 갑옷의 그가 지은 죄의 무게는 상상 이상인 것에 틀림없었지만, 관지는 도무지 그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초율은 고개를 조아린 채 얌전히 천제의 노여움을 받아들였다.
" 뼛 속 깊이 전하의 말을 새겨 명심하겠나이다"
" 일어나라"
천제의 명령에 초율은 끓었던 무릎을 세웠고 천제는 뒤를 이어,
" 태자는 나와서 절 받으라"
관지는 갑작스런 천제의 명에 당황하여 서투르게 초율의 앞으로 나와 섰다.
가면에 가려져있었지만, 관지는 초율의 차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불쾌한 시선으로 관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머리카락 한 올, 땀 구멍 하나까지도 기억 속에 새겨놓을 듯 자신을 훑고 있었다.
" 태자, 제 4황자의 절을 받으라."
관지는 천제의 말에 정신이 아득했다. 관지 뿐만 아니라 이미 초율의 신분을 알고 있던 후강을 제외한 모든 그의 형제들이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초율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하니 서 있는 관지를 향해 거북스런 태도로 손을 모아 읍하며 억지로 예를 올렸다. 관지는 초율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왠지 섬뜩해 졌다.
하지만, 초율의 진심이야 어쨌든 천제는 비교적 고분고분해진 제 4황자의 태도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 제 4황자의 복위에 따라 짐이 영지를 하사하겠노라. 갖고자 하는 곳이 있느냐?"
황자와 황녀들은 그 서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천제로부터 영지를 하사 받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그 영지에 대해선 차후 천제조차 간섭할 수 없는 거의 절대적인 소유와 관리권을 가지게 되었고 무단 침입자에 대해서도 임의적으로 처리할 수 잇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그러니, 초율이 황자로 밝혀진 이상 영지를 하사받는 일은 당연했지만 이어지는 초율의 말이 다시 모두를 질리게 만들었다.
" 제게 촉룡산을 돌려주십시오"
초율은 일말의 망설임없이 천제에게 요구를 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자동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문제는 촉룡산이었다. 아미산과 더불어 천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4대 성산(聖山) 가운데 하나인 촉룡산을 그는 분명히 "돌려" 달라고 했다. 수많은 천마의 무리가 살고, 진귀한 약초의 군락이 있으며 보석을 박아놓은 듯 빛나는 촉룡산의 전 주인이 초율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들은 적이 없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 그 산은 이미 새 주인이 생겼느니라. 동방성 지국천에게 주었다."
관지는 동쪽 변방을 넘나들던 수라족을 대거 토벌한 지국천왕의 공을 칭찬하며 천제가 촉룡산을 상을 하사한 일을 기억해냈다. 그는 초율이 별 수 없이 다른 영지를 요구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촉룡산에 대한 초율의 집착은 강했다.
" 제가 지국천에게서 다시 촉룡산을 받아오면 제 것이 되는 것이겠지요?"
뜻밖의 말에 천제도 놀란 표정이었고 다른 형제들도 긴장하여 천제의 결정을 기다렸다.
" 흠...뜻대로 하라. 다만 내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디시는 너를 용서하는 일이 없을것이다. "
천제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초율이 기적적으로 사면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제서야 초율은 그 곳에서의 볼 일이 다 끝났다는 듯 일어서서,
" 빛이 익숙치 않아 돌아가 쉬겠습니다."
하고 천제와 그의 형제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천제는 그 짧은 시간을 보내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자녀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제 3황비의 시중을 받으며 서둘러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 거대한 제황성에는 수많은 황족들이 살고 있었다. 서로가 얼굴을 대면할 기회는 흔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첩의 자식들이나 먼 친척뻘인 황족들을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하지만 초율처럼 괴상하고 눈에 띄는 황자를 어째서 다들 모르고 있엇는지 모두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더구나 관지는 자기 바로 아랫동생인 그를 모르고 있엇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 누님! 아까 그 분이 제 형님되시는 분이시라구요?"
다들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아까부터 눈빛을 반짝이고 초율을 바라보던 현강이 반가운 목소리로 지우에게 되물었다. 현강만이 초율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작은 황자는 방실거리며,
"보셨죠? 누님, 형님? 굉장히 멋진 갑옷이었어요!"
현강은 관지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 그리고..검은 머리였어요. 아버님을 닮은 근사한 검을 빛이요. 밤하늘을 닮은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형님이셧어요!"
관지와 후강과 지우는 이 작은 황자의 발견에 동시에 소름 끼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천제의 수많은 자녀들 중에 검은 머리는 없었다. 정작 천제 자신이 아름다운 흑단의 머리카락을 가졌음에도 그를 닮은 검은 머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초율은 유일하게 아버지의 검고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직감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지우는 현강의 머리를 쓰다음으며 달래듯 말했다.
" 현강, 제 4황자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접도록 해. 절대 그에게 가까이 가지 말거라"
" 네...? 왜요?"
현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우는 뭔가 더 말 하려다 그저 현강의 손을 잡아 끌면서,
" 가자, 누나가 말을 태워주마"
하고 후강과 관지에게 간단한 눈인사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후강은 신이 나서 누나를 따라가는 현강에세 손을 흔들어주며,
" 태자전하, 제 거처로 가서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관지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띄며 이끄는 후강을 막막한 눈으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