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가까워지면서 들녘의 벼들은 날이 갈수록 누런색에서 황금색으로 바뀌어 지더니 머리가 더 무거워지는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몇 마리의 고추잠자리가 천천히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길옆의 풀 속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노란 하얀 나비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날개를 팔랑거리며 풀 가까이로 다가가더니 이미 져버린 꽃에 실망을 했는지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어디론가 멀리 날아갑니다. 시골마을 입구에 하늘 높이 서있는 밤나무는 어느새 알이 굵은 밤알을 한 알 두알 땅으로
토해내기 시작하고 언제나 지붕위에서 오가는 길손을 반겨주던 보름달처럼 둥근 노란 호박이 언제부터인지 밭으로 자리를 옮겼어도 언제나 활짝 웃으며 오가는 길손을 반겨주고 있고 억새의 보드랍고 하얀 솜털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가을은 정말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저는 오늘도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엄청나게 늘어난 소포와 우편물을 열심히 배달하다 도착한 곳은 보성읍 용문리2구 보성읍에서는 유일한 여성(女性) 이장(里長) 님이 살고 계시는 주음마을입니다.
그리고 이장님의 대문 앞에서 빵빵하고 오토바이의 클랙슨을 울리자 이장님께서 얼른 달려 나오십니다. “아이고! 요새는 소포 때문에 너무 고생이 많으시지요? 오늘은 무슨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셨어요?” 하시는 이장님의 말씀에 “예! 오늘은 우편물이 많네요!” 하면서 전화요금 그리고 의료보험 고지서 등을 이장님에게 건네 드렸더니 “오늘은 편지가 많이도 왔네!” 하시며 우편물을 한통 한통 살펴보시더니 “어머! 반가운 편지가 왔네!”하시며 눈을 반짝 빛내십니다.
“아니! 무슨 편지인데 그렇게 반가운 편지가 왔어요?”하고 물었더니 편지 한통을 저에게 보이시며 “이 사람이 교도소에 있는 사람인데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나와 편지를 나눈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하십니다. “그러면 그 분과 어떻게 알게 되셨는데요?” 하였더니 이장(里長) 님의 눈에는 어느새 20년 전의 세월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저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20여 년 전 교도소에서 재소자의 교정 사업의 하나로 민간인과 편지 나누기 캠페인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 주음마을의 이장 님께서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실 때인데 우연히 어느 지인의 소개로 재소자의 한 사람을 소개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편지가 오고가고 했는데 편지를 나눈 지가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린 것 입니다. “이장 님! 그럼 그 사람은 왜?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다고 하던가요?” 하는 저의 물음에 다시 이장 님께서는 설명을 하십니다. 재소자는 처음 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분식점을 운영하였는데 다행히 분식점 운영이 잘되어서 돈을 벌기 시작하였고
마침 여자친구도 생겨 약혼을 하고는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업을 하던 친구가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상하다? 이 친구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지?”하고 이상하게 생각을 하였는데 그것도 잠시 갑자기 사방에서 빚쟁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답니다. 알고 보니 동업을 하던 친구가 분식점 전세 돈은 물론 지금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재소자 앞으로 돈까지 빌려서는 도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돈을 갚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데 결혼 날짜는 다가오는데 어디서 돈을 빌릴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던 차에 그날도 분식점으로 나가려고 대문 앞을 나서는데 우연히 대문 앞에서 도망갔던 친구를 만난 것 입니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 동안의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듣고 “그럼 돈은 언제 갚을 거냐?”하고 물었는데 그 친구는 한사코 “나는 결코 돈을 갚을 수 없으니 네 마음대로 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화가 난 재소자는 부엌에 있는 칼로 그만 친구를 찌르고는“살인범!”이라는 굴레가 씌워 진채 벌써 20년이 넘도록 교도소에서 재소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잠시 동안만 참았더라면 정말! 잠시만 참았더라면! 살인범이라는 소리도 듣지 않았을 것이고 또 지금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인데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해 보지만 이제는 이미 때가 늦은 일! 그러나 그 동안 모범 재소자로 감형을 받아 이제 6년 후면 교도소에서 출소를 한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참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 같아요! 이제 출감하여 열심히 살아가면 좋겠는데!”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치신 이장 님의 눈가에는 희미한 이슬방울이 맺혀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면서 교도소의 재소자와 민간인과 20년 동안이나 오고간 편지! 그동안 무슨 소식이 오고 갔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부디 그 재소자가 하루 빨리 출감하여 지나간 과거는 모두 잊고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여 옛날처럼 열심히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편지가 맺어준 인연
편지가 맺어준 인연